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과 초로(初老)예찬

은하철도 200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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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과 초로(初老)예찬

10월과 초로(初老)예찬



초로의 나이는 10월 달이다.

아침과 저녁나절은 제법 싸늘하지만 그다지 두꺼운 옷을 안 입어도 될 만하고, 한낮의 햇살은 따갑지만 빛과 빛 사이로 쇠락한 기운이 감돌아 그다지 뜨겁지는 않다. 산천의 신록은 오색의 옷을 갈아입으며 앞서거니 뒷서거니 떠날 차비로 부산하고, 성질 급한 놈은 벌써 고운 자태를 새벽공기에 던져 팔랑팔랑 허공을 가른다. 푸름으로 꽉 찼던 산천에 드문드문 빈 자리가 드러나고 그 틈에 바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먼 바다에서 꿈틀꿈틀 꿈을 꾸다가 기어이 몸을 드러낸 파도는 봄이다. 몸을 한껏 일으키며 육지를 향해 마구 달려오는 발길에 물보라가 날리고 거센 힘은 꺾어지는 법이 없다. 발목을 잡았던 늦추위의 손목이 부러져 나간다.

허공에 잔뜩 솟구쳤던 파도가 몸을 앞으로 확 엎으며 백사장을 때리는 순간은 여름이다. 하얀 거품이 쫙 백사장을 타올라 뿌려지며 바닷물이 조잘조잘 연인의 발자국에 담기고 모래위의 써있던 사랑의 글을 짓밟아 지우며 장난을 친다.

그렇게 한껏 힘을 부풀려 올랐던 파도가 끝까지, 끝까지 선을 그으며 백사장에 흔적을 남기고 돌아서며 뒤로 쭉 빠지는 순간, 밀물이 썰물 되어 몸을 육지에서 쑥 빼며 거품으로 뒤덮였던 백사장이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 바로 10월이다. 삶으로 말하면 초로의 나이다.


초로의 나이는 하루해로 치자면 낙조다. 추수를 끝낸 농부가 볏단을 높이 쌓아놓고 그 위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난 후에, 볏단을 짊어지고 빈 논바닥을 꾸벅꾸벅 밟으며 걸어오다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바라본 서쪽 하늘이다. 파랗던 하늘이 갈래갈래 찢어지며 붉은 빛이 드러나고, 그 빛은 여기저기 떠 있는 구름을 타넘고 서쪽 지평선으로 달려, 세상의 붉은 빛이 모두 모여앉아 잠자리를 마련하는 곳, 하루의 끝은 그렇듯 화려하고 장엄하다. 그리고 아직 서쪽에 도달하지 못한 채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는 노을빛은 신선하다. 약간 보랏빛을 띤 것 같기도 하고 노란빛을 가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초로의 나이는 계산을 할 수 있는 나이다.

마치 오일 만에 선 장이 끝난 장터의 저녁나절 같아서, 여기저기에서 좌판을 걷어치우고 팔리다 만 물건을 정리하고, 얼마나 벌었는지 앞에 달린 돈주머니를 털어보며 큰 아들 학비에 얼마, 작은 딸이 사달라는 옷값이 얼마, 그리고 아내의 속옷이라도 사 입으라고 줄 여력이 있으면 참 좋다. 이쪽에는 충청도 사투리, 저쪽에는 경상도 사투리가 술에 젖어 오가고 간간이 멀리서 올라왔다는 해남댁의 전라도 사투리도 들린다. 하루 종일 손님을 모아놓고 지껄이느냐 목이 쉬어버린 약장수 김씨가 빈대떡 한조각과 막걸리 한 사발을 들고 비척비척 걸어온다. 내일은 영(嶺) 너머에서 보자고 떠나려는 이불장수 박씨에게 건네준다. 마주치는 두 사람의 눈빛에 웃음이 감돈다. 역시 초로의 나이는 저녁나절의 여유가 있다. 인생계산을 할 수 있는 나이다. 말하자면 팔자대로 사는 법을 아는 나이다.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던가,

앞서서 달리건, 뒤에 쳐져서 꾸물꾸물 따라오건 제 그릇의 크기를 알고, 제 주제를 아는 나이다. 서둘러 봐야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매사에 한걸음 물러나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앞서지도 않고 뒤쳐지지도 않으며 주어진 제 자리를 지킨다. 천리만리 산과 들을 돌고 돌아서 비로소 찾은 하늘이 내려준 자리, 그것을 아는 나이가 초로의 길목에서 나를 기다린다.


나이가 고마운 적이 있다.

세월만이 가져다주는 지식이 따로 있어, 그 깨달음이 따로 있어, 어제는 오른 쪽에 있던 것이 알고 보니 왼쪽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토록 화가 났던 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이제야 알 수 있으니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정은 있지만 그래도 이만한 것이 다행이다. 영영 한으로 남을 일이 세월이 지나다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이 나이를 만났고 보니 이제야 알겠더라. 파도가 빠진 후에 드러난 모랫바닥이 평평하여 다시 걷는 내 발자국만 눈부시다. 이렇게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초로의 나이다. 그래서 10월의 바람 속에도 훈풍은 있다. 뺨을 스치는 선선한 결이 있다.


올 가을은 유난히 단풍이 아름답다고 한다. 언젠가 한계령 기슭의 펠레약수를 지나며 바라보던 10월의 산천,

그 속에 내가 있다. 손짓을 하고 있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