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51. 겨울나기

무늬만여우공주2004.11.11
조회2,493

양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겨울을 준비해야했는데, 아르헨티나의 겨울이 어떤지,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몰라서 아버님과 랑과 또 다른 양봉팀들도 머리를 맞대고 여러가지 방법의 의견이 돌출되었다.

한국의 겨울은 그야말로 월동이다. 너무나 추운 겨울 꽁꽁 얼어버리는 산야.

아르헨티나의 겨울은 얼음까지 얼지는 않는다. 그래도 왜그리 추운지 몰랐다. 대륙의 바람은 살속을 파고들어 마음까지 얼리기 쉽상이었다. 한국처럼 매서운 추위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추운 아르헨티나 겨울.

그 겨울동안 벌통들은 자기가 모아놓은 꿀을 먹고 살아야한다. 하지만 어느 벌통에 어느정도의 꿀이 남았는지 모르면, 겨울이 끝나는 초봄에 벌통마다 검사를 해서 꿀이 안남은 벌통에는 약간의 설탕을 줘야한단다.

아르헨티나는 꿀이 흔한 나라이니 벌이 먹을 꿀을 많이 남겨 놓아 겨울내내 먹게 하지만, 한국처럼 꿀이 귀한 나라는 설탕을 주로 먹인다고 들었다.

꿀집 며느리가 되니까 꿀의 맛에 대해서는 귀신같이 알게 되었다. 워낙 맛에 대한 혀가 발달되었다고 자부하지만 꿀맛은 잘 알아서 아버님도 내게 꿀맛이 어떤가 물어보곤 하셨다.

그래서 꿀의 질을 내 입맛으로 결정을 하곤했다. 꿀은 맛이 있어야 질 좋은 꿀이니까.

아르헨티나 꿀은 가짜를 만들 이유가 없다.
그냥 꿀이나 설탕이나 값이 거기서 거기 이기에 일부러 벌에게 설탕을 섞어 먹여 과당 상태의 꿀을 설사하게 만드는 그런 열악한 양봉 지역에서의 검은 비법을 전혀 사용을 안한다. (에구 혼나겠다. ㅎㅎ물론 안그런 사람도 많다는거 안다.)

땅이 넓은 나라에서의 꿀은 대체적으로 자연적인 그 상태이기에 더 좋을듯하다.

겨울 동안의 양봉 업자들은 놀고 먹기 쉽상이다. 여름 한 철 남보다 열 배 정도의 고생으로 일을하고 좀 쉬는 것도 좋지만, 그 옆에서 있는 사람은 괴롭다. 삼시 세끼 밥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허구헌날 눈 마주치고 있으니 말다툼할 일도 잦았다.

그 당시의 아르헨티나 교민 젊은이들은 볼링에 빠져 있었다.

볼링장은 두 군데가 있었지만, 시설 좋은 한 군데에 다 몰려들어서 하나의 사교클럽처럼 되어 있었다. 거기에 가면 우리 또래부터 위아래로 약간 더 나이 많거나 어리거나 하는 사람들이 버글댔다.

그 볼링장은 우연히도 우리가 사는 동네에 있어서 우린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래서 볼링을 치고 나면 우리집으로 뒷풀이를 하러 몰려오기도 했다.

나도 볼링에 재미들어 자주 치러 가고 싶었지만 아이는 입장이 안되어서 아들 녀석을 봐야했기에 자주는 못갔다. 알렉한드로와 랑은 자주가서 볼링복과 장갑 그리고 자기의 공을 따로 마련을 해서 쳤는데, 아마도 그 볼링장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했지 싶다.

볼링폼은 랑이 아주 멋있었는데, 실력도 꽤 괜찮아서 인기가 좋았다. 난 폼만 좋고 실력은 별루다
한판 치면 그냥 그런대로 나오고 두 판째 부터는 힘이 딸리지만 좀 그런대로 처음보다 낫고, 세 판째는 그야말로 점수가 곤두박질 친다. 힘에 부쳐서 콘트롤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아르헨티나의 한국 대사 딸이 자주 놀러왔드랬는데, 그녀는 폼이 아주 예뻤다.

공을 던지고 난 후에 온 몸을 날라가듯이 폈는데, 어찌나 귀엽고 발랄하고 예뻐보였는지 나도 그 폼으로 칠까 싶어 장롱에 있는 전면 거울을 보며 연습을 했다.
그런데 난 얌전해 보이는 외양으로 인해서인지는 몰라도 어딘가 너무 어색해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내가 연습하면 아들넘도 와서 내 흉내를 내니깐 둘은 서로 웃겨서 안고 뒹굴었다.

그 볼링장에서 앉아서 쥬스를 마시며 수다도 떨고, 누구랑 누구랑 애인관계인지, 삼각관계인지, 결혼할 사이인지 보여서 재미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사람들 관찰하는게 취미인데, 그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들이 재밌어서 나혼자 씨익 웃곤했다.

그 볼링장에는 사교클럽답게 포켓볼 치는 데도 있었는데, 거긴 여자들이 야한 옷차림을 하고 포켓볼 치는데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 여자들이 쳤는데, 난 손가락이 짧아서 도무지 폼도 안나고 볼링만큼 재미도 안났다. 역시 그런 것들은 팔다리 길고 쭉빵한 미녀들이 멋있다.

교민 사회가 좁다보니, 서로 사귀기도 쉽지않은 모양이다.

한국인 처녀 총각이 한정되어 있으니, 한 사람과 사귀다 다른 사람을 사귀려면 바람둥이라는 루머가 돌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은 아르헨티나 사람과 사귀어서 종종 같이 놀러왔는데, 대부분 키가 작고 인형같이 생긴 아르헨티나 여자들을 고르는 것 같았다.

아르헨티나 여자들은 키도 크고 몸집도 좋은 글레머 스타일의 미녀가 많은데, 어디서 그렇게 작고 귀여운 여자를 골랐는지 희한했다. 작다고 해도 한국여자인 나보다는 다 커 보였다. ㅎㅎ

종종 부부동반이나 커플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엔 아르헨티나인 애인도 데리고 오는 커플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평상시의 대화를 나누면 다 알아들어도 짙은 농담의 스페인어로 들어가면 못알아듣기 쉽상이었다. 그래서 내가 딴지를 걸었다.

한국인들끼리의 모임은 한국말로 대화하자고 했다.
그들은 한국어도 스페인어도 다 됐지만, 난 그들에 비해 스페인어가 많이 딸려서 대화하는게 재미가 없었다.
알아도 한국어 수다가 더 맛있다. 그래서 그 재미없는 스페인어로만 계속 떠들면 난 이 모임에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안올꺼라고 협박했다.

그들은 다 수긍을 하고 그 때부터 커플모임에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대부분 어릴 때부터 와서 자랐기 때문에 그들에겐 스페인어가 더 쉽고 편했겠지만, 이민 오래된 이들의 순한 특성으로 그들은 내 말에 고이 따라주었다. (대부분의 오래된 교민 자녀들이 순하고 순진하다.)

단, 아르헨티나 인들이 있을 때는 가끔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난 그 아르헨티나 여자에게도 한국말로 대화를 시도하곤했다. 지가 아르헨티나 여자여도 한국인 남자하고 결혼하려면 한국말을 알아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힘들어 하던 그녀도 지 남자친구에게 한국어를 배워와서 내게 시도를 하는걸 재미있어 했다.

'그래, 그래, 그렇게 배우는거지 음~'

그렇게 나 편한대로 한국어로 말하는걸 우리 아들은 당연한 듯이 했는데, 아들은 그게 옳은건지 알고 있는듯했다.

아르헨티나 아이들과 놀면서 우리 아들이 정확하게 아는 단어 중의 하나인 '물' 가지고 싸웠다.

물은 스페인어로 '아구아'라고 한다.

병원 로비에서 있는데 아르헨티나 애들과 대화를 시도한 아들이 물을 마시려하자 아르헨티나 애가 자기도 아구아(물)을 마시겠다고 했다. 아들은 컵을 안주며 말했다.

"아구아 노, 물! 물!"

자기 식대로 그렇게 말하며 아구아라는건 틀렸고, 물이라고 우겼다.

그 아르헨티나 애는 아구아라고 우겼고, 아들은 물이라고 우겼다. 역시 우기는 데는 한국인을 따를 자가 없는지 그 아르헨티나 아이는 물이란 단어를 배워서 아들에게 물을 마시겠다고 했고 아들은 컵을 주며 물을 마시라고 했다.

그 단어 싸움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나타났는데, 아들은 장난감 발음도 제대로 못하고 '장만깜' 이라고 했는데, 아르헨티나 아이가 그걸 스페인어로 '후게떼'라고 하니 아들은 외쳤다.

"후게떼 노, 장~! 만~! 깜~!!"

그렇게 둘은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난 병원에서 이거저거 진찰 받느라 아이를 놀이터에 두고 갔다 왔는데, 그 사이 거기서 놀던 아르헨티나 아이들 세명이. 물이란 단어와 장만깜이란 단어를 쓰는걸 보고 웃음이 나왔다.
누구 아들 아니랠까봐. 을매나 우겼을꼬.

'어구...고집 쎈 놈...'

그걸 지켜본 그 아이들 엄마들은 우리 아들에게 자기 아이들이 한국말을 배웠다고 재미있어 했다.

아르헨티나 겨울은 영하로 내려가진 않지만 추워서 방마다 거실마다 도시가스로 연결된 난로를 틀었다.
도시가스가 너무 많이 나와서 그냥 가스가 나오는 구멍이 있는 땅에 불을 붙여놓아 태우는 자원 많은 아르헨티나. 텔레비젼에서 그걸 가끔 보여주는데 우리 한국도 저렇게 자원이 풍푸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도 일었다.

우린 그렇게 따스한 겨울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