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40. 갈대밭의 뱀들

무늬만여우공주2004.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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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안에서 자는 둥 마는 둥하고 새벽에 일어났다. 벌써 깨신 아버님은 창고 정리를 하고 계셨다. 암튼 부지런함으로 우리 아버님을 따를 사람이 없을꺼다.

창고는 아침에 보니 천정이 더 높아보였다.
하긴 창고에 꿀 채취 기계도 들여놔야하고 그럴려면 높긴 해야할 것이다.

창고가 커서 트럭도 들어와서 있었다.

길다랗게 생긴 창고 앞엔 커다란 문이 있었고 양 옆으로 쪽문을 해달아 놓고 계셨다. 왼쪽 문을 여니 거긴 우거진 숲으로 자연 벽을 이루어 밖에서 들여다 보이지 않았다. 3평 정도의 공간이 문 밖과 숲 사이에 있었고 그 숲은 자연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작은 숲엔 빨간 작은 열매들이 조롱 조롱 매달려 있었는데 무척이나 이뻤다. 그 옆엔 커다란 쥐엄나무가 있었는데 그 옆으로 마을과 통하는 길이 갈대 밭 사이로 나 있었다.

오른 쪽 문엔 작은 도랑이 파여 있었다. 거기서 세수도 하고, 설겆이도 하고 그랬댄다.
야외 생활이나 다름없었다. 흙바닥에 그저 삽으로 도랑만 파놔서 물이 흘러가게 해놨다.
거기서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였다.

그 물은 석회질이 너무 많아서 미끈덩거렸다. 물을 받아 놓은 통 밑엔 비누처럼 하얀 석회가 엉겨서 가라앉아 있었는데 그걸 만져보니 미끈미끈했다. 그냥 씻는 물은 그 물을 썼지만, 밥이나 국을 끓일 물은 그 물을 끓여놓거나 해서 가라앉혀서 써야햇고, 아님 빗물을 받아서 식수로 사용했다.

한 번 비가 오면 시원하게 쏟아지는 대륙의 비는 양철 창고 지붕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내려온다고 그 처마 밑마다 빗물을 받는 통을 해놓으셔서 비가 오면 자연스레 빗물이 받아져서 그 윗물을 썼다.

부리나케 아침을 준비해야했다.

아버님은 시장하신걸 못참으신다. 어렵게 자라셔서 그런지 밥 때가 5분만 지나도 역정을 내신다. 근데 문제는 부엌 자체가 없는 이 창고란거다. 휴대용 가스렌지를 커다란 꿀 드럼통위에 놓고, 또 다른 드럼통을 가져다 도마를 놓고, 밥을 앉히고, 국을 앉히고, 요리를 했다. 식탁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니....어디서 작은 식탁이라도 갖다 놓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저 흙바닥이니 어디 엉덩이 붙이고 앉을 데도 없었다.

밥을 먹으니 기운이 났다. 흙바닥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설겆이를 했다.

근데 아유 쉬야가 마렵다. 랑보고 쉬야가 마렵다니깐 아무데나 갈대밭에 가서 누란다.

잉......

"그런게 어딨어. 화장실이 있어야지."

내 요구로 인해 급히 화장실이 마련이 됐다. 삽을 들고 나간 랑이 창고에서 좀 떨어진데다 구덩이를 파고 널판지 두개를 얹어놓고 왔다.

"으앙. 그런데서 어케 볼일을 봐?"

자기가 시범을 보인대나. 그럼서 지가 먼저 아침 응가를 하고 왔다. 아 디러.
와서 하는 말이 응가가 끝나면 옆에 있는 삽으로 흙을 한 삽 퍼서 껴 얹고 오랜다. ㅋㅋ 고양이처럼.
어케 쉬야는 랑보고 망 서래서 가까스로 봤지만 아...배가 아프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나도 그 야외 화장실을 갔다.

갈대들은 내 키보다 큰거도 많았다. 거의 다 내 키정도 되었다. 그래서 누가 금방에서 지나가도 내가 안보일 정도로 빽빽한 갈대밭이었고 높이도 그랬다.

널판지에 발을 잘 놓고, 쭈그리고 앉았다. 긴장이 되고 그 넓은 평원에 누가 올리도 없는데 그냥 누가 불쑥 나타날까도 그랬고, 암튼 무지 불안했다. 그래서 그런지 배는 아픈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아 괴로웠다.

그 때 옆에서 스르르 풀 소리가 났다. 커다란 뱀이 오고 있었다.
으~
난 꼼짝도 못하고 뱀을 쳐다봤다. 내 몸은 얼어붙었다.
뱀이 날 쳐다봤는진 모르지만 어쨌든 난 뱀하고 눈이 딱 마주친 느낌이 들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난 너무 긴시간을 그렇게 뱀과 서로 마주봤다. 뱀은 내가 자기를 공격할 의사가 없는걸 눈치 챘는지 아님 날 완전히 무시한건지 아주 천천히 정말 아주 천천히 움직여 내 옆을 지나갔다.

그 뒤로도 한참이나 난 그 자리서 못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왜 거기 앉아 있었는지조차 잊고 있었을꺼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난 일어서서 창고로 향했다. 다시 뱀이 지나가다 꼬리가 보였다. 아까 그 뱀인지 그 친척인지는 모르지만 같은 종류의 갈색이 많이 섞인 뱀 꼬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 난 그 자리서 얼어붙어 서 있었다.

그 뒤로는 혹시나 내가 뱀을 밟지나 않을까 노이로제가 걸려서 한 걸음 한 걸음 확인하면서 내딪어서 창고까지 왔다.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오는 날 랑은 놀래서 와서 붙잡았다. 난 그저 야외 화장실을 가리키며 한마디 했다.

"뱀..."

랑은 미안해하는 얼굴이었지만 내가 너무 놀라 있는걸 보고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러면서 하는말이 여긴 원래 뱀이 많댄다. 자기도 아까 봤대나? 어휴.. 그럼 나한테 사전에 말해주지. 사람 놀래게.

그 뒤로 난 그 야외 화장실을 한 번도 안갔다. 그래서 화장실이 제대로 없어서 저녁먹고 동네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랑은 커피를 마시고 난 화장실을 사용했다. 그건 심한 변비를 초래했지만 난 도저히 그 야외 화장실에 갈 엄두는 못내었다.

나만 여자지 다 남자라서 그런지 화장실에 관한 불편함은 없어보였다. 샤워도 그저 업드려 있으면 바가지로 물을 퍼다가 등목해주는게 다였다. 난 남자들 일하러 가면 한 낮에 아이와 바가지로 물 껴얹어가며 씻었다. 한 낮의 창고는 찌는 듯이 더웠기 때문에 따스한 물로만 샤워하던 습관이 있었지만 그게 가능했다.

젊은 동양 여자 혼자서 창고에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나쁜 맘을 먹는 넘이 있기 마련이라고, 시아버님과 랑은 나와 아들넘을 창고에 두고 커다란 자물쇠로 창고를 잠그고 가셨다. 우린 그 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창고가 너무 커서 별로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쥐염나무가 있는 작은 숲 쪽 그늘에 가서 아들넘과 땅파기 놀이도 하고 개미들을 잡아서 통에 넣어주고 구경하고는 했다.
그 작은 숲에는 수많은 종류의 개미와 곤충들이 진을치고 있었다.

그 숲 밑에는 항상 축축히 젖어 있는 곳도 있었는데 거긴 모기가 된다는 장구 벌레도 살만한 아주 작은 웅덩이도 있었다.
우린 그 곳에서 하루종일 흙장난을 하며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