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야사..<너는 내가 무엇으로 보이느냐..6>

초록물고기200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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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이미 겨울을 맞은 듯 밤바람이 시리게 옷 속을 파고들었다. 종현은 수없이 돌부리와 솔 나무뿌리에 채어 몸을 휘청였다. 하지만 그는 그 밤길에 이미 익숙한 듯 좁은 산길의 깊고 낮음 조차도 읽어 발을 내딛고 있었다. 종현은 그와 함께 온 시종이 내심 신경 쓰였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도진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를 대하는 종현의 하대에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을 부릅떴던 것이 벌써 손으로 꼽아지고 있었다. 그가 앞서가던 발을 멈추고 종현을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라 힘들 것이다..."

"괜찮다...밤에도 훤한걸 보니 이곳을 자주 찾는 모양이구나........"

 

그의 입가에 표나지 않는 쓴웃음이 잠시 머물다 사라졌다.

 

"밤에만 오른 길이라 밝은 날 찾으라 하면 그게 더 어려울 듯싶다.."

 

 긴 시각을 말없이 산을 올랐어도 두 사람은 충분히 함께 느끼고 같은 것을 품은 듯 편안했다. 시각을 다투며 새벽 문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그 풍요로운 여유가 두 사람의 얼굴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미 절에서는 그가 오는 것을 아는 듯 산비탈까지 사람이 나와 있었다. 그가 손을 모아 합장을 하자 나와 섰던 사람들이 허리를 깊이 굽혀 합장을 받았다. 종현을 암자로 먼저 보낸 그가 잠시 불당에 무릎을 꿇었다.

 

"큰 스님을 뵙겠습니까...."

"아니다...너무 늦었다....너는 내려가서 차를 준비해라..."

 

 그가 돌아서는 도진을 다시 불러 세웠다.

"도진아....."

"예...."

"어찌 그러느냐..."

 

 종현에게 느껴지는 알 수없는 경계가 자꾸 도진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비단 효원을 허물없이 대하는 그의 언행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두사람이 쌓은 그 믿음과 신뢰가 평생을 효원을 모셔온 자신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라 여겨져 더 그랬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그 심중을 내 보이는 것에 도진은 쉬 익숙해 질것 같지가 않았다.

 

"그를 불편하게 하지 마라..나를 대하듯 그리 대해라.."

"제가 모실 분은 한분입니다...그 분께는 예를 다할 것입니다.."

 

차를 따르는 손이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한참을 말없이 차를 비우고 따르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굳이 불편 할것도 재촉할 것도 없었다.

 

"어떠냐..."

"산을 오르니 숨이 턱까지 차올라 살아 있다는걸 느낀다. 그래서 좋다.

 밤 산은 다른 모든 존재를 죽여 나를 부각시키니 잡념이 없어 좋다.

 차는 향이 깊어 곡차가 아니라도 그 향에 취할 듯 정신을 씻어 좋다.

 차를 두고 마주 앉은 사람은 나를 알아 주는 벗이라 지금 이곳에 있는 나는 더 무엇을 바란다는 것이 탐욕이 될 듯 싶다"

 

효원의 얼굴에 곤아한 미소가 내려 앉았다.

 

"오늘은 이만 쉬어라....오랜만에 오른 산을 터이니 팔다리가 편치 않을 것이다.."

 

종현이 방을 나온 후 효원은 또 한참 그리 앉아 있었다. 자신이 정해 놓은 경계가 자꾸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욕심이 생겨나는 만큼 자신의 육신이 견디 기 힘들것을 아는 탓에 매 순간 평심을 찾으려 애쓰고 있었다. 결국 잠들기를 포기하고 불당을 들었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그 깊은 절망의 오열을 그는 그 곳에서 처음으로 내보였었다. 그 자비로운 미소 앞에 목 놓아 통곡하며 원망과 분노와 절규와 인내를 버리고 품으며 그를 단련했다. 그리고 다시 그 곳에 앉았다. 무엇을 버리고자 하는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자신조차 알지 못하면서도 그 곳이 아니면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 또 다시 그 미소 앞에 고개를 숙였다.

 

[얻고자 하는 것은 모두 버려야 살 수 있는 이 삶을.....

 이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가슴은 너무나 허망하여 서러웠고....

 얻고자 함이 너무도 간절한 지금은.....

 살아 움직이는 주검이 되어 갑니다....

 영혼마저 말라 끊어져 버릴 듯 아픔니다....

 통곡할 눈물도 없어 서럽습니다...

 울어 되는 일이라면 온 육신이 녹아 흐르도록 울 것 입니다.....

 내 것 중 하나를 주어 되는 일이라면 생으로 팔다리를 끊어 내어 드릴 것입니다...

 어찌하면.....

 도대체 어찌하면.....

 살아지겠습니까....]

 

 그 새벽 방에 들고도 종현은 쉬 등을 뉘지 못했다. 오랜만에 오른 산이라 온 팔다리가 욱신거렸지만 정작 머릿속은 한없이 맑아지고 있었다. 고요함이 가진 힘은 사람의 영혼을 깨워 알지 못할 몽호함을 생겨나게 하고 있었다.

 

종현이 몸을 씻고 절간을 돌아본 후 다시 효원의 방 앞에 섰다. 불이 켜진 방문 앞에 그의 신이 보이질 않았다. 암자의 탑을 몇 바퀴 돌아보던 종현이 결국 더 기다리지 못하고 대웅전으로 발길을 옮겼다. 홑겹의 옷 속으로 산바람이 파고들어 깊은 절간의 정적을 온몸에 싫어 주었다. 댓돌위에 그의 신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의 기운 속에 늘 섞여있던 그 무게들을 풀어놓는 모양이었다. 종현이 대웅전의 마지막 계단을 밟아 서다 발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사람의 가슴을 애이는 절규 같은 울음소리가 세어나고 있었다. 종현의 온 심장이 진동하며 조여들었다.

 

사람이 그리 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소리는 사람을 살을 파고들어 피를 녹일 듯 처절했고 그 비통함이 듣는 이의 가슴마저 붉게 물들였다. 종현이 굳은 몸을 움직여 반쯤 열려진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았다. 엷은 촛불아래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하는 그가 있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닌 하나의 고통이었다. 그리 울면 그 서러움에 몸이 녹아 없어져 버릴 듯 보였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종현은 자신도 모르게 벽에 몸을 붙이고 숨을 죽였다. 종현은 그렇게 한참을 멈춰버린 시간을 붙잡고 서있었다. 다른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오직 그 절규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고통의 무게를 심장으로 바라보며 그리 서 있었다.

 

"너냐..."

 

그가 이미 종현의 인기척을 알고 있었다. 종현은 어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굳은 몸으로 그리 서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떨리는 가슴으로 주섬주섬 말을 이었다.

 

"...나는 그냥....잠이 오질 않아서....먼저... 내려가 있겠다...."

"....너에게는 못 보일 것들을 자꾸 보이게 되는구나...."

 

그가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걸어 나왔다. 댓돌 아래로 내려서던 그가 현기증으로 휘청거렸다. 종현이 반사적으로 그의 몸을 붙잡아 세우며 어깨를 감쌌다.

 

"괜찮으냐...."

 

눈앞이 아득해진 현기증보다 자신을 잡은 종현의 손에 더 놀란 듯 그가 얼른 몸을 빼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괜찮다....산을 오르느라 좀 피곤해서 그런 모양이다....괜찮으니 먼저 앞서라...."

 

[보이고도 그리 말하느냐....

 내가 다 보았는데도.....

 심장을 녹이는 그 오열을 내가 다 보았는데도....

 너는 괜찮다 말하고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하는 구나....]

 

이상한 일이었다. 종현은 자신이 잡은 그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자신과 그가 함께 놀라고 있었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이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릴 듯 보였다.

 

"얼굴이 좋지 않다....내가 불편하면 그 아이를 불러오겠다...."

"아니다....불편해서 그런 것이 아니니 괘념치 마라...정말 나는 괜찮다..앞서가자"

 

종현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의 종려를 더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앞장을 섰다. 뒤를 따르는 그의 발소리에 온 신경이 곤두서 어떤 것이 길인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걷고 있었다.

 

"소세하고 들어갈 것이다...방에 곡주가 있으니 목을 축이고 있거라..."

 

종현이 불안한 얼굴빛을 숨기지 못하고 그를 돌아보았다.

 

"술을 할 만한 몸이 아니다....."

 

그가 종현의 말을 막아섰다.

 

"어차피 둘다 잠을 청하기는 틀린 것이 아니냐...니가 가고 혼자 마신 술이 아쉬웠던 참이다...같이 한잔 들자.."

 

대웅전에서 본 그 오열이 눈에서도 가슴에서도 지워지지 않았다. 어떤 비통함이 있어 그리 오열할 수 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는 종현의 가슴 또한 끝없이 내려 앉고 있었다. 술을 따르는 종현의 손이 무거웠다. 자신을 숨기지 못하는 종현에게 그가 먼저 그 입을 열었다.

 

 "불편해 하지 마라....“

 

종현이 급하게 술잔을 비우고 잔을 내렸다. 그리고 반쯤 미소를 머금은 그를 보았다.

 

"연유를 묻는다면 말해 줄 것이냐.."

 

그가 종현의 술잔을 채우고 자신의 술잔을 비웠다.

 

"이리 너와 마주 앉으면 나는 나를 다 잊는다....그러니 너도 마음에 두지 마라... 니가 그리 자꾸 불편해 하면 내가 불전에 쏟아낸 원망이 부끄럽질 않겠느냐..."

"나와 나눌 수 있는 것은 술뿐이구나...."

 

종현의 말속에 서운함이 베어 있었다. 그의 절망을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종현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종현이 그런 자신의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애꿎은 술잔만 비우고 있었다. 종현은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자신을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온 몸으로 토혈하던 그의 짐 위에 자신의 티끌 같은 서운함을 더 할 수는 없었다. 종현은 그의 기운을 잠시라도 들어보고자 딴 곳으로 말길을 돌렸다.

 

"....돌아갈 부담감이 없으니 승패를 보지 못했던 대작을 마무리 지어보자..."

 

두 사람이 눈을 때지 않고 술잔을 들어 서로에게 응수하고 한번에 비워 내렸다. 그렇게 자꾸 비워지는 술잔의 양만큼 종현의 가슴이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잠시라도 그리 잊는다면.....

 그리 하자.....

 그리 할 것이다....

 나로 인해 잊고자 하는 것이 잊어진다면 나는 돌처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