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전직 대학교수 김아무개씨의 ‘판사 석궁 테러’의 직접적 원인이 된 재임용 탈락과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놓고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학계, “시험문제 잘못 인정돼”=사건의 발단은 김아무개(50) 전 교수가 몸담고 있던 ㅅ대의 1995학년도 대학별고사 수학 문제 오류 논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5년 1월 실시된 ㅅ대 대학별고사의 자연계 필수과목이던 수학Ⅱ에는 모두 7문제가 출제됐다. 논란이 된 문제는 15점(100점 만점)이 배정된 7번 ‘공간 벡터에 대한 증명’(사진) 문항이었다. 당시 수학과 조교수로 채점에 참여한 김씨는 “가정 자체가 잘못돼 있어 수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문제”라며 수험생 모두에게 영점이나 만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를 낸 수학과 교수들은 김씨의 주장을 묵살하고 모범답안을 수정해 채점을 진행했다. 대학 쪽이 제시한 모범답안은 “가정은 항상 거짓이므로 주어진 명제는 항상 참이다”는 것이었다. 잘못된 가정 자체도 문제의 일부였다는 설명이었다.
학계에서는 김씨의 지적에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서울대 수학과 ㄱ아무개 교수 등 전국 44개 대학 수학과 교수 189명은 96년 김씨의 ‘부교수 지위 확인’ 청구소송을 맡고 있던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 “문제가 된 ㅅ대의 수학문제는 제시된 가정을 만족하는 벡터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대학 쪽이 제시한 모범답안은 문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여지며, 원래의 출제 의도와도 거리가 멀다고 사료된다”고 주장했다.
재임용 탈락 경위=채점이 끝난 뒤에도 김씨가 계속 이 문제를 외부에 제기하자, ㅅ대 수학과 교수들은 ‘해교 행위’ 등을 이유로 김씨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김씨는 결국 95년 부교수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 데 이어 재임용에서도 탈락했다. 김씨는 자신이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은 시험문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바람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ㄱ아무개 교수 등 전국 수학과 교수들도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 “김 교수는 외국의 저명한 학술잡지에 여러 편의 우수한 논문들을 발표해 왔다”며 “수학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이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국제 수학저널인 〈매스 인텔리전서〉는 97년에 ‘정직의 대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전 교수 재임용 탈락의 부당성을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ㅅ대 쪽은 “수학문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김씨의 일방적인 주장일뿐, 김씨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가장 큰 이유는 미미한 연구 실적과 교육자적 자질 부족”이라고 밝혔다.
법원, “재임용 탈락은 시험문제 잘못 지적과 무관”=김 전 교수가 2005년 초에 낸 소송에서 1·2심 재판부는 “학생에 대한 교수·연구 및 생활지도에 대한 능력과 실적, 교원으로서의 품위유지 등 재임용 기준에 현저히 미달돼, 재임용 거부가 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김 전 교수가 △학생들에게 교육자의 품위에 맞지 않은 언행을 해온 점 △3년 동안 전체 교수회의에 한번도 출석하지 않은 점 △자의적인 성적 평가로 수강 학생들의 반발을 산 점 등을 들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징계 처분과 재임용 탈락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학자적 양심에 따라 정당한 원칙을 주장하기 위해 그런 용기있는 행동을 했다면, 원고 스스로 대학교원이 갖춰야 할 다른 덕목도 갖추도록 노력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전 교수가 95년에 낸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97년 “교수 재임용은 학교 쪽의 자유재량”이라며 학교 쪽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법원 안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판결문을 검토한 대법원의 한 재판연구관은 “팩트(사실관계)에 대한 아무런 적시도 없이, 그냥 과거 판례에 따라 판결이 내려진 것 같다”며 “소송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군사독재 시절의 유물”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영벡터가 아닌 세 공간벡터 a, b, c가 모든 실수 x, y, z에 대하여 |x a + y b + z c|≥ |x a| + |y b|을 만족할 때, a와 b, b와 c, c와 a가 각각 서로 직교함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이 문제의 전제 조건은 ‘모든 실수 x, y, z에 대하여 |x a + y b + z c|≥ |x a| + |y b|가 만족되도록 하는 영벡터가 아닌 세 벡터 a, b, c가 있다’는 것이다.
‘판사 테러’ 엇갈린 분석
재야법조계 “사법불신이 근원…자성을” 현직법관들 “정신적 문제…정당성 없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소송 당사자가 재판장에게 테러를 가한 사태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는 큰 우려를 나타냈지만,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한 견해는 다소 엇갈렸다.
변호사와 학계 인사들 상당수는 사법 불신 풍조가 이번 사건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법부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창우 변호사는 16일 “이용훈 대법원장의 ‘법조3륜 비하’ 발언 등이 사법불신의 빌미가 됐지만, 근본적으로 판사들이 재판에서 당사자 주장을 충분히 듣지 않는 데 이유가 있다. 판사들이 법이론만 따질 게 아니라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주는 ‘구술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변호사는 또 “변호사와 검사를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로 어린 사법연수원생이 곧바로 판사가 되는 걸 막는 것으로도 사법불신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지금 판사들은 법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법정에서 뭔가 물어도 무시하기 일쑤다. 앞으로는 법관도 ‘서비스맨’이 돼 당사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상당수 법관들은 ‘사법불신 풍조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법원의 한 재판연구관은 “(이번 사건의)김아무개 전 교수가 2005년에 다시 낸 소송 1심 판결이나 항소심 판결은 옛 대법원 판례를 적용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실관계를 꼼꼼히 따져 판단한 것이므로, 김 전 교수가 이런 방식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전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김 전 교수는 정신적 문제가 있던 것으로 안다. 김 전 교수의 1인 시위라면 모르지만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을 ‘사법불신’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2007년 1월 16일 (화) 19:51 한겨레
[한겨레]
전직 대학교수 김아무개씨의 ‘판사 석궁 테러’의 직접적 원인이 된 재임용 탈락과 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놓고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학계, “시험문제 잘못 인정돼”=사건의 발단은 김아무개(50) 전 교수가 몸담고 있던 ㅅ대의 1995학년도 대학별고사 수학 문제 오류 논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5년 1월 실시된 ㅅ대 대학별고사의 자연계 필수과목이던 수학Ⅱ에는 모두 7문제가 출제됐다. 논란이 된 문제는 15점(100점 만점)이 배정된 7번 ‘공간 벡터에 대한 증명’(사진) 문항이었다. 당시 수학과 조교수로 채점에 참여한 김씨는 “가정 자체가 잘못돼 있어 수학적으로 오류가 있는 문제”라며 수험생 모두에게 영점이나 만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제를 낸 수학과 교수들은 김씨의 주장을 묵살하고 모범답안을 수정해 채점을 진행했다. 대학 쪽이 제시한 모범답안은 “가정은 항상 거짓이므로 주어진 명제는 항상 참이다”는 것이었다. 잘못된 가정 자체도 문제의 일부였다는 설명이었다.
학계에서는 김씨의 지적에 공감하는 의견이 많았다. 서울대 수학과 ㄱ아무개 교수 등 전국 44개 대학 수학과 교수 189명은 96년 김씨의 ‘부교수 지위 확인’ 청구소송을 맡고 있던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 “문제가 된 ㅅ대의 수학문제는 제시된 가정을 만족하는 벡터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대학 쪽이 제시한 모범답안은 문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호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여지며, 원래의 출제 의도와도 거리가 멀다고 사료된다”고 주장했다.
재임용 탈락 경위=채점이 끝난 뒤에도 김씨가 계속 이 문제를 외부에 제기하자, ㅅ대 수학과 교수들은 ‘해교 행위’ 등을 이유로 김씨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김씨는 결국 95년 부교수 승진 대상에서 제외된 데 이어 재임용에서도 탈락했다. 김씨는 자신이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은 시험문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바람에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ㄱ아무개 교수 등 전국 수학과 교수들도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서 “김 교수는 외국의 저명한 학술잡지에 여러 편의 우수한 논문들을 발표해 왔다”며 “수학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인한 갈등이 인사에 영향을 미쳤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국제 수학저널인 〈매스 인텔리전서〉는 97년에 ‘정직의 대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 전 교수 재임용 탈락의 부당성을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ㅅ대 쪽은 “수학문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재임용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김씨의 일방적인 주장일뿐, 김씨가 재임용에서 탈락한 가장 큰 이유는 미미한 연구 실적과 교육자적 자질 부족”이라고 밝혔다.
법원, “재임용 탈락은 시험문제 잘못 지적과 무관”=김 전 교수가 2005년 초에 낸 소송에서 1·2심 재판부는 “학생에 대한 교수·연구 및 생활지도에 대한 능력과 실적, 교원으로서의 품위유지 등 재임용 기준에 현저히 미달돼, 재임용 거부가 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김 전 교수가 △학생들에게 교육자의 품위에 맞지 않은 언행을 해온 점 △3년 동안 전체 교수회의에 한번도 출석하지 않은 점 △자의적인 성적 평가로 수강 학생들의 반발을 산 점 등을 들었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입시 문제의 오류를 지적한 것이 징계 처분과 재임용 탈락의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학자적 양심에 따라 정당한 원칙을 주장하기 위해 그런 용기있는 행동을 했다면, 원고 스스로 대학교원이 갖춰야 할 다른 덕목도 갖추도록 노력해야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전 교수가 95년에 낸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97년 “교수 재임용은 학교 쪽의 자유재량”이라며 학교 쪽의 손을 들어준 판결은 법원 안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판결문을 검토한 대법원의 한 재판연구관은 “팩트(사실관계)에 대한 아무런 적시도 없이, 그냥 과거 판례에 따라 판결이 내려진 것 같다”며 “소송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군사독재 시절의 유물”이라고 지적했다.
이종규 이순혁 고나무 기자 jklee@hani.co.kr
문제의 수학문제
문제는 "영벡터가 아닌 세 공간벡터 a, b, c가 모든 실수 x, y, z에 대하여 |x a + y b + z c|≥ |x a| + |y b|을 만족할 때, a와 b, b와 c, c와 a가 각각 서로 직교함을 증명하라"는 것이다. 이 문제의 전제 조건은 ‘모든 실수 x, y, z에 대하여 |x a + y b + z c|≥ |x a| + |y b|가 만족되도록 하는 영벡터가 아닌 세 벡터 a, b, c가 있다’는 것이다.
‘판사 테러’ 엇갈린 분석
재야법조계 “사법불신이 근원…자성을”
현직법관들 “정신적 문제…정당성 없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소송 당사자가 재판장에게 테러를 가한 사태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는 큰 우려를 나타냈지만, 그 원인과 해법에 대한 견해는 다소 엇갈렸다.
변호사와 학계 인사들 상당수는 사법 불신 풍조가 이번 사건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법부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창우 변호사는 16일 “이용훈 대법원장의 ‘법조3륜 비하’ 발언 등이 사법불신의 빌미가 됐지만, 근본적으로 판사들이 재판에서 당사자 주장을 충분히 듣지 않는 데 이유가 있다. 판사들이 법이론만 따질 게 아니라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주는 ‘구술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 변호사는 또 “변호사와 검사를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로 어린 사법연수원생이 곧바로 판사가 되는 걸 막는 것으로도 사법불신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지금 판사들은 법을 모르는 일반인들이 법정에서 뭔가 물어도 무시하기 일쑤다. 앞으로는 법관도 ‘서비스맨’이 돼 당사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상당수 법관들은 ‘사법불신 풍조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법원의 한 재판연구관은 “(이번 사건의)김아무개 전 교수가 2005년에 다시 낸 소송 1심 판결이나 항소심 판결은 옛 대법원 판례를 적용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실관계를 꼼꼼히 따져 판단한 것이므로, 김 전 교수가 이런 방식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전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김 전 교수는 정신적 문제가 있던 것으로 안다. 김 전 교수의 1인 시위라면 모르지만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행동을 ‘사법불신’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