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사랑을 보여달라고 하지마세요.

산들바람2004.10.10
조회390

"자기야, 나 사랑해?"

"그럼~ 당연한 말을..."

"얼만큼?"

"글쎄... 이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만큼..."

"에이~~ 그래도 내가 알수 있게 말로 얘기 해봐~"

"말로 표현할 수 없다니까."

"치... 그럼 내가 알 수가 없잖아!"

"언젠가 혹시 너를 향한 내 사랑을 보여 줄 날이 있을지도..."

"그게 언제인데?"

"글쎄.. 너무 소중해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걸? 쿠쿡..."

"싫어! 보고싶어. 지금 당장이 안돼면 나중에라도 꼭 보여줘야해."

"기회가 된다면..."


그가 나를 얼만큼 사랑하는지 기회가 온다면 보여주겠노라 약속하며 웃음짓던 그날이 아직도 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를 얼만큼 사랑하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저 흔한 대답쯤을 기대하고 있었던 나였다. 어디까지나 장난삼아 물었었던 나였고, '하늘만큼 땅만큼' 이라던지 '온 세상에 행복과도 맞바꿀 수 없을만큼' 이라는 통상적인 연인들의 대답을 듣고 싶었다. 허나 말로 표현 할 수 없다는 그의 사랑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나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에 대한 그의 사랑을 눈으로 확인시켜 줌으로써 더이상 그는 내 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 비극의 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친구들과의 약속이 있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우리는 원래는 술집에 갈 수 없었지만, 친구들 중 한명이 알아 낸 술집이 우리의 집합 장소였다. 그 술집은 영업정지를 먹은 상태에서 몰래 장사를 했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영업을 하지않는 술집이었기에 경찰 단속에 걸릴일은 전혀 없었다. 또한 그 술집 주인 아저씨는 매번 그 집을 찾는 중고등학생들을 친절하게 받아주고 있었기에 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퍼져 술을 찾는 학생들의 비밀장소로 유명했다. 지하에 자리잡은 그 술집은 분위기가 매우 어두침침 했었고, 미리 예약을 해야 자리가 있을 정도로 항상 많은 학생들로 가득찼다. 그리 넓지않은 공간이었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학생들이 늘어남에 따라 평일에도 그곳은 붐볐다.

사귄지 일주년이 되는 날 우리를 축하해 주기 위해 친구들이 그곳에 미리 예약을 해 놓고, 그와 나를 불렀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단둘이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친구들의 성의를 생각해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술집을 찾았다. 좁은 계단을 내려 갈때 자리가 없어 아쉬운 표정으로 술집을 되돌아 나가는 학생들을 마주쳤다.


"사람 드럽게 많네. 여기 예약하고 와야 된단다. 젠장..."


투덜거리며 우루루 술집을 나서는 그들과 마주치자 우리는 벽쪽으로 붙어서야 했다. 몰래 영업을 하는 술집이니 만큼 눈에 쉽게 띄지 않도록 입구를 줄여놓은 탓에 두사람이 같이 계단을 내려가면 공간이 꽉 찰 정도로 통로는 작고 비좁았다. 간판도 꺼져있고, 계단 통로에 불도 꺼져 있어 내려갈수록 어두워져 처음 그곳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지옥으로 향하는 듯한 느낌에 소름이 돋아올 정도였지만, 일단 술집문을 열고나면 어둡지만 아늑하게 꾸며져 있는 음침한 분위기가 괜스레 마음에 들어 거리낌 없이 그곳을 찾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리가 없어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주인의 말에 욕까지 해대며 술집을 나서던 그녀석들은 엄청난 행운아였다. 우리의 모임 장소가 보다 공개된 장소였다면 어땠을까.. 떳떳한 장소에서 그런 사고를 당했더라면 억울함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을 텐데.... 아니 어쩌면 그런 비극적인 일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내가 장난삼아 얘기했던 대로 친구들을 바람맞추고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면... 아니 그가 얘기했던 대로 우리가 있는 쪽으로 친구들을 불러냈다면... 허나 지금 이런 생각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미 끝난 일인것을....

평소와 마찬가지로 술집에 들어서자 친구들은 가장 구석진 자리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케익과 함께 준비되어 있는 술병들로 하여금 꽤나 신경썼다는 걸 알수 있었다.

그에게 받은 꽃다발을 안고 한손으로는 그의 팔짱을 끼고, 내 나이에 화장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예쁘게 보이고 싶어 살짝 화장도 하고, 악세사리와 함께 최대한 나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옷을 입고 친구들에게 향하던 그날은 나에게 가장 행복했던 날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우리의 일주년을 축하하는 파티를 한참 진행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주방 쪽에서 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불길이 확 치솟아 올랐다. 소리도 컷거니와 치솟는 불길을 보고 놀란 학생들은 서로 다투어서 입구쪽으로 내달렸다.

"야!! 이것들이 돈도 안내고 어딜 가려는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불길이 그렇게 거세지리라 생각하지 못한 주인 아저씨는 좁은 입구로 몰려드는 학생들을 밀쳐내며 돈을 안내고 도망가려 한다는 이유로 문을 잠가버렸다. 허나 주인아저씨의 생각대로 불은 쉽게 꺼지지 않고 점점 번저가고 있었고, 주방을 벗어나기 시작한 불길은 소파와 벽에 장식된 커튼등을 태우며 시켜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까만 연기들이 눈앞을 덮었고, 숨이 막혀옴과 동시에 기침이 심하게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상황이 그정도 되자 당황한 주인 아저씨는 뒤늦게 문을 열고 제일 먼저 도망가 버렸다. 앞에 몇명의 학생들이 빠져나갔지만 통로는 좁고 한꺼번에 몰려든 학생들로 하여금 쉽게 빠저나갈 수가 없었다. 금새 불길은 입구쪽으로 덮쳐왔고, 미쳐 빠져나가지 못한 학생들과 함께 우리는 점점 불길을 피해 반대편 술집 구석으로 몰려갈 수 밖에 없었다. 불을 끄려고 화장실로 향했지만 시원하게 나오지 않는 수돗물을 받아 불을 끄기엔 역부족이었다. 메케한 냄새와 함께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어둠에 둘러싸여버린 술집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고, 입구쪽을 완전히 막아버린 불길 때문에 우리는 더이상 갈곳이 없었다.


"자기야, 나 무서워."


다른 학생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울기 바빴고, 나 또한 울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잡고 있는 내 손은 두려움에 떨려오고 있었지만, 그는 떨려오는 내 손을 안심하라는 듯 더욱 꽉 잡아 주었고, 그의 얼굴 표정은 딱딱하게 굳은 채 잠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듯 했다. 내가 심하게 기침을 해대자 갑자기 그는 내 손을 놓고는 자신의 윗옷을 벗어 주변에 있던 얼음 물들을 들이부어서는 내 입과 코를 막아주었다. 뜨거운 열기와 연기들로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그의 젖은 옷이 내 코와 입을 덮는 그 순간 나는 다시 숨을 쉴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행동은 무척이나 빨랐다. 내가 미쳐 거부할 사이도 없이 나를 구석쪽으로 데려간 그는 젖은 옷으로 내 얼굴을 완전히 덮은채 소파를 거꾸로 엎어 나를 덮었다.


"뭐하는거야!! 싫어. 나 혼자 두지마!!"


그에게 말을 하려고 그가 덮어준 옷을 겉어내자 다시금 숨이 콱 막혀와서 어쩔 수 없이 다시 코와 입을 막았다. 눈을 뜨면 눈이 너무나 따가워서 눈조차 뜰수가 없었다. 소파를 밀어내려 했지만 뭔가가 위에서 억누르고 있는것인지 아니면 내 힘으로 소파를 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는지 소파는 쉽게 젖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후 울음소리와 아우성 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그 순간에 그의 희미한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사랑해. 넌 꼭 살아야 해."

그때부터 점점 희미해져 가는 그의 사랑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계속해서 나를 사랑한다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는 어느순간 멈춰버렸고, 나는 더 큰 두려움을 느끼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내가 다시금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건,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나에게 닥친 현실은 너무나 냉정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그곳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나까지 단 두명 뿐이었고, 그나마 한명은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를 잃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경찰들이 몰려와 나를 귀찮게 만들었다.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은 불을 끄고 들어온 소방관들에 의해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고, 나는 쇼파에 가려져 있어 나중에야 발견되었다고 했다. 사건 현장에서 나를 발견했을 당시의 사진을 찍었다며 보여주는 경찰을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한채로 멍하니 바라보다 눈안에 들어온 사진을 본 순간 내 눈에서는 투명한 물이 떨어져 내렸다. 연기에 까맣게 그을려 새까맣게변해버린 그가 눈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소중한 보물인 양 소파를 꼭 안고 숨져버린 내 사랑의 마지막 모습을 나는 경찰이 보여준 사진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죄책감과 함께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가 그렇게 죽어간 것이 내 잘못 인것만 같았다. 숨이 막혀 계속해서 심한 기침을 하면서도 끝까지 내게 사랑한다 속삭이던 그의 음성이 자꾸만 내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거의 폐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내게 문득 그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는 내게 꼭 살아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그가 없는 내 현실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욕조에 물을 가득 받고 그 안에 들어간 나는 면도칼로 내 손목을 그었다. 무척 아플 것 같았는데 생각처럼 큰 아픔은 느끼지 못했다.온몸이 나른해 지면서 자꾸만 눈이 감겼고,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감는 그 순간에도 그의 웃는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 바보야, 누가 이런식으로 사랑을 확인시켜 달랬어.
사랑은 함께하는 거야. 나만 살려놓고 죽어버리면 나 혼자 어떻게 하라고....
너를 잃은 슬픔을 평생 가슴에 안고 마음 아파하면서 살기를 바라니?
어른들의 말씀처럼 시간이 지나면 나 대신 죽어간 너를 서서히 잊어가고, 결국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남자와 사랑이란 걸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변해갈 내 모습을 도저히 용서를 할 수가 없어. 너가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구박해도 어쩔 수 없어.
난 네 옆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니까...
그리고 다른 사랑은 하고싶지 않으니까...
네가 나를 위한 가장 큰 배려가 날 살리는 거였듯이, 나를 위해 죽어간 너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가 네 곁으로 가는 거니까...
그러니까 나 너무 미워하지 마........'


난 끝까지 그에게 투정을 부리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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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바람


음... 뭔가 많이 부족한 듯 싶네요. 제 표현상의 한계인거겠죠.^^;
몇년 전에 있었던 인천 호프집 사건 기억하시는 분들 계시려나 모르겠네요.

얼마전 대구 지하철 사건도 그렇고... 가슴아픈 뒷 이야기가 많았지요.
호프집 사건은 제가 인천에 살았고, 그 당시 같은 학생이었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 사건이었답니다.
생각하기 싫지만, 제 친구의 친구도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었구요.
인터넷 상을 통해, 또는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던 이야기를 글로 써봤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