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 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청년실업률에 일조를 하며 백수의 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 한 출판사광고 회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취업 사이트에 올려 놓았던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하루종일 디자인공부 글 쓰기 공부만 하고 살기에는 너무 한심해 보여, 면접을 보게 되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지역을 물어물어 찾아간 그 곳은 여느 회사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저어, 오늘 면접 보기로 한 사람입니다." 곱슬머리에 조금은 날카로운 눈매를 한 서른 중반의 남자가 애써 웃음을 보이며 앉으란다. 이사장실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좁고 초라했지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광고전단지와 홍보책자들이 그나마 출판사 광고업체 위상을 세워 주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앉으라고 내어 준 쇼파가 하필이면 밑이 다 꺼진 쇼파였던 것이다. 그만 엉덩이가 바닥에 닿을 듯 했다.
깜짝놀라 비명을 지를 뻔 했으나 애써 담담한 척, 옆 쇼파로 엉덩이를 옮기며 맘에도 없는 말을 내던졌다.
"회사가 참 아담하고 정겹네요."
드디어 중후해 보이는 사장이 들어오더니 면접을 시작했다. 면접이라고 잔뜩 긴장을 하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장이 대뜸 "사실, 내가 전교조 1회 멤버야." 라고 열장 연설을 시작 한다.
사장의 특징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결론은 그 많은 수식과 배경설명이 포함된 것의 하나였다. 결국 자신이 전교조 1회였으므로 선생님들한테 불이익이 가는 방침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나는 교직에 뜻을 두었던 사람은 아니었기에 별 감동은 없었으나 그래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열정적으로 보여 기분은 좋아 보였다.
여기까지는 내가 좋은 직장에 면접의 영광을 얻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사장의 다음 말은 차라리 듣지 않은 편이 나을 뻔 했다. 사장은 나의 이력과 수상경력을 보고는 말을 하지 않아도 파악을 해 버렸다. 그리고는 내 처지와 상황에서는 도저히 뿌리치기 힘든 제의를 해 왔다. "만약 자네가 우리 회사에서 내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열심히 참여만 해 준다면 서운하지 않을 만큼의 보상이 따를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심사를 맡고 있는 권위 있는 광고공모에 어느 정도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고, 약간 부족하게 느껴지면 내가 직접 작품에 손을 대서라도 당선에 힘을 써 줄 것이다. 우리 광고회사원들은 거의 다 공모에 한두번 정도 합격한 상태다. 어떠냐,.최적의 조건이 아니냐."
내가 살면서 언제 또 이런 기막힌 제의를 받아 볼 것인가.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어 면접을 보는 내내 사장의 말에 동조까지 해 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면접이 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흥미로운 대화들이 오고 갔고, 한 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으나 10분이 지난 것처럼 재미있었다.
정말 내 입맛에 딱 맞는 면접이었다. 나는 내가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잘하면 일도 하고 문예잡지의 심사위원으로 있는 상사의 밑에서 기회도 얻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운수대통이고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불현 듯 익숙치 못한 것들에 대한 거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속이 뒤집 어질 듯 메스꺼워졌다.
스물 아홉, 나는 스물 아홉이었다. 살아 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더 많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미래를 가지고 있는 나이. 그런데 감히 누가 벌써부터 내 미래를 도움이 라는 명목으로 손을 대려 하는가.
혹여 그런 방법으로 합격을 한다 해도, 나의 사회진출 생명력이 지속될 것인가. 오히려 합격이라는 허울만 안고 평생을 그의 하수인으로 약점 잡혀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창과나 국문과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 교수의 도움으로 등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열심히 노력해서 정도로 등단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재단의 명예를 위해 등단을 도와 준다.
나는 잠깐 잊고 있었다. 나로 인해 패배의 쓴 물을 마시고 고꾸라질 진정한 젊은 패기의식 을 가진 이들을 죽일 뻔 했으니. 마치 지옥 불에 갔다가 구제 받은 느낌이었다. 그 후로 몇 달을 더 백수로 살아야 할지도 모를 막막한 청춘이었지만 난 행복했다. 그당시 스물 아홉의 나는 젊었고 가능성이 무한대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회가 그리 썩 많이 오지는 않는듯 하다.이게 현실인가.하지만 언젠가는 기회는 또 찾아 올 것이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추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은 당연히 오는 법이니깐 인생은 '흐림'과 '맑음'의 연속생활 아니겠는가. 그리 마음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듯 하다. 왜, 난 나니깐.
세상은 나에게 모든걸 가지라 하네
살아 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 학교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청년실업률에 일조를 하며 백수의 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
한 출판사광고 회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취업 사이트에 올려
놓았던 이력서를 보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하루종일 디자인공부 글 쓰기 공부만 하고 살기에는 너무 한심해 보여,
면접을 보게 되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지역을 물어물어 찾아간 그 곳은
여느 회사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저어, 오늘 면접 보기로 한 사람입니다."
곱슬머리에 조금은 날카로운 눈매를 한 서른 중반의 남자가 애써 웃음을
보이며 앉으란다. 이사장실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좁고 초라했지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광고전단지와 홍보책자들이 그나마 출판사 광고업체
위상을 세워 주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앉으라고 내어 준 쇼파가 하필이면
밑이 다 꺼진 쇼파였던 것이다. 그만 엉덩이가 바닥에 닿을 듯 했다.
깜짝놀라 비명을 지를 뻔 했으나 애써 담담한 척, 옆 쇼파로 엉덩이를
옮기며 맘에도 없는 말을 내던졌다.
"회사가 참 아담하고 정겹네요."
드디어 중후해 보이는 사장이 들어오더니 면접을 시작했다. 면접이라고 잔뜩
긴장을 하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사장이 대뜸
"사실, 내가 전교조 1회 멤버야." 라고 열장 연설을 시작 한다.
사장의 특징은 말이 많았다. 그러나 결론은 그 많은 수식과 배경설명이
포함된 것의 하나였다. 결국 자신이 전교조 1회였으므로 선생님들한테
불이익이 가는 방침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물론 나는 교직에 뜻을 두었던
사람은 아니었기에 별 감동은 없었으나 그래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열정적으로
보여 기분은 좋아 보였다.
여기까지는 내가 좋은 직장에 면접의 영광을 얻었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사장의 다음 말은 차라리 듣지 않은 편이 나을 뻔 했다.
사장은 나의 이력과 수상경력을 보고는 말을 하지 않아도 파악을 해 버렸다.
그리고는 내 처지와 상황에서는 도저히 뿌리치기 힘든 제의를 해 왔다.
"만약 자네가 우리 회사에서 내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열심히 참여만 해 준다면
서운하지 않을 만큼의 보상이 따를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심사를 맡고 있는 권위
있는 광고공모에 어느 정도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고, 약간 부족하게 느껴지면 내가
직접 작품에 손을 대서라도 당선에 힘을 써 줄 것이다. 우리 광고회사원들은 거의
다 공모에 한두번 정도 합격한 상태다. 어떠냐,.최적의 조건이 아니냐."
내가 살면서 언제 또 이런 기막힌 제의를 받아 볼 것인가.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어
면접을 보는 내내 사장의 말에 동조까지 해 가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면접이
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흥미로운 대화들이 오고 갔고, 한 시간이 넘도록 진행되었으나
10분이 지난 것처럼 재미있었다.
정말 내 입맛에 딱 맞는 면접이었다.
나는 내가 참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잘하면 일도 하고 문예잡지의 심사위원으로 있는
상사의 밑에서 기회도 얻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운수대통이고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불현 듯 익숙치 못한 것들에 대한 거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니 속이 뒤집
어질 듯 메스꺼워졌다.
스물 아홉, 나는 스물 아홉이었다. 살아 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더 많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미래를 가지고 있는 나이. 그런데 감히 누가 벌써부터 내 미래를 도움이
라는 명목으로 손을 대려 하는가.
혹여 그런 방법으로 합격을 한다 해도, 나의 사회진출 생명력이 지속될 것인가. 오히려
합격이라는 허울만 안고 평생을 그의 하수인으로 약점 잡혀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문창과나 국문과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 교수의 도움으로 등단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열심히 노력해서 정도로 등단을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재단의 명예를 위해 등단을 도와 준다.
나는 잠깐 잊고 있었다. 나로 인해 패배의 쓴 물을 마시고 고꾸라질 진정한 젊은 패기의식
을 가진 이들을 죽일 뻔 했으니. 마치 지옥 불에 갔다가 구제 받은 느낌이었다. 그 후로
몇 달을 더 백수로 살아야 할지도 모를 막막한 청춘이었지만 난 행복했다. 그당시 스물
아홉의 나는 젊었고 가능성이 무한대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기회가 그리 썩 많이 오지는 않는듯 하다.이게 현실인가.하지만 언젠가는 기회는 또
찾아 올 것이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추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따뜻한
봄은 당연히 오는 법이니깐 인생은 '흐림'과 '맑음'의 연속생활 아니겠는가.
그리 마음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듯 하다.
왜, 난 나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