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내가 기뻐해야 하는 것인가? 전부인과 이혼하고 나와 결혼하겠다는 남자에게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면 모든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런 시련을 극복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결혼이란 말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내가 정말 정훈에게 결혼을 원했던 것인지도 스스로 대답할 수 없었다.
"오빠. 나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
정훈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넌 내가 결혼한 상태라서 혼란스럽다고 했잖아. 이젠 그 혼란스런 문제가 해결된 거라고..."
사람은 이렇게도 멍청한 것일까...정훈의 말대로 나는 정훈이 결혼한 남자라서 혼란스럽다고만 생각했었다. 그게 진심이었다면 정훈이 이혼을 하겠다고 하면 기뻐해야 하고 당장 결혼하자고 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스러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어. 내가 이렇게 오빠에 대해서 불안한 게 오빠가 결혼한 사람이라서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그 얘기를 듣고도 계속 혼란스러운 걸 보면 문제는 나한테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결혼 준비는 우선 마음의 준비부터 있어야 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마음 속에서 진정으로 정훈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내 속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모든 문제를 정훈에게 던져 버렸던 것은 아닐까...
"민아야..."
정훈은 침착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응?"
"어떤 결정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전혀 낭비하는 시간이 아냐. 내가 겪어보니까 그렇더라. 너와 헤어지고 나이가 되서 그냥 적당한 상태라서 결혼을 했지. 결혼할 때 나 별로 고민하지 않았어. 전에도 말했지만, 그냥 모든 게 적당해 보였거든...사람도 상황도. 그런데 지금 이렇게 어려운 걸 보면 그 때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 생각이 들어. 세상에는 속도를 내야 할 일과 아닌 일이 있는데 살다 보니까 속도를 내야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아. 특히나 인생이 걸린문제는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 지금 당장 네가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대신 날 선택하는 게 정말 너의 진심에서 너의 인생까지 생각한 신중한 결정이길 바란다."
갑자기 정훈이 애인이 아니라 진짜 오빠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애인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충고를 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런데 정훈의 말대로 결혼해도 좋을 것 같아서 결혼하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이해해주니 고마워."
"난 네가 결혼해주지 않아도 이혼할 거야. 나에게 있어 이혼은 너와 결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위한 선택이야. 나 애정 없는 결혼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았거든...외롭다고 해서 무작정 옆에 둘 사람을 만들어선 안되는 거야. 그건 더 외로워지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 거야."
역시 정훈은 옛날과 달라져 있었다. 많은 세월 동안 인생의 깊이를 배운 사람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 동안 무엇을 배웠을까?
"이런 결정을 결정을 내리기까지 나도 너한테 빨리 나에게 마음을 잡아주기 바라는 욕심이 있었어. 그런데 막상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이젠 내가 널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같아. 백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야."
정훈은 거친 폭풍에서 막 빠져 나온 사람처럼 예전과 달리 평온해진 모습이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 변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람은 그냥 세월을 보내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면서 성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훈은 부인을 만나면서 인생을 배웠을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널 다시 만난 거 절대로 후회 안해. 지금 아내로 인해 또 너로 인해 내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됐거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지도 분명히 알 수 있었고..."
사랑은 어쩌면 끝나기 전까지는 그 깊이를 모를 수도 있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 혹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과거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현수의 말이 떠올랐다. 과거 사랑의 그림자로 인해 현재의 사랑을 못볼 수 있다고...나에게 정훈이 과거 사랑의 그림자인지 현재의 사랑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정훈의 말대로 이제 나의 선택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정훈에게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기다려준다는 정훈만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정훈을 만난지 정말로 오랜만에 편한 마음이 되었다. 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같고 불안하던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젠 모든 장애물이 없어지고 우리 사이의 사랑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정훈은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나는 그의 배웅을 거절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너도 예전과 달리 편안한 여자가 되었어."
"?"
"예전에 너는 애인의 배려도 어떤 거리를 두는 것 같았거든, 내가 무거운 가방이라도 들어줄라고 하면 싫다고 하고...추운 날 옷이라도 벗어주려고 하면 그런 거 싫다고 하고..."
정훈은 예전의 모습을 많이도 기억하고 있었다. 정훈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어제 중국에서 현수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사람을 서로 폐를 끼치면서 정드는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기대고 그러는 거 이제 좀 이해해보려고 해."
나는 대답했다.
"그래...사람은 변하는 거다..."
정훈은 잘자라는 인사와 함께 살짝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돌아서는 그의 모습을 보며 혹시 오늘이 정훈과의 마지막 만남이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집에 들어와 레종을 찾아보고 비워진 사료 그릇을 채워 놓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발신자를 보니 현수였다.
"나 지금 비행기 타는데 마중 나올래요?"
현수는 대뜸 그렇게 물었다.
"네?"
"올 거에요? 안 올 거에요?"
지금까지 정훈과 대화로 머리속도 복잡하고 몸도 지친 상태라 현수의 질문에 흔쾌히 그러겠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하하. 왜 그렇게 순진해요? 지금 서울이에요. 전화번호도 국내 번호를 떴을 텐데..."
피식 웃음이 났다. 현수가 이렇게 장난끼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얼마 전까지는 전혀 몰랐었다.
"놀랬잖아요. 거기다 잠시 고민했어요. 정말 피곤했거든요."
"민아씨!"
"네?"
"앞으로는 저한테 무리하지 마세요. 피곤하면 피곤하다. 그래서 못나가겠다. 그럼 되는 거에요. 저한테 부담갖는 거 싫어요."
백년이라도 기다리겠다는 정훈, 무리하지 말라는 현수, 갑자기 세상 모든 남자들이 이해해주는 것만 같았다. 정훈의 말대로 내가 변해서일까? 사람들의 배려에 대해서 편안하게 생각하고자 한 후의 변화일까...
아직 어떤 관계도 규정짓지 못한 현수지만 그의 배려는 고맙기만 했다.
"오늘은 피곤하다 하니까 안되겠고, 내일 쯤에 민아씨랑 레종 보러 놀러 갈게요. 그럼 낼 아침에 봐요. 그럼 잘자요."
현수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현수의 잘 자라는 인사가 마치 주문처럼 작용했는지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시기적절한 남자(46)
http://blog.nate.com/blogon
[소설] 시기적절한 남자(46)
"그럼 나랑 결혼하겠다는 거야?"
"응."
정훈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너무도 명확하게 대답했다.
이럴 땐 내가 기뻐해야 하는 것인가? 전부인과 이혼하고 나와 결혼하겠다는 남자에게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한다면 모든 시련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는 그런 시련을 극복한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결혼이란 말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내가 정말 정훈에게 결혼을 원했던 것인지도 스스로 대답할 수 없었다.
"오빠. 나 지금 많이 혼란스러워."
정훈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넌 내가 결혼한 상태라서 혼란스럽다고 했잖아. 이젠 그 혼란스런 문제가 해결된 거라고..."
사람은 이렇게도 멍청한 것일까...정훈의 말대로 나는 정훈이 결혼한 남자라서 혼란스럽다고만 생각했었다. 그게 진심이었다면 정훈이 이혼을 하겠다고 하면 기뻐해야 하고 당장 결혼하자고 하는 것이 수순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혼란스러웠다. 이 혼란스러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어. 내가 이렇게 오빠에 대해서 불안한 게 오빠가 결혼한 사람이라서라고 생각했는데, 방금 그 얘기를 듣고도 계속 혼란스러운 걸 보면 문제는 나한테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결혼 준비는 우선 마음의 준비부터 있어야 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마음 속에서 진정으로 정훈과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런 내 속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모든 문제를 정훈에게 던져 버렸던 것은 아닐까...
"민아야..."
정훈은 침착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응?"
"어떤 결정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전혀 낭비하는 시간이 아냐. 내가 겪어보니까 그렇더라. 너와 헤어지고 나이가 되서 그냥 적당한 상태라서 결혼을 했지. 결혼할 때 나 별로 고민하지 않았어. 전에도 말했지만, 그냥 모든 게 적당해 보였거든...사람도 상황도. 그런데 지금 이렇게 어려운 걸 보면 그 때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 생각이 들어. 세상에는 속도를 내야 할 일과 아닌 일이 있는데 살다 보니까 속도를 내야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아. 특히나 인생이 걸린문제는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아. 지금 당장 네가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대신 날 선택하는 게 정말 너의 진심에서 너의 인생까지 생각한 신중한 결정이길 바란다."
갑자기 정훈이 애인이 아니라 진짜 오빠라도 된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애인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충고를 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날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런데 정훈의 말대로 결혼해도 좋을 것 같아서 결혼하는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이해해주니 고마워."
"난 네가 결혼해주지 않아도 이혼할 거야. 나에게 있어 이혼은 너와 결혼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내 인생을 위한 선택이야. 나 애정 없는 결혼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았거든...외롭다고 해서 무작정 옆에 둘 사람을 만들어선 안되는 거야. 그건 더 외로워지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 거야."
역시 정훈은 옛날과 달라져 있었다. 많은 세월 동안 인생의 깊이를 배운 사람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그 동안 무엇을 배웠을까?
"이런 결정을 결정을 내리기까지 나도 너한테 빨리 나에게 마음을 잡아주기 바라는 욕심이 있었어. 그런데 막상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이젠 내가 널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같아. 백년이 걸린다고 해도 말야."
정훈은 거친 폭풍에서 막 빠져 나온 사람처럼 예전과 달리 평온해진 모습이었다.
그럴지도 모른다.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 변하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람은 그냥 세월을 보내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면서 성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훈은 부인을 만나면서 인생을 배웠을 것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널 다시 만난 거 절대로 후회 안해. 지금 아내로 인해 또 너로 인해 내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됐거든.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지도 분명히 알 수 있었고..."
사랑은 어쩌면 끝나기 전까지는 그 깊이를 모를 수도 있다. 사랑이 끝나고 나서 혹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서야 과거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현수의 말이 떠올랐다. 과거 사랑의 그림자로 인해 현재의 사랑을 못볼 수 있다고...나에게 정훈이 과거 사랑의 그림자인지 현재의 사랑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정훈의 말대로 이제 나의 선택만 남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정훈에게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기다려준다는 정훈만이 고마울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정훈을 만난지 정말로 오랜만에 편한 마음이 되었다. 늘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 같고 불안하던 마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젠 모든 장애물이 없어지고 우리 사이의 사랑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정훈은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고 나는 그의 배웅을 거절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의 배려를 받아들였다.
"너도 예전과 달리 편안한 여자가 되었어."
"?"
"예전에 너는 애인의 배려도 어떤 거리를 두는 것 같았거든, 내가 무거운 가방이라도 들어줄라고 하면 싫다고 하고...추운 날 옷이라도 벗어주려고 하면 그런 거 싫다고 하고..."
정훈은 예전의 모습을 많이도 기억하고 있었다. 정훈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어제 중국에서 현수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사람을 서로 폐를 끼치면서 정드는 거라고...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기대고 그러는 거 이제 좀 이해해보려고 해."
나는 대답했다.
"그래...사람은 변하는 거다..."
정훈은 잘자라는 인사와 함께 살짝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돌아서는 그의 모습을 보며 혹시 오늘이 정훈과의 마지막 만남이 아닐까 하는 예감이 들었다.
집에 들어와 레종을 찾아보고 비워진 사료 그릇을 채워 놓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발신자를 보니 현수였다.
"나 지금 비행기 타는데 마중 나올래요?"
현수는 대뜸 그렇게 물었다.
"네?"
"올 거에요? 안 올 거에요?"
지금까지 정훈과 대화로 머리속도 복잡하고 몸도 지친 상태라 현수의 질문에 흔쾌히 그러겠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
"하하. 왜 그렇게 순진해요? 지금 서울이에요. 전화번호도 국내 번호를 떴을 텐데..."
피식 웃음이 났다. 현수가 이렇게 장난끼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얼마 전까지는 전혀 몰랐었다.
"놀랬잖아요. 거기다 잠시 고민했어요. 정말 피곤했거든요."
"민아씨!"
"네?"
"앞으로는 저한테 무리하지 마세요. 피곤하면 피곤하다. 그래서 못나가겠다. 그럼 되는 거에요. 저한테 부담갖는 거 싫어요."
백년이라도 기다리겠다는 정훈, 무리하지 말라는 현수, 갑자기 세상 모든 남자들이 이해해주는 것만 같았다. 정훈의 말대로 내가 변해서일까? 사람들의 배려에 대해서 편안하게 생각하고자 한 후의 변화일까...
아직 어떤 관계도 규정짓지 못한 현수지만 그의 배려는 고맙기만 했다.
"오늘은 피곤하다 하니까 안되겠고, 내일 쯤에 민아씨랑 레종 보러 놀러 갈게요. 그럼 낼 아침에 봐요. 그럼 잘자요."
현수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현수의 잘 자라는 인사가 마치 주문처럼 작용했는지 아주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