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아버지 당신이 술 한잔 하시면 흥얼거리던 노래가 귓가를 맴돈다.풍자와 해학이 엿보여 웃음이 나오는 만담같은 노래지만 지금 생각하니 교훈이 담겨있다. 어울리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짧은 노랫말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유추(類推)할 수 있다.
노인들만 보이던 마을에 외지 번호판을 단 승용차들이 마을을 애워싸고 있다.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아온 차들이다. 갑자기 고샅길에는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마을을 밝게 하고 있다. 덩달아 노인들의 얼굴도 오랫만에 주름이 펴진다.
나는 도투락댕기로 머리를 장식한 예쁜 어린아이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댕기는 비녀와 더불어 머리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장신구의 하나다.도투락댕기는 뒷머리가 채 자라지 않은 어린이의 장식용댕기로 쓰여왔다. 어린이용 도투락댕기의 모양은 어른의 예장용과 같으나 그 크기는 훨씬 작다. 작은 도투락댕기에다 조그만 끈을 달아 뒤통수 밑에다 바짝 달아줌으로써, 어린이의 머리모양을 화사하고 귀엽게 장식하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명절중에 큰 명절은 누가 뭐래도 '설'날과 '추석'이다. 추석날이면 간혹 한복을 입고 나들이를 하는 모습을 가뭄에 콩나듯 볼 수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잊혀져가는 우리의 고유한 전래 의상들이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박물관에나 가야할 날을 손꼽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앞을 선다.
위의 그림을 보라.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빼앗는 한국적인 미(美)다.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망각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우리의 전통의상과 그 주변 악세사리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이야기 하면서 촌스럽다거나 뭐 볼 것이 있다고 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도외시 하려 한다.
한복에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형은 역시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쪽진머리이다. 그 옛날 삼단같은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곱게 빗어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뒤로 모아 낭자를 튼 쪽머리는 가장 아름다운 한국 여인의 표상(表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쪽을 진 뒤 비녀로 고정시킨다. 비녀를 꽂을 때는 쪽의 양쪽 구멍으로 꽂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꽂아 비녀 끝이 왼쪽으로 나오게 하여 균형을 맞추면 된다. 쪽진머리가 성숙한 여인의 한복 차림에 어울린다면, 어린 소녀나 처녀의 한복 차림에는 땋은머리가 어울린다. 옛부터 쪽진머리는 기혼녀의 상징이엇고, 땋은머리는 미혼녀의 상징이었다.
3/2정도까지 땋은머리에서 댕기를 위쪽에 대고, 머리의 한 가닥과 같이 합쳐 댕기와 같이 2~3회 가량 땋아 내려간다. 가닥 머리와 합쳐서 한두 번 더 땋은 뒤 긴 가닥으로 머리를 한번 돌려서 매면 아름다운 댕기머리가 된다.
쪽진머리나 땋은머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때는 현대적인 머리에 고전적인 멋을 가미시킨 얹은머리나 쪽머리의 변동 등으로 예쁜 동정선을 살려주어 한복의 맵시를 살릴 수가 있다. 가령 머리가 길 때는 , 앞가리마를 타거나 가리마없이 머리를 곱게 빗어 넘겨 땋아서 마리 둘레를 감아 뒷중심에서 틀어 고정시키면, 한복선에 어울리는 깔끔한 머리 모양이 된다. 그리고 중간 정도 길이의 머리라면 앞머리와 옆머리를 적당히 부풀려 빗은 뒤, 옆은 자연스럽게 말아 넘겨 쪽머리 비슷한 형태로 만들면, 그런대로 한복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산뜻한 머리형이 된다.
시대가 변하다보니 땋은 머리는 전설이 되었고, 쪽진머리도 그림의 떡이려니,비녀는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호기심어린 관심사가 되었다. 프랑스의 각급학교에서는 아랍계 학생들의 차도르를 쓰고 등교하는 문제가 프랑스 정부 당국과 아랍인들의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의식의 대립이 첨예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의복을 너무 쉽사리 포기하지않은가 싶어 마음이 어둡다.
명절이면 남자들은 놀다 지치고, 여자들은 일하다 지친다는 말들을 한다. 물론 여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한국적인 풍습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전래의 내림상황이다보니 감수해야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한복의 아름다움도 일하기에는 거추장스러울뿐이라 말들 하니 우리네 여인들의 일상에서 멀어져 가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그래도 명절만큼이라도 한복을 한번쯤은 입은 모습들을 거리에서라도 보고싶었으면 한다.
김 명 수
*보기 쉽지 않은 사진들입니다.*
▲ 까치두루 / 색동, 오색비단으로 지어 설빔으로 유아들이 많이 입던 옷입니다
▲ 납의 / 먹물들인 무명으로 만든 승려의 저고리 모양의 긴 웃옷입니다
▲녹의홍상
▲ 당의 / 간이예복(簡易禮服) 또는 소례복(小禮服)으로 평복(平服) 위에 착용하였으며, 계절에 따라 재료를 다르게 만들어 일년을 통해서 계속 착용되는 옷으로, 겹당의와 홑당의의 두 종류가 있는데, 겹당의는 초록색(草綠色) 비단에 다홍색 안을 받치고 자주색 겉고름과 안고름을 달았으며, 소매끝에는 창호지 속을 넣어 흰 천의 거들지를 달았습니다. 여름에는 당한삼이라고 하여 흰 홑당의를 입었는데, 이 당한삼은 도련이나 소매부리 솔기를 아주 실날같이 가늘게 하기 위하여 밀어가면서 감치고, 깍은 당한삼은 겹당의와 도련이 특이하게 다릅니다. 당의의 특징은 뒤나 앞이나 길이 길게 늘어져서 양귀가 섶코같이 뾰족히 나왔는데, 깍은 당한삼은 양귀가 저절로 안으로 접혀 들어가서 도련이 입체적으로 둥글게 된 것입니다. 왕족(王族)의 당의에는 직금(織金)과 부금(付金)을 하였습니다. 궁중에서는 5월 단오 전날 왕비가 흰 당적삼으로 갈아 입으면 단오날부터 궁중에서는 모두 당적삼으로 갈아 입었으며 또 추석 전날 왕비가 다시 당의로 갈아 입으면 추석전날부터 궁중에서는 다시 당의로 갈아 입었고, 반가에서도 그대로 하였으며 겨울철에는 초록색이 아닌 자색(紫色) 당의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 심의 / 덕망 높은 노재상이 입던 예복입니다
▲ 자원삼 / 자원삼은 빈이 입던 예복으로 얇은 자주 비단에 위와 아래에 불수(佛手), 매화, 수(壽), 복(福)자 모양의 금박한 단을 두고 소매 끝에는 노랑, 남색의 금직단과 수복문을 금박한 백색 한삼으로 장식했습니다.
▲ 적의 / 왕비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세손비만 입을 수 있는 대례복(大禮服)을 말하는 것으로 임진왜란 전까지의 적의(翟衣)는 명(明)에서 사여한 왕비복(王妃服)으로 명(明) 군왕비(郡王妃) 예복(禮服)과 같고, 대삼(大衫)을 말하는 것으로 그 구성은 대삼(大衫), 배자(褙子), 하피, 대대(大帶), 옥혁대(玉革帶), 수(綬), 옥패(玉佩), 말(襪), 석, 옥규(玉圭)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후의 왕비예복(王妃禮服)은 차츰 국속화하여 영조대(英祖代) 「국혼정례(國婚定例)」에서 우리 나름대로 적의(翟衣)를 제정하여 국말(國末)까지 습용하였으며, 고종(高宗)이 황제에 오르면서 명(明) 황후(皇后) 적의제(翟衣制)를 그대로 습용하게 되었습니다.
▲ 전령복 / 좁은 소매에 공문을 감추는 흰한삼을 단 청색 무명의 세자락 옷입니다
▲ 조복 / 임금님께 하례 드릴때, 나라의 큰행사때나 경축일에 문무백관이 입던 관복입니다
▲ 중치막 / 유생들의 평상시 예복으로 창옷과 같은모양이나 소매가 넓은 옷으로 무가 없고, 양옆이 완전히 터졌으며 소매는 두리소매 입니다.
▲ 활옷 / 활옷은 공주나 옹주의 대례복으로 홍색(紅色)의 길에 화려한 무늬의 수를 놓은 옷입니다. 원삼과 같이 중국식 포제(袍制)에서 나와 국제(國制)가 된 것으로 원삼보다는 화려하게 꾸민 것입니다. 「고려도경(高麗圖經)」 귀부조(貴婦條)에 왕비(王妃)는 대홍의(大紅衣)를 입었는데, 여기에는 증수(繒繡)를 놓았다고 하였는데 활옷의 화려한 면모를 엿보게 하는 것입니다. 주로 상류계급에서 주로 착용하던 예복이나 후에 서민층에도 혼례시 착용이 허용되었는데, 다홍색 비단 바탕에 장수(長壽)와 길복(吉福)을 의미하는 물결, 바위, 불로초(不老草), 어미봉(鳳), 새끼봉(鳳), 호랑나비, 연꽃, 모란꽃, 동자(童子) 등의 수(繡) 외에 이성지합(二姓之合), 만복지원(萬福之源), 수여산(壽如山), 수여해(壽如海) 등의 글씨를 수놓았고, 수구(袖口)에 한삼(汗衫)을 달았으며, 대대(大帶)를 띠었습니다. 안에는 노랑 삼회장 저고리와 다홍 대란치마를 입었으며, 수식(首飾)으로는 용잠(龍簪)을 꽂고 뒷댕기(큰댕기)를 드리웠으며, 칠보화관(七寶花冠)을 썼습니다.
출처 :"한국의 美"
품 바 타 령
에헤 ~~ 씨구씨구 씨구씨구 들어간다
자.. 절 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에헤 ~~ 우리 어머니가 날 날적에 미역국이나 퍼 잡수셨는지 미끈미끈 미끈미끈 잘이한다
우리 아버지가 날 이뻐할때에 막걸리 사발이나 퍼 잡수셨는지 껄쭉껄쭉 껄쭉껄쭉 잘이한다
품바허고도 잘이한다
에헤 ~~ 씨구씨구 씨구씨구 들어간다
자.. 절 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에헤 ~~ 우리 할머니가 날 기를적에 냉수사발이나 퍼 잡수셨는지 시원시원 시원시원 잘이한다
한복의 아름다움 / 94
"여봐라 당신아 구두를 사두가
무슨 구두 나이롱구두 뺏딱구두로
구두를 신고서 콩밭을 메며는
너도 망신 나도 망신 집안 망신아
여봐라 당신아 머리를 해두가
무슨 머리 빠마머리 나이롱 머리로
빠마를 하고서 물동이를 이며는
너도 망신 나도 망신 집안 망신아"
어릴 적 우리 아버지 당신이 술 한잔 하시면 흥얼거리던 노래가 귓가를 맴돈다.풍자와 해학이 엿보여 웃음이 나오는 만담같은 노래지만 지금 생각하니 교훈이 담겨있다. 어울리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짧은 노랫말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유추(類推)할 수 있다.
노인들만 보이던 마을에 외지 번호판을 단 승용차들이 마을을 애워싸고 있다.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아온 차들이다. 갑자기 고샅길에는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마을을 밝게 하고 있다. 덩달아 노인들의 얼굴도 오랫만에 주름이 펴진다.
나는 도투락댕기로 머리를 장식한 예쁜 어린아이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댕기는 비녀와 더불어 머리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장신구의 하나다.도투락댕기는 뒷머리가 채 자라지 않은 어린이의 장식용댕기로 쓰여왔다. 어린이용 도투락댕기의 모양은 어른의 예장용과 같으나 그 크기는 훨씬 작다. 작은 도투락댕기에다 조그만 끈을 달아 뒤통수 밑에다 바짝 달아줌으로써, 어린이의 머리모양을 화사하고 귀엽게 장식하는 것이다.
우리 고유의 명절중에 큰 명절은 누가 뭐래도 '설'날과 '추석'이다. 추석날이면 간혹 한복을 입고 나들이를 하는 모습을 가뭄에 콩나듯 볼 수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 잊혀져가는 우리의 고유한 전래 의상들이 이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박물관에나 가야할 날을 손꼽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앞을 선다.
위의 그림을 보라.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이것이 세계인들의 마음을 빼앗는 한국적인 미(美)다.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망각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은 우리의 전통의상과 그 주변 악세사리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이야기 하면서 촌스럽다거나 뭐 볼 것이 있다고 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도외시 하려 한다.
한복에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형은 역시 전통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쪽진머리이다. 그 옛날 삼단같은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곱게 빗어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뒤로 모아 낭자를 튼 쪽머리는 가장 아름다운 한국 여인의 표상(表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쪽을 진 뒤 비녀로 고정시킨다. 비녀를 꽂을 때는 쪽의 양쪽 구멍으로 꽂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꽂아 비녀 끝이 왼쪽으로 나오게 하여 균형을 맞추면 된다. 쪽진머리가 성숙한 여인의 한복 차림에 어울린다면, 어린 소녀나 처녀의 한복 차림에는 땋은머리가 어울린다. 옛부터 쪽진머리는 기혼녀의 상징이엇고, 땋은머리는 미혼녀의 상징이었다.
3/2정도까지 땋은머리에서 댕기를 위쪽에 대고, 머리의 한 가닥과 같이 합쳐 댕기와 같이 2~3회 가량 땋아 내려간다. 가닥 머리와 합쳐서 한두 번 더 땋은 뒤 긴 가닥으로 머리를 한번 돌려서 매면 아름다운 댕기머리가 된다.
쪽진머리나 땋은머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때는 현대적인 머리에 고전적인 멋을 가미시킨 얹은머리나 쪽머리의 변동 등으로 예쁜 동정선을 살려주어 한복의 맵시를 살릴 수가 있다. 가령 머리가 길 때는 , 앞가리마를 타거나 가리마없이 머리를 곱게 빗어 넘겨 땋아서 마리 둘레를 감아 뒷중심에서 틀어 고정시키면, 한복선에 어울리는 깔끔한 머리 모양이 된다. 그리고 중간 정도 길이의 머리라면 앞머리와 옆머리를 적당히 부풀려 빗은 뒤, 옆은 자연스럽게 말아 넘겨 쪽머리 비슷한 형태로 만들면, 그런대로 한복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산뜻한 머리형이 된다.
시대가 변하다보니 땋은 머리는 전설이 되었고, 쪽진머리도 그림의 떡이려니,비녀는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호기심어린 관심사가 되었다. 프랑스의 각급학교에서는 아랍계 학생들의 차도르를 쓰고 등교하는 문제가 프랑스 정부 당국과 아랍인들의 전통을 고수하고자 하는 의식의 대립이 첨예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의복을 너무 쉽사리 포기하지않은가 싶어 마음이 어둡다.
명절이면 남자들은 놀다 지치고, 여자들은 일하다 지친다는 말들을 한다. 물론 여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한국적인 풍습의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전래의 내림상황이다보니 감수해야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한복의 아름다움도 일하기에는 거추장스러울뿐이라 말들 하니 우리네 여인들의 일상에서 멀어져 가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그래도 명절만큼이라도 한복을 한번쯤은 입은 모습들을 거리에서라도 보고싶었으면 한다.
김 명 수
*보기 쉽지 않은 사진들입니다.*
▲ 당의 / 간이예복(簡易禮服) 또는 소례복(小禮服)으로 평복(平服) 위에 착용하였으며, 계절에 따라 재료를 다르게 만들어 일년을 통해서 계속 착용되는 옷으로, 겹당의와 홑당의의 두 종류가 있는데, 겹당의는 초록색(草綠色) 비단에 다홍색 안을 받치고 자주색 겉고름과 안고름을 달았으며, 소매끝에는 창호지 속을 넣어 흰 천의 거들지를 달았습니다. 여름에는 당한삼이라고 하여 흰 홑당의를 입었는데, 이 당한삼은 도련이나 소매부리 솔기를 아주 실날같이 가늘게 하기 위하여 밀어가면서 감치고, 깍은 당한삼은 겹당의와 도련이 특이하게 다릅니다. 당의의 특징은 뒤나 앞이나 길이 길게 늘어져서 양귀가 섶코같이 뾰족히 나왔는데, 깍은 당한삼은 양귀가 저절로 안으로 접혀 들어가서 도련이 입체적으로 둥글게 된 것입니다. 왕족(王族)의 당의에는 직금(織金)과 부금(付金)을 하였습니다. 궁중에서는 5월 단오 전날 왕비가 흰 당적삼으로 갈아 입으면 단오날부터 궁중에서는 모두 당적삼으로 갈아 입었으며 또 추석 전날 왕비가 다시 당의로 갈아 입으면 추석전날부터 궁중에서는 다시 당의로 갈아 입었고, 반가에서도 그대로 하였으며 겨울철에는 초록색이 아닌 자색(紫色) 당의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 심의 / 덕망 높은 노재상이 입던 예복입니다
▲ 자원삼 / 자원삼은 빈이 입던 예복으로 얇은 자주 비단에 위와 아래에 불수(佛手), 매화, 수(壽), 복(福)자 모양의 금박한 단을 두고 소매 끝에는 노랑, 남색의 금직단과 수복문을 금박한 백색 한삼으로 장식했습니다.
▲ 적의 / 왕비와 왕세자비 그리고 왕세손비만 입을 수 있는 대례복(大禮服)을 말하는 것으로 임진왜란 전까지의 적의(翟衣)는 명(明)에서 사여한 왕비복(王妃服)으로 명(明) 군왕비(郡王妃) 예복(禮服)과 같고, 대삼(大衫)을 말하는 것으로 그 구성은 대삼(大衫), 배자(褙子), 하피, 대대(大帶), 옥혁대(玉革帶), 수(綬), 옥패(玉佩), 말(襪), 석, 옥규(玉圭)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후의 왕비예복(王妃禮服)은 차츰 국속화하여 영조대(英祖代) 「국혼정례(國婚定例)」에서 우리 나름대로 적의(翟衣)를 제정하여 국말(國末)까지 습용하였으며, 고종(高宗)이 황제에 오르면서 명(明) 황후(皇后) 적의제(翟衣制)를 그대로 습용하게 되었습니다.
▲ 전령복 / 좁은 소매에 공문을 감추는 흰한삼을 단 청색 무명의 세자락 옷입니다
▲ 조복 / 임금님께 하례 드릴때, 나라의 큰행사때나 경축일에 문무백관이 입던 관복입니다
▲ 중치막 / 유생들의 평상시 예복으로 창옷과 같은모양이나 소매가 넓은 옷으로 무가 없고, 양옆이 완전히 터졌으며 소매는 두리소매 입니다.
▲ 활옷 / 활옷은 공주나 옹주의 대례복으로 홍색(紅色)의 길에 화려한 무늬의 수를 놓은 옷입니다. 원삼과 같이 중국식 포제(袍制)에서 나와 국제(國制)가 된 것으로 원삼보다는 화려하게 꾸민 것입니다. 「고려도경(高麗圖經)」 귀부조(貴婦條)에 왕비(王妃)는 대홍의(大紅衣)를 입었는데, 여기에는 증수(繒繡)를 놓았다고 하였는데 활옷의 화려한 면모를 엿보게 하는 것입니다. 주로 상류계급에서 주로 착용하던 예복이나 후에 서민층에도 혼례시 착용이 허용되었는데, 다홍색 비단 바탕에 장수(長壽)와 길복(吉福)을 의미하는 물결, 바위, 불로초(不老草), 어미봉(鳳), 새끼봉(鳳), 호랑나비, 연꽃, 모란꽃, 동자(童子) 등의 수(繡) 외에 이성지합(二姓之合), 만복지원(萬福之源), 수여산(壽如山), 수여해(壽如海) 등의 글씨를 수놓았고, 수구(袖口)에 한삼(汗衫)을 달았으며, 대대(大帶)를 띠었습니다. 안에는 노랑 삼회장 저고리와 다홍 대란치마를 입었으며, 수식(首飾)으로는 용잠(龍簪)을 꽂고 뒷댕기(큰댕기)를 드리웠으며, 칠보화관(七寶花冠)을 썼습니다.
출처 :"한국의 美"
품 바 타 령

에헤 ~~
씨구씨구 씨구씨구 들어간다
자.. 절 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에헤 ~~
우리 어머니가 날 날적에
미역국이나 퍼 잡수셨는지
미끈미끈 미끈미끈 잘이한다
우리 아버지가 날 이뻐할때에
막걸리 사발이나 퍼 잡수셨는지
껄쭉껄쭉 껄쭉껄쭉 잘이한다
품바허고도 잘이한다
에헤 ~~
씨구씨구 씨구씨구 들어간다
자.. 절 씨구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에헤 ~~
우리 할머니가 날 기를적에
냉수사발이나 퍼 잡수셨는지
시원시원 시원시원 잘이한다
우리 할아버지가 날 가르칠적에
논어맹자나 읽으셨는지
대문대문 대문대문 잘이한다
품바허고도 잘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