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종이 울리는 소리에 선우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창 포근한 침대 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전공수업이 있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샤워를 했다.
씻고서 쇼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는데 어제 제대로 밥을 먹질 않아서인지 아침부터 허기가 심하게 느껴졌다. 원래 아침을 안먹는 타입이었던데다가 집에서 밥을 먹는 일조차 드물었지만 유난히 배가 고파 먹을게 없나 싶어 냉장고를 열어보았지만 냉장고에 들어있는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물과 계란 몇 개, 다 쉬어버린 김치와 맥주 뿐이었다. 항상 냉장고를 열면 뭔가 먹을 만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허기진 배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침으로 먹을만한게 없군.."
하는 수 없이 계란하나를 집어 후라이를 하려 했지만 그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터라 후라이팬 위에는 계란 껍질이 자잘하게 섞이고 말았다. 도저히 껍질만 골라낼 수가 없어 그냥 버려버리고 다른 계란을 꺼내서 이번에는 조심조심 깨뜨렸다. 계란 후라이조차 해본 적이 손에 꼽히는 그였기에 그가 만들어낸 계란 후라이는 그가 좋아하는 반숙이 아닌, 바짝 익어버린 완숙 상태로 맛도 없이 퍽퍽하기만 했다. 하지만 먹을게 없던 터라 억지로 입에 집어 넣을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어가지고...짜증나."
팍팍해서 맛도 없는 후라이를 먹는 자기 신세가 왠지 처량해서 짜증이 났다. 예전에는 많지는 않아도 언제나 먹을 게 있었던 냉장고였는데....
".....그 녀석이 요즘 집에 안온 건가.."
문득 떠오른 것은 그의 애인이라고 말하던 해인. 하도 졸라서 열쇠를 줬더니 때때로 반찬을 들고 찾아와 냉장고를 채워놓곤 했었던 그녀가 생각났다.
자신은 원래 마트같은데서 장을 본 적이 한번도 없고, 최근에는 집에서 보내준 반찬이 없었으니, 당연히 해인이 오지 않았다는 결론 밖에 나지 않았다.
한참 자신의 뒤를 쫒아다닐 때는 귀찮기만 하던 것이 막상 필요할 때 없으니 짜증이 났다.
"도대체 걘 뭐하느라 반찬도 안갖다 놓는 건지.."
생각이 난 김에 전화를 해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뒤졌지만 핸드폰 어디에도 해인의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저장도 되어있지 않을 뿐더러, 최근에는 전화조차 걸려온 적이 없어 남아있는 발신번호도 없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단 한번도 해인에게 전화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선우의 머리속에는 어제 우연히 본 해인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남자와 말한마디 못했지만 어제는 왠 남자와 다정하게 웃으며 걸어가던 해인.
한때는 지겨우리만치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던 해인이었지만 이젠 흔적조차 없는 핸드폰.
언제 찾아왔는지 항상 채워져있었지만 이젠 텅텅비어버린 냉장고.
"....이제 질렸다는 거군."
이제 더이상 해인이 예전처럼 자신을 쫒아다니지않는다는 결론에 이르자 선우는 더이상 귀찮은 강아지 한마리 달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뭔가로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잘됐네."
선우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푹 찔러넣고 오늘 수업 과목인 책을 대충 챙겨든 채 집을 나섰다.
----
"어라? 오늘 또 만났네?"
아직 가슴에서 다 지우지 못했는데, 어제 오늘 갑자기 왜이리 잘 마주치는지... 해인은 조별 과제때문에 아침부터 학교로 가다가 선우를 만났다. 놀건 다 놀아도 전공 수업만큼은 절때 빼먹지 않는 타입이어서 '지금쯤 학교를 오고 있겠구나..' 하고 무심코 생각해버린 자신이 한심해 피식 웃는 그녀의 눈에 선우가 비친 것이다.
그냥 모른 척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선우와 눈이 마주친 터라 피하는 편이 더 어색할 것만 같아 억지로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
예전처럼 짜증스런 기색을 띄고 있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상한 걸 바라본다는 듯 그녀를 보는 선우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리고 말았다.
"수업가는거야? 아침 일찍이네."
"....응."
그렇지만 변하지 않은 건 여전히 짧기만 한 그의 대답. 항상 그는 이런식이었다. 관심없다는 듯,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하는 그의 말에 해인은 가슴이 찌르듯 아파왔다.
"그럼 나 .. "
"....너 내 집 열쇠....너가 가지고 있냐?"
얼른 지나가버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열쇠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목소리에 해인의 가슴은 그대로 내려앉았다. ... 내가 열쇠를 두고 간 줄도 몰랐구나..
"어? 아. 그거, 너네 집에 예전에 갖다 놨는데..못봤어?"
"......그래? ....열쇠를 하나 잊어버려서...."
"...그렇구나..."
열쇠를 잊어버렸다고 무심히 말하는 그였지만 해인은 이게 그의 이별 통고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만 돌려주라는 그의 이별 통고.
더이상 선우의 앞에 서있다가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뭔가 어색한 분위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었다.
"해인아! 너 거기서 뭐하는 거야! 늦었어!"
그때 구세주같이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동훈 오빠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인의 마음을 잘 알고있는 그였기에 아마도 해인의 상황을 눈치채고 그녀를 불러주는 것 같았다.
"아, 갈게요, 오빠. 미안. 나 얼른 가봐야 되거든."
"수업인가 보지?"
"...응. 그럼 다음에 보자."
해인은 그대로 동훈오빠를 향해 뛰어갔다. 지금, 이렇게 자신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들킬거 같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뛰어갔다.
바람이 머무르는 곳...02
-띠리리리 ....
자명종이 울리는 소리에 선우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창 포근한 침대 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지만 아침부터 전공수업이 있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샤워를 했다.
씻고서 쇼파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는데 어제 제대로 밥을 먹질 않아서인지 아침부터 허기가 심하게 느껴졌다. 원래 아침을 안먹는 타입이었던데다가 집에서 밥을 먹는 일조차 드물었지만 유난히 배가 고파 먹을게 없나 싶어 냉장고를 열어보았지만 냉장고에 들어있는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물과 계란 몇 개, 다 쉬어버린 김치와 맥주 뿐이었다. 항상 냉장고를 열면 뭔가 먹을 만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허기진 배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침으로 먹을만한게 없군.."
하는 수 없이 계란하나를 집어 후라이를 하려 했지만 그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터라 후라이팬 위에는 계란 껍질이 자잘하게 섞이고 말았다. 도저히 껍질만 골라낼 수가 없어 그냥 버려버리고 다른 계란을 꺼내서 이번에는 조심조심 깨뜨렸다. 계란 후라이조차 해본 적이 손에 꼽히는 그였기에 그가 만들어낸 계란 후라이는 그가 좋아하는 반숙이 아닌, 바짝 익어버린 완숙 상태로 맛도 없이 퍽퍽하기만 했다. 하지만 먹을게 없던 터라 억지로 입에 집어 넣을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어가지고...짜증나."
팍팍해서 맛도 없는 후라이를 먹는 자기 신세가 왠지 처량해서 짜증이 났다. 예전에는 많지는 않아도 언제나 먹을 게 있었던 냉장고였는데....
".....그 녀석이 요즘 집에 안온 건가.."
문득 떠오른 것은 그의 애인이라고 말하던 해인. 하도 졸라서 열쇠를 줬더니 때때로 반찬을 들고 찾아와 냉장고를 채워놓곤 했었던 그녀가 생각났다.
자신은 원래 마트같은데서 장을 본 적이 한번도 없고, 최근에는 집에서 보내준 반찬이 없었으니, 당연히 해인이 오지 않았다는 결론 밖에 나지 않았다.
한참 자신의 뒤를 쫒아다닐 때는 귀찮기만 하던 것이 막상 필요할 때 없으니 짜증이 났다.
"도대체 걘 뭐하느라 반찬도 안갖다 놓는 건지.."
생각이 난 김에 전화를 해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핸드폰을 뒤졌지만 핸드폰 어디에도 해인의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저장도 되어있지 않을 뿐더러, 최근에는 전화조차 걸려온 적이 없어 남아있는 발신번호도 없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단 한번도 해인에게 전화해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선우의 머리속에는 어제 우연히 본 해인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남자와 말한마디 못했지만 어제는 왠 남자와 다정하게 웃으며 걸어가던 해인.
한때는 지겨우리만치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던 해인이었지만 이젠 흔적조차 없는 핸드폰.
언제 찾아왔는지 항상 채워져있었지만 이젠 텅텅비어버린 냉장고.
"....이제 질렸다는 거군."
이제 더이상 해인이 예전처럼 자신을 쫒아다니지않는다는 결론에 이르자 선우는 더이상 귀찮은 강아지 한마리 달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는 생각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뭔가로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잘됐네."
선우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푹 찔러넣고 오늘 수업 과목인 책을 대충 챙겨든 채 집을 나섰다.
----
"어라? 오늘 또 만났네?"
아직 가슴에서 다 지우지 못했는데, 어제 오늘 갑자기 왜이리 잘 마주치는지... 해인은 조별 과제때문에 아침부터 학교로 가다가 선우를 만났다. 놀건 다 놀아도 전공 수업만큼은 절때 빼먹지 않는 타입이어서 '지금쯤 학교를 오고 있겠구나..' 하고 무심코 생각해버린 자신이 한심해 피식 웃는 그녀의 눈에 선우가 비친 것이다.
그냥 모른 척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선우와 눈이 마주친 터라 피하는 편이 더 어색할 것만 같아 억지로 웃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
예전처럼 짜증스런 기색을 띄고 있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상한 걸 바라본다는 듯 그녀를 보는 선우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리고 말았다.
"수업가는거야? 아침 일찍이네."
"....응."
그렇지만 변하지 않은 건 여전히 짧기만 한 그의 대답. 항상 그는 이런식이었다. 관심없다는 듯,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하는 그의 말에 해인은 가슴이 찌르듯 아파왔다.
"그럼 나 .. "
"....너 내 집 열쇠....너가 가지고 있냐?"
얼른 지나가버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열쇠 이야기를 꺼내는 그의 목소리에 해인의 가슴은 그대로 내려앉았다. ... 내가 열쇠를 두고 간 줄도 몰랐구나..
"어? 아. 그거, 너네 집에 예전에 갖다 놨는데..못봤어?"
"......그래? ....열쇠를 하나 잊어버려서...."
"...그렇구나..."
열쇠를 잊어버렸다고 무심히 말하는 그였지만 해인은 이게 그의 이별 통고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만 돌려주라는 그의 이별 통고.
더이상 선우의 앞에 서있다가는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뭔가 어색한 분위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있었다.
"해인아! 너 거기서 뭐하는 거야! 늦었어!"
그때 구세주같이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동훈 오빠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인의 마음을 잘 알고있는 그였기에 아마도 해인의 상황을 눈치채고 그녀를 불러주는 것 같았다.
"아, 갈게요, 오빠. 미안. 나 얼른 가봐야 되거든."
"수업인가 보지?"
"...응. 그럼 다음에 보자."
해인은 그대로 동훈오빠를 향해 뛰어갔다. 지금, 이렇게 자신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들킬거 같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냥 뛰어갔다.
......이미 예전에 열쇠는 돌려줬었어....벌써 3개월이나 지났는걸..
....나, 수업 아니야... 시간표.. 작게 만들어서 네 식탁 위에 두고 갔잖아..
....다시는 우연히라도 마주치지 말자. .. 오늘 비록 이별 통고였지만,
예전처럼 바라보지 않은 네 눈빛으로 만족할게..
예전처럼 귀찮은 듯한 목소리가 아닌 네 말로 만족할게..
그러니까... 마주치지 말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