전라도출신으로 살아간다는것은...

2004.09.27
조회573

(펌글입니다. 저랑 비슷한 경험과 시대를 살아오신분의 이야기인것같아서요...ㅠㅠ조금 시간이 지난 이슈이긴 하지만, 충분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시대의 기성세대들이 반드시 해결해야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투표결과를 보구 호남지역의 몰표에 '이론'이란
표현을 했었습니다...그저 결과만 놓구 보면 그리 곱게 볼수 없는 지지율 이었으니깐여..하지만 그런 결과가 나올수 밖에 없었던 내막를 알고.......가슴이 아파옴니다...


[이글은 MBC 게시판에서 퍼온 글입니다]

제목 : 지역 차별을 아시나요?

저는 30대 초반의 직장인입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10년을 보내고, 나머지 20여년을 서울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 선거에서 있었던 노후보에 대한 호남지역민들의 95% 지지율과 그에 대한 비판을 접하며, 대한민국에서 전라도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짧았던 저의 30여년 인생에서 저는 꽤 여러차례 가슴에 새겨진 전라도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를 한스러워해야만 했습니다.

제가 이러한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때문에 이렇게 몇자 적게 됨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 슬펐던 것은 고등학교 시절입니다. 제 고교시절 수학선생님은 심한 전라도 혐오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거의 매일 수업의 10%를 전라도 얘기에 할애할 정도로 가슴깊이 전라도에 대한 한이 맺혀계신 분이셨습니다.

수업시간에 문제를 못푸는 학생을 때리면서, "니 전라도 사람이가? 왜 이렇게 멍청하노?"라고 물으시고, 반 성적이 개판이면, "이렇게 공부 못할 거면 전부 전남대, 조선대나 가라. 서울서 꼴등해도 거기 의대는 간다"고 말씀하시던 분이었죠.

세상이 시끄러운 사건이라도 하나 생기게 되면 그 날 수업시간의 절반은 자신이 해병대에서 전라도 고참에게 수난을 당한 사연을 들으며, 그 모든 사회악의 근원에 전라도가 있음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저로서는 그냥 나는 전라도 사람이 아니다.. 서울사람이다. 생각하며 저희 부모 형제, 과거의 이웃과 친구들에게 쏟아지는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부터 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제가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가끔씩 그 선생님께서 혹시 이 반에는 전라도 없지? 라고 물으실 때였습니다.

매일같이 선생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시는데, 그 지역 사람들을 별로 본 적도 없고, 별로 접해본 적도 없는 학생들로서는 그냥 그런가보다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런 학생들의 틈바구니에서 저는 혹시라도 저의 '정체'가 들통날까봐 떨리는 몸을 진정시켜야만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해서야 저는 비로소 그 때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에 대해 배울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0년의 광주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3명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왜 죽어가게 되었는지도 알수 있게 되었고, 고교 시절 전라도 혐오증에 시달리고 있는 선생님의 심리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교 시절 이후, 저의 '정체'에 대해 철저히 감추고 살아가면서도 가끔씩은 어쩔수 없이 제 가슴의 주홍글씨를 다시 접하게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학 시절 이후 저는 3번의 연애를 경험했습니다. 3명 모두 꽤 오랫동안 만났었고, 부모님들을 뵐
기회도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만나뵐 때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정확하게 세번 모두 아버님께 거의 똑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희 아버님 세대의 분들.. 꼭 고향을 물으십니다. 그럴때 마다 저는 '제 고향은 서울입니다'.라는 거짓말이 목까지 차올라 옴에도 광주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 분의 아버님은 저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아.. 그래.. (한참의 침묵 후..) 뭐 요즘은 전라도 사람.. 뭐 괜찮지.. 전라도가 뭐 어때서... 라고 하시더군요. 나머지 한분은 헛기침으로 대답을 대신하셨구요.

아.. 도대체 전라도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길래 이리도 죄인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그 중 한명과 헤어질 때는 제가 안되는 이유 중 하나가 제 태생의 한계(?)라는 이야기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이야기가 장황해졌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별로 낯설지 않으시겠지요. 이런 얘기가 짜증이 나실 수도 있겠네요.
저의 특별한 경험으로 전체를 일반화하지 말아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네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역차별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비슷합니다. 자신이 당사자가 되기 전에는 실제로 그런 것들이 존재하는 것을 느끼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당사자에게는 끔직히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들도, 상관없는 사람들은 그냥 일상적으로 지나치게 되는 것이죠. 군대를 가기 전에는 세상에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있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자신이 군대에 갔다던지 혹은 친한 사람이 군대에 가게 되면 길거리에 놀랍게 많은 군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지요.

아마도 이 땅에서 전라도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저같은 경험을 한번도 하지 못한 사람은 없으리라고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1980년 광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광주밖에서 그 일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지금도 별로 없습니다.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겠지요. 오히려 20년이나 지났는데 광주를 떠들지 말아라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1980년 당시의 광주는 전형적인 Gemeinschaft 였습니다. 인구도 적었을뿐더러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아마도 두다리쯤 건너면 아는 사람인, 그런 작은 사회였습니다. 아마 지금도 비슷할 것입니다. 광주 시내에서 싸움이 나면 한두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 형, 친구, 동생 뻘이고 누군가와 연애를 하게 되면 친구들이 '아.. 누구집딸?'하고 아는 수준이지요.

그런 광주에서 1980년에 천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학살당했습니다. 헌혈을 하러가던 여중생이 총탄에 맞아 죽고, 백주대낮 시내에서 임산부가 가슴이 도려진 채 죽어갔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모두 누구집 막내딸, 선배 형수, 이웃집 사촌동생뻘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잊혀질 수 있겠습니까. 그 학살이 지나간 후, 누가 벌을 받았나요? 죽은 자는 빨갱이의 누명을 쓰고, 살아남은 자는 전라도의 주홍글씨를 평생토록 가슴에 지고 살아가는 동안, 학살자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그들은 화통한 마피아 보스쯤으로 평가받으며 아직도 정당을 이끌어가고, 금배찌를 달고 당당히 서류를 흔들어대며 국회의원으로 행세를 하고 삽니다.

1980년의 그들은 출마만 하면 당선되는 최고 인기 정치인으로 성장하였고, 지금도 버젓이 민정계라는 이름으로 한 정당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어제 대통령 선거 결과를 놓고 말들이 많습니다. 인터넷 게시판마다 전라도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들로 넘쳐납니다.

그 글들의 전체적인 맥락은 '전라도 사람들은 지독한 족속들이다. 그 광신도들은 90%이상 몰표주는게 특기다. 역시 전라도는 상종 못할 족속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제 저에게 지역감정은 더이상 지역감정이 아닌 인종차별로 느껴집니다. 인종차별의 딱한가지 논리는 '그들은 검다. 검으면 무식하고 더럽다'입니다.
백인이나, 흑인이나 그들이 태생적으로 무식하고 더러울 확률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흑인이 무식하고 더러운 짓을 하면, 아.. 역시 흑인은 더럽고 무식해라는 기존의 편견은 더욱 강화됩니다.

나찌는 2차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유대인을 그들의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반인륜적인 전쟁에 대한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방법은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국민의 모든 불만과 스트레스는 유대인에게 보내자는 것이었죠. 나찌가 만들어놓은 상징은 '유대인은 교활하다'는 것이었고, 독일 국민들은 그 상징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자신들의 심리적 압력을 해소했습니다.

지난 40여년의 군사독재기간동안, 그들은 전라도를 똑같은 방법으로 활용해왔습니다.

처음 '전라도'는 박정희 정권의 정권 연장을 위해 정치적으로 활용된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그 '훌륭하고 효율적인' 도구는 개발독재의 미명하에 빚어지는 모든 사회적 압력을 해소하는 희생양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다시 선거 얘기로 돌아가지요.

이번 선거는 DJ에 미친 전라도 백성때문에 노무현의 승리로 결판났다. 라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95%의 지지율에 대해서도 비판들이 많습니다.

왜 전라도 사람들은 95%의 표를 노무현에게 던졌을까요? 사실상 그 질문은 '왜 광주는 국민경선에서 동교동계를 거부했는가?'부터 시작되어야 공평하다고 봅니다.

그들이 정말로 김대중에 미쳐, 투표를 한 것이라면 후보부터가 김대중의 계보인 동교동계가 지명한 사람이었어야 하는게 아닙니까?

호남사람들은 아직도 뻔뻔스럽게 고개를 쳐들고 살아가는 나찌같은 집단이 '기생'하는 집단을 지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미래의 정형근 국정원장?을 위해 이회창에게 투표합니까?

이회창은 대법관으로서 진보적인 소수의견을 많이 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정치 입문 초기에는 깨끗하고 청렴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던 인물입니다. 만약 이회창이 군사독재세력의 반대편에서 싸웠다면 호남사람들은 이회창에게 95%의 표를 던졌을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입니다. 현재 호남지역에서 투표권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1980년 이후의 현대사를 몸으로 체험하고 살아온 세대입니다.

이들에게 왜 아무도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왜 유대인 중 아무도 나찌를 사랑하지 않으며, 왜 한국인 중 아무도 일본 식민지배의 타당성에 동의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과 비슷합니다.

형과 누이를 살해한 집단이 여전히 그들의 이름을 내세우고 떵떵거리고 살아가며, 죽음당한 이들을 다시 욕보이며, 너희들은 죽어야 싼 백성이라고 지금껏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구경꾼들은.. 그냥 그런가보다 할 뿐이지요. 오히려 거들어가며 가슴에 더 지독한 비수를 꽂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들을 지지하라고요? 그렇게 부당한 요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적지요.

이 게시판에 전라도 전라도 타령만 늘어놓으시는 여러분, 당신이 왜 그렇게 DJ를 미워하고, 왜 그렇게 전라도를 미워하시는지 이해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그렇게 떳떳이 매도하고 욕할 수있는 권리를 당신께 주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집단을 당신이 그렇게 당당하게 모욕하고 짓밟을 수 있습니까. 전라도에게는 그렇게 떳떳히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는게 전라도에 대한 이 사회의 차별을 반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찌의 시대가 지나간 독일에서,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 상징을 조장, 유포하거나, 심지어 발언할 경우, 그것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미국에서도 똑같은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사회에도 똑같은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