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32. 벽에 붙은 고등어가

무늬만여우공주2004.10.10
조회2,576

시어머님은 한국에서 혼수이불 전문 가게를 열어서 장사를 하고 계셨다. 이민 나오느라 살림 살이를 몽땅 아르헨티나로 붙이셨기 때문에 이거저거 필요한 생활 용품을 아기자기하게 새로 사서 쓰고 계셨다.

역시 한국은 획일화된 유행을 쫓고 있었다.
모든 여자들이 얼굴을 너무나도 하얗게 분칠을 하고 너도나도 할꺼없이 아주 빨간 루즈를 칠하고 다녔다. 마치 각시탈들 같았다.
또 눈썹은 왜그리 진하고 두껍게 그리고 다니는지....하나같이 같은 얼굴 같은 표정을 지닌 한국여자들을 보며 난 낯설음을 경험했다.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 그렇겠지만,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지 개성대로 옷을 입는다.
한 여름에도 두꺼운 가죽 부츠를 무릎위로 올라오게 신고, 햣팬츠나 미니스커트, 그 위에 브라자 크기한한 탑을 걸치고 댕기는 여자도 있고, 날씨가 변덕이 심해서 한 여름에도 비 온 뒤에는 금방 초겨울 날씨이기 때문에 항상 쉐타를 어깨에 둘러메고 다니거나 가죽잠바를 들고 다닌다. 그러니 유행이 있어도 나름대로 입기에 자기만 옷을 잘 코디해서 입으면 옷을 새로 안사도 언제고 멋쟁이로 다닐 수 있는 나라다.

게다가 아르헨티나 인들이 오죽 이 혈통 저 혈통 이 나라 저나라 뒤죽박죽 섞인 애들인가말야... 그렇게 여러가지 섞인 애들만 보다가 얼굴 다 납짝꽁한 한국인들만 보고, 또 너도나도 다같은 몰개성의 유행이 눈에 확 들어왔지만,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그러려니 했다.

어머님이 가게로 출근하고 나면 난 아이랑 동네를 한바퀴 돌며 한국을 구경하고 다녔다. 기저귀 차기를 싫어하던 아들녀석은 기저귀를 안차서 쉬를 하다가 바지에 묻히기 일쑤였다. 그래서 고추를 달랑거리며 슈퍼마켓을 쫓아다녔고, 동네를 그러고 돌아다녔다. 다들

"어머 얘좀봐 팬티도 안입었네. 아유 귀여워~" 하며 한국말로 우리 아들넘에게 말을 거니 나와 아들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도 어린 나이에 낳아가지고 온 아들을 보며 신기해 했다. 젊잖은 아가였던 아들은 인기를 독차지했다.

어머님은 내가 맨날 집에 있으니까 어디를 놀러가자신다.

10시까지 집으로 데릴러 올테니 그 때까지 나갈준비하고 있으라고 하며 출근을 하셨다.

부리나케 밥을 하고 아이를 목욕을 씻겨서 새옷을 입히고, 나도 나가려고 목욕하고 정신없이 바빴다. 자는 랑을 깨워서 밥을 먹으라고 했더니 조금만 조금만 하며 일어날 기색이 없다.

난 바빠 죽겠는데, 도와주기는 커녕 날 힘들게 하는 랑이 미웠다. 그래서 신경질을 부렸다. 그 동안 쌓였던 감정도 좀 나왔을꺼다.

랑은 전 날 술을 마셨는지 팅팅 부은 얼굴로 나와 식탁 앞에 앉았다. 난 못참고 그 앞에다 대고 꽁알거려댔다. 나도 신경질이 있는대로 나 있었다.

"오랜만에 봤으면 좀 나아진 기색이라도 있어야지 사람이 양심이 없어. 도대체 지금 하는 행동이 양심있는 행동인지 생각좀 해봐. 어~!!"

성질꽤나 있는 랑은 몇번 내게 그만하라고 경고를 했지만 내 입은 이미 화가 치밀대로 쳐올라 계속 종알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게을러빠질 수가 있어. 좀 새로운 면을 보여봐. 아이 앞에서 창피하지도 않아?"

랑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그대로 숟가락을 소리나게 식탁에 놓았다. 나도 화가 나 있는 상태라 랑을 힘껏 째려보았다. 너무 미웠다. 날 아르헨티나에 그렇게 버려두고 지 혼자 여기서 지낸게 너무나도 얄미웠다. 내 인생 그렇게 해놓은 랑이 정말 미웠다.

랑은 째려보는 날 보며 밥그릇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걸 본 난 더 화가 났다. 지가 뭘 잘했다고 내게 이러는가 말이다. 참네. 기가막혀서.

난 국그릇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근데 아이가 옆에 있는걸 모르고 아이 옆으로 던져서 랑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힘좋은 랑은 식탁을 던져버렸다.

육중한 식탁은 벽에 쿵 하고 부딪치고 내려앉았고 반찬들은 무협만화처럼 날라댕겼다. 어머님이 새로 장만하신 본차이나 그릇들이 작살이 나고 있었다.

아이는 놀라서 울어제꼈고, 나도 속으로 놀랐지만 부들부들 떨며 랑을 째려봤다.

그 때 초인종이 울렸다. 어머님이 아주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우릴 불렀다.

"애들아~ 갈 준비 다 됐니? 가자 나와라~"

난 순간 당황스러웠다. 에구. 좀 있다 오시지 딱 이 시간에 오실게뭐람. 이일을 어쩐다.

랑도 당황한 눈치다. 그래도 난 랑을 한 번 더 힘껏 째려본 담에 아이를 안고 문을 열러갔다. 어머님보고 거실에 치울게 있으니 좀 있다가 들어오시라고 했다. 어머님은 당신의 아들 성질을 아니깐 금방 눈치채시고

"아유 이넘이 또 뭔 말썽 부렸냐." 하시며 들어오셨다.

집 안은 생 난리가 나 있는 상태였다.

일단 어머님이 아이를 안고 당신 아들을 앞장 세워서 방으로 들어가셨다. 옆 집에 살던 6촌 형님이 들어오셔서 어질러진 물건을 치우며 청소를 해줬다.

밑에 늘어져 있던 유리조각을 대충 치우고 고개들 들다 난 웃음보를 터뜨렸다.

벽에 자반 고등어가 딱 달라붙어서 궹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고등어 머리엔 김치조각도 하나 얹혀져 있었다.
겁먹고 화난 나를 닮은 우스꽝스런 고등어. 식탁 위에서 폼재야하는 네가 어찌 벽까지 날라간 신세가 되었니?

"푸하하하하"

내 웃음 소리에 내가 놀라 키득거리고 나 혼자 웃었다. 그 장면이 어찌나 우스운지 눈물이 다 났다. 육촌 형님은 대충 치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난 멍청히 거실에 앉아있었다.

방에서 조곤조곤 아들을 타이르는 어머님 소리가 들려왔다.

"얘 윤희에미가 불쌍하지도 않니. 넌 어째 이 나이 먹도록 그리 철이없니. 쟤가 뭔 죄가 있다고 저렇게 순하고 착한 애한테 이렇게 몹쓸짓을 하는거니?"

어머님의 말을 들으며 난 심히 찔렸다. 에구...나도 같이 부셨는데...

어머님은 내 어깨를 몇 번 다독거려주시고 가게로 나가시고 난 방에 들어와 누워버렸다. 나도 막 부셔서 스트레스가 얼마간 해소되었는지 화는 더이상 안나는데 그걸 표시내기가 뭐해서 계속 삐진척하고 있었다.

랑이 옆에 와서 알랑방구를 껴댔다.

"야 엄마가 저거 나혼자 깬지 아신다. 너도 깼는데. 엄마가 네가 얼마나 사나운지 모르신다."

랑을 쎄게 째려봤더니. 미안하다고 사죄한다며 용서를 구해왔다. 어유 웬수.

근데 랑 얼굴과 그 벽에 달라붙어 있던 고등어가 같이 클로즈업되어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실소가 터져나왔다. 사는게 참 우습기도 하지.

랑은 내가 삐진게 다 풀어진줄 알고 좋아라했다. 거기에 한마디 쏘았다.

"또 그래봐 암튼 가만 안있을꺼야. 나도. 그렇게 살지마 인간아~"

"알았어. 알았어. 미안. 미안" 랑은 사과를 하며 손바닥 비비는 흉내를 내었다. 어유 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