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천천히 벗겨져 내리는 싸늘한 아침기온이 가을의 씨앗을 뿌리고 지나갔습니다. 그 리고 가을의 씨앗은 천천히 자라나기 시작하면서 길옆에 하얀 붉은 연분홍색 코스모스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길 밑에 있는 논둑에서 여리디 여린 하얀 수염을 내놓고 수줍은 듯 서있던 억새는 이제 은백색의 아름다운 아가씨의 머리로 변하면서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지나가는 꼬리가 빨간 고추잠자리를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시골 들녘의 논에 황금물결을 이루며 서있던 벼들이 서서히 베어지면서
검은 속살을 드러내놓고 다가오는 겨울의 추위를 맞이하기에 바쁘고 시골마을의 공터는 오늘도 벼를 말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아! 수확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가을은 언제나 좋은 계절이구나!” 하는 마음으로 이 마을 저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는 저의 마음도 농부들의 환하고 밝은 미소를 볼 수가 있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계절이 가을입니다. “할머니! 할머니! 어디계세요?”하며 보성읍 용문리 와장 마을의 제일 높은 집에서 조그만 소포를 하나들고 집 주인 할머니를 부르자
“응! 나~아! 여깃어! 으째 그래~에?” 하시며 집 모퉁이의 텃밭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일을 하시다 말고 할머니께서 얼른 제가 있는 쪽으로 달려 나오십니다. “할머니! 부산에서 소포가 하나왔네요! 도장 한번 찍어주시겠어요?”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부산서 소포가 왔다고? 이~잉! 우리 조카가 보냈는 갑구만 엊그저께 뭔 약을 쬐깐 보낸다고 전화가 왔드만!”하십니다. “아니! 할머니께서 어디가 편찮으세요?” 하자 “아니! 내가 아픈 것이 아니고 그냥 집이서 쓰는 약이라고 그라데!”
하시더니 “거시기 내가 발이 더러운디 도장 찾으로 가기가 성가신께 그냥 지장 찍으문 안되까?”하십니다. “예~에! 그러면 그렇게 하세요!” 하고는 할머니의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히려는 순간 자세히 보니 엄지손가락이 퉁퉁 부어있는 겁니다. “아니! 할머니 손가락이 왜 그러세요? 가시에 찔리셨어요?”하고 묻자 “금메! 으따가 찔러 부렇는디 여가 영 쑥쑥그라고 아프네!” 하십니다. “할머니! 조심하시지 그러셨어요!”하고는 “할머니 손가락이 그러니까 지장은 다음에 찍어주세요!”
하였더니 “우메! 그래도 괜찮하까?”하십니다. “예! 괜찮아요! 그런데 할머니 손가락이 그렇게 아파서 어떻게 일이나 하시겠어요?” 하였더니 “그랑께 신일은 못해!” 하시더니 갑자기 소포를 풀어보려고 하시는데 소포가 테이프로 둘둘 말려있는 바람에 소포가 쉽게 풀려지지가 않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거시기 내가 손구락이 아픈께 아저씨가 여그 소포 좀 풀어봐! 잉!” 하십니다. 그래서 소포의 테이프를 뜯어내고 소포를 풀어보는데 소포의 내용물이 가정에서 사용하는 진통제 일회용 밴드 대형파스 등이 들어있는 겁니다.
“할머니! 이건 누가 보내신 거예요?” 하자 “거시기 우리 친정오빠 아들이 부산 으디서 병원을 하고 있는디 내가 이라고 손구락을 다쳤다고 그랑께 나 쓰라고 이라고 약을 챙겨서 보냈는 갑구만! 먼자 참에도 약을 많이 보내줘 갖고 아직도 많이 남아갖고 있는디 뭣 할라고 이라고 약을 많이 보냈으까?”하시며 매우 미안해하시는 표정이십니다. “할머니! 그래도 조카 분이 병원을 하고 계시니까 이렇게 약을 보내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할머니! 손가락을 빨리 치료를 하셔야 되겠네요!”
하였더니 “안 그래도 이따가 병원에 좀 가봐야 쓰것구만! 손구락이 이라고 아픈께 아무 일도 못하것어!”하시며 매우 안타까운 표정이십니다. “할머니! 저는 그만 가 볼게요! 손가락 빨리 치료하시고요 약은 잘 두었다가 쓰세요!”하며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아저씨! 이것 갖다가 아저씨 써~어!” 하시며 5매가 들어있는 대형파스 두 봉을 저에게 내미십니다. “아니! 할머니 쓰라고 조카 분께서 보내신 것인데 제가 쓰면 되겠어요? 이것은 잘 두었다가 할머니 쓰세요! 저 그만 가볼게요!”
하였더니 “먼자 보낸 파스도 지금 많이 있응께 걱정도 하지 말고 그냥 아저씨가 갖고 가서 쓰랑께!”하시기에 “할머니! 저 그만 가 볼게요!” 하고 그냥 나오려다 할머니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아차!”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이 매우 서운해 하시는 눈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할머니! 정말 이것 제가 가져가서 써도 되겠어요?”하고 물었더니 그때서야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지면서 “아! 참말이랑께! 아저씨 써도 나 쓸 것 또 많이 있응께 꺽정도 말고 갖고가~아!” 하십니다.
“예! 그럼 이것은 제가 가져가서 잘 쓸게요!” 하면서 할머니께서 저에게 주신 대형파스 2봉을 가지고 할머니 댁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사실 시골마을에서 파스를 사려면 읍내에 있는 약국까지 약 왕복 4~5km를 택시를 타거나 걸어 나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시골에 나이 드신 어른들께서는 파스가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보다 할머니께서 파스가 더 필요하실 것 같아서 싫다고 하였는데 할머니께서는 저에게 대형파스 2봉을 주신 겁니다. 대형파스 2봉이 할머니의 마음까지 담겨진 선물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마음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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