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1부 1막 : 묘령(昴靈)의 추억 #16)

J.B.G2004.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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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1부 1막 : 묘령(昴靈)의 추억 #16)

 

 

깊은 밤.

조용하던 산장이 갑작스럽게 소란스러워졌다. 밖에서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평화롭던 운산을 떠들썩 하게 하고 있었다. 문은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러자 곧 무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뜻밖에 문 앞에 나타난 것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미란 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광경에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란? 이… 이게 어찌 된 거냐?”

“대장군…”

 

그 순간 운향은 그만 미란이 입에서 나온 그 말에 온몸에 힘이 빠져 나가면서 무너져 내렸다.

 

‘대…장군…’

 

미란은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전하께서 위험하십니다. 적국의 자객들이…”

 

무는 그만 온 몸이 얼어 붙은 듯 갑자기 굳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그에게 미란은 힘겹게 입을 열어 호소했다.

 

“적국의 자객이… 지금쯤이면 호접계곡에… 장군…님… 빨리… 가지 않으면… 전하께서… 사형! 제발…”

 

미란은 무에게 안겨 각혈했고, 그 순간에도 무는 심한 갈등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시 뿐… 무는 이미 미란의 칼을 들고… 바람을 가르듯 순식간에 운향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 당신……”

 

운향은 잠시 정신이 아득하게 몽롱해졌다.

 

“이럴수는 없어… 이럴 수는…”

 

그녀 앞에는 지금 미란이 피를 흘리며 고통 받고 있었다.

 

‘어머니…’

 

그때 아들 비가 운향을 일깨웠다.

 

“어머니! 이러다 이 사람 죽겠어요.”

“…”

 

아들의 일깨움에 몽롱했던 정신을 다잡은 운향은 곧 미란을 침대에 옮기고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대장군…이라고 했나요… 그리고… 전하라…”

 

미란은 피를 흘리면서도 힘겹게 말을 이었다.

 

“지난 밤… 저와 같이 오신 분은 용국의 황제 적룡 전하 이십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무라 부르는 사람은 저의 사형이며, 전하의 의형제 이십니다. 그는 한낮 산사람 무가 아니라 전장에서 무적불패의 용맹을 떨치던 대장군 ‘적청’ 입니다.”

“적청… 적청…”

 

운향은 슬펐다. 너무나… 그녀는 지금 손이 떨려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결국 떠날 운명이란 말인가…?’

 

운향은 자신의 남편이 전장의 영웅이라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미어졌다. 그녀는 점점 더 두려워졌다.

 

“놀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모르시는 것도 당연하죠. 사형은 철저하게 자신을 잊으려 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이런 곳에서 초라한 삶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인재 입니다. 미천한 한 아이와 촌부의 아내로서 너무나 큰 그릇 입니다.”

“이것이 미천한 삶…이란 말인가…”

“…”

 

상처를 치료하면서 운향은 담담해져 가고 있었다. 피를 보아서 일까…

 

“어째서 이제서야 호접계곡에 다다른 거죠?”

“…”

 

미란은 피가 쏟아지는 몸을 일으켜 갑자기 운향에게 무릎을 꿇었다.

 

“부인… 간곡히 부탁 드립니다. 대장군을 그만 놓아주십시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 있고, 어떠한 것이 천한 것이죠…?”

“부인… 그의 백성이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형은 전장에 있어야 할 사람 입니다. 그는 전하와 함께 아홉 개로 흩어진 제국을 통일하고 백성을 구제할 영웅 입니다.”

 

운향은 이내 정색을 하면서 퉁명스러워졌다.

 

“누구 맘대로… 그런 것을 결정하죠?”

“부인…”

“전쟁이란 것은 누가 이기든… 백성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전쟁이란 본시.. 권력을 가진 자들이 더 큰 권력을 가지기 위해 투쟁하는 더러운 거짓만이 존재하는 곳이니까.”

“…”

“전쟁터에서 당신들의 용국이 선이라고 감히 누가 단정하죠… 누가? 당신들이 통일대업을 이룰 국가라는 당위성은 어디에도 없어요.”

 

운향은 이미 상당히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러니 상처치료가 끝나면… 내 남편은 두고 썩 꺼져버려!”

 

미란은 크게 당황하는 듯 했으나, 곧 침착해 졌다. 그녀는 상처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단순한 촌구석의 아낙네치고는… 말이 꽤 거칠군요…”

 

운향은 다시 침착하게 미란에게 되물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

“네… 당신 말대로 난 단순한 무지렁이 촌부 입니다. 지식은 없지만... 그렇다고 생각할 줄도 모르는 건 아닙니다. 전쟁에는 피와 굶주림이 있을 뿐입니다. 단지… 피와 굶주림…”

“…”

 

그러나 운향이 이 말을 하며 미란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이미 혼절해 있었다.

 

“이 여자…”

 

운령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호접계곡.

숲 속에서는 이미 날카로운 칼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무는 적룡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는 적룡을 노리는 적국의 첩자를 하나 둘 베면서 점점 그 칼이 예리해져 가고 있었다. 깊이 묻어 두었던 잠재적이 광기가 다시 발하는 것만 같았다.

 

‘안돼!’

 

무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지만… 이미 역부족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적룡을 구하려면 그는 다시 심연 깊은 곳의 전장의 감각을 끌어내냐만 했다. 무는 자신이 두려웠다.

 

‘운향… 비야…’

 

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심연 깊은 곳에 침잠해 있던 감각이 하나 둘 되살아 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두려움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자객들의 검 날이 자신의 심장을 찢기 위해 달려들어도 그는 이미 한발을 더 내디뎌 사지의 사각에 아무 두려움 없이 달려드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그는 두려웠다. 검을 들고 춤추고 있는 자신이… 자꾸만 운향과 비가 멀어지고 있었다. 자꾸만…

 

“제발 그만해!”

 

그의 노도 같은 칼부림은 호접계곡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다.

 

운향은 집에서 애타게 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돼…’

 

그때 문이 열리면서 상처 입은 황제를 부축한 무가 들어섰다.

 

“당신…”

 

무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변해 있었다. 피를 갈급하는 야수같이… 그리고 그를 바라보며 운향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피로 범벅이 되었지만 상처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나… 마저도… 안돼…’

 

그녀는 자신 스스로에 더 놀라고 말았다. 피 냄새를 통해 자신의 감각이 고추서고 있음을 깨달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