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생 : 음- (생각하다가) 글쎄... 니가 무지 많이 쓴 건 기억난다. 내가 열심히 읽어주고도, 기억나는 내용이 없어서 탈이지만. 어떤 거 얘기하는 건데?]
[윤아 : -_-;;;; 우리 대안학교를 배경으로 쓴 거요, 제목 '비상'. 그 땐 좋다고 하시구서. 정말 하나두 기억 안나세요?]
[홍선생 : 하여튼, 그래서?]
[윤아 : 제 기획안이 맘에 드는 곳이 있나봐요. 한번 만나자네요.]
[홍선생 : 와우! 그러면 우리 윤아가 진짜 작가되는 거야? ^0^]
[윤아 :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그 쪽 세계는 방송되기 전까진, 수십번 엎어지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홍선생 : 경사났네~ 경사났어~ ^0^]
[윤아 : -_-;; 선, 선생님, 제 말은 다 안들으시고...]
[홍선생 : 잘될거야! 내가 팍! 파워를 불어넣어주면 이 세상에 못해낼 게 어딨냐? ^.-]
하여튼, 에너지 넘치기론 홍선생님을 따라갈 수 없다. ^^
[홍선생 : 아, 참! 너 돈 벌면 남은 학비랑 기숙사비부터 내라.^^]
김칫국 마시는 것도, 따라갈 이 없다. -_-;;;
# '수 프로덕션'은 서울에 있어서, 경남 쪽에 있는 우리 학교에서 그곳에 가려니, 토요일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유리 : 이거 어때, 언니?]
내 얘기를 들은 기숙사 룸메이트 유리가 옷을 빌려주겠다고 자청했다.
유리는 나보다 두 살 어리고, 1학년이다.
참, 예쁘고 귀여운 아이.
나를 '언니, 언니'하면서 잘 따른다. 나야말로 유리보다 부족한 게 많은데도.
[윤아 : 원피스네? 나 치마입으면 불편해, 자꾸 신경쓰이고.]
[유리 : 그래도, 여성스럽게 보여야 될 것 같다며?^^]
한바탕 옷장의 옷을 다 꺼내본 후에야 줄무늬 블라우스에, 긴 플레어 스커트로 결정했다.
[유리 : 언니, 이거. 긴장을 풀어주는 약초 몇 개 섞은 거야. 거기 들어가기 전에 씹어먹어.]
[윤아 : 땡큐 ^^;]
유리는 약초에 대해선 거의 박사급이다. 그래서 유리가 온 뒤로 학교 뒤에 있는 창고=유리의 실험실이 얼렁뚱땅 우리 학교 양호실을 겸할 때가 많다.
벌컥!
[홍선생 : 준비됐어? ^0^]
[윤아 : 헉! >.< 제발 노크 좀 하세요!!!]
[홍선생 : 같은 여자끼리 뭘 가려?]
[윤아, 유리 : -_-;;;]
[홍선생 : 오~ 윤아도 옷걸이가 쓸만하군.]
[윤아 : ^^]
[홍선생 : 나가자! 신협에 계란 납품하러 나가는 길이니까, 읍내까지 태워줄게.]
# ...서울. 2년 전 도망치듯 떠난 뒤 처음 왔다.
역시 매캐하게 오염된 공기가 나를 반긴다.
켁켁-
시골서 맑은 공기만 마시며 살다가, 도시에 오니 도시의 탁한 공기에 적응하는 게 쉽지않다.
...서울.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고통스런 기억도 있는 곳. 그런데 왜 일까, 자꾸 설렌다.
확실히 나도 홍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못말리는 단순녀가 된 것이 분명해. -_-;;;
....
'수 프로덕션'을 찾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윤아 : 실례합니다.^^]
사무직인지, 경리직인지... 책상에 앉아있던 아가씨에게 내 이름을 대고 약속 내용을 이야기하자, 회의실로 안내해줬다.
[여직원 : 조감독님 곧 오실거예요.^^]
[윤아 : 네. ^^]
회의실 문이 닫히고 혼자가 되자, 갑자기 긴장됐다.
의자에 앉으며 유리가 준 약초를 가방에서 꺼내 씹었다.
여직원이 들어오더니, 내 앞에 녹차를 내려놓았다.
[윤아 : 고맙습니다. ^^]
[여직원 : 조감독님 지금 통화중이시거든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윤아 : 예- ]
회의실을 나가는 여직원을 지나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를 본 순간, 난... 너무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다.
[민수 : 역시 너구나! ]
[윤아 : ...서, 선배! 0_0 ]
# 회의실 안...
[민수 : 이름만 보곤 긴가민가 했지. ^^]
너무 당황해서 녹차잔을 든 손이 떨렸다.
[윤아 : ..선배가 여긴 어떻게... 있어요?]
[민수 : 나? ^^;;; 아직두 감 안잡혀? 내가 조감독이야, 너랑 통화한.]
들고 있던 녹차잔을 간신히 테이블에 무사히 내려놓았다.
[윤아 : 선배가, 드라마 조감독이라구요?]
[민수 : 응. ^^ 사실은 아직 조감독까지도 못가지. 조감독의 조수쯤 될 수 있을라나? 사실 드라마쪽은 이번이 처음이야.]
[윤아 : 드라마는 영화하고 달라요!]
[민수 : 알아. 그래서 요즘 드라마를 공부하고 있어. 대학은 휴학계 냈구. 참, 넌 어디 다녀? 1학년인가? 2학년?]
[윤아 : 네?]
[민수 : 어느 대학이냐구. ^^]
[윤아 : ...선배.]
[민수 : 응. ^^]
[윤아 : 나... 아직 고등학생이예요.]
[민수 : (의아) 뭐?]
그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민수 : 네. ]
문이 열렸다.
그리고... 뜻밖의 사람.
그 사람을 본 순간, 난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맞은편 사람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그 사람은...
[선우 : 신...윤아...?]
# 호프집.
도저히 쉽게 머릿 속이, 마음이, 수습되지 않는다.
[박감독 : 와~ 진짜 그 기획안, 신작가가 쓴 거 맞아? ^^]
회의실에서 만난 사람은 민수 선배와 최선우뿐이 아니었다.
헐리우드 스캔들 메이커 배우 강현민, 액션배우 욱이 선배, 내 짝꿍이었던 나현이, ...
그리고 내게 유일하게 낯선 이는 드라마 감독인 박필덕 감독.
하지만 난 이미 인터넷에서 박감독의 사진을 몇 번 본 적 있다. 의미적인 영상 감각이 뛰어난 감독. 언젠가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난 지금 느닷없이 2년 전 좋든 싫든 알고 지냈던 이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 앞에 튀어나와서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윤아 : 네.]
[박감독 : 그래. 어쩐지, 좀 이상하긴 하드라. ^^ 그래도 대안학교 얘길 이렇게 리얼하게 쓸 수 있다면, 아마 거기 선생님인가 생각했지, 학생일줄은...핫! ^^]
[윤아 : ...]
최선우,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채 술만 마시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다.
나는 일부러 박감독쪽으로 몸의 방향을 틀었다.
회의실에서 서로를 보기만 하며 어리벙벙해진 사람들을, 호프집으로 이끈 건 박감독이었다.
술만큼 친해지기 쉬운 게 없다며.
[윤아 : 그런데 박감독님은 지금까지 슬픈 사랑얘기만 해오지 않으셨어요? 왜 갑자기... 학원물에 관심이 생기셨어요?]
[박감독 : 아... 맞아. ^^ 그게 말야, 우리 큰 애가 이번에 고등학교 들어갔거든.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학원물도 해보고 싶더라구. 요즘 애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 궁금도 하고. ^^]
[윤아 : 예에- 굉장히 가정적이시네요. 제가 알기론, 드라마 감독님은 집에선 아예 하숙생이라던데.]
[박감독 : 하숙생이 다 뭐야. 내 선배 아들 녀석 하나는, 지 아버지 직업란에 원양어선 탄다고 했대!]
[윤아 : 네에?]
[박감독 : 하두 집에 잘 안들어가니까, 그 선배 와이프도 남편이 원양어선 탄 거려니- 하고 생각한대, 글쎄.^^ 그러니 그 아들 놈이 아버지 직업을 그렇게 쓸 수 밖에.]
와아- 왁자지껄 모두 웃음이 터졌다.
[윤아 : 혹시 그 선배 감독이라는 분, 대하사극같은 거 하세요?]
[박감독 : 이야~ 통밥 끝내준다! 맞어!]
[윤아 : 이번 드라마, 감독님이 직접 만드실건가요?]
[박감독 : 어. ^0^]
[윤아 : 그런데 감독님 얼마 전에 제작 부장으로 승진하셨잖아요. 부장은... 드라마 제작 직접 안하는 걸로 아는데요.]
[선우 : ! ]
[박감독 : (놀란) 신작가!]
[윤아 : ...네.]
[박감독 : 신작가, 우리 방송국 스파이지? 그걸 어떻게 잘 알아?]
[윤아 : ^^;;; 인터넷에서 pd협회 간행물에 실린 감독님 사설을 읽었어요. 그런 방송국의 관료주의 시스템 싫다구... 쓰신 거요.]
[박감독 : ^_^ 그랬구나... 그래, 나 아직 현역으로 뛰고 싶어. 난 딱 현장 체질이거던, 책상에 앉아서 제작비 따지며 계산기 두드리는 거 영 아냐-]
[윤아 : 그래도 행정일도 같이 하시려면, 이번 드라마는...]
[박감독 : 부장 대리는 폼으로 있나? ^^]
[윤아 : =_=;;;]
[박감독 : 잘됐지, 잘됐지? ^^ 내가 하기로 하면, 부장 결재는 무조건 통과잖아! 내가 부장이니까 ㅎㅎ]
[윤아 : -_-''''']
방송국마다 직위 호칭이 다르긴 하지만... 제작 프로듀서라고도 하는 제작 부장급 책임이 만만치 않을텐데... 저렇게 철없이 굴어도 되나?
[나현 : 근데 넌 갑자기 웬 드라마야? 너 다큐영화 하고 싶어했잖아.]
[윤아 : ..으응, 그렇게 됐어. ^^;;;]
[나현 : 어쨌든 너 다시 보니까 진짜, 진짜, 너무 반갑다! ^0^]
[윤아 : 나두! ^^;;]
나현인 매니지먼트 학원을 무사히 수료하고, 부모님을 설득해 대학 진학을 제끼고, 욱이 선배의 막내 매니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욱 : 나두.]
최선우만큼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던 욱이 선배가 툭- 한 마디 던진다.
욱이 선배, 액션 배우로 자리잡아가면서 많이 터프해진 것 같다. 대학은 영화때문에 휴학중이라고 했다.
[현민 : 야야- 젊은 니들끼리만 놀지말고, 나도 끼워줘~^^]
[윤아 : 그런데... '수 프로덕션', 사기 아니예요? 어떻게 이렇게 모일 수 있죠?]
[나현 : 어머, 몰랐어?]
[윤아 : 응?]
[나현 : 수 프로덕션, 태석 영화사 계열이야.]
[윤아 : 뭐?!]
[민수 : (차분히) 그리고, 앞으로 만들 드라마가 뭐든간에 여기 있는 연기자들, 모두 출연 내정 돼있는 거야.]
뭐?!
최선우, 강현민, 한 욱, ... 모두 드라마에 출연한다구?
[민수 : 아, 유선생님도 있지.]
[윤아 : ..혹...시, 유...성린... 선생님?]
[나현 : 응. ^^]
[민수 : 어때? 이 정도면 화려한 걸 넘은 대단한 캐스팅 아냐? ^^ 니가 기획안에 쓴 것처럼, 선생님 배역은 이 A급 연기자들로 충분할 것 같은데.]
!!!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더불어 마구 엉킨 내 머릿 속은 수습이 전혀 안 될 예정이다.
# 학교로 돌아온 난, 수시로 꼬돌이만 쫓아다니며 애궂게 화풀이해대고 있다.
수업 들어가봤자, 머릿 속에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을게 분명했으므로..
양계장 청소와 계란을 닦고 크기별로 나눠 포장하는 일로 수업 출석일수를 대처했다. (청솔고는 자활학교라 학교운영비의 대부분을 양계장 운영으로 유지한다)
[홍선생 : 헤이~ 신윤아! ^^]
홍선생님은 내가 서울에서 돌아온 후 내 얼굴에서 뭘 읽은 건지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있다.
[윤아 : 네!]
[홍선생 : 김선생하고 읍내 좀 갔다올래? 이모가 아파서, 대신 장봐야겠다.]
[윤아 : 그럴게요.]
학교 식당에서 우리 식사 세 끼를 준비해주는 전여사를 우리는 '이모'라고 부른다.
껄렁거리기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포장마차나 술집에 가서 그 곳 여주인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싱겁게 한 두명이 장난처럼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냥 그렇게 정착됐다.
이모대신 장보는 건 김선생님 혼자도 충분할텐데, 굳이 날 묻혀보내는 이유는, 나보고 바람이나 쐬고오라는 배려일 거다.
# 김선생님을 도와 신협에 납품하는 계란을 신협 건물 안으로 날랐다.
김선생님이 신협 사무실로 가서 거래명세서를 작성하는 동안 시장에 들러 이모가 적어준 음식 재료들을 찾아 구입했다.
계란을 싣고 온 트럭에 장 본 것들을, 차 안에 넣어두려고 신협 건물 옆에 주차해놓은 트럭이 있는 곳에 왔을때, 순간, 내가 본 것에 놀라 트럭 뒤로 몸을 숨겼다.
...민수 선배와 박감독님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뭔가 묻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던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냥 가버린다.
대체 여긴 왜 온거지?
[박감독 : (마침 신협 건물을 나오고 있는 김선생을 붙잡고) 저, 여기 청솔고등학교로 가는 길이 어느 쪽인지 아세요?]
오...마이갓.
[김선생 : 제가 청솔고 선생인데요. 어떻게...]
[박감독 : ^0^ 아, 저 그럼... 신윤아라고 거기 있죠?]
[김선생 : 예에- 저희 학생입니다만... 무슨 일로... 우리 윤아는 사고같은 거 칠 애 아닌데.]
(윤아 : -_-;;;;;)
[민수 : (꾸벅) 저흰 '수 프로덕션'의 박감독님과 조감독입니다. 윤아가... 신윤아씨하고 드라마 제작 건으로 의논할 게 있어서요. 꼭 만나야되는데요, 학교에 있나요?]
[김선생 : 아...그러세요. 윤아, 저하고 여기 같이 나왔는데, 곧 여기로 올겁니다.]
[박감독 : (허겁지겁) 어디갔는데요!]
[김선생 : 트럭 있는 곳으로 올거니까, 그 쪽으로 가서 기다리시죠. 근데 드라마... 제작이라뇨?]
세 남자의 발자욱 소리가 내가 숨어있는 트럭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 다른 곳으로... 가야... 안들킬텐데...
[박감독E : 아, 모르세요?]
당연히 김선생님은 모르지...
드라마 기획안 건은 내가 진작에 유리하고 홍선생님 입단속을 해놨으니까. 뭐라도 성사된 다음에야, 알려도 알리자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허둥거리며 걸음을 옮기다가 그만 장바구니를 놓치고 말았다.
[윤아 : 어어어....]
양파가 장바구니에서 튀어나가 저만치 굴러가는 것을 쫓아갔다.
누가 먼저 잽싸게 집어준다.
[윤아 : 고맙습...]
자동적으로 인사하며 올려다봤다.
[박감독 : 거기 학굔 학생을 이렇게도 부려먹나? 공부는 안가르치고?]
[윤아 : 가, 감독님. -_-;;;]
# 김선생님은 트럭을 운전하면서 보조석에 앉은 내 표정을 자주 살폈다.
대안학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정규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의 최후의 선택....이다.
(요즘은 거의 안그렇지만)
그래서 가끔 예상치못한 험한 일을 겪는 경우도 다반사다.
최근엔 해준이 아버지 경우가 그랬다.
해준인... 아버지 폭력과 학교의 왕따로 시달리다가 엄마의 필사적인 도움으로, 이곳에 왔다. 자기가 어디로 갔는지 - 아버지가 엄마를 닥달하며 자기 몫까지 더해서 엄마를 때릴 거라며, 자주 우울해했다.
그런데 어느 밤중에 해준이 아버지가 느닷없이 학교에 나타났다.
기숙사 안은 발칵 뒤집혔고, 그 뒤로 선생님들은 학교에 관한 방송이나 기사가 나가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래서... 김선생님은 지금 우리 학교 트럭 뒤로 따라오고 있는 자가용을(민수 선배와 박감독이 타고 있는) 경계하고 있다.
[김선생 : 윤아야-]
[윤아 : 네.]
[김선생 : 학교로 데리고 가도 괜찮은거야? 저 사람들?]
[윤아 : 학교 분위기만 보고 가겠다는데, 어쩌겠어요.]
[김선생 : 니가 불편해보인다.]
[윤아 : 네... 하지만 경계하실 필요는 없을거예요.]
[김선생 : ...]
하긴, 수시로 상담한답시고, 무조건 전학받아달라고 떼쓰며 오는 사람들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나 학생들도 낯선 사람이 들이닥쳐도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쌩까는 학생들에게 놀라는 방문객들이 더 많다. -_-;;;
그나저나 홍선생님이 어떻게 나올지, 그게 걱정이다.
저들이 학교에 가서 괜히 드라마니 뭐니 떠들면 나의 드라마 기획안에 대해 청솔고의 모든, 한 명도 빠짐없이 알게 되는 건 (꼬돌이도 포함해서 -_-;) 반나절로도 충분하다.
# 민수 선배는 학교 여기저기를 스냅사진으로 찍어보겠다고, 학생회장인 한기 오빠 안내를 받으며 교무실을 나갔고.
난, 박감독과 학교 뒷편 개울둑 근처로 갔다.
[윤아 : 전 분명히 민수 선배 이메일로 제 의사 전했는데요. 기획안은 팔 수 있다구요. 지금까지 써놓은 대본 초고도 얹어서, 기획안 값만 받고. 그렇지만 작가로 들어가진 않겠다구요.]
[박감독 : 알아.]
박감독은 땅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박감독 : 공기 좋네. ^^]
[윤아 : 감독님-]
박감독은 메고 온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한 웅큼의 A4종이 묶음을 내게 내밀었다.
[박감독 : 읽어봐, 난 한숨 자야겠다. 여기 오느라 아침부터 뻐꾸기 좀 날렸더니, 무지 졸리네.]
박감독은 벌렁 눕더니, 가방을 베고 모자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정말 자려는 건지, 뭘 생각하려는 건지...
박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종이 묶음을 내려다봤다.
<드라마 '비상' 1회>
...대본?
극본란에 낯선 이름이 찍혀있다.
내가 쓰지 않은, 다른 작가가 쓴 드라마 '비상' 대본?
....
여러 작가가 하나의 스토리를 두고 쓴 다양한 '비상' 1회 대본들을 읽었다.
다 읽고, 한숨 한 번 폭 내쉬었을 때 박감독이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박감독 : 다 읽었어? ^^]
[윤아 : ...네.]
[박감독 : 맘에 안들지?]
[윤아 : ...네.]
박감독은 갑자기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박감독 : 나두 맘에 안들어.]
[윤아 :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어떻게 기획안에서 줄거리도 상세하게 쓰인 스토리를 두고 이렇게 엉망으로 자기 멋대로 써요? 아니, 멋대로 써도, 좋아요. 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의도한 알맹이가 하나도 안들어가있잖아요. 대안학교에 어떤 상처를 갖고 있는 학생들이 들어와 어떻게 변화하는지, 자아 정체성 방황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고 교사들은 그걸 어떻게 지켜봐주는지! 게다가 주인공인 박상현 교사가 막연한 교사의 사명감만 갖고 들어왔다가 어떻게 깨지는지, 전혀! 또, 현재 한국의 대안학교 문제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전혀 파악도 못하고 수박 겉핡기로만 대충 그럴듯한 에피소드만 엮으면 다예요? 시청자가 바보냐구요! 무늬만 대안학교면 되냐구요! 이따위로 가다간 10회도 방송못하고 조기종영될걸요!]
너무 열받아서 따따부따- 내뱉고서야, 겨우 숨을 쉬었다. 하아~ -_-;;
[박감독 : (딴청하며) 그래서 신작가 찾아온거야.]
[윤아 : ...]
[박감독 : 우리, 같이 하자.]
[윤아 : 아시잖아요, 전 단막극 하나 못한 초짜예요. 방송국 데스크에서 결재해줄리 없어요. 아니, 그보다 수 프로덕션에서도 통과가 될까요? 저의 뭘 믿구요?]
[박감독 : ...^_^]
[윤아 : 그냥 이 기획안 덮으세요. 다른 걸로 가시면 되잖아요. 감독님한테 가는 다른 드라마 기획안도 수두룩할텐데요.]
[박감독 : (머리 긁적거리며) 고집 무쟈게 쎄네?]
[윤아 : ...솔직히, 자존심 상해요. 이거 보니까. 제 머릿 속을 다른 사람들이 맘대로 열어서 지멋대로 엉망으로 훼집어 놓은 걸 고스란히 당한, 엄청 드러운 기분이라구요.]
들고 있던 대본들을 휙- 던져버렸다.
"메에에~ "
엇!
세상에, 저 녀석은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야?
담배가게에서 키우는 흑염소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던진 대본을 척! 덥썩 받아 씹기 시작했다.
[윤아, 박감독 : 아, 안됏!!!]
나도, 박감독도 후다닥 뛰어가서 흑염소의 입에 물린 대본을 잡아당겼으나, 이 녀석도 모처럼의 포식을 놓칠 수 없는지 기를 쓰고 버텼다.
박감독이 먼저 대본을 놓아버렸다.
[박감독 : 냅 둬! 어차피 작가들 컴퓨터에 파일로 있을텐데 뭐.]
[윤아 : 하, 하지만...]
아무리 맘에 안들었어도, 내 속을 뒤집어 놓은 대본이래도, 그 작가들은 자기 에너지를 모두 쏟아 쓴 걸텐데...
[박감독 : (흑염소가 먹는 거 보며) 뒷처리하기 난감했는데, 잘됐지. ^^ (흑염소에게) 너나 많이 먹어라.]
[윤아 : 아마 저 염소, 내일 배탈날 거예요. 영양가없이 시끄러운 걸 먹어서.]
[박감독 : -_-;;; ]
[윤아 : (한숨) 후우-]
[박감독 : 근데 말야, 나나 내 선배 감독들 경험상으로 신인 작가가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지가 미쳐서 쓰는 첫작품은 100% 대박감이야. 처음부터 감독이 이러자 저러자 해서 작가가 거기에 맞춰 쓰는 그런 건 작가 역량이 딸리면 중간부터 완전 초개판 아니면 울궈먹기 짜집기밖에 안나오거든. 그게 신작가 대본이랑, 다른 작가 대본 차이야.]
[윤아 : ...]
[박감독 : 신작가 미쳤잖아, 그거 쓰면서. 하고 싶잖아, '비상'. 아냐?]
[윤아 : (망설이는) ...]
[박감독 : 이 바닥 사람들, 그런덴 개코야. 우리가 놓치면, 다른데서 잡으려 들걸. (윤아 슬쩍 보며) 그럴수야 없지, 우리가 먼저 찜했는데.]
[윤아 : ...저도 감독님하고 하고 싶었어요. 감독님 드라마... 깔끔하고 의미있는 영상, 저 많이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안되겠어요. 저야 어차피 그 기획안을 매니지먼트사에 보내놓고도 별 기대같은 거 없었구요.]
박감독은 곤란하다는 듯이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나를 한 번 보고, 아직도 대본을 질겅질겅 먹고 있는 흑염소를 빤히 쳐다보더니 가방에서 구식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박감독 : 민수야? 어떻게 그림 좀 나올만해? ... 이리로 좀 와라. 학교 뒷편에 있는 개울둑이야.]
박감독은 핸드폰을 끊고, 다시 벌렁 누워버렸다.
[박감독 : 아무래도 신작가, 민수한테 얘기들을 게 있을 것 같네.]
[윤아 : 네?]
[박감독 : 민수 오면 얘기해. 에잇, 난 더 자야겠다.]
[윤아 : -_-;;;]
민수 선배는 근처에 있었는지, 금방 모습을 나타냈다.
[윤아 : (박감독 가리키며) 원래 이러셔?]
[민수 : (박감독 내려다보더니) ...일이 안풀리면, 일단 태평하게 누워서, 꿈 속에서 해결책을 찾으시지.]
[윤아 : -_-;;;]
[민수 : 감독님이 널 설득 못하셨구나.]
민수 선배가 나무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윤아 : ... 대체 누가 내 기획안으로 가려고 미는거야?]
[민수 : (잠시 머뭇거리더니) ...모두.]
[윤아 : 모두?]
[민수 : ...사실, 우리 회사 좀 힘들어.]
[윤아 : ...힘들..다니?]
[민수 : 영화 만든 것, 여러 개 실패했고. 수입해 배급한 것도 그다지 수익을 못냈어. 드라마쪽으로 분야를 확장해서 프로덕션도 열었지만, 아직까지 방송국과 납품 계약 한 건도 못했어.]
[윤아 : (놀란) ...그, 그럴리가... 선배네 영화사, 작년 해외 영화제에서 상도 몇 번 받았잖아?]
[민수 : 작품성이 무조건 흥행하고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
[윤아 : ...]
[민수 : 넌 이런 시골구석에 있으면서도, 들을 건 다 듣고 있었구나.]
[윤아 : 그렇다고 20년 넘게 잘 꾸려온 회사가 그렇게 쉽게 문닫겠어? 게다가 영화사처럼 수명이 짧은 곳도 없는데, 태석 영화사처럼 오래 된 곳이...]
[민수 : 아무리 이름이 있으면 뭐 해, 종로의 종로 서점도 수십년 쌓아온 그 명성을 못지키고 간판내렸잖아. 회사나 가게는 수익을 내야 돌아가는거야. 진짜 회사 사정은 사장이나 알지, 밖에서 보는 사람들이 뭘 알아.]
[윤아 : ...선배.]
민수 선배, 예전에 아버지하고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진지하게 영화사를 걱정하는 얘기 들으니... 웬지 낯설다.
이런 게...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거겠지.
[민수 : 방송국 쪽 드라마 부장급들한테 기획안을 슬쩍 언질했는데, 반응이 괜찮아. 무엇보다 캐스팅때문에라도, 일단 계약은 할 수 있을거야. 게다가 '비상'이 원래 기획대로 갈 수만 있다면 1년 넘게 주말 시츄에이션으로 가니까, 회사 재정에 숨통도 트여줄 수 있고. 주주들 설득하는데도 이것만큼 적합한 카드가 없어. 그래서 이번 캐스팅에 삼촌들이나 유선생님까지 나선 건, 일단 회사부터 살려놓자는 의기투합 차원이야. 너한테도 이런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어. 웬만한 기성 작가나 유명 감독도 이렇게 한꺼번에 초호화 캐스팅은 절대 할 수 없을테니까.]
[윤아 : ... 뭐가 그렇게 복잡해.]
[민수 : 그런데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모두 니 대본으로 가고 싶어해.]
[윤아 : ....]
[민수 : 사실, 나도 니 대본 보고 많이 놀랬다.]
[윤아 : ... 그랬을거야.]
난... 갑자기 민수 선배의 태도에 슬퍼졌다.
[윤아 : 선배... 나 지금 선배 모습 무지 싫다.]
[민수 : ...?]
[윤아 : 나같이 별 것도 아닌 애한테, 숙이고 들어오는 거.]
[민수 : ...! ]
[윤아 : 예전의 선배같았음, 지금 내가 선배한테 은근슬쩍 말놓는 거 용납안했을거야. 여기가 아무리 내 홈그라운드라해도.]
[민수 : ...! ]
...결심이 섰다.
[윤아 : 알았어요. 선배한테 내 허접한 재주가 도움이 된다면, 해야지 어쩌겠어.]
[민수 : ...정말이야?]
[윤아 : 선배로 명령했다면, 끝까지 버틸 수 있었는데. 선배가 이렇게 나오니까, 도저히 안되잖아.]
[민수 : 너 근데 진짜 작정하고, 말 놓기야?]
[윤아 : ^_^ 겨우 한 살 많은 걸로 유세떨면, 우리 학교에선 (주먹 불끈 쥐어보이며) 죽음이야.]
[로맨스 소설]<<흡혈귀 마녀와 동침을II-05>>
[로맨스 소설] << 흡혈귀 마녀와 동침을II - 05 >>
쓰는 이 : 연지바른 마녀(mskim0920@nate.com)
*등장인물*
-신윤아(여, 20세, 화자)
-최선우(남, 60세) : 아시아 대 배우, 엔터테인먼트, 푸른 극장 대표
-이민수(남, 21세)
-한 욱(남, 21세)
-지나현(여, 20세)
-이태석(남, 62세) : 태석 영화사 대표
-강현민(남, 51세)
-유성린(여, 60세) : 선우 약혼녀, 뮤지컬 배우
-조유리(여, 18세)
-우해준(남, 18세)
-진한기(남, 25세)
그 외...
#
1~4회 줄거리
여고생 윤아는 영화촬영장과 푸른 극장에서 대배우 선우와 만나고,
강간과 낙태, 부모의 제사 등으로 힘든 과거를 선우에게서 위로받으며
그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선우는 윤아가 자신의 죽은 아내와 너무나 닮았기에,
아내의 환생이 아닐까 하는 기대로 윤아를 가까이 하지만,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윤아의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면에 끌린다.
선우는 자신의 혼란을 끝내기 위해, 윤아의 앞날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구걸하는 윤아를 냉정하게 내친다.
그러나 선우가 해외공연을 떠나기 전,
선우는 아내의 옷을 입은 윤아를 아내로 착각하고 안는다.
착각에서 깨어난 선우는 미성년자인 윤아를 안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출국하고.
윤아는 선우의 아이를 자연 유산하고, 자살시도한다.
그리고...
2년 후.
#
[윤아 : 어쭈~ 니가 그렇게 날 째려보면 어쩔건데?]
늦은 오후,
난 싸리비를 들고,
양계장 안에서 수탉 한 마리와 눈싸움 중이다.
교장선생님을 비롯해 다른 학생들이
'꼬봉'이라 부르는 이 수탉은
우리 양계장에서 가장 정력이 좋은 놈이다.
하지만 난 '꼬돌'이라고 부른다.
꼬봉이 뭐냐, 꼬봉이. 쳇.
하여튼 이 녀석은 나하고 무슨 웬수졌다고,
나한테만은 사사건건 개긴단 말야.
지가 사는 곳을 청소해준대도,
저렇게 피하지않고 떡 버티면서
날지도 못하는 두 날개를 퍼덕퍼덕거리는 이유가
대체 뭐냔 말야.
너 이러다 조만간 내 손에 잡혀서
후라이드 치킨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윤아 : (싸리비 휘두르며) 안비켜? 안비켜?]
[꼬돌 : (버티며) 꼬꼬꼬-]
[윤아 : 이걸 확-!!!]
[꼬돌 : (퍼덕퍼덕) 꼬꼬댁!]
[해준E : 누나-]
돌아보니, 해준이가 양계장 밖에서
싱긋 웃으며 나오라고 손짓한다.
[윤아 : (양계장 나오며) 왜?]
[해준 : ^^ 전화왔어, 남자던데?]
[윤아 : 남자?]
[해준 : 응. ^^]
해준인 나와 같은 청솔고교 2학년이다.
남자애가 키만 멀대같이 크고,
얼굴은 허얘서, 겁이 엄청 많다.
한번은 같은 반 남자애들 둘이
주먹다짐하다 피를 흘렸는데,
그걸 보고 기절까지 했다.
그나저나 나한테 남자 전화라니?
여기 연락처는 큰 오빠도, 작은 오빠도 모르는데.
누구지?
#
교무실에 들어가니,
항상 그렇듯 학생과 선생이 뒤섞여
시끄럽고 복잡스럽다.
[홍선생 : 그러게 담배 내기를 했으면, 지켜야지.
왜 안주는건데?]
[학생1 : (실실 웃으며) 담배가 없으니까 못주죠.]
[홍선생 : 담에 생기면 꼭 갚어.]
[학생2 : 그러다가 또 떼먹는다니까요!
선생님이 받아주세요.]
[홍선생 : 내가 무슨 사채 대신 받아주는 사람이냐? ^^
니가 알아서 받어. 그리구 니들 이번 기회에 담배 좀 안끊냐?]
[학생1 : 그 좋은 걸 왜 끊어요? ^.^]
선생님들 책상위를 두리번거리니
홍영진 교장 선생님 자리의 수화기가
책 쌓인 곳 위에 따로 얹혀져있다.
[윤아 : (다가가며) 제 전화예요?]
[홍선생 : 어. ^^]
홍영진, 여,
청솔고등학교 교장선생님.
50대 후반이지만,
긴 퍼머머리를 질끈 묶고
우리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 어디든 무조건 달려가고 보는
우리의 열혈 선생님.^^
내게 수화기를 건네며,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며
슬쩍 내게 밀착하더니
수화기에 귀를 갖다댄다.
[윤아 : + _ + 선생니임~! ]
[홍선생 : 헤헤- ^^;;; 궁금해서 그러지이~^0^]
아, 홍선생님 소개에 빼먹은 게 있다.
애교도 아주 많은 귀여운 선생님이란 거. ^^;;;;
[윤아 :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남자 목소리가 즉각 넘어왔다.
[남자F : 신윤아씨 본인이십니까?]
[윤아 :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남자F : 아,예. 여긴 '수 프로덕션'이라고 하는데요.
'비상(飛上:날아오름)'이라는 드라마 기획안 쓰신 분 맞죠?]
[윤아 : ...네, 맞는데요. 그런데...]
전혀 예상치못했던 이야기에
잠시 당황했다.
[윤아 : 전 프로덕션에 기획안을 보낸 적이 없는데요.
작가 매니지먼트사에 한번 보낸 것밖에...]
[남자F : 아, 예. 거기서 읽고, 연락드리는 겁니다.]
[윤아 : 예에-]
그제서야 납득이 갔다.
작가 매니지먼트사면,
방송국 PD나 드라마 제작하는 외주프로덕션에서
작가들의 시놉들을 보려고
자주 들락거릴터였다.
[남자F : 그 기획안으로 한번 만났으면 하는데요.
언제 시간되세요?]
[윤아 : 예에- 저... 죄송하지만 제가 평일엔 시간이 안나서요.]
[남자F : 그럼, 이번 주 토요일 오후는 어떠세요?]
[윤아 : 예에- 좋아요.]
토요일도 오전 수업이 있지만,
할 수 없지... 조퇴해야겠다.
[남자F : 그럼, 제가 여기 기획안에 있는 작가님 이메일로
프로덕션 약도하고 연락처를 보내드리죠.]
[윤아 : 예, 예. 저.. 그럼 가서 누굴 찾으면 되나요?]
[남자F : 그냥 조감독 찾으세요,
아직 조감독이 저 한명이라서요.]
[윤아 : 예, 알겠습니다.]
[남자F : 그럼 그 날 뵙죠.]
딸깍, 전화가 끊겼다.
너무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진행된 이야기라
멍했다.
[홍선생 : (윤아 옆구리 쿡쿡찌르며) 뭐야? 어? 뭐야? ^^]
[윤아 : (수화기 내려놓으며) 제가 예전에 드라마 기획안 쓴 거, 기억나세요?]
[홍선생 : 음- (생각하다가) 글쎄... 니가 무지 많이 쓴 건 기억난다.
내가 열심히 읽어주고도, 기억나는 내용이 없어서 탈이지만.
어떤 거 얘기하는 건데?]
[윤아 : -_-;;;;
우리 대안학교를 배경으로 쓴 거요, 제목 '비상'.
그 땐 좋다고 하시구서.
정말 하나두 기억 안나세요?]
[홍선생 : 하여튼, 그래서?]
[윤아 : 제 기획안이 맘에 드는 곳이 있나봐요.
한번 만나자네요.]
[홍선생 : 와우! 그러면 우리 윤아가 진짜 작가되는 거야? ^0^]
[윤아 : 아직 아무것도 몰라요.
그 쪽 세계는 방송되기 전까진,
수십번 엎어지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홍선생 : 경사났네~ 경사났어~ ^0^]
[윤아 : -_-;; 선, 선생님, 제 말은 다 안들으시고...]
[홍선생 : 잘될거야! 내가 팍! 파워를 불어넣어주면
이 세상에 못해낼 게 어딨냐? ^.-]
하여튼, 에너지 넘치기론 홍선생님을 따라갈 수 없다. ^^
[홍선생 : 아, 참! 너 돈 벌면 남은 학비랑 기숙사비부터 내라.^^]
김칫국 마시는 것도,
따라갈 이 없다. -_-;;;
#
'수 프로덕션'은 서울에 있어서,
경남 쪽에 있는 우리 학교에서 그곳에 가려니,
토요일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유리 : 이거 어때, 언니?]
내 얘기를 들은
기숙사 룸메이트 유리가
옷을 빌려주겠다고 자청했다.
유리는 나보다 두 살 어리고,
1학년이다.
참, 예쁘고 귀여운 아이.
나를 '언니, 언니'하면서 잘 따른다.
나야말로 유리보다 부족한 게 많은데도.
[윤아 : 원피스네?
나 치마입으면 불편해, 자꾸 신경쓰이고.]
[유리 : 그래도, 여성스럽게 보여야 될 것 같다며?^^]
한바탕 옷장의 옷을 다 꺼내본 후에야
줄무늬 블라우스에, 긴 플레어 스커트로 결정했다.
[유리 : 언니, 이거.
긴장을 풀어주는 약초 몇 개 섞은 거야.
거기 들어가기 전에 씹어먹어.]
[윤아 : 땡큐 ^^;]
유리는 약초에 대해선 거의 박사급이다.
그래서 유리가 온 뒤로
학교 뒤에 있는 창고=유리의 실험실이
얼렁뚱땅 우리 학교 양호실을 겸할 때가 많다.
벌컥!
[홍선생 : 준비됐어? ^0^]
[윤아 : 헉! >.< 제발 노크 좀 하세요!!!]
[홍선생 : 같은 여자끼리 뭘 가려?]
[윤아, 유리 : -_-;;;]
[홍선생 : 오~ 윤아도 옷걸이가 쓸만하군.]
[윤아 : ^^]
[홍선생 : 나가자!
신협에 계란 납품하러 나가는 길이니까,
읍내까지 태워줄게.]
#
...서울.
2년 전 도망치듯 떠난 뒤
처음 왔다.
역시 매캐하게 오염된 공기가
나를 반긴다.
켁켁-
시골서 맑은 공기만 마시며 살다가, 도시에 오니
도시의 탁한 공기에 적응하는 게 쉽지않다.
...서울.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고통스런 기억도 있는 곳.
그런데 왜 일까, 자꾸 설렌다.
확실히 나도 홍선생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못말리는 단순녀가 된 것이 분명해. -_-;;;
....
'수 프로덕션'을 찾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윤아 : 실례합니다.^^]
사무직인지, 경리직인지...
책상에 앉아있던 아가씨에게
내 이름을 대고 약속 내용을 이야기하자,
회의실로 안내해줬다.
[여직원 : 조감독님 곧 오실거예요.^^]
[윤아 : 네. ^^]
회의실 문이 닫히고 혼자가 되자,
갑자기 긴장됐다.
의자에 앉으며
유리가 준 약초를
가방에서 꺼내 씹었다.
여직원이 들어오더니,
내 앞에 녹차를 내려놓았다.
[윤아 : 고맙습니다. ^^]
[여직원 : 조감독님 지금 통화중이시거든요.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윤아 : 예- ]
회의실을 나가는 여직원을 지나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를 본 순간,
난... 너무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다.
[민수 : 역시 너구나! ]
[윤아 : ...서, 선배! 0_0 ]
#
회의실 안...
[민수 : 이름만 보곤 긴가민가 했지. ^^]
너무 당황해서 녹차잔을 든 손이
떨렸다.
[윤아 : ..선배가 여긴 어떻게... 있어요?]
[민수 : 나? ^^;;; 아직두 감 안잡혀?
내가 조감독이야, 너랑 통화한.]
들고 있던 녹차잔을 간신히
테이블에 무사히 내려놓았다.
[윤아 : 선배가, 드라마 조감독이라구요?]
[민수 : 응. ^^ 사실은 아직 조감독까지도 못가지.
조감독의 조수쯤 될 수 있을라나?
사실 드라마쪽은 이번이 처음이야.]
[윤아 : 드라마는 영화하고 달라요!]
[민수 : 알아. 그래서 요즘 드라마를 공부하고 있어.
대학은 휴학계 냈구.
참, 넌 어디 다녀? 1학년인가? 2학년?]
[윤아 : 네?]
[민수 : 어느 대학이냐구. ^^]
[윤아 : ...선배.]
[민수 : 응. ^^]
[윤아 : 나... 아직 고등학생이예요.]
[민수 : (의아) 뭐?]
그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민수 : 네. ]
문이 열렸다.
그리고... 뜻밖의 사람.
그 사람을 본 순간,
난 나도 모르게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맞은편 사람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의... 그 사람은...
[선우 : 신...윤아...?]
#
호프집.
도저히 쉽게
머릿 속이, 마음이,
수습되지 않는다.
[박감독 : 와~ 진짜 그 기획안, 신작가가 쓴 거 맞아? ^^]
회의실에서 만난 사람은
민수 선배와 최선우뿐이 아니었다.
헐리우드 스캔들 메이커 배우 강현민,
액션배우 욱이 선배,
내 짝꿍이었던 나현이, ...
그리고 내게 유일하게 낯선 이는
드라마 감독인 박필덕 감독.
하지만 난 이미 인터넷에서
박감독의 사진을 몇 번 본 적 있다.
의미적인 영상 감각이 뛰어난 감독.
언젠가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기회가 빨리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쨌든, 난 지금
느닷없이 2년 전 좋든 싫든 알고 지냈던 이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내 앞에 튀어나와서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윤아 : 네.]
[박감독 : 그래. 어쩐지, 좀 이상하긴 하드라. ^^
그래도 대안학교 얘길 이렇게 리얼하게 쓸 수 있다면,
아마 거기 선생님인가 생각했지, 학생일줄은...핫! ^^]
[윤아 : ...]
최선우,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채
술만 마시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다.
나는 일부러 박감독쪽으로 몸의 방향을 틀었다.
회의실에서 서로를 보기만 하며
어리벙벙해진 사람들을,
호프집으로 이끈 건 박감독이었다.
술만큼 친해지기 쉬운 게 없다며.
[윤아 : 그런데 박감독님은 지금까지 슬픈 사랑얘기만
해오지 않으셨어요?
왜 갑자기... 학원물에 관심이 생기셨어요?]
[박감독 : 아... 맞아. ^^
그게 말야, 우리 큰 애가 이번에 고등학교 들어갔거든.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학원물도 해보고 싶더라구.
요즘 애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 - 궁금도 하고. ^^]
[윤아 : 예에- 굉장히 가정적이시네요.
제가 알기론, 드라마 감독님은 집에선 아예 하숙생이라던데.]
[박감독 : 하숙생이 다 뭐야.
내 선배 아들 녀석 하나는,
지 아버지 직업란에 원양어선 탄다고 했대!]
[윤아 : 네에?]
[박감독 : 하두 집에 잘 안들어가니까,
그 선배 와이프도 남편이 원양어선 탄 거려니- 하고 생각한대, 글쎄.^^
그러니 그 아들 놈이 아버지 직업을 그렇게 쓸 수 밖에.]
와아- 왁자지껄 모두 웃음이 터졌다.
[윤아 : 혹시 그 선배 감독이라는 분,
대하사극같은 거 하세요?]
[박감독 : 이야~ 통밥 끝내준다! 맞어!]
[윤아 : 이번 드라마, 감독님이 직접 만드실건가요?]
[박감독 : 어. ^0^]
[윤아 : 그런데 감독님 얼마 전에 제작 부장으로 승진하셨잖아요.
부장은... 드라마 제작 직접 안하는 걸로 아는데요.]
[선우 : ! ]
[박감독 : (놀란) 신작가!]
[윤아 : ...네.]
[박감독 : 신작가, 우리 방송국 스파이지? 그걸 어떻게 잘 알아?]
[윤아 : ^^;;; 인터넷에서 pd협회 간행물에 실린 감독님 사설을 읽었어요.
그런 방송국의 관료주의 시스템 싫다구... 쓰신 거요.]
[박감독 : ^_^ 그랬구나... 그래, 나 아직 현역으로 뛰고 싶어.
난 딱 현장 체질이거던, 책상에 앉아서 제작비 따지며 계산기 두드리는 거 영 아냐-]
[윤아 : 그래도 행정일도 같이 하시려면, 이번 드라마는...]
[박감독 : 부장 대리는 폼으로 있나? ^^]
[윤아 : =_=;;;]
[박감독 : 잘됐지, 잘됐지? ^^
내가 하기로 하면, 부장 결재는 무조건 통과잖아!
내가 부장이니까 ㅎㅎ]
[윤아 : -_-''''']
방송국마다 직위 호칭이 다르긴 하지만...
제작 프로듀서라고도 하는 제작 부장급 책임이 만만치 않을텐데...
저렇게 철없이 굴어도 되나?
[나현 : 근데 넌 갑자기 웬 드라마야?
너 다큐영화 하고 싶어했잖아.]
[윤아 : ..으응, 그렇게 됐어. ^^;;;]
[나현 : 어쨌든 너 다시 보니까
진짜, 진짜, 너무 반갑다! ^0^]
[윤아 : 나두! ^^;;]
나현인 매니지먼트 학원을 무사히 수료하고,
부모님을 설득해 대학 진학을 제끼고,
욱이 선배의 막내 매니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욱 : 나두.]
최선우만큼 조용히 술만 마시고 있던 욱이 선배가
툭- 한 마디 던진다.
욱이 선배, 액션 배우로 자리잡아가면서
많이 터프해진 것 같다.
대학은 영화때문에 휴학중이라고 했다.
[현민 : 야야- 젊은 니들끼리만 놀지말고, 나도 끼워줘~^^]
[윤아 : 그런데... '수 프로덕션', 사기 아니예요?
어떻게 이렇게 모일 수 있죠?]
[나현 : 어머, 몰랐어?]
[윤아 : 응?]
[나현 : 수 프로덕션, 태석 영화사 계열이야.]
[윤아 : 뭐?!]
[민수 : (차분히) 그리고, 앞으로 만들 드라마가 뭐든간에
여기 있는 연기자들, 모두 출연 내정 돼있는 거야.]
뭐?!
최선우, 강현민, 한 욱, ... 모두 드라마에 출연한다구?
[민수 : 아, 유선생님도 있지.]
[윤아 : ..혹...시, 유...성린... 선생님?]
[나현 : 응. ^^]
[민수 : 어때? 이 정도면 화려한 걸 넘은 대단한 캐스팅 아냐? ^^
니가 기획안에 쓴 것처럼, 선생님 배역은 이 A급 연기자들로 충분할 것 같은데.]
!!!
도저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더불어 마구 엉킨 내 머릿 속은
수습이 전혀 안 될 예정이다.
#
학교로 돌아온 난, 수시로
꼬돌이만 쫓아다니며
애궂게 화풀이해대고 있다.
수업 들어가봤자, 머릿 속에 한 글자도
들어오지 않을게 분명했으므로..
양계장 청소와 계란을 닦고
크기별로 나눠 포장하는 일로
수업 출석일수를 대처했다.
(청솔고는 자활학교라 학교운영비의 대부분을
양계장 운영으로 유지한다)
[홍선생 : 헤이~ 신윤아! ^^]
홍선생님은
내가 서울에서 돌아온 후
내 얼굴에서 뭘 읽은 건지
아직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있다.
[윤아 : 네!]
[홍선생 : 김선생하고 읍내 좀 갔다올래?
이모가 아파서, 대신 장봐야겠다.]
[윤아 : 그럴게요.]
학교 식당에서 우리 식사 세 끼를 준비해주는 전여사를
우리는 '이모'라고 부른다.
껄렁거리기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포장마차나 술집에 가서
그 곳 여주인을 '이모'라고 부르는 것처럼
싱겁게 한 두명이 장난처럼 부르기 시작한 것이
그냥 그렇게 정착됐다.
이모대신 장보는 건 김선생님 혼자도 충분할텐데,
굳이 날 묻혀보내는 이유는,
나보고 바람이나 쐬고오라는 배려일 거다.
#
김선생님을 도와 신협에 납품하는 계란을
신협 건물 안으로 날랐다.
김선생님이 신협 사무실로 가서
거래명세서를 작성하는 동안
시장에 들러 이모가 적어준 음식 재료들을 찾아
구입했다.
계란을 싣고 온 트럭에
장 본 것들을, 차 안에 넣어두려고
신협 건물 옆에 주차해놓은 트럭이 있는 곳에 왔을때,
순간, 내가 본 것에 놀라 트럭 뒤로 몸을 숨겼다.
...민수 선배와 박감독님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뭔가 묻고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던 사람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냥 가버린다.
대체 여긴 왜 온거지?
[박감독 : (마침 신협 건물을 나오고 있는 김선생을 붙잡고)
저, 여기 청솔고등학교로 가는 길이 어느 쪽인지 아세요?]
오...마이갓.
[김선생 : 제가 청솔고 선생인데요. 어떻게...]
[박감독 : ^0^ 아, 저 그럼... 신윤아라고 거기 있죠?]
[김선생 : 예에- 저희 학생입니다만... 무슨 일로...
우리 윤아는 사고같은 거 칠 애 아닌데.]
(윤아 : -_-;;;;;)
[민수 : (꾸벅) 저흰 '수 프로덕션'의 박감독님과 조감독입니다.
윤아가... 신윤아씨하고 드라마 제작 건으로 의논할 게 있어서요.
꼭 만나야되는데요, 학교에 있나요?]
[김선생 : 아...그러세요.
윤아, 저하고 여기 같이 나왔는데, 곧 여기로 올겁니다.]
[박감독 : (허겁지겁) 어디갔는데요!]
[김선생 : 트럭 있는 곳으로 올거니까,
그 쪽으로 가서 기다리시죠.
근데 드라마... 제작이라뇨?]
세 남자의 발자욱 소리가
내가 숨어있는 트럭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다, 다른 곳으로... 가야...
안들킬텐데...
[박감독E : 아, 모르세요?]
당연히 김선생님은 모르지...
드라마 기획안 건은
내가 진작에
유리하고 홍선생님 입단속을 해놨으니까.
뭐라도 성사된 다음에야, 알려도 알리자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허둥거리며 걸음을 옮기다가
그만 장바구니를 놓치고 말았다.
[윤아 : 어어어....]
양파가 장바구니에서 튀어나가
저만치 굴러가는 것을 쫓아갔다.
누가 먼저 잽싸게 집어준다.
[윤아 : 고맙습...]
자동적으로 인사하며 올려다봤다.
[박감독 : 거기 학굔 학생을 이렇게도 부려먹나?
공부는 안가르치고?]
[윤아 : 가, 감독님. -_-;;;]
#
김선생님은 트럭을 운전하면서
보조석에 앉은 내 표정을 자주 살폈다.
대안학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정규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의
최후의 선택....이다.
(요즘은 거의 안그렇지만)
그래서 가끔 예상치못한 험한 일을 겪는 경우도 다반사다.
최근엔 해준이 아버지 경우가 그랬다.
해준인... 아버지 폭력과 학교의 왕따로 시달리다가
엄마의 필사적인 도움으로, 이곳에 왔다.
자기가 어디로 갔는지 - 아버지가 엄마를 닥달하며
자기 몫까지 더해서 엄마를 때릴 거라며, 자주 우울해했다.
그런데 어느 밤중에 해준이 아버지가
느닷없이 학교에 나타났다.
기숙사 안은 발칵 뒤집혔고,
그 뒤로 선생님들은
학교에 관한 방송이나 기사가 나가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래서... 김선생님은
지금 우리 학교 트럭 뒤로 따라오고 있는
자가용을(민수 선배와 박감독이 타고 있는)
경계하고 있다.
[김선생 : 윤아야-]
[윤아 : 네.]
[김선생 : 학교로 데리고 가도 괜찮은거야? 저 사람들?]
[윤아 : 학교 분위기만 보고 가겠다는데, 어쩌겠어요.]
[김선생 : 니가 불편해보인다.]
[윤아 : 네... 하지만 경계하실 필요는 없을거예요.]
[김선생 : ...]
하긴, 수시로
상담한답시고, 무조건 전학받아달라고
떼쓰며 오는 사람들이 한둘이어야 말이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나 학생들도
낯선 사람이 들이닥쳐도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쌩까는 학생들에게 놀라는
방문객들이 더 많다. -_-;;;
그나저나 홍선생님이 어떻게 나올지,
그게 걱정이다.
저들이 학교에 가서
괜히 드라마니 뭐니 떠들면
나의 드라마 기획안에 대해
청솔고의 모든, 한 명도 빠짐없이 알게 되는 건
(꼬돌이도 포함해서 -_-;)
반나절로도 충분하다.
#
민수 선배는
학교 여기저기를 스냅사진으로 찍어보겠다고,
학생회장인 한기 오빠 안내를 받으며
교무실을 나갔고.
난, 박감독과 학교 뒷편 개울둑 근처로 갔다.
[윤아 : 전 분명히 민수 선배 이메일로
제 의사 전했는데요.
기획안은 팔 수 있다구요.
지금까지 써놓은 대본 초고도 얹어서, 기획안 값만 받고.
그렇지만 작가로 들어가진 않겠다구요.]
[박감독 : 알아.]
박감독은 땅바닥에 털석 주저앉았다.
[박감독 : 공기 좋네. ^^]
[윤아 : 감독님-]
박감독은 메고 온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한 웅큼의 A4종이 묶음을 내게 내밀었다.
[박감독 : 읽어봐, 난 한숨 자야겠다.
여기 오느라 아침부터 뻐꾸기 좀 날렸더니, 무지 졸리네.]
박감독은 벌렁 눕더니, 가방을 베고
모자로 얼굴을 덮어버렸다.
정말 자려는 건지, 뭘 생각하려는 건지...
박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종이 묶음을 내려다봤다.
<드라마 '비상' 1회>
...대본?
극본란에 낯선 이름이 찍혀있다.
내가 쓰지 않은, 다른 작가가 쓴 드라마 '비상' 대본?
....
여러 작가가
하나의 스토리를 두고 쓴
다양한 '비상' 1회 대본들을
읽었다.
다 읽고, 한숨 한 번 폭 내쉬었을 때
박감독이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박감독 : 다 읽었어? ^^]
[윤아 : ...네.]
[박감독 : 맘에 안들지?]
[윤아 : ...네.]
박감독은 갑자기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박감독 : 나두 맘에 안들어.]
[윤아 :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어떻게 기획안에서 줄거리도 상세하게 쓰인 스토리를 두고
이렇게 엉망으로 자기 멋대로 써요?
아니, 멋대로 써도, 좋아요.
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의도한 알맹이가
하나도 안들어가있잖아요.
대안학교에 어떤 상처를 갖고 있는 학생들이 들어와 어떻게 변화하는지,
자아 정체성 방황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고 교사들은 그걸 어떻게 지켜봐주는지!
게다가 주인공인 박상현 교사가
막연한 교사의 사명감만 갖고 들어왔다가
어떻게 깨지는지, 전혀!
또, 현재 한국의 대안학교 문제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전혀 파악도 못하고 수박 겉핡기로만
대충 그럴듯한 에피소드만 엮으면 다예요?
시청자가 바보냐구요! 무늬만 대안학교면 되냐구요!
이따위로 가다간 10회도 방송못하고 조기종영될걸요!]
너무 열받아서
따따부따- 내뱉고서야,
겨우 숨을 쉬었다. 하아~ -_-;;
[박감독 : (딴청하며) 그래서 신작가 찾아온거야.]
[윤아 : ...]
[박감독 : 우리, 같이 하자.]
[윤아 : 아시잖아요, 전 단막극 하나 못한 초짜예요.
방송국 데스크에서 결재해줄리 없어요.
아니, 그보다 수 프로덕션에서도 통과가 될까요?
저의 뭘 믿구요?]
[박감독 : ...^_^]
[윤아 : 그냥 이 기획안 덮으세요.
다른 걸로 가시면 되잖아요.
감독님한테 가는 다른 드라마 기획안도
수두룩할텐데요.]
[박감독 : (머리 긁적거리며) 고집 무쟈게 쎄네?]
[윤아 : ...솔직히, 자존심 상해요. 이거 보니까.
제 머릿 속을 다른 사람들이 맘대로 열어서
지멋대로 엉망으로 훼집어 놓은 걸
고스란히 당한, 엄청 드러운 기분이라구요.]
들고 있던 대본들을 휙- 던져버렸다.
"메에에~ "
엇!
세상에, 저 녀석은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야?
담배가게에서 키우는 흑염소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던진 대본을 척! 덥썩 받아
씹기 시작했다.
[윤아, 박감독 : 아, 안됏!!!]
나도, 박감독도
후다닥 뛰어가서 흑염소의 입에 물린
대본을 잡아당겼으나,
이 녀석도 모처럼의 포식을 놓칠 수 없는지
기를 쓰고 버텼다.
박감독이 먼저 대본을 놓아버렸다.
[박감독 : 냅 둬! 어차피 작가들 컴퓨터에 파일로 있을텐데 뭐.]
[윤아 : 하, 하지만...]
아무리 맘에 안들었어도,
내 속을 뒤집어 놓은 대본이래도,
그 작가들은 자기 에너지를 모두 쏟아 쓴 걸텐데...
[박감독 : (흑염소가 먹는 거 보며)
뒷처리하기 난감했는데, 잘됐지. ^^
(흑염소에게) 너나 많이 먹어라.]
[윤아 : 아마 저 염소, 내일 배탈날 거예요.
영양가없이 시끄러운 걸 먹어서.]
[박감독 : -_-;;; ]
[윤아 : (한숨) 후우-]
[박감독 : 근데 말야, 나나 내 선배 감독들 경험상으로
신인 작가가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지가 미쳐서 쓰는 첫작품은 100% 대박감이야.
처음부터 감독이 이러자 저러자 해서
작가가 거기에 맞춰 쓰는 그런 건
작가 역량이 딸리면 중간부터
완전 초개판 아니면 울궈먹기 짜집기밖에 안나오거든.
그게 신작가 대본이랑, 다른 작가 대본 차이야.]
[윤아 : ...]
[박감독 : 신작가 미쳤잖아, 그거 쓰면서.
하고 싶잖아, '비상'. 아냐?]
[윤아 : (망설이는) ...]
[박감독 : 이 바닥 사람들, 그런덴 개코야.
우리가 놓치면, 다른데서 잡으려 들걸.
(윤아 슬쩍 보며) 그럴수야 없지, 우리가 먼저 찜했는데.]
[윤아 : ...저도 감독님하고 하고 싶었어요.
감독님 드라마... 깔끔하고 의미있는 영상,
저 많이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안되겠어요.
저야 어차피 그 기획안을 매니지먼트사에 보내놓고도
별 기대같은 거 없었구요.]
박감독은 곤란하다는 듯이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
나를 한 번 보고,
아직도 대본을 질겅질겅 먹고 있는
흑염소를 빤히 쳐다보더니
가방에서 구식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박감독 : 민수야? 어떻게 그림 좀 나올만해?
... 이리로 좀 와라. 학교 뒷편에 있는 개울둑이야.]
박감독은 핸드폰을 끊고,
다시 벌렁 누워버렸다.
[박감독 : 아무래도 신작가, 민수한테
얘기들을 게 있을 것 같네.]
[윤아 : 네?]
[박감독 : 민수 오면 얘기해.
에잇, 난 더 자야겠다.]
[윤아 : -_-;;;]
민수 선배는 근처에 있었는지,
금방 모습을 나타냈다.
[윤아 : (박감독 가리키며) 원래 이러셔?]
[민수 : (박감독 내려다보더니) ...일이 안풀리면,
일단 태평하게 누워서, 꿈 속에서 해결책을 찾으시지.]
[윤아 : -_-;;;]
[민수 : 감독님이 널 설득 못하셨구나.]
민수 선배가 나무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윤아 : ... 대체 누가 내 기획안으로 가려고 미는거야?]
[민수 : (잠시 머뭇거리더니) ...모두.]
[윤아 : 모두?]
[민수 : ...사실, 우리 회사 좀 힘들어.]
[윤아 : ...힘들..다니?]
[민수 : 영화 만든 것, 여러 개 실패했고.
수입해 배급한 것도 그다지 수익을 못냈어.
드라마쪽으로 분야를 확장해서 프로덕션도 열었지만,
아직까지 방송국과 납품 계약 한 건도 못했어.]
[윤아 : (놀란) ...그, 그럴리가...
선배네 영화사, 작년 해외 영화제에서
상도 몇 번 받았잖아?]
[민수 : 작품성이 무조건 흥행하고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
[윤아 : ...]
[민수 : 넌 이런 시골구석에 있으면서도,
들을 건 다 듣고 있었구나.]
[윤아 : 그렇다고 20년 넘게 잘 꾸려온 회사가
그렇게 쉽게 문닫겠어?
게다가 영화사처럼 수명이 짧은 곳도 없는데,
태석 영화사처럼 오래 된 곳이...]
[민수 : 아무리 이름이 있으면 뭐 해,
종로의 종로 서점도 수십년 쌓아온 그 명성을
못지키고 간판내렸잖아.
회사나 가게는 수익을 내야 돌아가는거야.
진짜 회사 사정은 사장이나 알지,
밖에서 보는 사람들이 뭘 알아.]
[윤아 : ...선배.]
민수 선배, 예전에 아버지하고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진지하게 영화사를 걱정하는 얘기 들으니... 웬지 낯설다.
이런 게... 어른이 되어버린다는 거겠지.
[민수 : 방송국 쪽 드라마 부장급들한테
기획안을 슬쩍 언질했는데, 반응이 괜찮아.
무엇보다 캐스팅때문에라도,
일단 계약은 할 수 있을거야.
게다가 '비상'이 원래 기획대로 갈 수만 있다면
1년 넘게 주말 시츄에이션으로 가니까,
회사 재정에 숨통도 트여줄 수 있고.
주주들 설득하는데도 이것만큼 적합한 카드가 없어.
그래서 이번 캐스팅에 삼촌들이나 유선생님까지 나선 건,
일단 회사부터 살려놓자는 의기투합 차원이야.
너한테도 이런 좋은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어.
웬만한 기성 작가나 유명 감독도
이렇게 한꺼번에 초호화 캐스팅은 절대 할 수 없을테니까.]
[윤아 : ... 뭐가 그렇게 복잡해.]
[민수 : 그런데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모두 니 대본으로 가고 싶어해.]
[윤아 : ....]
[민수 : 사실, 나도 니 대본 보고 많이 놀랬다.]
[윤아 : ... 그랬을거야.]
난... 갑자기 민수 선배의 태도에 슬퍼졌다.
[윤아 : 선배... 나 지금 선배 모습 무지 싫다.]
[민수 : ...?]
[윤아 : 나같이 별 것도 아닌 애한테, 숙이고 들어오는 거.]
[민수 : ...! ]
[윤아 : 예전의 선배같았음, 지금 내가 선배한테
은근슬쩍 말놓는 거 용납안했을거야.
여기가 아무리 내 홈그라운드라해도.]
[민수 : ...! ]
...결심이 섰다.
[윤아 : 알았어요. 선배한테 내 허접한 재주가
도움이 된다면, 해야지 어쩌겠어.]
[민수 : ...정말이야?]
[윤아 : 선배로 명령했다면, 끝까지 버틸 수 있었는데.
선배가 이렇게 나오니까, 도저히 안되잖아.]
[민수 : 너 근데 진짜 작정하고, 말 놓기야?]
[윤아 : ^_^ 겨우 한 살 많은 걸로 유세떨면,
우리 학교에선 (주먹 불끈 쥐어보이며) 죽음이야.]
[민수 : -.-;;;;;]
그제서야 박감독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박감독 : 이제야 하나 해결됐구만.]
[민수,윤아 : -_-;;;;]
[윤아 : 단, 조건이 하나 있어요.]
[박감독 : 뭔데? 말 해,
내 우리집 여우랑 토깽이들만 빼곤 다 내줄게.^^]
[윤아 : 박상현 배역 캐스팅, 다른 배우로 해주세요.]
박상현 캐릭터... 최선우가 맡기로 내정된 캐릭터.
[박감독,민수 : ! ]
두 남자의 표정이 각기 다르게 굳었다.
[박감독 : (꿀꺽 침 삼키고) 지금 최선생을 빼잔 얘기야?]
박감독의 확인차 질문에
난 단호하게 내 의지를 확인시켜줬다.
[윤아 : 네.]
<계속...>
뱀발 : 전작과 비슷한 스토리 패턴으로 진행됩니다.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저한테 익숙한 패턴을 다시 써먹기로 했습니다.
전작을 기억하시는 님들은 좀 지루해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듭니다만...
모르는 분야에 대해 어정쩡하게 아는 척하고 들어가는 것보단, 이게 낫겠다 싶어서요.
어차피 중요한 건 어떤 패턴이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니까요.
윤아의 이야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