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의 공돌이 공순이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최저생계 정도의 임금만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반발하면 농촌의 쌀을 정부가 수매하여 그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싸고 안정적으로 그 쌀을 공급한다.
그럼 이제 농촌에서는 독점자본이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지면서 그들이 죽기 시작한다. 점차 불만이 쌓이고 일부는 도시로의 이동을 시작한다.
이때 농촌의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해 못살고 살기 힘든 것은 박정희 그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게으른 민중들 그 개인적인 문제로 돌린 일제의 농촌진흥운동을 다시 새롭게 하여 실시하는 것이다.
결국 농촌에서는 외형상 불만이 사라지면서도 실질은 부채가 늘면서 살기가 더 어렵졌으나 그들은 이제 그 농촌진흥(새마을)운동으로 인하여 정부에 불만을 그다지 가지지 않은면서 자연스럽게 도시로 이동한다. 농촌은 별다른 궁극적인 대책없이 피폐된다.
농민들의 절규는 박정희 정권 비판은 없이 엉뚱하게...
" 너희들는 나처럼 농촌에서 농사짓지 말고 농촌으로는 시집도 가지말라는.!!"
그러면 박정희로서는 어쨌든 일단은 성공인데..
문제는 수출주도 공업화 전략의 성공 여부이다..
아무리 저금임을 주고 국내에서는 비싸게 해외에서는 싸게 팔아도 결국 무역수지 자체는 박정희정권 내내 계속 적자였는데, 해년 그 적자는 누적될 것이고... 국가자원의 계속된 누출로 국가 자체가 완전히 파산에 이를 것이고 착취로 시달린 민중들의 엄청난 저항을 받았을 것이다.. 집권 마지막에 부마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부마사태 당시 박정희는 자신의 운명을 예언했다는 말들이 있다.
집권초기부터 일본과의 청구권문제가 있었고 집권 초기에는 그 돈(민족을 판 돈)으로 무엇인가 시작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일반 민중들이 그 국가 정책자금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벌어진 월남전쟁(10 년 가량 참전), 그리고 이여진 중동특수(중동건설붐 ) ,,,
전두환 집권기간 동안이 가장 경제가 좋은 시절이였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바로 그 " 3 저 호황 "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때문이고 그 것 때문에 그는 광주학살만 아니였어도 대단한 경제대통령으로 남았을 텐데..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그 자체는 사실 실패 한 것이였다.
임기내에 계속되는 무역수지 적자로 인하여 국가 파산을 당했을 것이나 그 그의 임기 내내 계속된 그런 외부적인 요인들 때문에 엄청난 부패와 비효율적인 기업 운영의 " 밑빠진 독에 물 붇기 식 경제 " 에도 그런대로 그 빠지는 량보다 호황도 아닌 경제특수로 벌어드린 량이 그렇게 훨씬 많아서 어쨌든 경제성장 그 자체는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박정희 개인의 정책은 실패였고 따라서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바로 박정희 그 개인의 업적이 결코 아니라 바로 그 독재 정권에서도 부를 축척한 일부 기업인들과 그 아래에서 저임금에도 피와 땀을 흘린 바로 일반 우리 민중들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 자신들의 이익을 착취하여 부패와 퇴폐적인 향략에 사용하며 밤이면 양주파티에 여대생과 놀아난 한국 현대사의 최고의 극악무도한 싸이코 대통령에게 당시의 쇄뇌교육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 아버지박정희 " 하고 있으니...
정말 우수운 촌극이다...
역시 이래서 집권자는 일반 민중의 말들을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부를 비판하고 불만있는 놈들은 권력조직 이용하여 뭉둥이을 휘두르면 되고 나중에도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은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런 일반민중에게는 사탕 한 개씩 만 주어도 그 어리석은 민중들은 공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박정희시대의 경제정책들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 요약...
일단의 공돌이 공순이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최저생계 정도의 임금만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반발하면 농촌의 쌀을 정부가 수매하여
그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싸고 안정적으로 그 쌀을 공급한다.
그럼 이제 농촌에서는 독점자본이 형성될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지면서 그들이 죽기 시작한다.
점차 불만이 쌓이고 일부는 도시로의 이동을 시작한다.
이때 농촌의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해
못살고 살기 힘든 것은 박정희 그 자신의 문제가 아닌 게으른 민중들 그 개인적인 문제로 돌린
일제의 농촌진흥운동을 다시 새롭게 하여 실시하는 것이다.
결국 농촌에서는 외형상 불만이 사라지면서도
실질은 부채가 늘면서 살기가 더 어렵졌으나 그들은 이제 그 농촌진흥(새마을)운동으로 인하여
정부에 불만을 그다지 가지지 않은면서 자연스럽게 도시로 이동한다.
농촌은 별다른 궁극적인 대책없이 피폐된다.
농민들의 절규는 박정희 정권 비판은 없이 엉뚱하게...
" 너희들는 나처럼 농촌에서 농사짓지 말고 농촌으로는 시집도 가지말라는.!!"
그러면 박정희로서는 어쨌든 일단은 성공인데..
문제는 수출주도 공업화 전략의 성공 여부이다..
아무리 저금임을 주고 국내에서는 비싸게 해외에서는 싸게 팔아도
결국 무역수지 자체는 박정희정권 내내 계속 적자였는데, 해년 그 적자는 누적될 것이고...
국가자원의 계속된 누출로
국가 자체가 완전히 파산에 이를 것이고 착취로 시달린 민중들의 엄청난 저항을 받았을 것이다..
집권 마지막에 부마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부마사태 당시 박정희는 자신의 운명을 예언했다는 말들이 있다.
집권초기부터 일본과의 청구권문제가 있었고
집권 초기에는 그 돈(민족을 판 돈)으로 무엇인가 시작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일반 민중들이 그 국가 정책자금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겠는가..
그리고 벌어진 월남전쟁(10 년 가량 참전), 그리고 이여진 중동특수(중동건설붐 ) ,,,
전두환 집권기간 동안이 가장 경제가 좋은 시절이였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바로 그 " 3 저 호황 " (저유가, 저달러, 저금리) 때문이고
그 것 때문에 그는 광주학살만 아니였어도 대단한 경제대통령으로 남았을 텐데..
박정희의 경제정책은 그 자체는 사실 실패 한 것이였다.
임기내에 계속되는 무역수지 적자로 인하여 국가 파산을 당했을 것이나
그 그의 임기 내내 계속된 그런 외부적인 요인들 때문에
엄청난 부패와 비효율적인 기업 운영의 " 밑빠진 독에 물 붇기 식 경제 " 에도
그런대로 그 빠지는 량보다 호황도 아닌 경제특수로 벌어드린 량이 그렇게 훨씬 많아서
어쨌든 경제성장 그 자체는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박정희 개인의 정책은 실패였고
따라서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바로 박정희 그 개인의 업적이 결코 아니라
바로 그 독재 정권에서도 부를 축척한 일부 기업인들과
그 아래에서 저임금에도 피와 땀을 흘린 바로 일반 우리 민중들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 자신들의 이익을 착취하여 부패와 퇴폐적인 향략에 사용하며
밤이면 양주파티에 여대생과 놀아난
한국 현대사의 최고의 극악무도한 싸이코 대통령에게
당시의 쇄뇌교육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 아버지박정희 " 하고 있으니...
정말 우수운 촌극이다...
역시 이래서 집권자는 일반 민중의 말들을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정부를 비판하고 불만있는 놈들은 권력조직 이용하여 뭉둥이을 휘두르면 되고 나중에도
독재자와 그 하수인들은 엄청난 부와 명예와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그런 일반민중에게는 사탕 한 개씩 만 주어도 그 어리석은 민중들은 공정하다고 하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