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왕천 북쪽 변방에서 차차 세력이 강성해져가던 신진 반란세력을 대거 토벌한 소예는 남은 정리를 휘하 장수들에게 맡기고 간만에 북방성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번 싸움에서 팔에 깊은 상처를 얻었고 휴식을 겸해서 치료차 돌아온 셈이었다.
2차 마계대전 종식 후에도 천계는 종종 수라계와 마계의 산발적인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고, 내부로도 천민의 반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천계는 주지배층인 황족과 4대 왕족, 고급에서 하급 서열로 나뉘는 중간 귀족층인 천신족, 그 아래의 평민과 최하층 천민계층으로 계급이 구분되었다.
6개의 하늘 중 2번째 하늘인 도리천에는 황족들이 대부분 기거했는데 그곳의 중심부에는 수미산이라는 성산(聖山)이 있었고 그곳에 천제와 직계 자손들이 사는 제황성이 있었다. 그 아래 계급인 4대 왕족은 첫 번째 하늘인 사왕천의 동,서,남,북 각 방위를 고르게 분배하여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지국천, 광목천, 증장천, 다문천왕의 지배를 받았다.
나머지 4개의 하늘은 천제에게 위임을 받은 천신족의 지배하에 평민과 천민들이 부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평민과 천민 사이에도 그 서열이 엄격하여 천민은 거의 노예와 다름없었다. 천계 구성원의 절반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을 때까지 노역과 상급계층의 약탈과 횡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때론 그 정도가 심해 반란세력이 싹트기도 했지만 한 번도 체제 자체를 흔들만큼 강한 세력으로 성장한 적이 없었다.
특히, 제 17대 천제 비류천은 천민 세력을 유난히도 혐오하여 그들 사이에서 약간의 수상한 움직임이라도 감지되면 이유불문하고 토벌군을 보내 수많은 부락을 멸해버렸기때문에 천민들에게 희망이란 한낮 허깨비같을 뿐이었고 갈수록 지배층의 착취는 심해져갔다.
소예는 장군으로써 군주인 천제의 명에 복종하여 천민 세력을 토벌했지만, 천민을 칠 때는 항상 석연치 않았다. 이계의 종족을 벨 때는 일말의 흔들림이 없는 그녀였고, 그런 점이 그녀를 천계 최고의 여장군으로써 빛나게 만들었지만 천민 반란세력을 칠 전날이면 그녀는 어김없이 잠을 설쳤다. 겨우 잠이 들라치면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토벌이 끝난 후에도 그녀는 유난히 피곤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오히려 이계의 대대적인 침략이 소규모의 천민 반란군보다 쉬운 적이었다.
북방성에 도착한 소예는 이번에도 긴장이 풀리면서 극도의 피로를 느꼈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아 그저 자신의 침실로 향하고 싶었지만 아버지 다문천왕에게 문안 올리는 것만은 빼 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애써 피로를 물리치며 다문천의 집무실로 향했다.
" 전하, 소예공주님께서 오셨나이다."
집무실 앞을 지키던 시종이 소예에게 고개를 조아려 예를 표하며 다문천에게 전하였다.
" 들어오라."
소예가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도 다문천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진지하게 서류 뭉치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왠지 심기가 편치 않아 보였다. 원래가 잔정이라곤 없는 아버지였지만, 소예는 그날따라 다문천에게서 유독 냉랭한 분위기를 느꼈다.
다문천은 오랜만에 성을 찾아온 딸의 귀환에도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듯 한참을 바쁜 듯 움직였다. 마침 내 검토한 서류를 철하면서 그제서야 그는 소예를 흘깃 쳐다보고는 뒤늦은 인사를 했다.
" ...왔느냐?"
" 네."
소예 역시 짧게 답할 뿐이었다.
" 반란군 토벌에 관한 보고안이 막 도착했더군."
".............."
소예는 표정없이 앉아 있었고 다문천은 책상 위에 깍지 낀 손을 얌전히 놓은 채 사무적인 말투로,
" 이번에도 어린 것들은 살려놓았더구나. 그들은 또 하나의 반란의 씨앗이다. 방금 명령을 하달하여 재토벌을 명했다."
" 뜻대로 하십시요."
소예는 감정없이 말했다.
" 쓸 데 없는 감정이다. 잔정따위는 장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 가 보겠습니다."
소예는 불편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문천은 그런 그녀 앞에 봉투 하나를 던졌다.
" 가져 가거라."
소예는 한 손으로 봉투를 낚아 채 듯 집어 들면서 그 곳을 빠져 나갔다.
집무실 입구에 서서 그녀는 자신의 오른 팔을 감은 붕대에서 배어 나온 피를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맥이 풀리면서 고통조차 느낄 수가 없었지만 붕대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순간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시종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급히 고개를 돌리면서 입술을 꽉 깨물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온 소예는 갑옷을 제대로 해체하지도 않고 침대위에 쓰러져 누웠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쳐 자신의 몸을 잠식하면서 바닥 아래로 끊임없이 떨어져내리는 것 같이 몸이 무거웠다. 문득 그녀는 아버지가 싸늘하게 던진 봉투가 생각이 났다. 겨우 손을 뻗어 봉투를 집어들었다.
봉투를 봉한 면에는 황가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금이 섞인 황색의 인장은 황가의 대소사 가운데 경사스러운 소식을 뜻하는 것이었다. 소예는 반듯이 누운 자세로 뜯지 않은 봉투를 눈앞에 들어 올린채 착잡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시기 상으로 볼 때, 그 초대장은 황가의 연례 행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소예는 이미 그 안의 내용을 짐작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오히려 봉투를 열어볼 수 없었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힘으로 무효화시킬 수도 없는 현실이 그 안에 들어있을 터였다. 보지 않는다면 적어도 위안 정도는 될 것 같았다.
"툭."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인장이 덮혀 봉해진 봉투를 뜯어 그 안의 초대장을 꺼냈다. 그녀의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소예는 시녀들이 목욕물이 준비되었다고 알릴때까지 돌처럼 누운 채, 몇 번이고 초대장의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부인하고 싶은 기정 사실을 억지로라도 머릿속에 넣어 강제로 받아들이려는 듯 글자 하나하나와 잉크의 냄새까지도 뇌세포에 새겨넣고 있었다.
초율(礎律) 제 23화
사왕천 북쪽 변방에서 차차 세력이 강성해져가던 신진 반란세력을 대거 토벌한 소예는 남은 정리를 휘하 장수들에게 맡기고 간만에 북방성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이번 싸움에서 팔에 깊은 상처를 얻었고 휴식을 겸해서 치료차 돌아온 셈이었다.
2차 마계대전 종식 후에도 천계는 종종 수라계와 마계의 산발적인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고, 내부로도 천민의 반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천계는 주지배층인 황족과 4대 왕족, 고급에서 하급 서열로 나뉘는 중간 귀족층인 천신족, 그 아래의 평민과 최하층 천민계층으로 계급이 구분되었다.
6개의 하늘 중 2번째 하늘인 도리천에는 황족들이 대부분 기거했는데 그곳의 중심부에는 수미산이라는 성산(聖山)이 있었고 그곳에 천제와 직계 자손들이 사는 제황성이 있었다. 그 아래 계급인 4대 왕족은 첫 번째 하늘인 사왕천의 동,서,남,북 각 방위를 고르게 분배하여 살고 있었으며 그들은 지국천, 광목천, 증장천, 다문천왕의 지배를 받았다.
나머지 4개의 하늘은 천제에게 위임을 받은 천신족의 지배하에 평민과 천민들이 부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는데, 평민과 천민 사이에도 그 서열이 엄격하여 천민은 거의 노예와 다름없었다. 천계 구성원의 절반이 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죽을 때까지 노역과 상급계층의 약탈과 횡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때론 그 정도가 심해 반란세력이 싹트기도 했지만 한 번도 체제 자체를 흔들만큼 강한 세력으로 성장한 적이 없었다.
특히, 제 17대 천제 비류천은 천민 세력을 유난히도 혐오하여 그들 사이에서 약간의 수상한 움직임이라도 감지되면 이유불문하고 토벌군을 보내 수많은 부락을 멸해버렸기때문에 천민들에게 희망이란 한낮 허깨비같을 뿐이었고 갈수록 지배층의 착취는 심해져갔다.
소예는 장군으로써 군주인 천제의 명에 복종하여 천민 세력을 토벌했지만, 천민을 칠 때는 항상 석연치 않았다. 이계의 종족을 벨 때는 일말의 흔들림이 없는 그녀였고, 그런 점이 그녀를 천계 최고의 여장군으로써 빛나게 만들었지만 천민 반란세력을 칠 전날이면 그녀는 어김없이 잠을 설쳤다. 겨우 잠이 들라치면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토벌이 끝난 후에도 그녀는 유난히 피곤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오히려 이계의 대대적인 침략이 소규모의 천민 반란군보다 쉬운 적이었다.
북방성에 도착한 소예는 이번에도 긴장이 풀리면서 극도의 피로를 느꼈다. 모든 것이 다 귀찮아 그저 자신의 침실로 향하고 싶었지만 아버지 다문천왕에게 문안 올리는 것만은 빼 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애써 피로를 물리치며 다문천의 집무실로 향했다.
" 전하, 소예공주님께서 오셨나이다."
집무실 앞을 지키던 시종이 소예에게 고개를 조아려 예를 표하며 다문천에게 전하였다.
" 들어오라."
소예가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도 다문천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진지하게 서류 뭉치를 검토하고 있었는데 왠지 심기가 편치 않아 보였다. 원래가 잔정이라곤 없는 아버지였지만, 소예는 그날따라 다문천에게서 유독 냉랭한 분위기를 느꼈다.
다문천은 오랜만에 성을 찾아온 딸의 귀환에도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듯 한참을 바쁜 듯 움직였다. 마침 내 검토한 서류를 철하면서 그제서야 그는 소예를 흘깃 쳐다보고는 뒤늦은 인사를 했다.
" ...왔느냐?"
" 네."
소예 역시 짧게 답할 뿐이었다.
" 반란군 토벌에 관한 보고안이 막 도착했더군."
".............."
소예는 표정없이 앉아 있었고 다문천은 책상 위에 깍지 낀 손을 얌전히 놓은 채 사무적인 말투로,
" 이번에도 어린 것들은 살려놓았더구나. 그들은 또 하나의 반란의 씨앗이다. 방금 명령을 하달하여 재토벌을 명했다."
" 뜻대로 하십시요."
소예는 감정없이 말했다.
" 쓸 데 없는 감정이다. 잔정따위는 장군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 가 보겠습니다."
소예는 불편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문천은 그런 그녀 앞에 봉투 하나를 던졌다.
" 가져 가거라."
소예는 한 손으로 봉투를 낚아 채 듯 집어 들면서 그 곳을 빠져 나갔다.
집무실 입구에 서서 그녀는 자신의 오른 팔을 감은 붕대에서 배어 나온 피를 무심하게 쳐다보았다. 맥이 풀리면서 고통조차 느낄 수가 없었지만 붕대는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순간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시종에게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 급히 고개를 돌리면서 입술을 꽉 깨물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온 소예는 갑옷을 제대로 해체하지도 않고 침대위에 쓰러져 누웠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쳐 자신의 몸을 잠식하면서 바닥 아래로 끊임없이 떨어져내리는 것 같이 몸이 무거웠다. 문득 그녀는 아버지가 싸늘하게 던진 봉투가 생각이 났다. 겨우 손을 뻗어 봉투를 집어들었다.
봉투를 봉한 면에는 황가의 인장이 찍혀있었다. 금이 섞인 황색의 인장은 황가의 대소사 가운데 경사스러운 소식을 뜻하는 것이었다. 소예는 반듯이 누운 자세로 뜯지 않은 봉투를 눈앞에 들어 올린채 착잡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시기 상으로 볼 때, 그 초대장은 황가의 연례 행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소예는 이미 그 안의 내용을 짐작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오히려 봉투를 열어볼 수 없었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힘으로 무효화시킬 수도 없는 현실이 그 안에 들어있을 터였다. 보지 않는다면 적어도 위안 정도는 될 것 같았다.
"툭."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은 인장이 덮혀 봉해진 봉투를 뜯어 그 안의 초대장을 꺼냈다. 그녀의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 맞았다.
소예는 시녀들이 목욕물이 준비되었다고 알릴때까지 돌처럼 누운 채, 몇 번이고 초대장의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부인하고 싶은 기정 사실을 억지로라도 머릿속에 넣어 강제로 받아들이려는 듯 글자 하나하나와 잉크의 냄새까지도 뇌세포에 새겨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