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상

유지연200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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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머릿속이 하도 수다스러워 잠을 청해도 잘 수 없으니 몸이 손해가 많다.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소란스럽다보면 막상 말이 앞서지 않고 더러는 말문도 막혀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내가 살아온 세월이 자체적인 회상으로 추려지고 걸러져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제법 사려 깊은 생각을 한다.

머리가 하는 일을 잠시 내버려 두고자 한다. 이렇게 스스로 차분해지려는 노력이 가상하여 나는 이참에 전적으로 나를 도울 작정이다.


우선 나는 그동안 꿈꿔왔던 내 길을 걷기 위해 책으로 지혜를 얻을 것이고 부족한 면과 타협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새롭게 노력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동안 해왔던 산책을 계속 하고 싶다. 나는 걷는 동안 밤사이 놀았던 정신과 육체가 아침공기와 만날 수 있도록 크게 호흡하고 온몸으로 기지개를 펼 것이다. 마이클이 한껏 뛰노는 동안 나는 어제의 나를 샅샅이 반성하고 오늘을 도모할 것이다. 

가게를 위해 일하는 종업원들 각자가 성실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화목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서로 존중하면서 협조할 수 있도록 내가 솔선수범할 것이다.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정성을 다한 음식으로 대접할 것이며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꼭 마음으로 전달할 것이다.


내가 가게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기왕, 마음을 다하면 왠지 기쁘고 매일 새로운 관심을 갖다보니 정신이 살아나는 기분이라서 날마다 그곳에서 행복을 얻어온다.

고마운 일이다.


이곳 양재동으로 남자친구와 거처를 옮긴 지 일년이 넘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면, 그와는 당연히 같이 살아보아야 했다. 당시의 내 맘이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나는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전남편과의 동거를 청산했다. 잘 한일이다. 그러나 차츰 혼자 있고 싶다는 강한 바람이 나의 가슴에서부터 일기 시작했다. 그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는 홀로 있고 싶었다. 그와 같이 있기 때문에 혼자 있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별이 거북하지 않게 그가 군대로 떠나주어 천만 다행이었다. 나는 때를 보아서 그가 군대에 가지 않았어도 혼자 있고 싶었다는 뜻을 밝혔고 이제 내가 결정한 데로 믿고 행동하는 것이 주변을 덜 어지럽게 하는 가장 옳은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고대하던 자유가 찾아왔다.

아침이 즐거웠고 나는 매일 매일을 학수고대했다. 나는 무지하게 양재천을 걸었고 나는 무지하게 마이클(나의 강아지)과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오락프로를 닥치는 대로 보면서 혼자서 진탕 웃고 홀연 울기도 했다. 글을 쓰느라 시간을 보내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나는 아무 때고 집안을 깨끗이 했다. 이것이 내가 바라던 혼자의 시간이었다. 내 생활은 그리 다양하지도 않았지만 결코 소홀하거나 허술하지도 않았다.


전 남편과는 늘 완전한 헤어짐 없이 만남과 이별을 거듭한 것이 벌써 네 번째이다. 마지막으로 그와 성북동에서 2년을 사는 동안 내가 특별히 남자친구가 생겨 그 집을 나왔다. 헤어진 2년 동안 나는 남자친구와 동거도 끝을 냈다. 내 나이 마흔이다. 마흔이라는 나이에도 나는 정작 불안하지 않았다. 그렇게도 예민하고 민첩하게 미래를 계산에 넣고 살았던 내가 낙천적인 사람으로 변화 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라 할 수 없었다. 나는 마흔에 실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았고 그 시간은 나의 과거를 추적하고 차근차근 진단해 보는 계기로 마련했다. 내가 내 자신을 움켜지고 단단하게 살아온 세월이 있어서 나는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인지 명확히 알아냈다. 나는 홀로 유유히 사는 게 꿈이다. 하지만 내가 누구와 함께 있은들 무관하게 늘 나의 내면이 튼튼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준비를 갖추기 위해 내심 충실하기로 했다.


그 무렵 나는 양재동에서 다시 전 남편을 만났다.

“서울이 아무리 좁다 해도 니가 양재동에 살줄이야.......”

마침 그의 활동영역도 우연히 양재동이었던 지라 우리는 어의 없이 이곳에서 다시 만났다.

이렇게 다시 시작된 그와의 만남이 드문드문 이어지더니 지난달 그가 이곳에 칼국수 집을 인수하면서 덜컥 내게 운영을 맡겼다.

느닷없이 식당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우선 내가 홀로 사는데 필요한 몇 가지 고민, 사실상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었다. 혼자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멍해진다. 양보심이 덜하여 자주 화가 나고 마음이 좁아져서 생각이 자라나질 못한다. 나 스스로를 등한시 하다보면 타인을 완전히 무시하게 된다. 게다가 말을 적게 하면 표정이 없어지고 감각이 무뎌진다. 내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면서 나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나의 행동을 유심히 검토하고 다시금 겸손한 자세를 다짐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생겨 저축도 가능해 졌다.

나는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마음과 몸이 함께 게으르지 않도록 자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왜냐하면 이제 사람들을 통해 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왔기 때문에 나는 더욱 바쁘게 반성과 정진을 해야 했다. 나는 나를 감시할 수 있는 제 삼의 눈을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 내가 못난 행동을 할까 두려웠다. 경솔하게 행동하거나 실수가 잦아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감정이 앞서 싫은 표정을 짓고 짜증을 내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나는 마음 하나를 더 만들어서 편견 없이 사랑하고 구별 없이 배려하고 마지막으로 이해하는 마음의 폭을 넓혀야 했다. 이제 내가 더욱 혼자가 될 수 있는, 내가 바라던 것이 눈앞에 있는데 내가 무얼 망설이며 자만하겠는가?


내 한 구석 오만함을 포기하게 하려면 나는 계속 달라져야 하고 나아져야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하찮은 단점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나는 신념을 가지고 꿋꿋이 나를 긍정적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나는 나를 믿고 있기 때문에 용기가 생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냅다 뛰어나오며 오로지 나를 기다려 준 마이클이 나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면서 안심할 수 있도록 구석구석 쓰다듬어 주고 꼭 끼안아 주면서.....

나는 마이클과 두런두런 하루를 마감한다.

나는 행복과 같이 살면 되는 것이다.

내 방 구석구석 어느 곳 에도 행복감이 깃들어 있다.

어제가 근거가 되어 내게 오늘이 주어졌으니 늙어가기는 커녕 매일 매일 새 제품으로 출시되는 나를 생각하면...

나는 공연히 설렌다.

이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