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헬싱...레스타드 저택.

사이렌200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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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웃다보니 사람들이 다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등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 이 뱀파이어들이 나에게 달려든다면.. 나는 무의식중에 카밀라를 바라봤다. 카밀라는 살짝 웃으며 먼저 잔을 들이켰다. 나는 피 비린내가 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카밀라가 마시자,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상한 만찬에 동참했다.

 

-그 피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돈을 지불하고 사거나 아니면 헌혈한 피에요. 식은 게 맛이 없긴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가끔 사슴이나 다른 짐승의 따뜻한 피를 마시기도 하죠.

 

나는 영화에서 본 뱀파이어의 식사 장면이 생각났다. 무자비하게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는..

 

-근세 이후, 우리는 직접 사냥에 나서지 않아요.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솔직히 그 많은 피를 대기위해서는 많은 사냥감이 필요하기도 했죠. 짐승의 피는 인간의 피보다 훨씬 영양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짐승의 피만 먹다간 영양실조 걸리기에 딱 좋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병원을 인수하는 작업이에요. 병원을 인수하면 적어도 피가 부족하진 않을테고, 더 이상 사람을 죽일 필요도 없는거죠. 더군다나 인공혈액을 만드는 연구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였어요.

 

나는 카밀라의 속삭임에 열중하다 잠깐 동안 한 뱀파이어와 눈이 마주쳤다. 그 뱀파이어는 아름다운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한 전형적인 백인이었는데, 입술이 지나치게 붉어 눈에 띄었다. 카밀라 역시 그녀를 보았는지 손을 들어 그녀에게 인사했다. 그녀는 고개만 숙였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었다면, 모델이든지 영화배우든지 무엇을 해도 성공했을 미모였다.

 

-예쁘죠?

 

카밀라의 말에 나는 뜨끔했다.

 

-로저의 동생이에요. 버지니아라고 하죠.

 

그때, 버지니아가 일어나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안녕, 카밀라.

 

-안녕, 버지니아. 이분은..

 

-알고 있어. 닥터 반 헬싱?

 

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가까이서 보니 더 미인이었다. 카밀라도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카밀라가 백합이라면 버지니아는 장미였다. 카밀라는 차분하고 지적이고 버지니아는 도발적이고 매혹적이었다. 나는 두 사람이 내뿜는 장미향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알렉에게 들었어. 보헨이 나타났다며?

 

그러나 버지니아는 나를 무시하는 듯, 카밀라에게 말을 걸었다. 카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 놈이 죽었을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막상 살아있다고 하니 반가운 걸?

 

버지니아의 말에 카밀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쉽게 죽는다는 건 너무 재미가 없지.

 

-그렇지. 그 놈은 꼭 내 손으로 죽여야하니까.

말을 마친 버지니아는 카밀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더니 사라졌다. 나는 카밀라에게 뭐라 더 말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보헨이라는 작자를 잘 아나보죠?

 

-보헨이요?

 

카밀라가 되물었다.

 

-그럼요. 우리는 다 한 가족이었는걸요? 보헨은 슈란더였어요. 슈란더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이었지요. 그는 자신이 벨프라는 것을 속이고 반란을 일으키려다 발각되었지요. 사실, 그가 벨프가 되기 전에는 꽤 인기도 있었고.. 우리는 그가 슈란더 임에도 불구하고 전사로 임명했었지요. 그런데..

 

카밀라는 여기까지 말하고 말을 줄였다. 나는 말 못할 사정이 있나보다 생각하고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나는 잠깐 동안 식당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은 결코 서두르거나 시끄럽지 않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우선 보라색 커튼으로 장식된 아치형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화려한 샹들리에, 묵직해 보이는 원목 식탁, 비로드 장식의 의자, 모든 것이 고급스럽고 오래되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모여있는 뱀파이어들은 도무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얼굴들이었다. 카밀라의 말대로라면, 그녀의 나이는 거의 400살이 다 될 것이다. 어린아이의 얼굴부터 나이가 지긋한 노인의 얼굴을 가진 뱀파이어들이 있었지만, 우습게도 어린아이의 나이가 노인의 나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거죠?

 

-아, 버지니아.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내 옆자리에 털썩 먼지가 일어나도록 앉았다.

 

-그냥 지니라고 불러요. 버지니아라는 이름은 너무 길지 않아요?

 

-그래요, 지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밀라는 로저와 식당 구석에서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카밀라는 눈을 찡그리기도 하고 뭔가 풀리지 않는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로저는 주로 듣는 입장이었는데, 꽤 신중한 모습이었다.

내가 둘을 보고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버지니아가 말했다.

 

-로저와 카밀라는 약혼한 사이지요. 저 둘은 연인이라기보다는 친구에 더 가까워요... 둘은 정말 환상의 커플이죠. 전쟁에서도, 사업에서도.

 

-그럼 당신은?

 

-난 연애나 사업, 둘 다 관심없어요.

 

버지니아는 약간 멍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아니, 나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내 뒤의 허공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솔직히 딱 부러지는 성격의 카밀라보다 버지니아가 좀 더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너무 성격이 뚜렷한 여자는 남자에게 부담스러운 법이니까. 하지만, 둘 다 사람이 아니라 뱀파이어다. 사람으로 치면 무덤 속에서 뼈도 없이 사라졌을 나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닥터, 저와 함께 가실까요?

 

카밀라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일어섰지만 버지니아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는 카밀라를 따라 식당에서 나와 긴 복도를 걸어갔다. 나는 잠깐 동안 내가 어디로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나는 식사감은 아니다, 라는 생각도 했다.

 

-지니와 무슨 이야기를 했어요?

 

-뭐, 그냥.. 로저 레스타드씨가 약혼자라고 그러더군요.

 

-약혼이라.. 뭐, 우리 일족의 약혼이란 개념은 인간의 약혼이란 개념과 다르지만,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하시겠네요.

 

긴 복도를 지나 다다른 곳은 막다른 방이었다. 그 방의 문은 다른 방 문보다 훨씬 크고 두꺼운 철문이었다.

 

-이.. 방은?

 

나는 들어가기에 앞서 물었다.

그러나 카밀라는 대답도 하지 않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듯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으로 들어간 나는 먼저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높다란 천정은 중세시대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으로 덮여 있었고, 화려한 커튼으로 장식된 창문들 역시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방 가운데는 대리석 원탁이 있었는데, 빙 둘러 묵직해 보이는 원목 의자들이 둘려 있었다. 의자에는 이미 로저가 앉아 있었다. 로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카밀라의 손짓대로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처음에는 그렇겠지요. 당신 아버지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로저의 말에 다시 대꾸했다.

 

-자꾸 내 아버지 말을 하는데, 내 아버지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을 당신들이 알고 있다는 것도 내겐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오.

 

-그것은 사과하겠소. 하지만, 당신 아버지에 대해 우리는 늘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소. 당신 아버지는..

 

-그만 해, 로저.

 

카밀라가 중간에 말을 잘랐다.



------그동안 많이 쉬었죠? 시험기간이라 많이 바쁘네요..^^좋은 하루 보내세요~반 헬싱...레스타드 저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