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

큰가방2004.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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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 


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날이 갈수록 가을은 깊어만 갑니다. 엊그제까지 푸르기만 하던 길 가의 가로수는 이제 빨간색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더니 한잎 두잎 낙엽을 떨어뜨리며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산 밑으로 꼬불꼬불 이어져 시골마을로 향하는 폭이 좁은 길가에는 오늘도 언제 떨어졌는지 모를 낙엽들이 때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타고 여기저기 모아지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면서 뒹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낙엽사이를 저는 오늘도 천천히 시골마을을 향하여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그리고 커브를 막 돌아가는 순간 갑자기 풀숲에서 알록달록한 조그만 다람쥐 한 마리가 뛰쳐나오더니 저의 오토바이 앞바퀴 바로 앞까지 쪼르르 달려듭니다. “아니? 애가 왜 갑자기 겁도 없이 오토바이를 향하여 달려들지! 뭐가 쫓아오나?”하면서 얼른 오토바이를 세우자 다람쥐도 깜짝 놀랐는지 까만 눈동자를 말똥거리며 저를 바라봅니다. “다람쥐야! 아니 뭐가 그렇게 바빠서 이렇게 오토바이가 지나가는데 달려드는 거냐? 그러다 사고 나면 어떻게 하려고?”하고 물었더니


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아니! 아저씨는 뭐가 그리 바빠서 커브 길을 돌면서 빵빵 소리도 내지 않고 달려오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잖아요!”하면서 오히려 화를 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네가 갑자기 풀숲에서 오토바이를 향하여 뛰쳐나오니까 그렇지! 그게 왜 내 잘못이냐?”하였더니“그럼 내 잘못인가? 아저씨! 미안합니다!”하는 듯 잠시 저를 쳐다보다가 얼른 풀숲으로 다시 뛰어 들어갑니다. 저는 잠시 풀숲으로 뛰어 들어간 다람쥐를 바라며“하마터면 오늘 큰 사고가 날 뻔했네!”하는 안도감으로 깊은 숨을 들어 마십니다.


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그리고 천천히 달려서 도착한 곳은 보성읍 쾌상리 동암 마을입니다. 오늘도 동암 마을에서 평소처럼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보성경찰서에서 보내온 교통위반 범칙금 통지서를 배달하려고 김영기 씨 댁의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계십니까? 계세요?”하고 주인을 불러봅니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어서 우편물 도착통지서를 작성하여 현관문에 찔러 넣는 순간 “아니 우리 집이 뭔 반가운 것이 왔어~어?”하시며 할머니께서 어디를 다녀오시는지 바쁜 걸음으로 저에게 다가오십니다.


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예~에! 할머니! 다름이 아니고요! 아드님에게 보성경찰서에서 범칙금 납부통지서가 나왔네요! 여기 지장을 한번 찍어주세요!”하였더니 “아니 그것이 뭣이 간디 지장을 찍어주라고 그래! 뭔 나쁜 것이 왔으까?”하시며 무척 궁금해 하십니다. “할머니! 이것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에요! 아드님이 운전을 하시다가 과속을 하셨나 봐요! 그래서 경찰서에서 벌금을 내라는 통지서를 보낸거에요!”하였더니 “아니 안 그래도 돈이 읍어서 죽것는디 뭔 벌금을 내라고 이른 것이 나와싸~아!”하시며 무척 걱정하시는 눈치입니다.


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할머니! 범칙금이 그렇게 많은 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하였더니 “아이고! 그른 소리하지 마씨요! 아저씨! 우리 아들이 지 댕기든 직장에서 쫓겨 난지 올해 5년이나 되야 부렇소! 그란디 집이가 뭔 돈이 있것소? 금메! 첨에는 퇴직금 몇 푼 있는 것 갖고 그럭저럭 묵고 살았는디 인자 돈도 떨어지고! 으디 취직을 할라고 그래도 얼렁 자리도 안생기고! 애기들은 학교 댕긴다고 난리고! 돈은 들어 갈디가 천진디 으디 돈 나올 구녁이 있어야제 사람이 살제~에!”


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하시며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설움이 복 받치시는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합니다. “할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드님은 실력이 좋으니까 금방 취직이 되실 거예요!”하고 위로를 하여드렸더니 “금메~에! 지발 그라문 을마나 좋것소! 그라제만 얼렁 자리가 안 생긴갑디다! 그랑께 이라고도 못하고 저라고도 못하고 할 수가 업응께는 우리 며느리가 뭔 식당을 해 볼란다고 하기는 한디 요새는 또 뭣이 안 좋아 갖고 장사도 잘 안된다 그라요! 으째 이라고 사람 살기가 성가신가  몰르것단 말이요!”


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하시며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고 계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파옵니다. “할머니!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곧 좋은 일이 있겠지요!”하였더니 “먼자 참에는 돈 땀새 우리 아들하고 며느리하고 싸운갑디다! 그란디 그것을 본 나는 으짜것소? 하다 답답해서 우리 아들한테 그라지 말고 니하고 나하고 둘이 그냥 약 묵고 죽어 불자! 으디 이래 갖고 세상 살것냐? 했드만 우리 아들도 울고 며느리도 울고 손지들도 울고! 카만이 생각해 본께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이른 일이 생긴다냐? 으짠다냐? 그런 생각도 들고!”


실업자 생활 5년이 남긴 것하시며 연신 눈물을 닦아내시는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다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핑 돌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 곧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할머니! 저 그만 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하며 할머니 댁을 나왔습니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었던 IMF가 아직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아드님이 하루빨리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어 할머니께서 환한 웃음을 웃으며 살아가시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