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53. 나문꾸라 추석잔치

무늬만여우공주2004.11.16
조회2,403

입덧이 점점 약해져가서 좀 살만해져갔다.

아버님은 한국으로 다니러 가셨고, 랑은 겨울 내내 벌통이 잘 있나 돌아보러 지방에 자주 가 있었다.
때때로 들판에 놔둔 벌통을 도둑을 맞아서 경찰과 함께 몇 날 며칠이고 찾으러 돌아다니다 오는 적도 있었다.

아르헨티나 교포 신문에 추석맞이 잔치를 한다고 크게 광고가 났다.

교회도 시댁 눈치보느라 못 다니고 어디 소속된 곳도 없던 터라 그렇게 한국인이 많이 모인 곳은 많이 가보지 않았다.

'나문꾸라'라는 공원이 있는데, 그 곳에서 높다랗게 그네도 매어서 그네타기 대회도 열고, 널뛰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등등 재미난 민속놀이가 있다고 되어 있었다. 사물놀이도 신나게 할 모양이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네를 참 잘탔는데, 임신중이라 대회에 못나가니 안타까웠다.
나가기만 함 이길 자신이 있는데...

각 부녀회들을 동원해서 음식 바자회도 열어서 전국 각지 음식도 판단다.
아, 신나라.
가서 맛난거도 사먹고, 놀 생각을 하니 즐거워졌다.

거기 행사 중에 한복 경연대회도 있었다.

옹.
내가 한복 폼이 아주 유별나게 괜찮다.
다른건 몰라도 한복을 입은 모습은 자신있는게 나다.
게다가 시집오면서 얻어 입은 한복이 너무 이뻤는데, 이민 오는 바람에 한 번도 꺼내입어 보지도 못했다.

겨자색 한벌짜리 한복에 엷게 이중으로 수채화가 꽃이 그려져 있는 고상한 한복이었다.

결혼 전에 시어머님 친구분이 경영하는 주단 집에서 6개월 넘게 아르바이트를 한 경력이 있어서 어떻게 하면 한복을 입고 이뻐 보이는지 잘 안다.

후훗~
심심한데 함 나가볼까?

아가씨도 그 광고를 보았는지 관심있어 한다.
아가씨 한복은 개량한복으로 참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명주 한복이다.

아가씨랑 같이 나가자고 꼬셨다.
아가씨는 창피하다고 안나가려고 하는걸 한복 아까운데 입을 기회라고 꼬셔서 그 대회에 나간다고 신청하게끔 했다.

추석날이 되어 나문꾸라에 나갔다.

남미라 봄에 맞는 추석은 화려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침부터 나와서 벅적지근하게 놀았나부다. 가니 여기저기 막걸리 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네도 높이 타고 있었고, 여기저기 널뛰기 연날리기 등등 보기만해도 신이났다.

여기 저기서 구워진 녹두 빈대떡, 떡코너에서는 떡을 팔고, 빵집에선 전통 풀빵을 만들어 내다 팔고 있었다. 우린 이거저거 떡도 사먹고, 빈대떡도 사먹고, 떡볶이도 사먹었다.

역시 배가 불러야 기분이 더 좋아진다.

아들넘 손을 잡고 아가씨랑 한복 경연대회가 열린다는 체육관으로 갔다.

난 우습게만 여기고 갔는데...헉.

그 체육관에는 원주민들도 와 있고, 하나가득 사람이 차 있는게 아닌가.
잉. 왜이케 많은겨.
괜히 한다고 했나?
쑥스럽고, 민망해서 망설여졌다.

안할까 싶어 취소 하려했더니 이미 신청한 사람은 취소가 안된단다.

'까짓거 지네들이 먼데서 보는데 알게 뭐야.'

아가씨랑 탈의실로 가서 준비해 온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내 머리는 아가씨가 동그랗게 돌아가며 따주어서 이쁘게 단정하게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한복만 입으면 된다.

아가씨는 긴 생머리를 곱게 땋아내렸다.
고왔다.
아가씨는 한 인물한다.

동양적인 미인이 아니라 서양적인 선이 굵은 미인이다.
그래서 한복을 입었더니, 한국 고유의 그런 선고운 미인이 아니라 시원하고 고급스런 귀족 분위기가 난다.

나도 한복을 챙겨 입었다.

그냥 입은 모습만 볼 줄 알았더니 이거저거 시켜보는거도 많았다.

또 한복 경연대회에 나온 사람은 또 왜이케 많은겨.

첫 번째 줄 나가서 걸어보라고 하고, 인사도 시키고, 두 번째 줄 나가고 그러면서 차츰 차츰 후보들을 줄여나갔다.

나중 결선까지 아가씨와 나와 몇 명이 남았다.
히힛. 재밌다.

입덧 증상이 좀 나타나며 어지러웠지만, 재미있고, 승부욕이 생겨서 인사도 우아하게, 걸음걸이, 서있는 폼새, 등등

'내가 어찌해야 폼이 나는지 내는 알지롱'

드디어 발표가 났다.
아가씨가 삼등을 했다.

내가 일등이다.
히~
내 한복 이쁜건 알아게지고~

아, 그 발표가 나니까 갑자기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어지럽고, 내가 임신 중이란 사실이 새롭게 떠올려졌다.
나도 참 주책스럽지 싶은게 웃음이 났다. 그래도 일등이라니 기분은 참 좋았다.
이왕 나선거 이겨야 좋지 않은가.
상품도 받긴했는데 뭘 받았는진 기억이 안난다. 단지 일등 먹었다는 것 밖에...

대회가 끝나고 사진들을 찍고, 나가니 나문꾸라 마당은 오후가 끝나갈 무렵이라 파장된 민속 시장은 진동된 막걸리 냄새와 여기저기 파장한 가게들 모습과 어우러져 추워지는 저녁 바람에 스산해 보였다.

아직 열려있는 그러나 파장하려고 준비하는 가게에 들어가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사먹었다,
술도 마실 줄 알면 나도 저 막걸리라는 것과 동동주라는걸 마셔보고 싶었지만, 도대체 술을 마실줄 모르니 구경만했다.

아들넘 손을 잡고 아가씨와 집으로 돌아왔다.

훵한 커다란 거실에 불을 켜고 난로를 켰다.

추석인데....

식구 많아 북적대던 집에서 아가씨와 둘이 덩그러니 쇼파에 앉아서 따스한 차를 마셨다.
이렇게 쓸쓸한 추석이 지나가네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