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

zoara00200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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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 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 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


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

 

 

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머니는 처녀 때부터 교회를 다니셨다. 출가하여 우리 가문으로 시집오셨는데, 그 당시에는 감히 시부모님 앞에서 교회 간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바느질하며 하시는 찬송 소리를 많이 들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 오실 때………” 그러다가 어머니는 우리를 데리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셨다. 나는 철도 모르고 교회를 나갔으며, 철이 조금 드니까 교회를 다니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주일 학교, 여름 성경 학교, 성탄절 준비 등등 교회에는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상도 많이 받았고, 칭찬도 많이 받았으며, 다른 아이들과 달리 교회 안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주일 학교 선생님이나 목사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났기 때문에, 그런 내가 자라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자라면서 점점 죄를 짓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금만 짓고 말자. 너무 많이 짓지만 않으면 된다.’ 하는 생각에 친구들과 어울려 조금씩 죄를 지었다. 이상하게도, 죄를 안 지으면 그냥 밋밋해서 재미가 없었지만, 죄를 불러오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죄를 먹고 마시며 자라났다. 주일에 교회를 가면 너무 괴로웠다.

그러다가 서울에 올라가 형들과 함께 지내며 학교를 다녔다. 집에서 생활비를 다달이 얼마씩 보내 주었는데, 한 석 달 정도 집에서 돈을 보내 주지 않았다. 형들이 날마다 방세며 생활비 독촉을 하기에 학교를 마치면 집에 가기가 싫을 정도였다. ‘내가 이럴 것이 아니라 돈을 좀 벌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마침 신문 배달원 모집 광고를 보고 신문 보급소에 가서 총무를 만나 면접을 보았다. 일을 하려면 보증금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왜냐 하면 신문값을 수금해 도망가 버리면 안 되니까 보증금 만 원을 맡겨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로는 만 원이 큰 돈인데, 겨우 마련하게 되었다. 그런데 총무가 ‘만일 3개월 안에 일을 그만두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래도 하겠느냐?’ 묻기에, '좋다’하고 계약서를 쓴 후에 300집 정도를 인계받아 신문을 돌리게 되었다.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
달마다 수금해서 보급소에 넣어야 할 액수가 있는데, 넣고 남은 돈은 나의 수입이 되는 것이라 했다. 계산을 해보니 오륙십 집 가량은 나에게 수입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달 동안 열심히 신문을 돌리고 수금을 해보니 여러 집에서 ‘누가 신문을 넣으라 했느냐?’ 하며 돈을 주지 않는 것 아닌가? 그런 집이 오십 집 가량 되었는데, 인계해 줄 때 신문을 넣어도 돈을 받을 수 없는 집들을 다 수에 포함시킨 것이었다. 신문사에서는 계속하여 확장지가 나오고 신문을 구독하는 집은 한정되어 있어서 그러는 모양이었다. 한 달 동안 죽도록 배달했는데, 남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도저히 그렇게는 일할 수 없었다. 그때 석 달 안에 그만두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해 보니 이건 신문 배달하는 사람 등쳐먹는 짓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그 사람들에게 갚아줄까?’하고 생각 끝에 어느 날 신문값을 몽땅 수금해 보니 보증금의 배가 되었는데,‘이 정도면 됐다.’싶어서 그것을 가지고 도망하였다.
서울 시내에 있기가 불안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에서는 아버지와 형님들이, “너 왜 학교 다니다 내려왔느냐?”하고 걱정하셨지만, 나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어른들에게 이야기했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일이 굉장히 두려웠다. 아버지가 불러도 대답을 안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식사 때에 아버지 얼굴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밥도 제 때에 안 먹곤 했다. 서울의 학교에서, 또 형들에게서 편지가 왔는데,‘무슨 일이든 올라오면 다 책임을 져 주겠다.’했지만, 그 편지들을 다 찢어버렸다. 한두 달 지나니까 그 일이 무마가 되었지만, 도저히 따분하여 시골에서 살 수가 없었다. 아버지께서‘너, 놀려면 보리밭이나 매러 가라.’하여 보리밭에 갔는데, 하루종일 겨우 보리밭 한 줄을 맸을 뿐이었다. 시골 생활은 너무 따분했고, 친구들하고 어울리면 밤낮 나쁜 짓만 하고 다녔고…. 할 수 없이 늘 교회에 나갔다.

교회에 가면‘예수님이 곧 오실 것 같은데, 예수님이 오시면 곧장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는 두려움에 빠졌다. 늘 죄에 대한 두려움, 가책 속에 매여 지냈는데, 진짜 1962년 한 해는 내 인생 중에서 기억조차 하기 싫은 해였다. 공부를 계속할 수도,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고, 공무원 시험을 치려 해도 실력이 안 되었으며, 군에 지원 입대하려 해도 치아에 이상이 있어 신체검사에 불합격되었는데, 뭐가 되는 것이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고통 속에 몰아 넣으셨는데, 그때‘세상에 나만큼 못난 인간이 없다.’는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 전에는 내가 잘났고, 똑똑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죽으려 마음을 먹어 보았지만, 나는 생각이 복잡한 사람이어서 죽을 수도 없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아무 생각없이 그냥 죽어야지,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면 죽을 수 없는 것이다. 또 사실, 죽음에 대하여 겁도 났다. 서울에서 남을 속인 일이 그때는 정당한 것 같았는데, 교회에 와서 생각해 보니 전부 죄악으로 여겨졌다. 하도 괴로우니까 술도 마셨으며, 담배도 피우게 되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만 하면 남의 땅콩밭이나 고구마밭에 가기가 일쑤였다.
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한번은 어느 밭에 들어가 땅콩을 무지무지하게 많이 캐먹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밭이었다. 교회에서도 청년들끼리 모이면 노는 것이 일이었다. 여름이면 과수원 원두막으로 다녔고, 겨울이면 극장, 빵집…… 당시 우리 청년들은 주머니에다 조그만 포켓 신약 성경을 가지고 다니며, 예배만 마치면 모여서 먹고 마시며 놀았다. 놀 때는 좋은데,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면 괴로운 것이었다.‘그래, 내가 지금까지는 잘 못했어. 이제부터 마음 고쳐먹고 잘하면 될 거야.' 하고 각오하며 결심하면 되는 줄 알고 다시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은데, 할수록 더 안 되는 것이었다. 부흥회 때마다, 새해마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새롭게 각오했다.‘이번에는 잘 될 거야.’울면서 회개해도 역시 또 죄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래서‘아, 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 나는 지옥 가기로 작정된 인간인가 보다. 그럴 바에야 죄나 실컷 짓다 편안한 마음으로 지옥에 가자.'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죄를 지어도 마음이 평안하면 괜찮은데, 마음이 괴로워 다시 교회에 가야 했다.

어느 날은 부흥회 때,‘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야기만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죄가 다 사해지면 죄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혼돈이 되었다.‘죄가 기억나는 것을 보니 죄가 사해지지 않았나 보다.’그것 때문에 또 1년을 고민하였다. 예배 없는 날 예배당에 와서,‘하나님, 내 죄가 사해졌는지 사해지지 않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내 죄가 다 용서되었다면 다 용서되었다고 말씀 한 마디만 해 주십시오.’하고 부르짖곤 했다. 성경 말씀을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 응답이 없었다. 먼저 신앙(?)의 길을 걸어간 집사님, 장로님, 목사님들의 발자취를 좇아“주여, 죄인이옵니다.”하고 죄를 회개하는 삶을 살았다.“하나님, 내가 오늘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사람들 있는 데서 죄를 고백하기가 부끄러워 나는 늘 새벽 기도를 나갔다.
새벽에 가장 먼저 예배당에 가서 램프불을 켜 놓고 종을 쳤다. 지름이 일 미터가 넘는 큰 종이었는데, 내가 매달려서 반동을 줘야 겨우 종이 쳐졌다. 그렇게 종을 치고 난 후에 목사님 사택에 가서“목사님, 새벽기도 시간이 되었습니다.”하고 목사님을 깨웠다. 그리고 나서 혼자 죄를 고백하는 시간을 가질 정도로 열심이었다. 죄를 고백하고 나면 좀 시원한 것 같았다. 그런데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 생활을 반복하니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안 하실 것이라는 마음이 자꾸 들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고…… 교회에 나가면 너무 가슴이 아팠다. 내가 죄를 지었지만, 그 죄를 근본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어서 또 울며 죄를 고백했다. 하나님과 정상적으로 좋은 교제를 가진 것이 아니라 죄 타령을 하는데 세월을 다 보낸 것이었다.나는 택한 백성이 아니구나!
내 신앙이 뭔가가 잘못된 것 같은데,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어느 날 저녁에 목사님을 찾아갔다. “목사님, 신앙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아, 박 선생, 들어오시오.” “목사님, 제가 부끄럽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에는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죄도 지은 나쁜 인간입니다. 죄를 고백도 해 보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기에 갚아주기도 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제 마음에 죄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저를 괴롭힙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째야겠습니까, 목사님? 이제는 해결되지 않으면 도저히 신앙 생활을 못하겠습니다.” 너무 심각한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때 목사님과의 대화는 지금도 다 기억하고 있다. “박 선생, 나도 딸 아이들을 세 명이나 객지에 보내 학교를 다니게 하고 있소. 그 애들이 객지에서 무슨 짓들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소. 박 선생, 젊을 때는 누구나 다 그런 죄를 짓소. 나는 내 딸들이라고 그런 짓을 안 한다고 말을 못하오. 박 선생, 이럴 때일수록 더욱 믿음을 굳세게 지켜야지, 이때 넘어지면 그만 믿음이 파선되는 것이오.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고, 더 열심히 믿음 생활해야 하는 겁니다. 박 선생, 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어도 힘이 없었다. 열심히 기도해야 하고 성경 읽어야 한다는 것은 굳이 목사님께 안 들어도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해 봤어도 나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후에도 오랫동안 죄에 눌려 고통했는데, 나에게 복음을 전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62년 10월 7일, 주일이었던 그 날 새벽에 나는 아무도 없는 예배당에서 혼자 기도하고 있었다. 기억나는 대로 죄를 고백하고 있었는데,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여 멈추었다가 새벽 기도 시간을 마치고 사람들이 돌아간 후 다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간구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이상하게도‘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다 씻으셨다.'는 사실이 내 마음에 그대로 들어와 버렸다. 지금처럼 누가 구약의 속죄 제사나 예수님이 이루신 영원한 속죄에 관한 말씀을 자세히 해 준 것도 아니었는데,‘그러면 내 죄가 그때 다 해결되었구나!’하는 마음이 들면서 내 마음이 평안해졌다. 놀랍게도 그 때부터 내 자신도 모르게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에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하나님이 나와 가까이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전처럼 형식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을 하나하나 기도하게 되었다. 성경을 읽을수록 재미가 있어 성경이 내 손에서 떨어지지가 않았고, 성경을 끌어안고 잔 적도 많았다.
나를 구원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내가 어떤 인간인지를 보여 주신 것이었다. 내 자신이 얼마나 못나고 무능한 자인지를, 정말 죄악으로 가득차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더러운 죄인인 것을 발견하게 하셨다. 아무 소망을 가질 수 없는 나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 구원을 받고도 이전의 삶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나 자신을 기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은 놀랍게도 말씀으로 나를 사로잡으시고 은혜로 나를 인도하기 시작하셨다.


- 계속


+ 출처 : 박옥수 목사 홈페이지 http://www.ospark.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