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삶의 희망' 감동 UP

무비걸2004.10.13
조회674
잔잔한 '삶의 희망' 감동 UP [스포츠한국 2004-10-09 09:03] 잔잔한 '삶의 희망' 감동 UP “잔잔하네….”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을 보고 나오면서 친구와 나는 그 말만을 주고 받았다.

이처럼 ‘삶의 희망’을 노래하고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가 있고, 주인공과 가족, 주변 사람들의 기쁨과 아픔에까지 세세하게 눈길을 주는, ‘착한’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으로서 무장해제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영화의 순간순간은 찐한 감동을 안겨줬다.

배우 최민식이 몇 개월 동안 연습한 트럼펫 연주 솜씨나, 밴드부 아이들의 ‘사랑의 트위스트’ 연주 모습, 탄광촌의 터널 앞에서 펼치는 연주 장면과 마지막 합주대회 장면 모두 사랑스러웠다.

어머니 윤여정과 티격태격하는 장면도 자연스러웠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좋은 주제와 뛰어난 연기와 따듯한 에피소드와 세심한 일상에 대한 관찰까지 두루 갖춘 영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느낌은 ‘잔잔한데’에만 머물렀다.

잔잔한 영화가 뭐 그리 잘못된 건 아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도 잔잔했다.

‘파이란’도 결코 요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영화들을 보고난 뒤 가슴에 일렁이는 감정의 진폭은 컸다.

뭘까. 그 차이는. 그래서 다시본 그 영화들은 결코 잔잔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차이는 이야기를 끌고가는 중심사건과 그것이 자아내는 긴장의 차이인 듯 했다.

예를 들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주된 긴장은 ‘죽음을 앞두고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한석규가 과연 심은하와 사랑을 어떻게 매듭지을까’하는 것이다.

관객은 한석규가 죽기 전에 심은하에게 사랑을 고백할 것인지, 심은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며 긴장을 지속해나간다.

그 긴장은 한석규가 말없이 그녀의 곁을 떠나고 심은하가 사진관에 돌을 던지는 장면에서 ‘둘의 사랑이 한석규가 죽기 전에는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으로 매듭짓는다.

물론 영화는 한석규의 가족과 친구와 그의 일상을 세심하고 잔잔하게 그려내지만 두 주인공의 사랑이 자아내는 긴장은 절대 잔잔하지가 않다.

‘봄날은 간다’ 역시 사랑하다가 변한 두 주인공들이 다시 맺어질 것인가라는 중심 사건으로 메인 긴장이 유지되며 ‘파이란’은 남녀주인공들이 어떤 식으로 교감을 이룰 것인가 하는 긴장으로 이끌고 가다가 마지막 편지 장면에서 폭발적인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모두 잔잔한 접근법의 영화들이지만 만만치 않은 긴장감을 가진 영화인 것이다.

이에 비한다면 ‘꽃피는 봄이오면’은 중심 긴장이 모호했다.

나는 내심 최민식이 도계중학교의 밴드부를 재건하는 일이 중심사건으로 자리잡고 나머지 그의 사랑이야기나 탄광촌의 이야기들이 작은 에피소드들로 깔렸으면 하고 바랐다.

아니면 최민식의 러브스토리가 중심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같은 비중으로 놓는 바람에 긴장의 구심점이 없어 보였다.

그건 이 영화가 결국 밴드부의 우승이라거나 사랑의 쟁취라거나 하는 드라마틱한 결말이나 반전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세련된 접근법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어느 하나를 과감히 중심적인 사건으로 축을 세웠다면 훨씬 긴장감 있는 ‘잔잔함’을 안겨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웠다.

편집위원 filmpoo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