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60만 청년실업자>를 <60만 청년경쟁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가? 세계각국의 무모한 출산증가정책은 그 실행에 앞서 꼭 같은 기대 하에 출산되어 20년 이상을 허송세월 당하고 있는 몇 십만, 몇 백만의 청년실업자들에게 먼저 호된 심판부터 받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주의는 원래 다소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출발하였다. 앞서 언급된 고전자본주의 기본원리에 더하여,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구하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등, 또 다른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논리에도 바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요는 일정한데 이윤추구가 절대목표인 다수 생산자의 상품판매욕구는 날이 갈수록 증대되어 자연히 그들 다수의 생산·유통·판매자 사이에 경쟁이란 것이 발생되었고, 그 경쟁은 인간의 욕망증진 속도와 보조를 같이 하여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져갔고, 동시에 정도(正道)는 무너지고 갖가지 편법이 난무하게되었다.
그럼에도 예상수입 대부분을 경제강자들에게 간접적으로 빼앗기며 살아오고 있어 일용할 양식과 생활비걱정이 앞서는, 눈앞 한치밖에는 돌아볼 겨를이 없는 각국의 순수·미약한 다수국민은 자나깨나 성장만을 부르짖게 된 것이다. 여전한 경제흐름 속에서는 성장해보아야 성장치 대부분을 그들 강자에게 또 다시 빼앗기게 되는 원리를 잘 알지만, 그래도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건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위태로운 현상들은 드디어 한 국가를 벗어나 세계 각 국가간에 널리 작용하여 무역분쟁으로 발전하였고, 이제는 그것이 무역전쟁이라 불리고도 심한 표현으로 들리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제 각 국가는 현재의 보유인력으로는 극심한 경쟁판에서의 승리를 보장받기 힘들다고 판단, 출산율을 높여 인구숫자를 늘려놓고 보겠다는 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설마 그 중에서 효율적으로 써먹을 인력이 상당수는 생기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걸면서....
각국의 인구증가정책에는 먼 장래에 발생할 고령자우세시대를 고려하여 노년과 청년의 비율에 균형을 맞춘다는 논리가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경쟁력저하를 염려한 데서 나온 결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은 빠른 시일 내에 장기적 안목의 대책을 내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불러낸 임기응변적 시책일 뿐이다. 산술평균법적으로만 본다면 고령자가 청년에 비해 당연히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질과 능력, 한계에 관한 문제에서는 산술평균·기하평균법이 적용 안 되는 그 무엇이 더 있다. 그래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어 고등동물로 불리울 수도 있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들 인간은 우리들이 잘못 만들어 낸 경쟁세계를 온건·순리세계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전세계가 경쟁일변도인 현실에서 당장은 상당한 손실이 뒤따른다할지라도, 정녕 먼 장래를 염려하는 것이 세계각국인의 진실한 마음이라면 이기주의적 욕망증진을 대폭 포기하는 데서 오는 눈앞의 작은 고통은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경쟁이란 것은 한번 발생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시간과 정비례하여 심화된다. 그것이 그 속성이다. 경쟁은 경쟁을 부르고, 그것은 또 더 심한 고도의 경쟁을 부른다. 그리고 그 결산은 참혹하다. <공격자본주의 세계>의 경쟁이란 스포츠 경기와는 달리, 단 하나의 승자를 만들기 위해 수만, 수십만의 패배자가 요구됨은 물론, 4년 뒤에 올 올림픽 준비가 아니라, 한번 뒤지면 십 수년 아니면 영원한 회복불능 상태로 돌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경쟁논리에 바탕한 현대<공격(전투)자본주의>시스템에서는 최소한 실패해줄 50%가 항상 요구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패해줄 99.99%가 요구되겠지만, 절반의 승리나 수준 이하의 미약한 승리도 승자로 계산하여 50%라 하는 것이 말하기 편리하다. 그리고 그것은 인구증가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점에도 충분한 이해를 가능케 해준다. 각 국가는 바로 그 50%의 승자들의 총소득만으로 GDP 혹은 GNP를 계산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인구숫자에는 50%의 실패자들도 합산되는 것이어서, 국민소득 1만불 하면 마치 100%의 전국민이 골고루 그만한 소득자가 되는 것처럼 착각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투에서는 총알받이를 필요로 한다. 전투자본주의의 <전투경제>시스템에서도 당연히 경제전투총알받이를 필요로 한다. 그 총알받이가 바로 각 분야에서 실패한 사람들이다. 실패한 기업들, 실패한 구직자들, 실직자들, 무직자들, 산재자들, 퇴출자들, 신용불량자들, 혐오시설종사자들, 저소득층, 빈곤층들이다. 평등·정직한 사회에서라면 자신에게 돌아왔어야 할 큰 몫을 승자들에게 빼앗겨버린 그들은 누가 뭐래도 <현대전투자본주의>의 진정한 총알받이인 것이다! 또한 그들이 바로 국민총소득계산에서 오로지 하나의 숫자역할만 당하고 있는 <숫자국민>인 것이다!
그런데 효율 낮은 고령자 숫자가 계속 증가할 경우, 승자를 뒷받침 해줄 진정한 총알받이가 줄어든다. 그것은 곧 50%를 유지해온 승자의 비율을 40%, 30%로 하락시켜 GNP, GDP를 떨어뜨림을 의미한다. 당연히 인구숫자를 늘리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결국 출산율증가정책의 진정한 목적은 노령자부양인력증가도, 경쟁력하락방지도 아니고, <현대전투자본주의시스템>이 강요하는 총알받이 역할자의 충당, 유지, 관리인 것이다!
결국, 비유가 좀 심한 듯도 하겠지만, 하나의 승자나 경제강자는 수만 패자가 만들어낸 피비린내 나는 전리품성 작품일 뿐이다. 실업자는 취업자에게, 실패한 기업은 성공한 기업에게, 그리고 위에서 말한 각종 대열에서 낙오된 상실자들은 행복한 수혜자들에게 여러 측면에서 하나의 불평등적 밑거름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물론 승자들이 갖는, 숫자로 인한 경쟁의지 촉진과 상대적 우월감과 같은 심리적 측면도 한몫 했을 것이다.
좀더 실감나는 사실을 예로 들자면, 모든 기업의 입사시험 합격기준은 사실은 절대적 필요치가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50%를 떨어뜨려야 하는 회사사정이 만들어낸 편의적·상대적 필요치가 대입된 결과일 뿐이며, 실제 필요치 보다 현저히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불합격 당한 50%는 진정한 입사자격미달자들이 아니라 만약 합격한 50%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당당히 합격하였을 사람들이란 것이다. 그들은 그리하여 한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인정받고도 남았을 사람들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입사시험 낙방자들은 결코 위축되고 낙심하고 의욕을 잃을 것이 아니라, 오직 불행한 인류의 미래만을 약속해놓고 있는 현재의 <전투적 자본주의>의 심각한 결함을 낱낱이 짚어보면서 밝고 맑은 앞날을 위해 어떤 정신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지, 무엇을 시도해보아야 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옳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변질된 자본주의는 인간사회 모든 분야에 경쟁원리를 도입한 후, 가히 살인적 경쟁을 만연시키고 있으면서 그것을 최선책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이 극도의 인간성상실을 가져왔는데도, 사회생활 원리상, 겉으로는 미소를 띄우면서 속으로는 모든 이웃을 적으로 삼아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되게 하고, 심한 경쟁이 발생할 때는 예외 없이 "너 죽고 나 살자"의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등, 우리들 인간으로 하여금 본래 가지고 태어났던 우수하고 귀한 요소들을 하나씩 잃어가게 만들면서, 그것도 모자라 더욱 더 큰 파멸적 경쟁과 급속한 자원 고갈을 초래하고야 말 인구증가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왕 획득된 인구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면서 더 많은 인구를 생산해내라고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적게 낳아 잘 키우자!"를 외쳐되던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이제는 그 좀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날들이, 평온했던 지구촌이, 그 밝은 태양 맑은 물의 시대가 하나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만약 현대<전투자본주의철학>이 혁신적 반성을 하지 않는 한, 이 어지러운 경쟁과 이기주의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인류사회는 "4P"에 의하여 스스로 몰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신차려 대오각성 하면서 현재의 경제이론과 지식이 거의 무용지물이 될만한 혁신적 변화를 모색할 굳건한 의지를 가져준다면, 세계인류는 "4R"에 의하여 다시 태어나듯 변화되어 모든 면에서 경이적 발전을 이룩할 것이며, 우리들의 앞날은 참으로 빛나는 역사로 일관될 것이다!
●●●변질된 자본주의--거꾸로 가는 지구촌 ③
●●●변질된 자본주의--거꾸로 가는 지구촌 ③
<<왜 <60만 청년실업자>를 <60만 청년경쟁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가? 세계각국의 무모한 출산증가정책은 그 실행에 앞서 꼭 같은 기대 하에 출산되어 20년 이상을 허송세월 당하고 있는 몇 십만, 몇 백만의 청년실업자들에게 먼저 호된 심판부터 받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주의는 원래 다소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출발하였다. 앞서 언급된 고전자본주의 기본원리에 더하여,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구하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등, 또 다른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논리에도 바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요는 일정한데 이윤추구가 절대목표인 다수 생산자의 상품판매욕구는 날이 갈수록 증대되어 자연히 그들 다수의 생산·유통·판매자 사이에 경쟁이란 것이 발생되었고, 그 경쟁은 인간의 욕망증진 속도와 보조를 같이 하여 하루가 다르게 치열해져갔고, 동시에 정도(正道)는 무너지고 갖가지 편법이 난무하게되었다.
그럼에도 예상수입 대부분을 경제강자들에게 간접적으로 빼앗기며 살아오고 있어 일용할 양식과 생활비걱정이 앞서는, 눈앞 한치밖에는 돌아볼 겨를이 없는 각국의 순수·미약한 다수국민은 자나깨나 성장만을 부르짖게 된 것이다. 여전한 경제흐름 속에서는 성장해보아야 성장치 대부분을 그들 강자에게 또 다시 빼앗기게 되는 원리를 잘 알지만, 그래도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건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위태로운 현상들은 드디어 한 국가를 벗어나 세계 각 국가간에 널리 작용하여 무역분쟁으로 발전하였고, 이제는 그것이 무역전쟁이라 불리고도 심한 표현으로 들리지 않게 되어버렸다. 이제 각 국가는 현재의 보유인력으로는 극심한 경쟁판에서의 승리를 보장받기 힘들다고 판단, 출산율을 높여 인구숫자를 늘려놓고 보겠다는 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설마 그 중에서 효율적으로 써먹을 인력이 상당수는 생기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걸면서....
각국의 인구증가정책에는 먼 장래에 발생할 고령자우세시대를 고려하여 노년과 청년의 비율에 균형을 맞춘다는 논리가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그것은 순전히 경쟁력저하를 염려한 데서 나온 결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은 빠른 시일 내에 장기적 안목의 대책을 내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불러낸 임기응변적 시책일 뿐이다. 산술평균법적으로만 본다면 고령자가 청년에 비해 당연히 모든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질과 능력, 한계에 관한 문제에서는 산술평균·기하평균법이 적용 안 되는 그 무엇이 더 있다. 그래서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어 고등동물로 불리울 수도 있었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들 인간은 우리들이 잘못 만들어 낸 경쟁세계를 온건·순리세계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전세계가 경쟁일변도인 현실에서 당장은 상당한 손실이 뒤따른다할지라도, 정녕 먼 장래를 염려하는 것이 세계각국인의 진실한 마음이라면 이기주의적 욕망증진을 대폭 포기하는 데서 오는 눈앞의 작은 고통은 감수할 각오가 되어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경쟁이란 것은 한번 발생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시간과 정비례하여 심화된다. 그것이 그 속성이다. 경쟁은 경쟁을 부르고, 그것은 또 더 심한 고도의 경쟁을 부른다. 그리고 그 결산은 참혹하다. <공격자본주의 세계>의 경쟁이란 스포츠 경기와는 달리, 단 하나의 승자를 만들기 위해 수만, 수십만의 패배자가 요구됨은 물론, 4년 뒤에 올 올림픽 준비가 아니라, 한번 뒤지면 십 수년 아니면 영원한 회복불능 상태로 돌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경쟁논리에 바탕한 현대<공격(전투)자본주의>시스템에서는 최소한 실패해줄 50%가 항상 요구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패해줄 99.99%가 요구되겠지만, 절반의 승리나 수준 이하의 미약한 승리도 승자로 계산하여 50%라 하는 것이 말하기 편리하다. 그리고 그것은 인구증가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점에도 충분한 이해를 가능케 해준다. 각 국가는 바로 그 50%의 승자들의 총소득만으로 GDP 혹은 GNP를 계산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인구숫자에는 50%의 실패자들도 합산되는 것이어서, 국민소득 1만불 하면 마치 100%의 전국민이 골고루 그만한 소득자가 되는 것처럼 착각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투에서는 총알받이를 필요로 한다. 전투자본주의의 <전투경제>시스템에서도 당연히 경제전투총알받이를 필요로 한다. 그 총알받이가 바로 각 분야에서 실패한 사람들이다. 실패한 기업들, 실패한 구직자들, 실직자들, 무직자들, 산재자들, 퇴출자들, 신용불량자들, 혐오시설종사자들, 저소득층, 빈곤층들이다. 평등·정직한 사회에서라면 자신에게 돌아왔어야 할 큰 몫을 승자들에게 빼앗겨버린 그들은 누가 뭐래도 <현대전투자본주의>의 진정한 총알받이인 것이다! 또한 그들이 바로 국민총소득계산에서 오로지 하나의 숫자역할만 당하고 있는 <숫자국민>인 것이다!
그런데 효율 낮은 고령자 숫자가 계속 증가할 경우, 승자를 뒷받침 해줄 진정한 총알받이가 줄어든다. 그것은 곧 50%를 유지해온 승자의 비율을 40%, 30%로 하락시켜 GNP, GDP를 떨어뜨림을 의미한다. 당연히 인구숫자를 늘리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결국 출산율증가정책의 진정한 목적은 노령자부양인력증가도, 경쟁력하락방지도 아니고, <현대전투자본주의시스템>이 강요하는 총알받이 역할자의 충당, 유지, 관리인 것이다!
결국, 비유가 좀 심한 듯도 하겠지만, 하나의 승자나 경제강자는 수만 패자가 만들어낸 피비린내 나는 전리품성 작품일 뿐이다. 실업자는 취업자에게, 실패한 기업은 성공한 기업에게, 그리고 위에서 말한 각종 대열에서 낙오된 상실자들은 행복한 수혜자들에게 여러 측면에서 하나의 불평등적 밑거름역할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물론 승자들이 갖는, 숫자로 인한 경쟁의지 촉진과 상대적 우월감과 같은 심리적 측면도 한몫 했을 것이다.
좀더 실감나는 사실을 예로 들자면, 모든 기업의 입사시험 합격기준은 사실은 절대적 필요치가 결정짓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50%를 떨어뜨려야 하는 회사사정이 만들어낸 편의적·상대적 필요치가 대입된 결과일 뿐이며, 실제 필요치 보다 현저히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불합격 당한 50%는 진정한 입사자격미달자들이 아니라 만약 합격한 50%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당당히 합격하였을 사람들이란 것이다. 그들은 그리하여 한 사회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인정받고도 남았을 사람들인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입사시험 낙방자들은 결코 위축되고 낙심하고 의욕을 잃을 것이 아니라, 오직 불행한 인류의 미래만을 약속해놓고 있는 현재의 <전투적 자본주의>의 심각한 결함을 낱낱이 짚어보면서 밝고 맑은 앞날을 위해 어떤 정신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지, 무엇을 시도해보아야 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옳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변질된 자본주의는 인간사회 모든 분야에 경쟁원리를 도입한 후, 가히 살인적 경쟁을 만연시키고 있으면서 그것을 최선책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이 극도의 인간성상실을 가져왔는데도, 사회생활 원리상, 겉으로는 미소를 띄우면서 속으로는 모든 이웃을 적으로 삼아 경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되게 하고, 심한 경쟁이 발생할 때는 예외 없이 "너 죽고 나 살자"의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등, 우리들 인간으로 하여금 본래 가지고 태어났던 우수하고 귀한 요소들을 하나씩 잃어가게 만들면서, 그것도 모자라 더욱 더 큰 파멸적 경쟁과 급속한 자원 고갈을 초래하고야 말 인구증가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왕 획득된 인구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면서 더 많은 인구를 생산해내라고 외쳐대고 있는 것이다. "적게 낳아 잘 키우자!"를 외쳐되던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이제는 그 좀 가난했지만 순수했던 날들이, 평온했던 지구촌이, 그 밝은 태양 맑은 물의 시대가 하나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만약 현대<전투자본주의철학>이 혁신적 반성을 하지 않는 한, 이 어지러운 경쟁과 이기주의의 바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인류사회는 "4P"에 의하여 스스로 몰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신차려 대오각성 하면서 현재의 경제이론과 지식이 거의 무용지물이 될만한 혁신적 변화를 모색할 굳건한 의지를 가져준다면, 세계인류는 "4R"에 의하여 다시 태어나듯 변화되어 모든 면에서 경이적 발전을 이룩할 것이며, 우리들의 앞날은 참으로 빛나는 역사로 일관될 것이다!
(4P와 4R에 대하여는 다음 장인 4부에서 설명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