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있어서 뚝 잘라 영원한 기억속 조차 기억되지 않는 곳으로 버리고 싶은게 있다면...
2004년 올 한해이다.
결혼한지 2개월만인 2004년 1월 15일, 난 수술대 위에 누웠다..
왼쪽 갑상선이 정상보다 크기가 많이 커져서 수술을 해야한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을 받은지 열흘만에 일어난 일이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가질 계획을 세운지라 임신확인 여부가 가능한 2주 정도가 지난 다음에 임신이 아니면 수술을 할꺼라고 시댁에 말씀드렸지만
"니가 몸이 건강해야지 아기도 건강하게 낳지, 니 몸부터 고치자..아는 그 다음이다"
이런 완고한 시아버지의 말씀에 못이겨 수술대 위에 누웠다..
'설마 임신 안 되었겠지....아닐꺼야...' 이렇게 속으로 바램한채..
두시간 정도면 충분히 간단한 수술인데, 5시간이 다 되서 병실에 난 올라와 졌고, 왼쪽 목이 심하게 땡기는 통증이 느껴지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식구들한테 " 내 갑상선 한쪽만 떼냈나? 목이 와이리 땡기노, 목소리는 와 이렇노?" 이리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 이 대답뿐 어느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직감....그래, 이상한 직감이 있었다..
"언제쯤 퇴원 가능 하나요?" 이말에 "아무래도 암이니깐, 몇가지 검사를 더하고......"
그래...암이 었던 것이다. 암세포가 커져 싸고 있던 막까지 터지는 바람에 주변 임파선과 근육 조직을 많이 잘라내고 성대까지 손상이 가서 고음을 내는 신경을 잘랐기 때문에 높은음은 못낼꺼란 주치의의 말에 하늘이 무너졌다...엎친데 겹친 격으로 임신 이었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방사선치료가 남았기 때문에 임신을 유지하는것은 불가능했다.
다시한번 수술대 위에 올랐다.
아기에 대한 죄책감과 시댁 어른과 남편에게 대한 미안함으로 침을 발라도 입술이 자꾸자꾸 타 들어가고 온 몸이 떨려왔다..
내 첫 아기는...심장 소리가 너무나 건강하게 들리는 내 아기는 나 때문에 생명을 잃고 하늘 나라로 갔다....
결혼 두달만에 암에 걸린 며느리..거기다가 유산까지..친정에서는 나를 데려가겠다 했지만 시아버진
"며느리는 내 자식입니다. 딸하고 며느리하고 도장찍으라면 며느리한테 찍습니다" 이런 말씀으로 친정부모님의 위로에 나는 이렇게 끝났구나...이제 좋은 일만 일어나겠지, 열심히 살면 되겠구나..생각했다.
하지만, 불행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모든 상황들이 생각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위로의 말 조차 듣기 싫었고 무심코 한 말들에 상처도 쉽게 받고, 그리고 가장 힘든건
남편의 폭언...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저렇게 순한 사람이 어떻게....나한테..내가 누구하나 보고 사는데...처음엔 이해했다. 나 만큼 힘들겠지, 그래서 그럴꺼야..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매일 밤을 눈물로 적시며 잠들고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아침이 되어도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거...나도 참다가 같이 얘기해 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내 가슴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은 응어리가 져서 점점 내 몸과 마음을 갉아 먹고 서서히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직장생활까지....한시간이 훨씬 넘는 출퇴근 거리는 아직 치료도 다끝나지 않은 나에게 너무나 힘겨웠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어 하는 날 이해 못하는 신랑과 시댁...
불만과 분노가 쌓이고 싸여 드디어 폭팔하고..내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친정에서 몸 조리를 해야 내가 살겠기에 친정 부모님이 데릴러 왔고, 그 후 글을 쓰는 지금까지 별거가 시작되었다.
그 뒤 난 정신과에서 중증 스트레스성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결혼 생활을 생각하면 미칠것 같았다. 분노와 미움으로 수면제가 아니면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잠결에도 악! 하는 소리로 식구들이 잠을깨고...내가 왜, 왜 내가 아파야하고 무엇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되나 싶은 생각에 하루하루가 견딜수 없은 고통이었고,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
늘 밝게 살아왔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나에겐 이런 상황들은 더욱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내가 이렇게 해서 얻는게 뭐지? 내가 분노하고 화내고 해서 나한테 득이 되는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내가 화내고 힘들어할수록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그대로 독이 되어 내 몸과 마음만 갉아먹을 뿐이었다.
다시 살기로 했다. 내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했다. 산과 들을 다니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명상하고, 책을 읽고...어느순간 목소리가 부드럽게 나왔다. 그때의 기쁨이란! 노래 한곡을 부를만큼 목소리가 트이고, 수면제 없이도 잠을 잘만큼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내 몸이 좋아져서 일까? 그렇게 힘들게만 생각되었던 지난 결혼생활에서 조금씩 좋았던 기억들이 떠 올랐다. 나보고 아프지 말라고 울던기억..심한 통증으로 2시간마다 진통제 챙겨주던 기억..아무리 술마시고 와도 내 목 건조할까봐 수건에 물 적셔서 머리맡에 늘 올려놓던 기억들...아파서 아침도 못챙겨주고 누워있는 나 깰까봐 조용히 출근하던 뒷모습...나 힘들까봐 아픈건 죄가 아니라던 시댁 어른들의 말씀들....
분노와 미움들이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내 자신을 한번 객관적으로 돌아보았다.
무엇에 대한 분노였고, 미움이었던가....내가 무엇때문에 화가 났었던가...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출발점이 "나 자신"이라는 거다.
"아프다"라는 것 때문에 너무 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지는 않았는지...목소리 안 나온다는 핑계로 신랑과의 대화자체를 피해 버린건 아닌지...신랑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한 노력은 무엇인지...
그래 다시 산다면...그래서 2004년이 다시 함께 보낼수 있다면 , 아니 앞으로 함께 할수 있는 날이 나에게 허락된다면 평범한 부부처럼 살고 싶다.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골라주고 비타민 c를 챙겨주고 싶다.
술마신 다음날은 꼭 꿀물을 타주고 숙취에 좋은 녹차를 한병 손에 쥐어주고 싶다.
못 하는 음식이지만 시아버지를 위해 소주 한병과 안주거리를 만들고 싶고, 시어머니와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드리고 싶다.
가끔 언성높여 싸움도 하고 싶다. "이 웬수, 내가 눈에 뭐가 씌여 시집왔지" 이러면서 하루정도는 말도 안하고 삐진척 지내고 싶다. 그리곤, 그 뒷날 화해하고 하얀 종이위에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예쁜글도 적은 편지를 출근하는 신랑 양복 주머니에 몰래 넣어두고 싶다..
아기가 생기면 입덧도 많이 하고 싶다. 아기 핑계로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투정도 많이 부리고, 내가 잘못한일이 있어 남편이 화라도 낼라치면 "우리 아가 놀래서 배가 뭉치잖아" 이러면서 애교도 부리며 살고 싶다..
무조건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라는 소리보단 지혜롭고 현명한 아내, 며느리로서 살고 싶은데.....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2004년이 다시 온다면..
2004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이 말만 되 내여도 가슴이 아리고 눈물먼저 나온다..
내 인생에 있어서 뚝 잘라 영원한 기억속 조차 기억되지 않는 곳으로 버리고 싶은게 있다면...
2004년 올 한해이다.
결혼한지 2개월만인 2004년 1월 15일, 난 수술대 위에 누웠다..
왼쪽 갑상선이 정상보다 크기가 많이 커져서 수술을 해야한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을 받은지 열흘만에 일어난 일이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를 가질 계획을 세운지라 임신확인 여부가 가능한 2주 정도가 지난 다음에 임신이 아니면 수술을 할꺼라고 시댁에 말씀드렸지만
"니가 몸이 건강해야지 아기도 건강하게 낳지, 니 몸부터 고치자..아는 그 다음이다"
이런 완고한 시아버지의 말씀에 못이겨 수술대 위에 누웠다..
'설마 임신 안 되었겠지....아닐꺼야...' 이렇게 속으로 바램한채..
두시간 정도면 충분히 간단한 수술인데, 5시간이 다 되서 병실에 난 올라와 졌고, 왼쪽 목이 심하게 땡기는 통증이 느껴지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식구들한테 " 내 갑상선 한쪽만 떼냈나? 목이 와이리 땡기노, 목소리는 와 이렇노?" 이리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 이 대답뿐 어느 누구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직감....그래, 이상한 직감이 있었다..
"언제쯤 퇴원 가능 하나요?" 이말에 "아무래도 암이니깐, 몇가지 검사를 더하고......"
그래...암이 었던 것이다. 암세포가 커져 싸고 있던 막까지 터지는 바람에 주변 임파선과 근육 조직을 많이 잘라내고 성대까지 손상이 가서 고음을 내는 신경을 잘랐기 때문에 높은음은 못낼꺼란 주치의의 말에 하늘이 무너졌다...엎친데 겹친 격으로 임신 이었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방사선치료가 남았기 때문에 임신을 유지하는것은 불가능했다.
다시한번 수술대 위에 올랐다.
아기에 대한 죄책감과 시댁 어른과 남편에게 대한 미안함으로 침을 발라도 입술이 자꾸자꾸 타 들어가고 온 몸이 떨려왔다..
내 첫 아기는...심장 소리가 너무나 건강하게 들리는 내 아기는 나 때문에 생명을 잃고 하늘 나라로 갔다....
결혼 두달만에 암에 걸린 며느리..거기다가 유산까지..친정에서는 나를 데려가겠다 했지만 시아버진
"며느리는 내 자식입니다. 딸하고 며느리하고 도장찍으라면 며느리한테 찍습니다" 이런 말씀으로 친정부모님의 위로에 나는 이렇게 끝났구나...이제 좋은 일만 일어나겠지, 열심히 살면 되겠구나..생각했다.
하지만, 불행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모든 상황들이 생각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위로의 말 조차 듣기 싫었고 무심코 한 말들에 상처도 쉽게 받고, 그리고 가장 힘든건
남편의 폭언...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저렇게 순한 사람이 어떻게....나한테..내가 누구하나 보고 사는데...처음엔 이해했다. 나 만큼 힘들겠지, 그래서 그럴꺼야..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매일 밤을 눈물로 적시며 잠들고 한가지 바램이 있다면 아침이 되어도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거...나도 참다가 같이 얘기해 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내 가슴속에서 하고 싶은 말들은 응어리가 져서 점점 내 몸과 마음을 갉아 먹고 서서히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거기다가 직장생활까지....한시간이 훨씬 넘는 출퇴근 거리는 아직 치료도 다끝나지 않은 나에게 너무나 힘겨웠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어 하는 날 이해 못하는 신랑과 시댁...
불만과 분노가 쌓이고 싸여 드디어 폭팔하고..내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친정에서 몸 조리를 해야 내가 살겠기에 친정 부모님이 데릴러 왔고, 그 후 글을 쓰는 지금까지 별거가 시작되었다.
그 뒤 난 정신과에서 중증 스트레스성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결혼 생활을 생각하면 미칠것 같았다. 분노와 미움으로 수면제가 아니면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잠결에도 악! 하는 소리로 식구들이 잠을깨고...내가 왜, 왜 내가 아파야하고 무엇때문에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되나 싶은 생각에 하루하루가 견딜수 없은 고통이었고,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
늘 밝게 살아왔고,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나에겐 이런 상황들은 더욱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내가 이렇게 해서 얻는게 뭐지? 내가 분노하고 화내고 해서 나한테 득이 되는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내가 화내고 힘들어할수록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그대로 독이 되어 내 몸과 마음만 갉아먹을 뿐이었다.
다시 살기로 했다. 내 자신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했다. 산과 들을 다니며 맑은 공기를 마시고 명상하고, 책을 읽고...어느순간 목소리가 부드럽게 나왔다. 그때의 기쁨이란! 노래 한곡을 부를만큼 목소리가 트이고, 수면제 없이도 잠을 잘만큼 마음도 많이 안정되었다.
내 몸이 좋아져서 일까? 그렇게 힘들게만 생각되었던 지난 결혼생활에서 조금씩 좋았던 기억들이 떠 올랐다. 나보고 아프지 말라고 울던기억..심한 통증으로 2시간마다 진통제 챙겨주던 기억..아무리 술마시고 와도 내 목 건조할까봐 수건에 물 적셔서 머리맡에 늘 올려놓던 기억들...아파서 아침도 못챙겨주고 누워있는 나 깰까봐 조용히 출근하던 뒷모습...나 힘들까봐 아픈건 죄가 아니라던 시댁 어른들의 말씀들....
분노와 미움들이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내 자신을 한번 객관적으로 돌아보았다.
무엇에 대한 분노였고, 미움이었던가....내가 무엇때문에 화가 났었던가...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출발점이 "나 자신"이라는 거다.
"아프다"라는 것 때문에 너무 내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시키지는 않았는지...목소리 안 나온다는 핑계로 신랑과의 대화자체를 피해 버린건 아닌지...신랑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한 노력은 무엇인지...
그래 다시 산다면...그래서 2004년이 다시 함께 보낼수 있다면 , 아니 앞으로 함께 할수 있는 날이 나에게 허락된다면 평범한 부부처럼 살고 싶다.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골라주고 비타민 c를 챙겨주고 싶다.
술마신 다음날은 꼭 꿀물을 타주고 숙취에 좋은 녹차를 한병 손에 쥐어주고 싶다.
못 하는 음식이지만 시아버지를 위해 소주 한병과 안주거리를 만들고 싶고, 시어머니와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드리고 싶다.
가끔 언성높여 싸움도 하고 싶다. "이 웬수, 내가 눈에 뭐가 씌여 시집왔지" 이러면서 하루정도는 말도 안하고 삐진척 지내고 싶다. 그리곤, 그 뒷날 화해하고 하얀 종이위에 내가 좋아하는 그림도 그리고 예쁜글도 적은 편지를 출근하는 신랑 양복 주머니에 몰래 넣어두고 싶다..
아기가 생기면 입덧도 많이 하고 싶다. 아기 핑계로 이것저것 먹고 싶다고 투정도 많이 부리고, 내가 잘못한일이 있어 남편이 화라도 낼라치면 "우리 아가 놀래서 배가 뭉치잖아" 이러면서 애교도 부리며 살고 싶다..
무조건 착한 아내, 착한 며느리라는 소리보단 지혜롭고 현명한 아내, 며느리로서 살고 싶은데.....
이렇게 살고 싶은데.....
너무 멀리 와 버리진 않았는지....
시작할수만 있다면... "만약"이란 글자가 나에게 주어진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