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구와 그렇게 수다떨거나 대화하는걸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나에게 인사정도 걸어오면 씨익 웃으며 겨우 대답하는 그런 성격이다. 그래서 그렇게 2주 정도 지나게되면 내 입안에 거미줄이 쳐지는게 아닐까 하는 이상한 걱정도 생긴다.
하루종일 입 다물고 있기 일쑤이니 그저 말이 고플 때가 있다. 그것도 한국말이 하고프다.
내가 랑과 아버님과 나누는 대화는 그저 '진지드세요.' 그 한마디가 다였던 것 같다.
팔라시오스에 있는 또 다른 한국인 양봉하는 집은 아버님과 절친하셨기에 그 집에나 가면 그 집 아주머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는데, 시어머님 친구분이니 뭔 말을 또 그리 할 수가 있었을까. 그저 일상적인 대화 몇 마디 였을 뿐이다.
우리 벌통 놓는 자리가 팔라시오스 근처에도 놓게 되어서 종종 오후엔 그 쪽으로 갈 때가 생겼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인데, 아버님과 랑이 일하고 올 동안 난 그 집에서 아이를 재우며 쉬거나 밥을 준비하거나 했다.
그 집은 50년동안 주 정부에서 세를 얻은건데, 무지 싸게 얻은 케이스였다. 커다란 농장에 토담집 하나였지만, 그게 어딘가. 창고 짓느라 돈들고 찻길 옆에서 그 갈대밭 사느라 또 돈든 우리 집보단 훨 나아 보였다.
어쨌든 그 집 안방은 흙벽돌을 가리기 위해 대충 한국 신문으로 한쪽 벽을 도배해 놓으셨는데, 난 그 방이 참 좋았다. 문자 중독증까지 있던 내가 아무 것도 읽지를 못하고 지내는게 그 얼마나 괴로왔는지 모른다. 그 벽에 있는 깨알같이 써있는 신문 기사들을 읽고 또 읽고, 광고도 읽고 또 읽고 그랬다. 그래서 그 집 벽에 어디쯤에 어느 광고가 있는지 어느 기사가 있는지 눈을 감고도 훤하게 기억하며 미소를 짓곤했다.
이민 생활이란게 한국 문자들을 대하기가 어려운게 그 고충중의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시골 생활을 한다는건 그나마의 문자나 여러가지 문화 생활로부터 격리된다는 것이다.
외로운 것은 어케 참을 수 있었지만, 읽을 꺼리가 없다는게 참 힘들었다.
처음이라 읽을꺼리를 안가져온게 후회막급이었다. 이렇게 심심하고 외롭고 답답한지 몰랐다.
개미와 전쟁 벌이는 것도 시들해지고, 메뚜기 잡는거도 시들해지고, 사람들과 스페인어로 대화 나누는 것은 애초부터 싫어했고, 하루 종일 창고에서 아이랑 노래 부르며 지냈다.
그것은 나중에도 경험상으로 얻은 건데 시골 생활 2주 정도 지나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거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시골에 오게되면 읽을 꺼리도 아껴뒀다가 그 때쯤에 꺼내서 읽곤해서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게 되었다.
남자들이 일하고 들어오면 작업복이 한아름이었다. 오전에 땀흘리고 들어왔으니 그걸 빨아줘야한다. 커다란 다라에 뻣뻣한 우주복같은 작업복을 쳐넣고 발로 꾹꾹 눌러가며 흙물을 빼고 깨끗이 헹궈서 널어놓았다가 오후에 또 입고 가게 해야했다. 그리고, 저녁에 벗어놓으면 밥 먹고 나서 또 빨아 널어 낼 아침에 입고 가게끔 널어놓아야한다. 날씨가 더우니 빨래는 금방 금방 말라줬다.
날씨가 더우니 꿀 수확량이 많아서 아버님과 랑은 힘든지도 모르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뜨레볼'(토끼풀)이라는 큰 풀이 있는데 한국의 토끼풀과는 다르게 키가 2미터나 되는 풀이다. 물론 잎은 토끼풀과 같다. 이 풀은 하얀 꽃이 피어서 '뜨레볼 블랑꼬'(하얀 토끼풀) 이라고 불리는데 그 꽃에서 질좋고 맛있는 꿀이 많이 생산되었다.
이 풀은 알파파와 같은 지역에 심어져서 알파파는 겨울용 목초로 쓰이는 풀이고, 이 뜨레볼은 소들을 풀어서 그냥 소들이 직접 뜯어먹게하는 풀이다.
꿀은 아르헨티나에선 달러와 같다. 바로 그 자리에서 현찰화가 가능한게 꿀이다. 도시에선 안되지만 꿀이 많이 나는 쎄레스에서는 꿀을 해외로 수출하는 업자들이 많아서 꿀을 판다고 하면 언제든 돈을 갖고 달려온다. 게다가 아버님의 오랜 경험으로 질좋은 꿀을 생산하였기에 시작한지 짧은 시간밖에 안되었지만, 조씨네 꿀이 좋다는 것은 사방팔방 알려져 있었다.
일에도 고집스런 아버님은 첫 수확의 꿀은 안파셨다. 처음에 나오는 꿀은 약간 질이 떨어지는 물꿀이기 때문이다. 농도가 엷은 꿀이란거다. 그래서 거품이 많이 나온다. 아버님은 그 꿀을 거품꿀이라고 하시며 우리가 먹든가, 요리로 쓰던가 맘대로 하라신다. 랑은 그걸로 나보고 맛사지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오후가 되어 남자들이 나가면 아가랑 난 거품꿀을 한바가지 가져다 온몸에 쳐바르고 다라에 들어가 놀곤했다. 꿀이 맛사지에 좋은건 몰랐고, 그냥 몸에 좋은거니 좋으려니 하고 발랐다.
저녁이 되어 설겆이를 하다보면 들판에서 놀던 반딧불이 내가 설겆이 하는 그 도랑까지 날아와서 윙윙대며 날라다녔다. 반딧불은 언제 봐도 이쁘다. 어릴적 그 반딧불을 많이도 잡아봤는데... 그 기억을 되살려 반딧불을 서너마리 잡아다 투명한 유리병에 넣어서 아들을 주곤했다.
열심히 설겆이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갈대밭이 지평선까지 깔려있는데 그 위로 온 세상이 반딧불 세상인거다. 맑은 하늘엔 별이 한가득 있었고, 그 사이엔 반딧불이 평화롭게 가득 날아다니고 있었다. 와..... 어디에서 저렇게 많이 날아왔을까? 세상 한가득 퍼져있는 반딧불들의 춤은 황홀했다. 그 뒤로 이파리 없는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로 주황색 보름달이 감처럼 타원형으로 생긴게 떠오르고 있었다. 아름다왔다.
해나, 달이나 지평선에서 올라와 있을 바로 그때는 모두 약간 옆으로 길다란 타원형의 감색 원이 된다.
정말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숨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할 수 있단 말인가.
갈대는 바람에 사각거리며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 위로 온 지면위로 넘쳐나는 수백만의 반딧불, 나뭇가지에 걸린 감색 보름달, 높은 하늘에는 맑은 별들....
내 감탄사에 랑이 놀라서 나왔다. 그리고 옆에 서서 아무 말도 못하고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쳐다봤다.
내가 힘들고 외로우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 같았다. 그 아름다웠던 광경은 내 평생을 두고 남을 제일 아름다웠던 풍경이 될 것이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46. 황홀한 반딧불의 춤
시골에서 2주 정도까지는 아무 생각없이 정신없이 지나게 된다.
난 누구와 그렇게 수다떨거나 대화하는걸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나에게 인사정도 걸어오면 씨익 웃으며 겨우 대답하는 그런 성격이다. 그래서 그렇게 2주 정도 지나게되면 내 입안에 거미줄이 쳐지는게 아닐까 하는 이상한 걱정도 생긴다.
하루종일 입 다물고 있기 일쑤이니 그저 말이 고플 때가 있다. 그것도 한국말이 하고프다.
내가 랑과 아버님과 나누는 대화는 그저 '진지드세요.' 그 한마디가 다였던 것 같다.
팔라시오스에 있는 또 다른 한국인 양봉하는 집은 아버님과 절친하셨기에 그 집에나 가면 그 집 아주머님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는데, 시어머님 친구분이니 뭔 말을 또 그리 할 수가 있었을까. 그저 일상적인 대화 몇 마디 였을 뿐이다.
우리 벌통 놓는 자리가 팔라시오스 근처에도 놓게 되어서 종종 오후엔 그 쪽으로 갈 때가 생겼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인데, 아버님과 랑이 일하고 올 동안 난 그 집에서 아이를 재우며 쉬거나 밥을 준비하거나 했다.
그 집은 50년동안 주 정부에서 세를 얻은건데, 무지 싸게 얻은 케이스였다. 커다란 농장에 토담집 하나였지만, 그게 어딘가. 창고 짓느라 돈들고 찻길 옆에서 그 갈대밭 사느라 또 돈든 우리 집보단 훨 나아 보였다.
어쨌든 그 집 안방은 흙벽돌을 가리기 위해 대충 한국 신문으로 한쪽 벽을 도배해 놓으셨는데, 난 그 방이 참 좋았다. 문자 중독증까지 있던 내가 아무 것도 읽지를 못하고 지내는게 그 얼마나 괴로왔는지 모른다.
그 벽에 있는 깨알같이 써있는 신문 기사들을 읽고 또 읽고, 광고도 읽고 또 읽고 그랬다. 그래서 그 집 벽에 어디쯤에 어느 광고가 있는지 어느 기사가 있는지 눈을 감고도 훤하게 기억하며 미소를 짓곤했다.
이민 생활이란게 한국 문자들을 대하기가 어려운게 그 고충중의 하나일 것이다. 게다가 시골 생활을 한다는건 그나마의 문자나 여러가지 문화 생활로부터 격리된다는 것이다.
외로운 것은 어케 참을 수 있었지만, 읽을 꺼리가 없다는게 참 힘들었다.
처음이라 읽을꺼리를 안가져온게 후회막급이었다. 이렇게 심심하고 외롭고 답답한지 몰랐다.
개미와 전쟁 벌이는 것도 시들해지고, 메뚜기 잡는거도 시들해지고, 사람들과 스페인어로 대화 나누는 것은 애초부터 싫어했고, 하루 종일 창고에서 아이랑 노래 부르며 지냈다.
그것은 나중에도 경험상으로 얻은 건데 시골 생활 2주 정도 지나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거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시골에 오게되면 읽을 꺼리도 아껴뒀다가 그 때쯤에 꺼내서 읽곤해서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게 되었다.
남자들이 일하고 들어오면 작업복이 한아름이었다. 오전에 땀흘리고 들어왔으니 그걸 빨아줘야한다. 커다란 다라에 뻣뻣한 우주복같은 작업복을 쳐넣고 발로 꾹꾹 눌러가며 흙물을 빼고 깨끗이 헹궈서 널어놓았다가 오후에 또 입고 가게 해야했다.
그리고, 저녁에 벗어놓으면 밥 먹고 나서 또 빨아 널어 낼 아침에 입고 가게끔 널어놓아야한다. 날씨가 더우니 빨래는 금방 금방 말라줬다.
날씨가 더우니 꿀 수확량이 많아서 아버님과 랑은 힘든지도 모르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뜨레볼'(토끼풀)이라는 큰 풀이 있는데 한국의 토끼풀과는 다르게 키가 2미터나 되는 풀이다. 물론 잎은 토끼풀과 같다. 이 풀은 하얀 꽃이 피어서 '뜨레볼 블랑꼬'(하얀 토끼풀) 이라고 불리는데 그 꽃에서 질좋고 맛있는 꿀이 많이 생산되었다.
이 풀은 알파파와 같은 지역에 심어져서 알파파는 겨울용 목초로 쓰이는 풀이고, 이 뜨레볼은 소들을 풀어서 그냥 소들이 직접 뜯어먹게하는 풀이다.
꿀은 아르헨티나에선 달러와 같다. 바로 그 자리에서 현찰화가 가능한게 꿀이다.
도시에선 안되지만 꿀이 많이 나는 쎄레스에서는 꿀을 해외로 수출하는 업자들이 많아서 꿀을 판다고 하면 언제든 돈을 갖고 달려온다. 게다가 아버님의 오랜 경험으로 질좋은 꿀을 생산하였기에 시작한지 짧은 시간밖에 안되었지만, 조씨네 꿀이 좋다는 것은 사방팔방 알려져 있었다.
일에도 고집스런 아버님은 첫 수확의 꿀은 안파셨다. 처음에 나오는 꿀은 약간 질이 떨어지는 물꿀이기 때문이다. 농도가 엷은 꿀이란거다. 그래서 거품이 많이 나온다. 아버님은 그 꿀을 거품꿀이라고 하시며 우리가 먹든가, 요리로 쓰던가 맘대로 하라신다. 랑은 그걸로 나보고 맛사지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오후가 되어 남자들이 나가면 아가랑 난 거품꿀을 한바가지 가져다 온몸에 쳐바르고 다라에 들어가 놀곤했다. 꿀이 맛사지에 좋은건 몰랐고, 그냥 몸에 좋은거니 좋으려니 하고 발랐다.
저녁이 되어 설겆이를 하다보면 들판에서 놀던 반딧불이 내가 설겆이 하는 그 도랑까지 날아와서 윙윙대며 날라다녔다. 반딧불은 언제 봐도 이쁘다. 어릴적 그 반딧불을 많이도 잡아봤는데... 그 기억을 되살려 반딧불을 서너마리 잡아다 투명한 유리병에 넣어서 아들을 주곤했다.
열심히 설겆이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갈대밭이 지평선까지 깔려있는데 그 위로 온 세상이 반딧불 세상인거다. 맑은 하늘엔 별이 한가득 있었고, 그 사이엔 반딧불이 평화롭게 가득 날아다니고 있었다.
와.....
어디에서 저렇게 많이 날아왔을까?
세상 한가득 퍼져있는 반딧불들의 춤은 황홀했다. 그 뒤로 이파리 없는 커다란 나뭇가지 사이로 주황색 보름달이 감처럼 타원형으로 생긴게 떠오르고 있었다. 아름다왔다.
해나, 달이나 지평선에서 올라와 있을 바로 그때는 모두 약간 옆으로 길다란 타원형의 감색 원이 된다.
정말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숨막히게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할 수 있단 말인가.
갈대는 바람에 사각거리며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고, 그 위로 온 지면위로 넘쳐나는 수백만의 반딧불, 나뭇가지에 걸린 감색 보름달, 높은 하늘에는 맑은 별들....
내 감탄사에 랑이 놀라서 나왔다. 그리고 옆에 서서 아무 말도 못하고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쳐다봤다.
내가 힘들고 외로우니까, 하나님이 내게 주신 선물 같았다.
그 아름다웠던 광경은 내 평생을 두고 남을 제일 아름다웠던 풍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