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멘토링

한신희200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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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어느 시기에 우리는 정말 좋은 이를 만날때가 있다. 나는 인간이 계속 발달해가며 시기마다 성장의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라 믿고 있다. 때로는 힘든 고난이 오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서 발전해가기도 한다. 만남이 모여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지난 시간, 나를 즐겁게 한 이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가을이면 떠오르는 사람...

 

  내가 그녀를 만난것은 만으로 열다섯3개월이 되는 해였다. 나는 고등학교에 갓입학을 했었고 상당히 어리숙했지만 오만하였다. 그녀는 대학생이었다. 우리가 만난것은 문학동아리였다. 나는 그곳에서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는데 그때 가장 나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를 만나 나의 머리를 더 굵어져 다음 새학기가 버거울 정도가 되버렸다.

 나는 기독교를 믿지않지만 멘토링이란 단어를 듣고 그 단어가 좋아졌다. 그녀는 당시 나의  멘토링이었다. 다시 더 넓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비판하고 분석하는 방법과 생각하는 법을 키웠으며 무엇보다 처음으로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배웠다.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이던 나는 장난하기를 무척 좋아하여 친구들과 숱한 장난과 여러 일화를 남겼지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상대를 아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관계를 만든다는 개념조차 잘 몰랐다. 서로가 지나온 과거와 생각와 아픔을 나누는 행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어렸었다. 그녀는 내게 새로운 경험과 추억을 안겨주었다.

  우리는 늘 함께할 이야기가 많았다. 문학에 관한 이야기만 해도 목이 쉴 정도로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문학작품과 작가들의 이야기며 써클 사람들 이야기며 서로의 생각에 대한 이야기며  새삼 진지하게 말하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정도였다. 전과는 나를 그녀를 통해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대게 힘이 되어주었다. 당시 학교써클을 하며 이 삼학년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는 매번 전쟁 준비를 하고 학교에 나가야했다. 학년이 위라는 이유만으로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참아내야하며 반격에도 대비해야했다. 약간은 관습적인 것들이었지만 그런것을 용납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매번 전쟁을 치루었다. 그녀는 졸업한 선배였고 현재 있는 이 삼학년들의 선배였다. 힘들때마다 방패막이가 되어주었고 신입생이라 선배들이 사주는 밥값을 아껴 나에게 주말마다 늘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조언해주었다.

 그녀는 같은 학년보다 나이가 한살이 많았다. 집안이 어려워 학교를 일년간 나가지못했다고했다. 그리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때서야 나도 내가 느끼는 솔직한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고 진정으로 그녀를 믿었다.

 동아리사람들과 가을 산에 놀러갔을때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몹시 피곤해하자 언니 배를 배게 베듯 눕게하였는데 뱃속에 나는 소리를 묘사하며 깔깔대던 그때가 너무나도 그립다.  멀리 커다란 나무의 몸을 타고 소리가 흘러 낙엽이 바람에 움직이고 그 움직이는 모양을 타고 과거로 흘러가는 것 같다. 아른하고 그립다. 이생각만 하며 계룡산의 아름다운 단풍과 그녀의 배에 누워있는 내 모습이 판화처럼 떠오르곤한다.

 

 고등학생들이 다들 그렇듯이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동아리 활동을 등한시하게 되었고 개인적인 이유로 서로를 못보게 되었다. 대학 입학하고 그녀를 찾았지만 결혼했다는 것과 호주로 떠났다는 소식만 듣게 되었다. 나의 소녀시기와 나의 아름다운 멘토링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났다. 고등학교 교과서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고 있다며 얼마나 거짓말이 많이 적혓는지 밝히기 위함이라던 그녀의 목소리가 그립다.  대학교 일학년이며 나보다 네살이 많던 그녀에게 나는 세상의 한면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