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39. 지평선을 보았니?

무늬만여우공주200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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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은 산타페 지방의 '쎄레스' 라는 곳에다 양봉의 터전을 마련했다.

양봉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은 무지 많았다. 벌통을 만들려면 비를 맞아도 썩지않는 단단한 나무를 구입해야 했다. 그걸 구하러 랑은 이 지방 저 지방으로 돌아다녔다. 재료로 쓸 수 있는 세 가지의 나무가 있었는데 알가로보, 에우칼립토스, 칠레 소나무였다.

나무장사들은 저마다 자기가 파는 나무들이 튼튼하고 좋다고 우기니 알 수가 없었다. 벌통에 어느 나무가 적합한지 판단이 안섰다. 알가로보는 너무 튼튼하고 좋았지만 무거워서 적합치가 않았다. 칠레산 소나무는 가볍고 단단하고 비를 맞아도 썩지 않는 좋은 나무였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그래서 가벼운 에우칼립토스 나무로 벌통을 제작하기로 했다. 그 나무는 싸고 단단했지만, 3년밖에 수명이 길지 않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일단은 적은 돈으로 자본을 시작해야겠기에 그 나무로 제작을 주문했다.

제재소는 여러 군데에 있었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까운 지방에 있는 제재소에다 주문했다. 그 제재소에는 커다란 앵무새들이 바깥 나무에 몇 마리 앉아 있었는데, 순 욕쟁이들이었다. 날 보자마자 앵무새는 말했다.

"말라 말라"(나쁜년, 나쁜년)

동네 아이들이 나쁜 용어만 가르쳐놨나부다. 이 사람 저 사람 흉내를 내가며 욕을 해대었다.
듣기 심히 거북해서 째려보고 돌멩이를 던졌다.
나쁜 새넘들~!!
그 앵무새들은 일제히 날 보며 욕을 해댔다. 으~
랑은 그걸보고 재밌다고 한 마리 잡아가잰다. 미칫나. 저걸 데려다 집에서도 욕먹게. 싫다고 했다.

벌통은 식구가 많아지면 아파트처럼 층이 올라간다. 그걸 계상이라고 하는데 그 계상을 3,500개정도를 만들었다. 여름 3개월 바짝 일하고 나머지 기간엔 벌통용 나무를 제재소에서 잘라다 놓은 것으로 못질을 해대야했다. 양봉은 자질구레한 일이 엄청 많았다.

세레스 마을의 변두리 갈대밭을 산 아버님은 거기에 20미터짜리 커다란 창고를 지으셨다.

그 창고는 고속도로 바로 옆이어서 교통은 좋았다. 동네에서 한 3키로 정도 떨어진 듯하다.

랑은 아버님과 주로 그 시골에서 지내야하기에 일주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아서 고속버스로 시골로 부쳤다.

남자들끼리 지낸다는게 사실 밥해먹는 것도 그렇고 힘든 일이다. 랑은 자기가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러는게 넘 힘들다고 나보고 시골에서 지내자고 했다. 아이를 끌고 그 시골로 내려갈까?

아들 하나랑 그 썰렁한 큰 집서 지내느니 시골에 가서 지내는게 날 듯 싶었다. 그래서 시골에 밥해주러 가마했다.

양봉을 시작하는 집은 아버님 말고도 두 집이 더 있었다. 한 집은 같은 동네에서 같이 시작하셨고, 또 다른 집은 쎄레스 도착하기 100키로 전에 '팔라시오'(왕궁)라는 마을에서 시작했다.

트럭에 우리 아들 넘 옷, 내 옷, 먹을껄 대충 챙겨서 쫓아갔다. 트럭을 타고 가니 80킬로의 속도로 가야했다. 그건 무지 오래 걸리는 여행이라는거다. 카피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700키로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트럭으로 이동하니깐, 족히 12시간은 걸렸다.

아버님과 랑이 번갈아 가며 운전하고 갔다. 난 아들을 안고 가운데서 앉아서 갔는데, 처음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떠나 먼 곳으로 여행을 가는거니 흥분도 되고 좋았다.

도시를 빠져 나오니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가 희뿌연 안개로 둘러쌓인게 보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는 좋은 공기라는 뜻의 도시이다. 사실 공기가 맑은 도시인건 확실하다. 그런데 그 도시를 빠져나오니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며 너무 상쾌한 공기가 기분 좋았다.

곳곳에 마을이 있었고, 농장지대가 펼쳐졌다. 가다 중간중간에 쉬면서 아들 쉬야도 시키고, 밥도 김치 찌개 끓여가며 해먹고, 아버님도 손주 녀석을 대동하고 가니 기분 좋아하셨다.

한참을 가니 완전 농장 지대가 나왔다. 근처에 마을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농장지대다.

난 지평선을 처음 봤다.
수평선은 많이 봤어도 좁은 한국 땅에선 지평선을 못봤는데.....그건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아서 있었는데 주위가 다 그랬다. 옆을봐도 지평선 앞을 봐도 지평선 뒤를 봐도 지평선...한 시간을 가도 차 핸들을 꺽을 일이 없는 똑바로 만들어진 잣길.....
대평원이니 전혀 구릉이 없어서 내려갔다 올라갔다도 없는 평평한 땅.

해바라기 밭을 주로 심는 농장지대가 끝나면 호박밭, 알파파(소먹이), 호박밭.....몇 시간을 지나면 다시 동네 들어가는 입구 하나 나오고 다시 밭들이 이어진다. 그 풍경이 그 풍경이다.
난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중 볼만한 풍경은 해바라기 밭이다. 내가 지루해하니 랑이 차를 멈추고 해바라기 밭에 들어가서 알이 까맣게 들어있는 커다란 해바리기 꽃을 하나 꺽어왔다.

아들넘과 난 그 해바라기를 보며 너무 좋아했다. 왜냐하면 해바라기 씨가 잘 여물어져서 먹을게 많았다. 둘이는 열심히 앵무새처럼 그걸 까먹었다. 아들넘은 엄마가 그걸 다 까면 입부터 벌리고 날 쳐다봤다. 제비새끼 같았다.

졸다가 깨다가 그러면서 그 지루한 여행은 계속됐다. 새벽 세시에 출발한 여행이 저녁 나절이 다 되어가니 친구분이 양봉하시는 팔라시오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왕궁의 뜻을 가진 팔라시오는 하나도 왕궁의 모습이 없는 완전 시골 동네였다.
그 동네는 독일인으로 이루어진 마을 이었다. 벽돌로 지은 시골 집들은 첫 느낌에 빈곤의 모습이 보여졌다.
그런데 그 동네 아이들은 천사들 같았다. 우리 크리스마스 카드에 나오는 천사들처럼 생겼다. 노랑 머리에 하늘색이나 초록색 눈을 가진 아이들이 마을 입구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고 놀았는데, 끝에만 동글동글 말린 곱슬머리가 무척이나 이뻐보였다. 날개만 없지 참 이쁜 아이들이었다.

그 팔라시오 동네에서 잠시 인사를 나누고 저녁을 얻어먹고 다시 출발하였다. 두시간 반 쯤 더 가니까 '쎄레스'라는 프랑스인들로 이루어진 동네가 나타났다. 그 동네 근처에 우리 창고를 지었댄다.

갈대밭이 한참 이어지고 양철로 지은 커다란 창고가 나타났다. 창고앞은 잔디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오른쪽엔 작은 숲이 우거져 있었다. 그 뒤론 끝없는 갈대밭이었고 그 앞도 갈대밭이었다. 그 고속도로 건너편도 갈대밭이었는데, 갈대밭을 차를 타고 10분정도 지나면 밭이 나온다고 했다.

우리 창고라니깐 처음부터 맘에 들었다. 그 창고안에는 아무런 시설이 없었다. 그냥 흙바닥의 창고에 수도하나 이어져 있었다. 창고 안에는 벌통으로 제작된 나무들이 쌓여 있었고, 못 질할 나무들이 널려 있었다.

아들넘은 좋아라 뛰어다녔다. 트럭에서 짐을 내리고 우린 그 창고 안에다 텐트를 쳤다. 랑은 가까운 마을에다 집을 얻어서 지내고 싶어했지만, 구두쇠 아버님은 그냥 창고에서 지내길 원하셨다. 그래서 우린 같이 흙바닥에 텐트를 치고 텐트 바닥엔 벌통을 침대 대신 깔았다. 5인용 텐트안에서 아버님, 랑, 아들, 나 이렇게 자게 되었다.

더운 여름....씻을 데도 마땅치않은 창고에서 지내게 되니 랑은 내게 미안해했다. 게다가 젊은 나이에 아버님과 같은 텐트안에서 지내니 랑은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우린 창고 생활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