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맏며느리의 넋두리...

캔디아줌마2004.10.14
조회2,536

결혼한지 한달 된 새댁입니다. 게시판에 글을 읽다 보면 글 올리신 분의 입장에서

 

같이 열 받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전 비록 결혼한지 얼마 안됐지만 우리나라 남자들 어쩌면 그리도 결혼만 하면 효자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장남인 우리 신랑도 마찬가지지만요.

 

저희 시부모님들 참 착하고 좋은 분들이세요. 어머님은 많이 못 배우시고 한없이

 

착하기만 한 분이구요. 아버님은 고지식하고 매우 검소하신 분이시죠. 두 분이 작은

 

식당을 하셔서 생활력이 되신다는게 현재로서는 참 감사할 따름이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장사하시며 버신 돈을 어머님은 5천만원 정도 사기를 당하시고,

 

아버님은 주식으로 5천만원 정도 잃으셨어요. 아주 안팎으로 나란히 1억 가까이 되는

 

돈을 날리셨답니다. 그 사실을 결혼 두 달 전에 알았는데요. 그 분들이 참 딱하기도

 

하고 한심스럽기도 했어요. 배움도 짧으신 분들이 죽어라 고생해서 번 돈을 그렇게

 

허망하게 날렸는데 장남으로서 뭐 했냐고 신랑을 나무라기도 했어요. 신랑은 그러대요.

 

자기도 나중에 알았다고.

 

이미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야 알았다구요. 그나마 신랑이 직장생활 하며

 

알뜰하게 모은 돈이 좀 있었고 시부모님들이 저희 전셋집에 돈을 좀 보태주셔서 결혼은

 

그럭저럭 했구요.

 

평수 좀 있던 빌라(이것도 전세였지만)에서 아주 좁은 빌라로 이사 가셨어요.

 

결혼 안 한 시동생이랑 시누이한테 좀 미안했지만 그 외 결혼할 때 신랑 쪽에서 들어가야

 

할 많은 비용들은 결혼 후에 갚자 생각하고 신랑 카드로 팍팍 긁었네요.

 

그래서 지금 열심히 갚고 있어요.

 

지난 추석이 결혼 후 첫 명절이었는데 그냥 이래저래 맘이 불편했어요. 저희 가니까

 

도련님 방에서 자라고 내주시더군요. 도련님은 아가씨 방에 가서 자고. 아가씨는

 

안방가서 자고. 도련님 방에서 자려는데 기가 막혀 잠이 안오더라구요. 이불이랑 요가

 

어찌나 낡고 오래 됐던지. 쿰쿰한 냄새에.

 

그래도 며느리가 처음 들어와서 명절 쇨라고 왔는데 그렇게 꼬지지한 이부자리가

 

뭐랍니까. 시어머님이 저희 친정엄마 보다 나이는 적지만 정말 너무 달라요.

 

뭐든지 아까워서 못쓰고, 찬장에 그릇들도 정말 당장 갖다 버리고 싶을 정도로

 

꼬지지한 옛날 그릇들에. 쿠쿠 밥솥을 도련님이 갖다드려도 아깝다고 그냥 모셔놓고.

 

제가 결혼할 때 해갖고 온 예단 그릇들이 아직도 안방에 모셔져 있더라구요.

 

좁은 집에, 그 구닥다리 살림살이들에, 그나마 선물받은 주방용품들은

 

마치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처럼 포장째 주방 선반을 장식하고 있어요.

 

아깝다고 절대 쓰지는 못하시구요. 마루와 주방에는 방걸레라고 남자 난닝구(?)가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24시간 굴러다니고 있구요. 저 첨에 그거 보구 기절했어요.

 

친정에서는 집 안에 방걸레 놔두면 보기에도 지저분하고 물곰팡이 냄새 난다고

 

걸레는 바짝 말려서 베란다에 걸어놓고 쓰고 그랬거든요. 어머님이 포도 씻어서

 

식탁에 주시며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탈탈 털어서 접시 대용으로 쓰시는 것 보고도

 

정말 답답했구요.

 

저 말없이 일어나서 씽크대 선반에 있는 과일접시 들고와서 비니루 봉다리 위에 올려져

 

있던 과일 접시로 옮겨 놨네요. 정말 옛날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낙후된 시스템

 

(약간은 불결하고 세련하고는 거리가 먼)으로 살림을 꾸려가시는 어머님이나 그 어머님이

 

한 15년 아낀 그릇들을 저보고 갖다 쓰라고 자꾸 주시는 아버님도 너무 부담스럽구요.

 

외국 나가면 예쁜 그릇들 사와서 예쁘게 음식 담아 내가는게 기쁨이었던 친정 엄마만

 

보다가 아버님이 큰 맘 먹고 인심 쓴다며 주시는 그 옛날 구가다의 그릇들을 내가

 

써야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현실이 어쩔 땐 참 씁쓸해요. 그리고 신랑이 지독히도 뭐

 

버리는거 싫어하고, 혼수로 해간 크리스탈 그릇 제가 꺼내쓰면 아깝다고 못마땅해

 

하는거 볼 때면 시부모님의 얼굴이 겹쳐져서 가슴이 답답해지곤 해요. 아버님은 시댁이

 

1억 가까이 손해를 본거 제가 모르는 줄 아세요. 저 보시면 결혼 할 때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다 내가 좀 사정이 안 좋단다 그러시죠. 전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죠.

 

아버님은 며느리 얻으신게 굉장히 신기하고 좋으신가 봐요. 아버님은 저희가 매주 왔으면

 

하세요. 전화도 매일 했으면 하고요. 제가 이틀에 한번씩 전화 드리는데 것두

 

좀 섭섭하신가 봐요. 사실 별루 할말도 없는데. 말이 통하는 것두 아니고.

 

친정에서는 오빠랑 저랑 부모님이 똑같이 먹이고 똑같이 가르쳐서 제가 딸이어서 서러운

 

것두 오빠가 맏이라서 이득보는 것두 없었는데. 신랑은 장남이라고 제일 좋은 것만 먹고

 

특별대우 받으며 컸다네요. 그래서 그런지 장남, 맏며느리에 거는 기대가 정말 장난

 

아니랍니다. ^^ 시댁에서 시누이, 시동생은 그냥 들러리에요.

 

우리 장남 장남 노래를 하시죠. 아마두 머잖아 기력 좀 없어지면 우리를 책임질 애들이

 

저 애들이다라는 믿음과 기대 때문에 더 챙기시는 것 같아요. 사실 그것도 은근히

 

부담이랍니다. 암튼… 사랑하는 사람하고 살면 정말 행복하겠다는 마음 하나 만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네요. 시할머니 기일하고 딱 맞아떨어진 얼마 전 제 생일도

 

우울했구요. 아버님이 그 날 아무리 생일이어도 첫 제사 모셔야 한다며 노래를 하셨죠.

 

사무실에서 좀 디프레스 되서 몇 자 적었는데 글이 길어졌네요.

 

맏며느리 자리 정말 어려운 자리구요. 특히 우리나라 장남은 99%가 효자도 그런 효자가

 

없답니다. 자기 부모님 얘기하면 몹시 불편해하구요. 부모님의 비합리적인 요구에도

 

일단은 ‘예’ 한답니다. 참 이상하죠. 당신 아들이 검사, 의사가 아니라 맞벌이 하지

 

않으면 생계가 뻑뻑한 그냥 너무나 평범한 봉급쟁이일 뿐인데도 세상에 그리 잘난

 

아들이 없다고 굳게 믿으시죠. 며느리는 공하나 안들이고 공짜로 얻은 살림밑천 맏딸이구요.

 

그래서 휴일이면 본가에서 편하게 쉬라고 성화를 하시죠. 우리 아버님 레파토리가

 

그거랍니다. 명절 빨간 날 시작하면 바로 와라. 쉬더라도 여기서 쉬면 같은 공간에서

 

얼굴보고 얼마나 좋으냐. 제가 그리도 보고 싶고 이쁘신가 봐요. 허허허…

 

일요일 아침도 웬만하면 와서 먹으라고 하실 정도니까요. 사실 시댁

 

에서 맘 편하게 쉴 수 있나요. 밥 해야지, 먹은 거 치워야지. 과일 깎아다 바쳐야지.

 

때때로 커피, 차 내드려야지. 오늘도 퇴근길에 시댁에 전화 드려야겠네요.

 

어제 안했기 때문에 아마 기다리실 거에요. 대한민국에서 맞벌이하며 맏며느리로

 

살아간다는 것… 생각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곤하네요.

 

이 땅의 모든 위대한 며느리분들께 힘내시라고, 그동안 참 고생 많으셨다고,

 

그리고 앞으로 마음 상할 일이 많더라도 부디 힘내시라고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