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편안한 주말이었다. 유미가 주력으로 맡았던 동남아 주력 상품건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어느정도 일이 가닥이 잡혀가는 중이라 간만에 편안한 주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오늘은 늦잠이나 푹 자야지, 하는 마음으로 알람도 다 꺼놓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한창 늦잠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유미는 10시쯤 부터 울리기 시작하는 핸드폰 벨소리에 깨어날 수 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유미씨, 자요? 내가 자는 데 깨운 건가?"
"....해빈씨..?"
잠결에 받은 핸드폰이라 미처 발신번호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귓가에 울리는 저 경쾌한 목소리는 분명 해빈이었다. 굉장히 오랜만의 통화라 일순 그가 맞나 망설이기는 했지만.
"응, 나에요. 내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
"괜찮아요. 일어나려던 참이었어요."
"그래? 미안하네, 이거.."
"아냐, 무슨일이에요?"
유미는 한창 잠을 깨운 해빈이 못마땅했지만 최근들어서는 해빈과 전화도 한번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이 생각나 잠에 취한 몸을 억지로 깨워 앉았다.
"오랜만에 같이 놀자고 전화했지. 오늘 별 약속 없지?"
"네, 그렇긴 해요."
"그럼 내가 1시쯤가지 데리러 가면 되려나?"
"에?"
"그럼 이따봐. 집앞에서 연락할게."
- 툭.
"어라? 해빈씨!!"
이번에도 해빈 멋대로 데이트를 하려고 그러는 지 유미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해빈은 툭,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아..어쩔 수 없지 뭐.."
유미는 한숨을 푹 쉬고는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말이 1시까지지 해빈은 분명히 12시 반쯤부터 집앞에 와서 기다릴 것이 뻔해서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를 해야만 했다.
침대안에서 나기기 싫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계속 해빈을 바람 맞히기는 미안했기 때문에 기지개를 켜고 창문가로 가서 커텐을 열었다.
"와.. 날씨 진짜 좋다."
커텐을 젖히고 밖을 바라보자 한창 초여름에 접어든 환한 햇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오피스텔인지라 푸르른 맛은 없었지만 깨끗하고 환한 파란 하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에 있기 아까운 날이긴 하다."
유미는 샤워를 하고서 짙은 청바지에 연노란색의 얇은 니트티를 입었다. 가슴께까지 좀 파져있는 옷이었지만 발랄한 느낌이 강한 옷이어서 유미는 웨이브진 머리도 하나로 묶어 올렸다. 준비를 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남아 다른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하얀 펄이 들어간 섀도우로 살짝 화장을 하고, 작은 크로스백을 챙겼다.
"음, 좋았어."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런 웃음을 띄었다. 이미 24살이나 되버렸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껏해야 22살 정도로 보일 것 같은 발랄한 모습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언제나 정장차림을 하다가 해빈을 만날 때만 가끔 이런 편안한 차림을 하고 돌아갈 수 없는 옛날같은 기분을 즐기곤 했다.
해빈과 만나는 것은 유미에게 추억의 되새김이었지만 동시에 아픔의 칼질과 같았다. 너무 그리운 시절이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때문에 아파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유미는 해빈과의 만남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픔을 수반하더도 해빈과 함께가 아니라면 그런 기분 조차 느낄 수 없을 테니까.
유미는 가볍게 토스트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역시나 12시 반쯤이 되자 낯익은 차가 한대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씨익 웃으며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가는 자기를 기다리게 했다느니 너무한다느니 하는 이상한 잔소리에서 벗어나기 힘들 게 분명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막 주차를 하고 오는 해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해빈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유미를 발견하자 눈에 띌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달려왔다.
"유미씨, 빨리 왔네? 나 온거 본거에요?"
"네."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유미와 해빈은 다시 그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 해빈은 어딜 갈건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은 채 교외로 차를 몰고 나갔다.
"해빈씨, 어디 가는 거에요?"
"오늘같은 날, 이런 갑갑한 서울에만 있을 순 없잖아."
반말, 존대말 섞어서 하면서 점점 반말의 비중을 높이고 있는 해빈이었지만 자신보다 무려 8살이나 많은 사람인니 유미도 굳이 뭐라고 그러진 않았다.
"어... 이쪽은 와본 거 같은데..."
"그래? 이쪽은 사유지라서 사람들 잘 안들어오는 쪽인데."
"어쩐지.. 깨끗하다 했어요."
"음.. 원래는 이쪽으로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상태가 안좋은 거 같아서.."
"네?"
"어쨌든, 가보면 알거에요."
해빈은 알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차를 몰고 한참을 들어가더니 왠 별장 같은 곳에 도착했다. 주변의 나무들 사이에 어우러진 동화 속에 나올 것만 같은 집은 한창때의 맑은 햇빛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와, 너무 이뻐!!"
"그렇지? 어서 따라와요."
"네."
유미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해빈을 쫒아갔다. 그런데 보면 볼 수록 왠지 낯익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꼭 언제 와본 것 같은 집과 정경이었다.
"해빈씨."
"응?"
"이 집 굉장히 낯이 익네요. 여기 와 본적 없을텐데..."
"...아! 그래요..?"
해빈은 유미의 말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당황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은... 유미가 처음 상운에게 끌려온 곳이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아아..바보.. '
집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해빈은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온 상운과 마주치면서 푹, 한숨을 내쉬었다. 유미가 기억 못 하기를 바랄 뿐.
"해빈아? 왠일이냐, 니가?"
"....사장님?"
"강유미씨?"
유미는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을 보고 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를 만큼 놀랐다. 동시에 이 집을 자신이 언제 봤었던 건지도 기억해냈다.
'그래.. 방에서 나갈 일이 거의 없었던 데다.. 밤 중에 집을 봐서 기억이 안났었지만, 분명해.. 이 집이야.'
자신의 존재는 잊은 듯 해빈과 얘기하는 상운을 유미는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캐쥬얼한 니트에 면바지 차림을 하고 있는 그는 다른 때처럼 위압적인 사장의 분위기가 아닌 그냥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이야기 하고있는 해빈도 부드럽게 잘 생긴 얼굴이었지만 단지 얼굴만으로 따진다면 상운은 정말 잘 생긴 남자였다. 게다가 이렇게 경치좋고 예쁜 집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화보를 찍는 듯 한폭의 그림같이 어우러져 있었다.
'..바보같이, 이게 무슨 생각이람.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잖아.'
"어찌됐든 왔으니 들어와라. 강유미씨, 유미씨도 들어와요."
귀찮게 되었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상운은 멍하니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유미를 불렀다. 해빈은 투털거리며 먼저 집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네?! 네.."
"......"
상운의 목소리에 딴 생각에 잠겨있던 유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유미의 태도에 상운은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쩌면 들어가고 싶지 않을테니 잠깐만 들어와 있어. 최대한 빨리 집으로 데려다 줄게. 밥은 먹고 가야 할테니까."
"......네."
'그도 역시 기억하는 구나.'
유미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집으로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냥 들어가서 밥을 먹는 것 뿐인데도 왠지 유미의 가슴은 떨려오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사랑할 권리는 있다...25
오랜만에 편안한 주말이었다. 유미가 주력으로 맡았던 동남아 주력 상품건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어느정도 일이 가닥이 잡혀가는 중이라 간만에 편안한 주말을 맞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오늘은 늦잠이나 푹 자야지, 하는 마음으로 알람도 다 꺼놓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한창 늦잠의 달콤함에 빠져있던 유미는 10시쯤 부터 울리기 시작하는 핸드폰 벨소리에 깨어날 수 밖에 없었다.
"...여보세요..."
"유미씨, 자요? 내가 자는 데 깨운 건가?"
"....해빈씨..?"
잠결에 받은 핸드폰이라 미처 발신번호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귓가에 울리는 저 경쾌한 목소리는 분명 해빈이었다. 굉장히 오랜만의 통화라 일순 그가 맞나 망설이기는 했지만.
"응, 나에요. 내가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
"괜찮아요. 일어나려던 참이었어요."
"그래? 미안하네, 이거.."
"아냐, 무슨일이에요?"
유미는 한창 잠을 깨운 해빈이 못마땅했지만 최근들어서는 해빈과 전화도 한번 제대로 못했다는 사실이 생각나 잠에 취한 몸을 억지로 깨워 앉았다.
"오랜만에 같이 놀자고 전화했지. 오늘 별 약속 없지?"
"네, 그렇긴 해요."
"그럼 내가 1시쯤가지 데리러 가면 되려나?"
"에?"
"그럼 이따봐. 집앞에서 연락할게."
- 툭.
"어라? 해빈씨!!"
이번에도 해빈 멋대로 데이트를 하려고 그러는 지 유미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해빈은 툭,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아..어쩔 수 없지 뭐.."
유미는 한숨을 푹 쉬고는 침대에 일어나 앉았다. 말이 1시까지지 해빈은 분명히 12시 반쯤부터 집앞에 와서 기다릴 것이 뻔해서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를 해야만 했다.
침대안에서 나기기 싫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계속 해빈을 바람 맞히기는 미안했기 때문에 기지개를 켜고 창문가로 가서 커텐을 열었다.
"와.. 날씨 진짜 좋다."
커텐을 젖히고 밖을 바라보자 한창 초여름에 접어든 환한 햇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오피스텔인지라 푸르른 맛은 없었지만 깨끗하고 환한 파란 하늘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집에 있기 아까운 날이긴 하다."
유미는 샤워를 하고서 짙은 청바지에 연노란색의 얇은 니트티를 입었다. 가슴께까지 좀 파져있는 옷이었지만 발랄한 느낌이 강한 옷이어서 유미는 웨이브진 머리도 하나로 묶어 올렸다. 준비를 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남아 다른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하얀 펄이 들어간 섀도우로 살짝 화장을 하고, 작은 크로스백을 챙겼다.
"음, 좋았어."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런 웃음을 띄었다. 이미 24살이나 되버렸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기껏해야 22살 정도로 보일 것 같은 발랄한 모습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언제나 정장차림을 하다가 해빈을 만날 때만 가끔 이런 편안한 차림을 하고 돌아갈 수 없는 옛날같은 기분을 즐기곤 했다.
해빈과 만나는 것은 유미에게 추억의 되새김이었지만 동시에 아픔의 칼질과 같았다. 너무 그리운 시절이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때문에 아파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유미는 해빈과의 만남을 싫어하지 않았다. 아픔을 수반하더도 해빈과 함께가 아니라면 그런 기분 조차 느낄 수 없을 테니까.
유미는 가볍게 토스트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역시나 12시 반쯤이 되자 낯익은 차가 한대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씨익 웃으며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를 오래 기다리게 했다가는 자기를 기다리게 했다느니 너무한다느니 하는 이상한 잔소리에서 벗어나기 힘들 게 분명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막 주차를 하고 오는 해빈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해빈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유미를 발견하자 눈에 띌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달려왔다.
"유미씨, 빨리 왔네? 나 온거 본거에요?"
"네."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유미와 해빈은 다시 그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갔다. 해빈은 어딜 갈건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은 채 교외로 차를 몰고 나갔다.
"해빈씨, 어디 가는 거에요?"
"오늘같은 날, 이런 갑갑한 서울에만 있을 순 없잖아."
반말, 존대말 섞어서 하면서 점점 반말의 비중을 높이고 있는 해빈이었지만 자신보다 무려 8살이나 많은 사람인니 유미도 굳이 뭐라고 그러진 않았다.
"어... 이쪽은 와본 거 같은데..."
"그래? 이쪽은 사유지라서 사람들 잘 안들어오는 쪽인데."
"어쩐지.. 깨끗하다 했어요."
"음.. 원래는 이쪽으로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상태가 안좋은 거 같아서.."
"네?"
"어쨌든, 가보면 알거에요."
해빈은 알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차를 몰고 한참을 들어가더니 왠 별장 같은 곳에 도착했다. 주변의 나무들 사이에 어우러진 동화 속에 나올 것만 같은 집은 한창때의 맑은 햇빛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와, 너무 이뻐!!"
"그렇지? 어서 따라와요."
"네."
유미는 앞장서서 걸어가는 해빈을 쫒아갔다. 그런데 보면 볼 수록 왠지 낯익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꼭 언제 와본 것 같은 집과 정경이었다.
"해빈씨."
"응?"
"이 집 굉장히 낯이 익네요. 여기 와 본적 없을텐데..."
"...아! 그래요..?"
해빈은 유미의 말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당황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은... 유미가 처음 상운에게 끌려온 곳이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아아..바보.. '
집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해빈은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온 상운과 마주치면서 푹, 한숨을 내쉬었다. 유미가 기억 못 하기를 바랄 뿐.
"해빈아? 왠일이냐, 니가?"
"....사장님?"
"강유미씨?"
유미는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을 보고 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를 만큼 놀랐다. 동시에 이 집을 자신이 언제 봤었던 건지도 기억해냈다.
'그래.. 방에서 나갈 일이 거의 없었던 데다.. 밤 중에 집을 봐서 기억이 안났었지만, 분명해.. 이 집이야.'
자신의 존재는 잊은 듯 해빈과 얘기하는 상운을 유미는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캐쥬얼한 니트에 면바지 차림을 하고 있는 그는 다른 때처럼 위압적인 사장의 분위기가 아닌 그냥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이야기 하고있는 해빈도 부드럽게 잘 생긴 얼굴이었지만 단지 얼굴만으로 따진다면 상운은 정말 잘 생긴 남자였다. 게다가 이렇게 경치좋고 예쁜 집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화보를 찍는 듯 한폭의 그림같이 어우러져 있었다.
'..바보같이, 이게 무슨 생각이람. 중요한 건 그런게 아니잖아.'
"어찌됐든 왔으니 들어와라. 강유미씨, 유미씨도 들어와요."
귀찮게 되었다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상운은 멍하니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유미를 불렀다. 해빈은 투털거리며 먼저 집으로 들어간 상태였다.
"네?! 네.."
"......"
상운의 목소리에 딴 생각에 잠겨있던 유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유미의 태도에 상운은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어쩌면 들어가고 싶지 않을테니 잠깐만 들어와 있어. 최대한 빨리 집으로 데려다 줄게. 밥은 먹고 가야 할테니까."
"......네."
'그도 역시 기억하는 구나.'
유미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집으로 향해 걸어 들어갔다. 그냥 들어가서 밥을 먹는 것 뿐인데도 왠지 유미의 가슴은 떨려오기 시작했다.
'괜찮아, 이제. 옛날과 다르잖아 지금은. 그때와는 이미 달라졌으니까, 걱정할 거 없어.'
쉽게 집 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하는 유미를 뒤에서 가만히 쳐다보던 상운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서 들릴까 말까한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는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유미는 그가 들어가고 나서도 한참 동안이나 문 앞에 서서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스쳐지나간 그의 목소리가, 그의 향기가 남아 그녀에게 방금 들었던 그의 말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미안.."
그 한마디로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지금 자신의 가슴은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 아까의 그 뜀박질과는 분명히 달랐다. 만나고 싶지 않은 과거와의 대면앞에서 강렬히 거부하며 뛰어대던 그녀의 가슴은 그의 향기와 나즈막한 목소리에 반응하여 미칠 듯 뛰고 있었다.
"......멈춰라, 제발."
아닐거야, 아닐거야. 유미는 마음속으로 셀수없이 되새기며 중얼거렸다. 자신이 미친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한참을 문앞에서 되새김질 한 끝에 유미는 한걸음 발을 뗄 수 있었다.
여전히 머리속에서 '이겨내야해.' 라고 중얼거리며.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무엇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 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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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다가올 상처가 더 크게 다가오는 건,
잠시간의 행복에 감각이 마비되어서가 아닐까요..
가을에서 겨울로 들어서기 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마지막 가을임을 알려주는 건지, 춥지 않을거라 방심시키는 건지..
그 따뜻한 바람에 곧 겨울이 다가옴을 깜박 하곤 하죠.
때아닌 따뜻함이 사실은 추워짐을 준비하는 시기임을 깨달아야 하는데요.
유미는, 그리고 상운은 준비를 할 수 있을까요.. 준비없이 다가오는 추위는,
다른때보다 더 춥게 느껴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