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59. 칠리네

무늬만여우공주2004.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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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리는 우리 옆 집 아이이다.

나이가 아홉살 먹은 계집 아이인데 키가 훌쩍하니 커서 중학생처럼 보이는 아이이다. 시골에서 햇빛에 마구 그을리며 뛰어다녀서 새카맣게 탄 얼굴을 반짝이는 아이인데 우리 아들을 그렇게 잘 데리고 놀아줘서 참 고마웠다.

종종 우리 집에 와서 수다를 잘 떨었는데, 난 저녁 나절 해가 어슷어슷 넘어가면 마당가에 아들과 앉아서 하늘의 구름과 들판의 바람과 풀들이 흔들리는 것을 보는걸 즐겼다. 그 평화로움이 내게 좋은 위안이 되었다.

아들 옆에 앉아서 하루 종일 종알거리는 칠리는 자기 얘기도 잘 해줬다.

자긴 엄마가 셋이 있댄다.

"헉, 뭔 엄마가 셋이야?"

그녀의 아빠와 엄마는 서로 이혼을 하고 각각 다른 집에서 각기 또 재혼을 해서 산단다. 그 와중에 이 칠리는 외할머니네로 보내어져서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를 엄마로 알고 엄마라 부르며 자랐다. 그러다 엄마네 가면 그 엄마보고도 엄마라 부르고 아빠네 집에 가서 새 엄마에게도 엄마라고 한단다. 그렇게 칠리는 엄마가 셋이다. 불쌍한 아이이다. 아빠와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아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그녀를 극진히 키웠지만 그게 아빠와 엄마의 사랑만할까.

그러다 어느 날 칠리는 아빠네 다녀온단다. 멀리 여행 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란다. 한 블럭 안에 아빠네 엄마네 다 산단다. 잉. 뭐 그렇게 살 수 있지?

한집 건너 아빠네 또 한 집 건너가 엄마네란다.

"서로 안싸우시니?"

"아니 서로 친하게 잘 지내는데."

우리 한국인 같은 정서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었다. 한 동네에서 자란 그들은 어릴 적에 결혼을 해서 칠리를 낳고, 서로 이상이 안맞다고 이혼 한 다음 다시 한동네 사람들하고 결혼해서 이웃집해서 사는거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혼을 해도 서로 친구같이 잘 지낸다. 좋아보였다.
살다가 상대방이 싫으면 이혼하자고 한다. 그럼 바로 이혼해주고 친구처럼 잘 지낸다.
주말에 아빠가 새엄마랑 데릴러와서 애를 데리고 놀다가 데려다 주곤 하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은근히 젊은 여자와 나이든 남자와의 결합도 많았고, 젊은 남자와 나이든 여자와의 결혼도 많았다.

칠리네도 그렇게 이혼한 아빠와 엄마가 친구가 되어서 친하게 잘 지내는 것이다.

칠리 외할머니네는 커다란 마당을 개조해서 닭도 키우고 오리, 염소, 멧돼지를 키웠다. 아들 녀석은 그 집에 한 번 놀러가면 집에 올 생각을 안했다.
아침 밥을 먹여 놓으면 칠리가 데리고 나가서 어스름 저녁이나 되어야 돌아오곤 했다.

동네에서 '알렉한드로'란 한국 꼬마를 모르는 사람은 간첩이다. 조그만 개구장이 녀석이 윗도리 하나 걸치고 고추를 딸랑거리고 돌아댕기니 우습기도하고 재밌기도 했나부다.

나도 가끔 칠리네 마당에 들어가서 동물들을 구경했는데, 그 시골 냄새가 물씬나는 칠리네가 좋았다. 외할아버지도 내가 놀러가면 집에서 담근 정체모를 쥬스도 내오곤 했는데, 그 쥬스는 무엇으로 만드는지 몰라도 숭늉처럼 생긴게 참 특이하고 맛났다.

마당가 한 쪽에 흙으로 만든 오븐이 있다. 장작불을 지펴서 굽는건데, 하루는 외할머니가 빵을 만들어 준단다. 난 감격했다. 우와 그 흙오븐에서 빵이 나오다니.
칠리 외할머니는 밀가루를 새벽마다 반죽을 해서 그 날 하루 온 식구들이 먹을 빵을 굽는다. 내꺼까지 만들어 왔는데 커다랗고 둥그런 빵을 가져왔다.

그 흙오븐에서 구워진 빵은 너무 맛있어서 배가 빵빵하니 불러오는데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워버렸다.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빵이 얼마나 고소하고 맛있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아르헨티나 시골을 떠올리면 그 빵이 생각나서 군침이 돌 정도다.

난 칠리에게 아부를 떨어서 그 빵을 자주 얻어먹곤했다.

학용품을 준다거나, 고기, 과자등 군것질 거리 등을 주면 칠리는 너무 좋아하며 외할머니에게 가져가서 자랑을 하곤했다. 그 보답으로 빵을 구워왔는데, 어찌나 맛있는지 나 혼자 다 먹어서 랑은 그 빵이 얼마나 맛있는지는 내 말 밖에 들어보지 못했다.

칠리는 우리 가족처럼 지냈다. 눈뜨면 칠리를 봤으니깐 말이다. 칠리도 점점 아들을 데리고 나가 노느니 나랑 수다 떨며 지내는걸 좋아했다.

아홉살 계집아이랑 난 정신연령이 통했다.

착하고 조숙한 아이 칠리는 시골에 묻혀사는 천사 같았다. 순진하고 때가 묻지않은 그 아이가 난 너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