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야사..<이리도 어리고 맑은 사람을...12>

초록물고기200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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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은 이미 도진을 물렸건만 문밖을 지키고선 도진은 전혀 움직일 기색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아직도 그기 있느냐..."

"....."

 

도진이 대답을 하지 않고 옮길 수 없는 태산처럼 그리 서 있었다.

 

"물러가지 않을 것이면 들어오느라..."

 

소리 없이 방을 들어선 도진의 얼굴에 침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아마도 이미 효원의 입에서 나올 말들을 알아 가진 두려움인 듯 했다.

 

“이제 나를 따르지 마라...”

“듣지 아니한 걸로 하겠습니다...”

“늘 나를 알아 내 마음 앞에서 움직이는 니가 내겐 큰 위안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런 니가 무겁구나...

 들어내고자 한다...그러니 더 이상 고집 피우지 마라..“

 

 도진이 허물어지듯 그 앞에 무릎을 조아렸다. 참아 홀로 가시게 할 수는 없는 길이었다. 이미 그가 정해 도리 킬 수 없는 길이라면 자신 또한 연당 함께 해야 하는 것을...그리하지 않고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것을...

“땅을 딛고 첫발을 때던 걸음마부터 함께 해온 제가 아니 옵니까...

마마를 따르는 것 외에는 배운 것이 없는 제가 아니 옵니까...

제가...그리 할 수 없다는 것은....마마께서 더 잘 아시고 계시옵니다..

보이지 않을 것이옵니다..그러니 물리지만 마시옵소서..“

“니가 정녕 내 짐을 들어주지 않을 모양이구나...”

 

호위꾼들에 의해 가마에 태워진 종현이 은밀하게 궁을 빠져나와 새벽녘에 집에 들었다. 몇일 동안 일어난 일들이 여전이 꿈인 듯 생시인 듯 가슴을 휘젓고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섰던 효원의 모습이 숨쉬는 순간순간 통증 처럼 심장을 울려 돼 정작 찢기고 터진 육신의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이 한탄스러워 사람답게 살지 못할 이 세상이 원망스러웠었다.

허나 니 고통 앞에 선 나는 너무도 목매하고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아무 곳에도 토해 낼 수 없었던 그 원망들을 다 품고 살았을 그 삶이 이리도 나를 사무치게 하는구나... 세상 이치를 깨달을 그 마음을 주시고 왜 그리 큰 고통을 지우셨는지 원망스럽고 또 원망스럽구나...]

 

 밤손님이 들어도 탐을 낼 물건하나 변변찮은 종현의 집 앞에 네 명의 장정들이 지키고 섰다. 종현은 자신의 집에 들고도 손님이 된 냥 편히 있질 못하고 자꾸 문밖의 그들에게 마음이 쓰이고 있었다. 한순간도 생각을 놓지 못하고 가슴을 조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지 못할 불안함이 자꾸 마음을 흔들어 그가 눈앞에 있지 않은 시간들은 더 이상 어떤 것도 믿을 수 없게 했다. 더디 흐르는 시간이 물처럼 돌처럼 흐르고 멈추기를 반복해 기다리는 이의 숨 줄을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렇게 멀고 험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들어 비로소 종현의 눈 앞에 그를 있게 했다.

 

“쉬지 않고 이리 앉아서 밤을 밝힌 것이냐...”

“오신다 하셨으나 혹여 또 다른 일이 생기신 것은 아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효원은 또 다시 자신을 어렵게 대하는 종현이 불편했다.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으나 그리 보내기엔 너무도 아까운 시간들이었다.

" 내가 누구인 것도  또한 어떤 모습인 것도 괘념치 말고 니 집에 들렀던 효원을 생각하고 나를 대해라...

 그 때 만 이 내가 편히 너를 볼 수 있다“

 

종현이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아픔과 정겨움이 그 눈 속에 함께 들어차 기쁜 듯 시린 듯 그리 보고 있었다.

“왜 그리 보느냐...”

 

종현의 입가에 정을 담은 미소가 고였다. 효원을 알아 처음으로 가져보는 두려움 없는 편안함이었다. 늘 환희와 두려움이 함께 있어 한시도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었다. 그런 그의 얼굴에 잠시 그런 세선의 편안함이 내려앉았다.

“이제 내 마음이 보았던 것을 내 눈 또한 그대로 본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그 얼굴 한점도 놓쳐 보지 않을 것이다“

 

종현이 한참을 그리 말없이 시선을 주다 말문을 열었다. 심연에 꽂혀있던 의구심들이 자꾸 다른 두려움을 만들고 있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어떤 것도 숨기지 마라”

“그럴 것이다...”

“옥에서 이상한 말을 들었다...혹여 떠나는 이유가..”

 

효원이 그의 말을 다 듣지 않고 중간에서 받았다.

"오늘은......너와 할 것이다...

 니 일상에 서 볼 것이다....

 니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보고 무엇으로 기뻐하는지 그 속에 있어 볼 것이다....

 그러니 다른 것들은 잠시 잊어보기로 하자...

 오늘은 그리하고 싶다..“

 

자신을 보는 그 시선 속에 너무도 간절한 소망이 서려있어 종현은 더이상 자신의 궁금증을 들어내놓지 못했다. 이미 물어도 소용없음을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으냐..."

 

효원이 빙긋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예전에 없었던 생동감이 그 속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효원이 보이는 그 여유로움 때문에 종현은 가슴에 품었던 그 의구심들 잠시 마음에서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말하지 않았느냐...그저 너의 일상속에 있어 보고 싶은 것이니 너는 무엇을 하든  나를 염두해 두지 마라..그러면 그것은 니것이 아닐테니 내가 가져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저잣거리에 나가 보자...화구도 좀 사야하고 저녁에 마실 술도 마련해야 겠다.."

 

 이른 조반을 나누고 문을 나서든 종현이 효원을 돌아 보았다.

 

"편히 다니기엔 그 비단 도포가 너무 띄질 않겠느냐... 배가 드는 날이니 험한 상꾼들이 많을 것이다...괜한 시비가 생길수도 있는 일이니 편한 차림이 낳을 듯 싶다.."

"그렇겠구나..."

 

종현이 반상위의 보자기를 눈으로 가르켰다.

 

"해연사에 다녀와서 마련해 두었었다. 혹여라도 다시 오면 편히 쉴 차림이 필요할 듯 싶어 준비한 것인데 오늘 그 쓰임새를 찾은 듯 하다..."

 

 종현이 나가고 보자기를 푼 효원의 가슴이 또한번 서럽게 파동을 쳤다.

 

[익숙치가 않구나...

 이리 좋은 것은 내것이 아닌듯 낯설고 두렵구나..

 얼마나 아까우냐...

 니 마음을 알아 가지는 모든것이 이리도 아까울 수가 없구나..]

 

저잣거리를 돌아보던 효원이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사람냄새와 희뿌연 먼지가 뒤섞인 그 한가운데서 한점 바람같은 자신을 느껴보았다.

 

"좋구나...이리 다들 살아서 움직이는 구나..."

"어떠냐...포구에 가보겠느냐...거칠기는 하나 여기보다 더 힘찬 것들을 볼수 일을 것이다.."

 

효원이 흥분하며 길을 앞섰다. 세상에 눈을 뜬 어린아이 마냥 그 설레임을 숨기지 못하고 그리 보이고 있었다.

 

"가보자..어서 가보자...빨리 보고싶구나.."

 

[이리도 어린 사람이었느냐...

 이리도 맑은 사람이었느냐..

 어쩌면 너는 이런 사람이겠구나...

 네게서 그 고통과 태산같은 무게의 신분을 들어내고 나면..

 너는 이리도 깃틀같이 가볍고 바람처럼 자유로운 것을...]

 

포구에 도착한 효원이 놀라운 듯 신기한 듯 분주히 움직이는 상꾼들을 지켜보았다.

 

"저속에는 어떤 것들이 있느냐..."

"없는 것이 없다...곡식이며 인삼...해산물들..또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여러가지 진귀한 것들까지 다 이곳을 통해 들어오니 아마도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은 다 있을 듯 싶다..."

 

붙잡고 싶은 시간들일수록 그 흐름이 폭포수와 같아 어디 한곳 걸릴것도 없이 그렇게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포구를 돌아본 효원이 문득 생각난 듯 종현에게 물었다.

 

"객주집은 어디있느냐..."

"시장한 모양이구나.."

"여기까지 왔으면 객주에 들러 술한잔 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종현이 난감해 하며 그를 보았다.

 

"어찌 그 곳에서 술을 하려 하느냐...편치 않을 터인데..."

"내말을 잊었으냐...괘념치 말라 하지 않았느냐..."

 

객주쪽으로 발길을 옮기든 효원이 잠시 가든 길을 멈추었다. 꼬끝을 베어갈듯 한파가 몰아치는 추위에 이마가 축축히 젖어들어 있었다.

 

"왜 그러느냐...얼굴이 창백하다...어디가 편치 않은 것이냐.."

"아니다...밤을 밝혀 그런 모양이다...어서 가자..."

 

 발길을 옮기는 효원의 눈앞이 자꾸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온몸이 땀으로 흔건히 젖어 있었고 그 호흡이 조금씩 거칠게 변해가고 있었다. 먼 발치서 두 사람을 따르고 있던 도진의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