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0세된 두아이의 아빠 그리고 한가정의 가장 이랍니다. 제가 이글을 쓰게된 이유는 여러분의 비판과 질책 그리고 저의 나약함 지푸라기라고 잡는 심정으로 이글을 올립니다. 30 평생 제가 한것이 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겨우 제나이 서른 아직 해야할것도 많고 해야 할일도 많은데 젊은 나이에 신용불량 이라는 딱지를 달고 말았습니다. 배운 것이 라고는 고작 초등학교 졸업학력에 부모님은 가난 이라는 이름에 저를 차가운 길거리로 내버렸고 저는 고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던 보육원은 형편악화로 인해 제가 12살이 되던해 문을 닫아 버렸고 그후 어떤 좋은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두가지의 성격 그자체였습니다. 학업은 커녕 거리에서 신문파는 일을 시켰고 그후 저의 인생은 거의 남을 위해 봉사하는 그자체 였습니다. 도망을 나오려고 해보았지만 저에게 돌아 오는건 심한 매질과 욕설 뿐이 었습니다. 열아홉이 되던해 그분은 교통사고로 인해 돌아가셨고 전 또다시 차가운 사회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그후 신문배달과 우유배달 검정고시를 준비하였지만 저에겐 또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적(한나라의 국민임을 뜻하는 증서)이 없어 호적을 만들려고 백방으로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혼자인 제가 해나가기엔 너무 벅찼고 비용도 많이 들더군요. 결국 자취를 하던 동네 주인집 아저씨 에게 사정을 말씀을 드렸더니 이곳저곳 알아보시고는 저에게 선뜻 보증이라는 걸 서주시더군요. 그 고마운 분으로 인해 저는 태어나서 25해 만에 주민등록 번호라는걸 받게 되었습니다. 그후 더욱 열심히 해야된다는 생각으로 공부도하고 일도 하여 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일엔 재능이 있었는지 대학나온 분들보다는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A/S기사라는 호칭을 붙여주더군요. 그후 조금 모은 돈으로 가게를 열었고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잘되던 가게가 무슨이유인지 어느날부터 적자로 돌아서게 되었고 그후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좋은 아빠 좋은 가장이 되고싶어 더열심히 하려다가 결국엔 몇번의 사기와 저의 주먹구구식 경영때문에 3천만원이라는 카드빛을 지게 되었습니다. 행복했던 저의가정 생활은 엉망이 되어 버렸고 처가에서는 부모도 없고자기 밥벌이도 사람이라며 핀찬만 주더군요.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려 하였지만 나이 도있고 학력도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일자리도 거부당하기 일수였고 그다마 다니던 일당제 사무실도 사람이많아 남은 일자리마저 잃어버리게되었습니다. 저희는 굶어도 아이가 무슨죄가 있겠습니까?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뭐든지 열심히 해보려 하였지만 세상은 냉정 하기만 하더군요. 제가 가진건 몸뚱이 하나뿐 장기라도 팔아서 어떻게 해보려 하여지만 그마저도 사기를 당했답니다. 결국 저희부부는 한동안 고심한끝에 아이와 자살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안되는지 알면서도…… 하지만 아이의얼굴과 인터넷에오른 기사를 보니 차마 그럴수가 없더군요. 언젠간 저도 행복한 한가정의 가장이 되기를 바라면서…… 네티즌 여러분 못난 가장이 두서없이 쓴글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힘이될수 있게 용기를 주세요. 감사합니다. Mail: ikiyahoo@paran.com 입니다.
나쁜아빠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0세된 두아이의 아빠 그리고 한가정의 가장 이랍니다.
제가 이글을 쓰게된 이유는 여러분의 비판과 질책 그리고 저의 나약함 지푸라기라고 잡는 심정으로 이글을 올립니다.
30 평생 제가 한것이 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겨우 제나이 서른 아직 해야할것도 많고 해야 할일도 많은데 젊은 나이에 신용불량 이라는 딱지를 달고 말았습니다.
배운 것이 라고는 고작 초등학교 졸업학력에 부모님은 가난 이라는 이름에 저를 차가운
길거리로 내버렸고 저는 고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있던 보육원은 형편악화로 인해 제가 12살이 되던해 문을 닫아 버렸고 그후 어떤
좋은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두가지의 성격 그자체였습니다.
학업은 커녕 거리에서 신문파는 일을 시켰고 그후 저의 인생은 거의 남을 위해 봉사하는
그자체 였습니다.
도망을 나오려고 해보았지만 저에게 돌아 오는건 심한 매질과 욕설 뿐이 었습니다.
열아홉이 되던해 그분은 교통사고로 인해 돌아가셨고 전 또다시 차가운 사회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그후 신문배달과 우유배달 검정고시를 준비하였지만 저에겐 또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호적(한나라의 국민임을 뜻하는 증서)이 없어 호적을 만들려고 백방으로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혼자인 제가 해나가기엔 너무 벅찼고 비용도 많이 들더군요.
결국 자취를 하던 동네 주인집 아저씨 에게 사정을 말씀을 드렸더니 이곳저곳 알아보시고는
저에게 선뜻 보증이라는 걸 서주시더군요.
그 고마운 분으로 인해 저는 태어나서 25해 만에 주민등록 번호라는걸 받게 되었습니다.
그후 더욱 열심히 해야된다는 생각으로 공부도하고 일도 하여 기술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일엔 재능이 있었는지 대학나온 분들보다는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A/S기사라는 호칭을 붙여주더군요.
그후 조금 모은 돈으로 가게를 열었고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잘되던 가게가 무슨이유인지 어느날부터 적자로 돌아서게 되었고 그후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좋은 아빠 좋은 가장이 되고싶어 더열심히 하려다가 결국엔 몇번의 사기와 저의 주먹구구식 경영때문에 3천만원이라는 카드빛을 지게 되었습니다.
행복했던 저의가정 생활은 엉망이 되어 버렸고 처가에서는 부모도 없고자기 밥벌이도 사람이라며 핀찬만 주더군요.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려 하였지만 나이 도있고 학력도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일자리도
거부당하기 일수였고 그다마 다니던 일당제 사무실도 사람이많아 남은 일자리마저 잃어버리게되었습니다.
저희는 굶어도 아이가 무슨죄가 있겠습니까?
아이의 해맑은 웃음을 보며 뭐든지 열심히 해보려 하였지만 세상은 냉정 하기만 하더군요.
제가 가진건 몸뚱이 하나뿐 장기라도 팔아서 어떻게 해보려 하여지만 그마저도 사기를 당했답니다.
결국 저희부부는 한동안 고심한끝에 아이와 자살을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안되는지 알면서도……
하지만 아이의얼굴과 인터넷에오른 기사를 보니 차마 그럴수가 없더군요.
언젠간 저도 행복한 한가정의 가장이 되기를 바라면서……
네티즌 여러분 못난 가장이 두서없이 쓴글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힘이될수 있게 용기를 주세요. 감사합니다.
Mail: ikiyahoo@paran.com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