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중국아줌마2004.11.20
조회1,640

중국에 왜 사냐구요?

 

중국에 갑자기 왔다.

중국어도 하나도 모른 채, 3년 전 북경 패키지 관광으로 와봤지만

생각나는 건 만리장성과 용경협에서 배탄 거, 느끼한 중국음식

먹은 기억밖에 나지 않았다.

사는 것이 어떤지, 아파트가 있었는지, 빌딩이 있는지, 도로가

제대로 있었는지 아무 기억이 없었다.

그리곤 먼저 와있는 남편 따라 이삿짐도 어느 것을 가져가야 할지

몰라 대충 싸들고 아들네미와 둘이 북경공항에 내렸다.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한국에서 경기가 안 좋아 사업도 정리한 상태였고 중국에서

Call한 분이 계시기에 남편은 사업을 하기 위해 중국으로 먼저와

일을 하고 있었다.

임대료를 내는 것보다 약간의 목돈을 들이고 대출을 받아 사는 게

낫게 다 싶어 아파트도 장만했다. 호수 옆으로 ….

 

중국서 같이 사업을 하자던 분 때문에 우리는 정들던 집과 친구들

모두다 한국에 두고 아무 연고 없는 이곳에 왔다.

일단 사업이 정해져서 왔으니 나와 아들네미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중국에 적응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이제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새로운 나라에 새로운 일, 새로운 보금자리를 생각하며 약간의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같이 사업하자던 분과 남편이 같이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남편은 그 회사에 투자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3개월 동안

월급도 받지 않고 열심히 일했지만 기본적인 사업방향이 서로 맞지가

않았고.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나왔다.

그분 때문에 우리가족이 한국에 있는 보금자리도 포기하고

한국사람도 살지 않은 이런 외진 곳에 아파트도 샀는데,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남편은 기대에 부풀었는데….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속상했지만 겉으로 우리는

그분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용서하지 못했나 보다.

말로는 용서했는데 아직 까정 미움이 있었나 보다.

진짜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나 보다

이제라도 진짜로 용서하고 오히려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오게 해준걸

감사해야 하는건 아닌지…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렇게 마음 먹으련다.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그 이후 지난해 말부터 남편이 중국의 있는 옷 공장들도 알아보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준비를 하려고 동분서주 했었다.

4월 부터는 두가지 상품을 가지고 열심히 준비했다.

중국의 상품을 한국으로 수출해서 팔아야 하는데 식약청 검사도 맡아야 하고

한국에서 영업도 해야 하고 일도 많았다. 그 와중에 이번 여름에

남편이 자그마한 오더(주문 계약)를 하나 했다.

 

원래 봉제(옷 만드는 일)를 했는지라(한국에서 주로 수출만 했다)

아는 분이 소개를 해주어서 지금 한국에서 한창 뜨고 있는 브랜드의

옷을 만들게 되었다. 옷에 들어가는 모든 부자재는 일본과

한국에서 들어오고 만드는 거만 중국에서 하는 거다.

우여 곡절 끝에 수량은 작지만 우리가 소개를 해준 공장에서 만들게 되었다.

 

상품을 만들어서 한국으로 다 보낸 후 부자재들이 조금 남았다.

남편은 그 부자재가 아깝다고 원단을 어디서 얻어와 겨울 잠바를 100장을

만들었다. 그리구선 북경에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무상으로 나눠 주었다.

처음에는 모두들 “뭘~ 이런걸~…ㅎㅎ” 그러시면서 나중에는 “왜 나는

안주냐? 사람 차별 하는 거 아니냐?”…..대충들 이러신다.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남편은 예전에도 나눠주기를 좋아했다.

친정엄마는 “임서방은 식구들은 안 챙기고 맨~ 다른 사람들만 퍼주냐?”

친정엄마가 욕심이 많으셔서 당신 거 까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까봐

미리 걱정하시는 거다.

2년 전 남편이 봉제사업을 거의 접을 무렵 엉뚱한 일을 벌렸다.

 

그 동안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보았던 노란 수박을 사업 아이템으로 정한 거다.

사실 나도 베트남에서 먹어 보았지만 그냥 ‘신기하다.’이렇게 생각만 했다.

남편은 ‘신기하다’가 아니라 ‘노란 수박 씨를 구해서 장사를 해보자’ 였다.

마침 친척 아저씨가 수박농사를 짓고 있는 터라 아저씨에게 씨를 구해줄 테니

한번 심어 보라고 하셨다…물론 수박 짓는 값은 똑같이 드린다고 했다.

 

통도 큰 남편은 노란 수박 씨를 한 박스 이상 구해 왔다.

아마 2-3년 농사지을 씨를 구해온 것이다…그것도 대량으로 지을 수 있는 수량을…

그래서 시험재배를 했었다…비닐 하우스 2동으로 1,000여통을 수확을 했는데

빨간 수박보다 크기도 작고 당도도 덜했지만 반 갈랐을 때 색깔이 그렇게 이뻤다.

남편은 직원 없이 직접 시내 모 백화점들을 돌았다.

다른 백화점에서는 윗사람 결재를 받아야 한다는 등 실없는 소리를 하는데

마침 우리 집 근처 백화점 담당자는 눈을 빛내며(?)

자기네 백화점에서 팔겠다고 한 거다.

(나중에 이 담당자는 노란수박땜에 승진 했단다…

온 메스컴에서 이 백화점을 선전 했으니까…)

 

그리구선 그 다음날부터 그 백화점에서 팔기 시작했고 메스컴을 타기 시작했다.

신문에도 나오고 TV에서도 신기한 노란 수박이라고 대대적으로 방송을 탔다.

남편은 워낙 나서기 싫어해서 대신 친척 아저씨와 아줌마가 TV에 나오기도 했다.

노란 수박을 못 본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사람들의 호기심 때문에 그 해 농사 진

수박은 다 팔았다… 물론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다음해를 생각하고 남편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상의 나래를 타고 끝까지 간거다….

‘몇 통을 팔면 이익이 얼마고…더 팔면 얼마를 벌 수 있고….’

손해 볼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더구나 복병이 있으리라고는….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그 다음해 탄천 아저씨와 의논해서 그 옆의 사람들 비닐 하우스까지 10동 이상을

짓기로 했다. 그리곤 씨를 다 나눠 주었다…

수박은 3월-4월에 종묘 집에 씨를 갖다 주면 종묘 집에서 씨를 싹 틔워

모종을 심게 된다. 4월 말이나 5월쯤 심고 6월 말부터 수확을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모종을 심고 수확 날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

 

그 다음해에 그 해보다 1달 반이나 빨리 백화점에서 연락이 왔다.

진주에서 수박 짓는 모씨가 노란 수박을 가져와서 팔게 해달라고 왔다고…

맘 좋은 남편은 그러라고 했고…(사실 그 백화점에서 구두로 올해 생산품도

사가기로 했었다.) 이미 노란 수박 맛을 본 사람들은 우리 수박이 나올 때 쯤에는

별로 신기해 하지도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수박 농사를 짓는 분들이

작년에 작게 나왔다고 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성장 촉진제(?)를 준거다.

사실 식물에도 성장촉진제가 있는지도 몰랐다…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친척 아저씨의 전화연락을 받고 급하게 내려가 보니 수박모양이 이상한 거다.

크긴 크게 나왔는데 무등산 수박처럼 길~죽하게 나온 거다.

쪼개보니 안에도 역시 넘~ 빨리 성장을 해 부작용이 나서 안이 살짝

빈 거도 있었고 약간 푸석푸석한 것도 있었다.

농사지은 분들도 미안한지 돈을 다 안 받겠단다…(원래 빨강 수박보다 비싸게

주기로 했었다.) 그래도 남편은 빨강 수박 값 만치 다 지불했다.

하지만 우리는 수박을 거의 못 팔았다.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내가 직접 골프 연습장에 가서도 팔고(남편이 수박 판돈을 용돈으로 준다고 해서

팔을 걷어 부치고 우리집 근처 골프연습장에서 팔았는데 수입이 짭잘했다…ㅎㅎ)

농협에 가서도 직접 팔아 보기는 했지만 기형수박이 넘 많아서 상품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맛은 무척 달았고 잘라서 냉동실에 넣어 놓으면 아이스께끼(?)같았다.

드디어 수확을 다해서 우리 집 차고에 가득 쌓아지기 시작했다.

팔 곳은 없고 수박은 가득하고 할 수 없이 공짜로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왕 손해 본거 왕창 손해 보기식이다.--;;

 

‘부스러기 선교회’라고 밥을 제대로 못 먹고 결손가정 아이들을 위한 단체가 있었다.

그 곳에 연락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가져 가게 했다.

아이들이 넘~ 좋아했단다….생전 처음 노란 수박도 보고 맛있게 먹었다고….

근처 아파트에도 트럭이 있는 사람을 오라고 해서 공짜로 나눠졌다.

농사 진 농부들은 하나도 손해를 보지 않았고 우리는 적잖은 손해를 보았다.

통 큰 남편 둔 덕분에 그 노~란 수박 씨가 아직도 한국 집 어딘가에서

뒹굴고 있을 거다. 수박은 생물이어서 보관하기가 어렵다. 집에서 두고 썩히느니

후하게 인심을 쓰는게 낫지….ㅎㅎ

 

그 다음해 여기저기서 물어온다… “올해는 노란 수박 농사 안 지어요? 작년에

넘~ 맛있게 먹었는데…올해도 얻어 먹었으면 좋겠다…”

누구 속에다 염장 지르는 소리다… 우리가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데…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그리고 2년이 지났다. 남편이 중국에 와서 열심히 준비했다.

이번에는 썩지 않는 물건이니 다행이다. 그렇다고 재고로 쌓이면 안되고…

그러나 남편은 벌써 공짜로 준 사람도 많다. 고맙다고 주고 웃어른이라고 주고…

못 말리는 병이다…거저주는 병…^^

그래도 남 등쳐먹는 것보다 낫다…최소한 욕먹지는 않을 테니..

웰빙 제품이라 웰빙 바람 타고 잘 되었으면 좋겠다.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

 

행복하세요(^.^)

 

짜이찌엔!지훈네가 중국에서 사는 이야기-중국에 왜 사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