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소설 택배원 K(케이)이야기2

전선인간2004.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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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택배원 K(케이)이야기2  

 

 

두 번째 날은 비가 왔다.

조금은 선선해서 서글퍼지는 날씨 속으로 내리는 투명한 빗줄기는

그가 가진 투명도만큼이나 서글픈 가을의 차가움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다.


아침 출근 길! 오늘따라 노란색 회사모자가 유난히 어울리지 않아 보여

모자까지 벗고 나왔는데.......


케이는 젖은 머리를 쑥 손으로 몇 번 위로 밀쳐 올리다 말고

운전석의 룸미러를 통해 자신을 쳐다보았다.


‘흠....... 그 여자의 머리가 이랬던가?’


케이는 일부러 머리를 털어내어 산발형태로 앞으로 쓸어내린 후

미러를 통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다

왠지 어딘지 모르게 그녀와 비슷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꼭 전해줘야 할 텐데.......’









“딩동! 딩동!”


그녀의 갈색 나무 문은 원치 않는 이성에게 프로포즈를 받은 새침한 여자마냥

여지껏 응답이 없었다.

케이는 어제처럼 문 옆 계량기의 눈금들을 확인한 후

다시금 열리지 않는 갈색의 그녀에게 부드럽게 쓰다듬은 후

힘차게 노크를 하기 시작했다.


“쾅! 쾅!”


“끼이익!”


역시 어제처럼 약 3분의 1가량 대각선으로 열리는 나무 결의 문,

여전히 안쪽으로부터 걸려있는 금속체인의 잠금 장치, 그리고

산발을 축 늘어트린 체 여전히 시립도록 창백한 얼굴을 가진 그녀가

퍼즐 큐빅을 돌리며  나타났다.


“누구세요?”


“헉”


“풋!”


그녀는 이토록 시끄럽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상태로 눈을 위로 치켜들어 케이를 쳐다보았고 이내 무엇이 

우스운지 입술을 실룩거리며 치켜뜬 눈을 더욱 크게 만든 후 피식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창백한 그녀의 살결과 그리고 치켜떠진 눈 실룩거리는 입술 그리고 그녀가 돌리고 있는

퍼즐 큐빅의 끼리릭 거리는 소리가 마치 케이의 눈엔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공포영화

링의 한 장면 중 TV에서 걸어 나오는 여자귀신처럼 보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큐빅을 돌리며 천천히 마른 입술을 떼었다.


“오늘은 또 왜?.......”


“저기 이거.......”


케이는 어제 차마 전해주지 못한 조그만 박스 상자를 그녀의 앞 쪽으로 내밀었다.

박스 겉면에 싸여진 노란색 포장지가 비 때문인지 조금은 울기 시작했다.

케이는 눅눅한 주름이 잡혀진 노란색 포장지를 손으로 만지며 그녀에게

오늘은 좀 받아 달라는 간절한 부탁의 마음을 담아 말을 건네었다.


“보세요. 이 물건 하나에도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 있잖아요.

이렇게 잔뜩 주름을 잡은 채 울잖아요. 자신을 받아 달라구요“


“끼릭......”


그녀의 큐빅이 잠시 멈추었다. 그러곤 그녀는 한층 더 눈을 치켜뜨고

케이에게 냉소적인 웃음을 띄며 서늘한 바람소리를 휙휙 입으로 불어대며

말했다. 


“하! 하!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

그럼 받는 사람의 마음은 어쩌라고? 응?

지 마음대로 모든 것을 내게서 뺏어가 놓고 이제 다시 이런 박스 따위로

날 다시 괴롭혀!

택배원 주제에 니가 무슨 신이라도 된다고 보내고 받는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거야!


그저 물건 따위를 받게 하려고 허울 좋은 말들을 꾸며내기는.......

사기꾼 같은 남자새끼들 자기들이 필요할 때만 달콤한 말들을 뱉어 대지!


난 그딴 물건 필요 없으니 가져가 버리란 말야! 더 이상 나 괴롭히지 말고.......“


“쾅!”


그녀의 갈색 문이 닫혔다.

이제라도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창백한 그녀의 몸 어디에서

저렇게 속사포 같이 쉴 틈 없는 세찬 말들이 나오는 것일까?


케이는 그저 멍하니 두 손으로 택배 박스를 손에 쥔 체 갈색의 문 앞에

몇 초간 서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시 열리지 않을 클레믈린과도 같은 굳건한 그녀의

문이 살며시 열리고 그 문틈 사이로 그녀의 오른쪽 얼굴이 1/2 정도 보였다.

그녀의 오른쪽 눈은 케이를 쳐다보았고 갈색 문 뒤에선 아까완 다른 작은 말소리가 들렸다.


“이런 생산성 없는 일 할 시간에 자기 머리나 한번 만지지.”


그러곤 다시 그녀의 문은 매정하게 닫혀 버렸고 케이는 다시 한번

그 문을 두드렸지만 그 갈색문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어떤 대답도 해주지않았다.

대답 대신 귓속으로 파고드는 건

아주 나지막한 소리로 들려오는 그녀의 큐빅 소리뿐.......


‘끼리릭....... 끼리릭.......’



 

 

 

 


‘휴 정말 포기해야하는 것일까?’

자동차로 돌아온 케이는 수취인거부 리스트를 들고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원칙적으로 수취인이 없을 경우 택배는 세 번 방문을 하여 수취인의 수취의사를 물어보지만

사실 이토록 수취인이 명확하게 수취거부의사를 밝힌 경우

택배는 그냥 반품처리를 해버리는 그뿐이었다.


케이는 왠지 수취인에게 조차 거부당한 이 물건이 애처로워 조수석에 내려놓은

택배 박스를 한 손으로 조심스레 쓰다듬기 시작했다.

기분 탓일까? 박스의 포장지가 더욱 더 눅눅하고 주글해졌다.


손끝으로 전해오는 박스의 울음잡힘을 느낄 때쯤 그는 그제서야 그녀가

머리를 매만지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이 나 룸미러를 조정한 후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오 이런 맙소사!

이런 바보 같은 놈!”


출발하기 전 그녀를 생각하며 아무렇게나 산발하여 내렸던 머리 그대로였다.

이렇게 정신 나간 머리를 하고 정색을 하고 택배가 우니,

보낸 사람의 마음이 우니 따위의 말을 해대었으니

당연히 그녀로서는 우습고 조그만 진실성 하나도 느낄 수 없었으리라.......

케이는 자신이 너무 한심한 듯 두 손으로 꼬옥 꼬옥 머리를 뒤로 눌러 제끼며

바보라는 말을 연신 내뱉고 있었다.


하나하나 머릿결이 정리가 될수록 케이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녀는 머리를 정리하라고 말을 했을까?

택배를 받지 않는 다면서........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귀찮게 하지마라고 했으면서.......

왜 그녀는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의 머리 따위에 신경을 썼던 것 일까?‘


‘혹시 그녀는 다시금 내가 한 번 더 방문해 주기를,

그녀가 자신의 갈색 문을 한 번 더 연 것처럼

다시 한 번 내가 그녀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기를 바란 건 아닐까?‘


무언가 맞지 않은 상황이 석연치 않은 듯 케이는 두 손바닥을 잔뜩 펴서

물기가 묻은 머릿결을 뒤로 꾸욱 하고 두피가 다 벗겨질 마냥 세차게 눌러 제꼈다.

그리곤 체크를 위해 가져두었던 수취인 거부 리스트를 조수석으로 던져 버린 후

자동차의 시동을 세차게 돌려대었다.


우울한 가을비 속에서도 케이의 노란색 택배 차량은 큰 소리로 자신의 함성을

있는 힘껏 질러 대었다.


“부릉 부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