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무르는 곳...11

美道-━★ 200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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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그렇게 해인이 자신의 집에서 뛰쳐나간 이후 선우에게는 해인에 대한 정보가 심심찮게 들어오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에게 물어본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선우와 얘기하다보면 해인의 얘기가 꼭 화제로 등장시키곤 했다.

 

"선우야, 너 요새 해인이 본 적있냐?"

 

"...하아..도대체 그걸 왜 나한테 묻냐..."

 

 

오늘만 해도 도대체 몇 번째인지.. 선우의 친구들도 그렇고 동아리 선 후배들도 선우만 보면 요즘 해인이 봤냐고, 엄청 예쁘다면서 은근슬쩍 운을 떼고는 사라지기 일쑤였다. 덕분에 선우는 주변에서 누군가가의 입에서 '해인'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도대체가 뭐가 어떻게 됐다고 그러는 건지 자신만 보면 그 얘기를 해대서 짜증이 났다.

 

특히나 선우는 그 날 이후 단 한번도 해인을 학교에서 마주친 적이 없었다. 원래 과가 다르면 학교에서 마주치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나마 둘의 접점이었던 동아리마저 통 나가지 않는 선우이니 해인을 볼 일이 없었다.

 

 

"아니, 요새 해인이 장난 아니잖아. 네 취향은 아닌 듯 싶다만.."

 

"됐어, 관심없다."

 

"어... 한번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텐데.... 내가 어찌됐든 니 친구니까 해주는 말인데,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하아...관심없다고 했다.. 나 간다. 오늘 약속있어."

 

"쳇. 보고 나면 달라질거다. 쯧쯧.."

 

 

 

관심이 없다는데도 혀까지 차며 말하는 친구의 태도에 선우는 그 장난이 아니게 변했다는 해인을 한번 보고 싶었다. 그 꼬맹이가 변하면 얼마나 변했다는 건지... 어린애가 연지 곤지 찍어 바른다고 갑자기 여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거참.

 

 

 

 

선우는 피식, 비웃으며 차를 몰고 압구정으로 갔다. 오늘은 그가 상당히 맘에 들어하는 가혜와의 약속이 잡혀 있었다.

 

가혜는 여태동안 선우가 만났던 여자들 중에서 무려 반년이나 만나는 진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 선우가 가혜만 만났던 것은 아니었듯 가혜 역시 선우과에 속했기 때문에 서로 편하게 만나는 사이였다. 서로의 사고방식이 비슷했던지라 가혜도 선우 외에 두루 두루 만나는 남자들이 상당히 많은 편이어서 정말로 부담없이 만나는 관계를 유지한 것이었다.

 

게다가 남자가 끊이지 않을 만큼 가혜는 괜찮은 여자였다. 170의 키에 잘 빠진 몸매, 쌍가풀없이 커다란 눈에 시원시원하게 생긴 얼굴에 섹시한 스타일의 차림새는 100% 선우 취향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특별히 부자는 아니어도 부족할 것 없는 집에서 자라 디자인을 전공하는 덕분인지 마치 모델처럼 자신을 꾸밀 줄 아는 여자였다. 눈에 보이는 것 만으로도 완벽한데 성격까지 털털하고 시원하니 다른 남자들 뿐만 아니라 잘난 선우도 거절할 수 없는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런 가혜를 만나는 날은 다른 날보다 더 기분이 좋았다. 특히나 요즘에는 유난히 모든 게 지겨워서 다른 여자들을 다 정리한 상태인데다가 며칠사이 '해인'때문에 본의아닌 스트레스를 받게 되다보니 오늘의 가혜와의 만남은 더 기대될 수 밖에 없었다.

 

 

 

 

 

 

 

 

 

"- 선우야!"

 

"어, 와있었네."

 

 

가혜와 만날 때 주로 가던 「C 카페」로 들어섰다. 처음에 독특한 이름이 맘에 들어 가혜와 와본 곳인데 심플한 인테리어와 음료나 음식 맛이 마음에 들어서 아예 가혜와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 버렸다.

 

 

"오늘은 넘 피곤해서 일찍 도망나왔지."

 

"누구 하나 떼넸다 보네."

 

"그렇지. 어찌나 질기던지.."

 

 

가혜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키위 쥬스를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모습이 한두번이 아니었고 자신도 충분히 겪어 본 일이기때문에 선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선우가 있던 말던 가혜는 쥬스를 마시며 수첩을 꺼내 뭔가 열심히 적기 시작했다. 선우도 별 말없이 자신의 책을 펴서 볼 뿐이었다. 그냥 둘이 만나는 건 단지 본능적인 욕구 때문이 아닌 상대방을 굳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이런 편안함이 더 큰 이유일지도 몰랐다. 남들이 보면 이렇게 따로 놀거면 뭐하러 만나냐고 하겠지만 둘은 이런 식의 만남이 편했다.

 

 

 

"어! 선우야!"

 

수첩에 한참을 끄적거리다가 질렸는 지 주위를 둘러보던 가혜가 갑자기 눈을 반짝였다. 단번에 얼굴이 환해지는 걸로 보아 아마도 대단한 미남이나 미녀를 발견했음이 틀림없었다.

 

여태동안 선우가 봐왔던 한 미모 한다는 여자들은 자신보다 외모가 더 낫다 싶으면 아무 관계 없이 지나가는 사람이어도 괜히 손톱을 내밀고 '저런 애는 ~할거야.' 하며 삐죽거리기 일쑤였지만 가혜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으면 너무 좋아해서 옆에 있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였다.

 

"꺄아! 너무 귀엽다, 쟤!!"

 

"또 맘에 드는 얼굴을 발견한거냐? 난 귀여운 쪽은 별로다."

 

"야, 한번 봐봐. 저기 기둥 뒤에 앉아있는 애말야.

 

 

 

 

 

생긴건 안그렇게 생겨가지고 차의 뒷자석에 온갖 귀엽다는 인형들을 가득 싫고 다닐 정도로 귀여운 것만 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가혜가 양 볼을 발그레하게 붉히면서 잔뜩 흥분하는 걸 보면 상당히 귀여운가 보다 하는 생각에 호기심이 생겨 가혜가 가리키는 쪽을 봤지만 기둥쪽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기둥에 가려서 잘 안보이는데..?"

 

 

 

몸은 보이지만 얼굴이 기둥에 가려진 탓에 보이질 않아서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다시 책에 열중했지만 꼭 봐야한다며 가혜가 자기 옆으로 끌어 앉혀서 억지로 보게했다.

 

 

"뭐야. 잘 안보여서 모르겠어."

 

"아냐, 고개 돌릴 때 잘 봐봐."

 

 

가혜의 눈빛을 보니 무슨 일 있어도 저 여자를 보게 해서 자신의 입에서 감상평을 끌어내겠다는 결의에 차 있어서 귀찮았지만 그 여자가 고개를 돌릴 때까지 꾸준히 기다렸다. 그렇게 계속 그쪽을 한참동안 쳐다보니 무슨 얘기를 하는 지 화사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돌리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하얗고 예쁜 얼굴에 커다란 눈, 적당한 화장탓인지 발그레한 뺨에 반짝거리는 입술, 갸느다란 어깨가 드러나는 하얀 니트에 빨간 체크무늬 미니 스커트. 완전히 가혜의 취향대로 갖춰입기까지 한 귀여운 여자였다. 

 

그런데 앉은 자리에 약간의 거리가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보면 볼수록 낯이 익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얼굴이 굉장히 낯이 익은데..

 

 

 

"......귀엽긴 하네.."

 

"아, 진짜 귀엽지? 너무 귀엽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야...."

 

"정말? 혹시 아는 사이야? 그럼 나 소개시켜줘!! 응?"

 

 

아는 사람같다는 말에 가혜가 과도하게 눈을 반짝거리며 쳐다보는 걸 외면하고 선우는 재빨리 머리속으로 자신이 아는 여자들의 얼굴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그래도 저렇게 어려보이고 귀여운 스타일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서 상대했을 리가 없었다.  

 

 

 

 

 내가 아는 여자들 중에서 귀엽고 여려보이는 스타일이라면.... 아! 한명..있긴 한데...

 

 

 

 

"아니... 잠깐만... ....설마..."

 

"알아? 알아?"

 

"....길해인?"

 

"이름이 길해인이야? 이름도 이쁘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뜯어보자 아무리 봐도 해인이 맞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화장은 하지도 않고 언제나 면티나 남방에 면바지 정도의 평범한 차림새의 해인이었지만 옷만 바꿔입고 화장만 했다고 저렇게 사람이 달라보일 줄은 여자에 통달한 선우 역시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어? 어디가?"

 

"쟤 낚으러!"

 

"뭐? 야!"

 

 

 

 

 

선우가 해인으로 추정되는 그 여자를 보며 딴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가혜는 성큼성큼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가혜가 걸어가려는 순간 그 여자가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하는 바람에 가혜 역시 화장실로 방향을 틀었다.

 

 

"아니, 도대체..왜 여자가 되서 같은 여자한테 저렇게 환장을 하냐고.."

 

 

 

 

혹시라도 해인이라면 괜히 마주쳤을 때 껄끄러울 까봐 가혜가 해인에게 작업걸러 가는 것을 말리고 싶었지만 화장실로 들어가버렸으니 자기가 따라 들어갈 수도 없어서 선우는 초조하게 화장실의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화장실에서 뭘 하길래 10분째냐..."

 

 

 

 

뚫어질 듯 화장실 문을 노려보고 있는 지 10분 째, 드디어 굳게 닫혀서 열릴 줄 모르던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어느새 화기애애하게 웃으면서 나오는 두 여자를 볼수 있었다.

 

 

가혜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이 있는 쪽을 가리켰고 여자의 눈은 가혜를 따라 이쪽을 향했다. 그 순간 그녀와 선우의 눈이 마주치자 살짝 이마가 찡그려지는 모습에서 그녀가 그가 아는 길해인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찡그려졌던 이마는 이내 펴지면서 해인은 가혜와 함께 선우가 앉아있는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해인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예전과는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매일같이 해인이 얘기를 해댈 만큼 예전에 비하면 획기적인 변화이긴 했다.

 

게다가 웨이브파마까지 해서 구불구불한 머리에.. 아, 절대 쉽지 않은 핑크빛 화장이라니..

 

 

 

 

과거의 해인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원래 좀 귀여운 얼굴상이긴 했지만...

 

얼굴 뿐만 아니라 옷 스타일까지 바뀌면서 드러난 그녀의 몸은 상당히 가늘었지만 글래머러스했다. 짧은 치마 아래로 뻗어있는 다리는 부러질 것 같이 얇고 가늘었지만 의외로 가슴은 옆에 서 있는 가혜와 비슷할 만치 풍만해보였다. 일부로 뽕이라도 넣은건가 싶었지만 파진 옷 사이로 보이는 가슴선이 자연스러운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랜만이네."

 

 

가혜와 함께 선우가 있는 쪽으로 온 해인이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선우의 눈에는 해인이 억지로 웃고 있는 게 눈에 훤했지만 굳이 인상쓰며 인사할 필요도 없으니 선우도 적당히 웃으며 인사했다.

 

"그래. 요새 네 얘기 많이 들리던데, 확실히 못 알아볼 뻔 했네."

 

"아..그래?"

 

"뭐야뭐야~ 선우 역시 아는 사이였구나? 아.. 해인씨 정말 너무 귀여워요!!"

 

"아니요..제가 뭘.. 가혜씨야 말로 너무 이쁘신데요."

 

 

 

"헛. 언제봤다고.."

 

 

 

 

선우는 방금 화장실에서 기껏해야 인사나 나왔을 거면서 친한 척 꽃을 날리며 얘기하는 두 사람을 보니 기가 막혔다. 가혜야 원래 성격이 저래서 아무나하고 말 잘한다 쳐도 해인이까지 가혜한테 휩쓸릴 줄은 몰랐다.

 

 

"가혜씨 너무 좋아보여서 같이 있고 싶지만.. 지금 제가 같이 온 사람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만 가볼게요."

 

"아..애인이에요?"

 

"..아뇨. 그냥 아는 선배에요."

 

"그렇구나! 잘생겼는데? 스타일도 좋고. 이 놈이랑은 정 반대 스타일이네?"

 

 

가혜의 말에 선우도 흘낏 해인과 앉아있던 남자쪽을 보니 자신과는 다른 말그대로 남자같은 스타일이었다. 깔끔한 옷차림에 짧은 헤어스타일, 근육질로 보이는 몸 하며 남자 특유의 쉰내를 흘릴 것 같은 선우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타입의 그런 남자.

 

가혜 말로는 선우 본인이 메트로섹슈얼쪽이기 때문에 너무 남자다운 타입은 거부감을 느끼는 거라나 뭐라나... 어쨌든 선우가 꺼려하는 숫컷냄새를 흘리는 그런 남자였다.

 

 

 

"아하하.네."

 

"방해할 수는 없지요. 그럼 해인씨, 나 연락처 좀 알려줘요."

 

 

 

 

얼굴을 붉히며 가혜의 핸드폰에 번호를 입력하는 해인을 보니 선우는 뭔가 속이 답답해졌다. 자기 취향의 여자는 아니었지만.. 예전의 그 다른 선밴가 뭔가 하는 남자도 있었던 거 같은데 다른 남자까지 끌고 다니는 모양새라니....

 

 

자신 아니면 죽을 거 마냥 따라다니던 그 모습이 오버랩되자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 자신이 좋아서 2년 가까이 내숭까지 떨며 따라다녔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다른 남자 옆에서 얼굴이 빨개져서는 희희낙락대는 해인에게서 알게 모르게 배신감까지 느껴졌다.

 

'...내가 왜 쟤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야 하지? 쟨 내 취향도 아닌데 말야.'

 

 

 

 

"그럼 다음에 보자, 선우야. 가혜씨도 다음에 기회되면 또 봐요."

 

"네, 제가 연락할게요!"

 

"네."

 

 

해인은 그렇게 자기 자리로 돌아가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하더니 곧 까페를 나섰다. 그리고 선우는 옆에서 조잘대는 가혜의 말은 다 흘려 들은 채 해인이 나간 까페 문만을 노려보며 딴 생각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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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날렸어요, 또!! ;ㅁ;)

 

전 도대체 왜 이런 걸까요....

오늘은 바람이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누구에게나..를 올리려고 확인해보니까...

20편, 21편을 둘 다 실수로 날려버린 거 있죠!!

전 날려버린 줄도 모르고 오늘 올려야지~ 하고 있었다구요!! ㅠㅁ ㅠ);;;;

 

우어어... 일단 당분간은 다시 쓰기에 열중해야겠네요..헤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