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알갱이 - 48

이끼2004.11.27
조회2,490

 

"거기, 거기! 조명 조심하고!"

 

"마이크, 마이크 준비 되었나? 소리 확인해보고! 빨리 서둘러!"

 

진유채와 김태준의 기자회견장은 정말이지 도깨비 시장이나 다름 없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일간지, 신문, 잡지, TV, 인터넷 방송 등 온갖 기자란 명함을 달고 쫓아온 기자들은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뭐 더 알아낸 것 없어?"

 

"글쎄. 아직 별 다른 것은 없는데..."

 

"얘네 예정대로 결혼 한대?"

 

"글쎄? 진유채가 두 남자를 저울 위에 놓고 재고 있다는 기사까지 나온 마당에 과연 결혼을 할 수는 있을까? 김태준 집안이 보통집안이야?"

 

"그래도 모르는거지."

 

기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름대로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의 주인공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최대의 사건이 진유채의 신데렐라 신드롬인 만큼 기자들은 저마다 특종을 터뜨릴 거리를 찾아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캐슬타워라는 보완이 철처한 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알려진 유채와 태준에 관련된 사항은 발표된 것들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제대로 노출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기자들은 더더욱 오늘의 기자회견에 목숨을 내걸고 취재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었다.

 

"이봐, 저기... 저 사람 신기자 아냐?"

 

"어, 그러네. 저 인간도 여기 취재 온거야?"

 

한참을 떠들던 기자들이 기자석중 한 의자에 혼자 가만히 앉아 앞의 빈 단상만을 꿋꿋하게 응시하고 있는 한 남자를 보고 웅성이기 시작했다. 보통 절대 직접 취재하러 다니지 않는 신기자가 직접 취재를 왔다는 것에 다른 기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신기자는 신랄한 연예인 비판으로 연예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그런 신기자가 이 자리에 왔다는 것은 진유채 신드롬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꼭... 그 자리에서 결정적인 이야기를 잡아서 공격을 해줘야합니다. 아셨죠? 저에겐 그 자리가 마지막 기회나 다름 없습니다. 제발, 신기자님...'

 

골똘히 생각에 빠져 빈 단상을 보고 있는 신기자의 머리속에서는 신신당부를 하던 백사형의 말이 어지럽게 계속 흩날리고 있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다지만 과연 진유채가 털어서 먼지가 날 거리가 뭐가 있을까? 부자도 아니라 세금 포탈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마약을 사서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고 남자 관계가 지저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서도 없는 이야기에 대해 무작정 질문을 날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깊은 생각에 잠긴 신기자의 머리속에는 '신데렐라 진유채'라는 글귀 이외에는 어떠한 단어도 도통 떠오르질 않았다. 

 

"장내에 계신 기자분들께 알려드립니다. 곧 기자회견을 시작할 예정이오니 기자분들께서는 지정된 좌석에 앉아서 기다려주십시오. 카메라 촬영및 녹음을 하실 분들은 앞쪽으로 나와주십시오. 장내가 많이 혼잡하오니 원활한 진행을 위해 협조 부탁드립니다."

 

마이크를 통해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홀 안을 울리자 기자들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지시에 따라 행동했다. 이제 곧 기자회견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잠시뒤 카메라의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기자들은 저마다 앞쪽의 진유채와 김태준을 보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동안 진유채를 사석에서 취재한 기자는 그리 많지 않았었다. 정식 기자회견으로 소문의 진유채의 실물을 처음보는 기자들의 눈매는 매섭게 빛이나고 있었다. 진유채와 김태준의 꼭 맞잡은 손이 기자들의 눈에 예리하게 포착되고 있었다.

 

"지금부터 진유채양과 김태준군의 기자회견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착석해주십시오."

 

사회자의 안내멘트에 따라 진유채와 김태준이 자리에 앉고 나머지 기자들도 자리에 앉았다.

 

"먼저, 김태준씨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김태준이 앞에 놓인 무선 마이크를 집어들고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떠한 이야기들이 자신에게 던져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전쟁 그대로의 상황이었다. 지금까지의 온갖 루머와 의혹들에 대한 모든 종결을 짓는 무대에 태준이 서 있는 것이었다.

 

'힘내요...'

 

태준이 긴장했다는 것을 눈치챈 유채가 입 모양만 벙긋 거리고는 살짝 웃어보였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태준은 유채의 그런 동작 하나만으로 자신이 안정을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태준은 눈 앞에서 먹이가 던져지기만을 기다리는 하이에나 떼같은 기자들에게 웃음을 보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김태준입니다. 여러 보도를 통해 이미 알고 계신 분들이 많으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보도 내용대로 저, 김태준은 제 옆에 앉아계신 진유채양에게 장가를 가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알게된 사이입니까?"

 

"혹시 전의 루머로 인한 정략결혼입니까?"

 

태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금새 기자회견장은 쑥대밭이 되어버렸다. 먹이감을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들 떼처럼 기자들은 앞에 던져진 취재 상대에게 수십개의 질문들 던지고 있었다.

 

"자자, 손을 들어주시면 지명을 하겠습니다. 한분씩 질문해주십시오. 질문은 총 15개만 받겠습니다."

결국 겨우 소란을 가라앉힌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자들의 손이 사방에서 올라왔다. 어렵게 살펴보던 사회자가 한 여기자를 가르키기가 무섭게 여기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일신문에 강신희 기자입니다. 두 분의 결혼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기자의 축하말에 태준은 짧게 대답을 보냈다. 긴장되는 자리일수록 최소한의 예의는 꼭 지켜야하는 법이었다. 게다가 이 기자가 어떤 질문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아니던가.

 

"김태준씨의 메이플 대표이사직을 그만두게 된 경위가 주주총회의 결과로 알려져있었는데 최근 들어 김태준씨가 또 다른 사업 구상으로 자진해서 물러난 것이라는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 일에 대한 정확한 김태준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태준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는 다시 마이크를 가까이 갖다 대었다.

 

"메이플의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것은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일이라는 처음 보도가 맞는 내용입니다. 또 다른 사업 구상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은 너무 이른 이야기 인 것 같군요."

 

"주주총회의 결정은 최초의 보도였던 게이 스캔들과 관계있는 것입니까?"

 

"......"

 

기자의 질문에 유채가 당황하며 태준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미 태준의 표정이 이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가장 걱정하고 있었던 질문이 처음부터 바로 터지다니... 유채는 착찹한 심정으로 태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순간에 유채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제 태준이 직접 해결해야할 문제였다.

 

"그 보도는..."

 

아주 짧은 순간의 침묵이었을 뿐이었지만  유채에게는 무척이나 길고 긴 시간이었다. 태준이 입을 열자 유채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나왔다. 우선 한고비는 넘긴거다.

 

"사진에 저와 같이 찍힌 한매니저는 저와 메이플을 같이 만들어낸 하나뿐인 저의 사업 파트너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전 무수히 많은 사기꾼들을 만나봤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로 참 생각을 하게됩니다. 사기꾼과 게이중에 누가 더 나쁜 사람일까요? 전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성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게이가 아니라고 믿어달라고 호소하지는 않겠습니다. 만약 게이라면 아마 곧 결혼하자마자 이혼을 하지 않을까요? 그냥 두고 보십시오. 제가 게이인지, 아닌지."

 

태준의 또박또박한 차분한 말이 끝나자 기자들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저 사진기의 플래시 터지는 소리만이 간발적으로 하나씩 울려댈 뿐이었다. 또 다시 한 기자가 손을 들자 기자회견은 지속되기 시작했다. 유채는 이내 편안하게 안정을 취하는 태준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살짝 웃어보였다. 이제 태준을 원래 위치로 돌려보내주면 유채의 계획은 훌륭하게 마무리가 될 것이었다.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이 되는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유채는 무한한 뿌듯함에 젖어들었다.

 

"갑작스런 진유채씨와의 결혼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진유채씨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신데렐라'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는데... 이 김태준씨는 어떻게 진유채씨와의 결혼을 생각하시게 된겁니까?"

 

질문은 계속적으로 김태준에게 몰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진유채를 화제의 인물로 만든 것은 그 상대가 김태준이었다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니까... 하지만 유채는 살짝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래도 며칠동안 엄청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는데, 아무도 진유채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건가...

 

"처음 만났을 때 청혼을 했는데 안 받아주더군요. 저, 이 아가씨에게 결혼 허락 받는데 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하하..."

 

정말 이제 완전한 자신의 페이스를 찾았는지 태준이 너스레를 떨어가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진유채씨는 벌써 CF 제의까지 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신데렐라가 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기다리던 질문이 들어왔지만 별로 마음에 쏙 드는 좋은 질문은 아니었다. 그래도 유채는 한껏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글쎄요. 12시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인데요."

 

"하하하."

 

15개를 받기로 한 질문이 거의 다 채워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예민한 질문으로 시작해서인지 기자회견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변하고 있었다. 유채와 태준의 연애 스토리까지 몇가지가 공개되고 나자 장내는 취재보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로 바뀌고 말았다. 그 안에서 단 한사람 신기자만이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을 수록 점점더 양미간의 주름이 깊어지고 있었다.

 

"아무리 진유채가 잘난 듯 떠들어도 김태준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거 아닌가?"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온 소리가 유채의 귀를 쨍하고 울리고 지나갔다. 깜짝 놀란 유채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순간 냉랭한 적대감을 품고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신기자야..."

 

"저 인간이 여긴 웬일이래..."

 

기자들까지도 갑자기 웅성이는 소리를 뚝 끊고 소근거리며 신기자를 주시했다. 유채는 침을 꼴깍 삼켰다. 물론 자신에게 누군가 손가락질은 할 것이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석상에서 그것도 기자가 이런 말을 뱉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신기자에게 질문하는 유채의 목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태준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표정관리를 하느라 억지로 방긋 웃으면서 똑바로 기다를 응시하는 유채를 보자 태준은 가슴한켠이 쿵 주저앉았다. '당신은 지독한 마초야. 당신이 내 모든 어려움을 다 해결해줄 수 있다는 착각하지마. 그런것이 남자다움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 예전 유채가 자신에게 소리소리 지르던 이야기가 갑자기 생생하게 떠올랐다.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이었다. 지금 유채를 목소리가 떨리는 상황까지 몰아넣은 것도 태준때문이었고, 그것을 태준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요즘 진유채씨에 대한 보도 내용이 신문, 잡지 할 것 없이 넘쳐나더군요. 모두 진유채씨에 대한 비방보다는 칭찬과 관심에 포커스가 맞추어진 기사내용이던데, 솔직히 전 진유채씨 개인은 개인으로서의 기자가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유채씨 본인은 생각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김태준을 떠나서 이렇게 기자회견을 벌일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결혼설 전에 보도되었던 게이기사가 없었다면 진유채씨에 대한 기사가 이렇게 많았을까요? 어디까지나 진유채씨는 김태준씨에게 소속되어있는 종속관계라고 생각하는데 맞습니까?"

 

"......"

 

순간 진유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자 신기자는 겨우 숙제를 해결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백사형이 그토록 부탁했던 공격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역시 땅투기로 부자된 사람에게 졸부라고 매도를 시키면 당황한다고 하더니만, 진유채 역시 같은 모양이었다. 신데렐라가 되었다길래 그럼 넌 김태준이 없으면 재투성이겠다고 물었을 뿐인데 저렇게 당황을 해버리다니... 아무말도 못하고 굳어있는 유채의 얼굴을 보면서 신기자는 지금까지 유채에 관한 보도가 다 조작된 것이 아닌지 의심까지 들고 있었다.

 

"인신공격성 질문은 삼가해주십시오."

 

장내에 정적이다못해 싸늘한 기운마저 감돌자 사회자가 서둘러 뒷수습을 하려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런 사회자에게 유채가 괜찮다고 입모양을 붕어처럼 벙긋거렸다. 유채의 사인을 전해 본 사회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표시를 했다.

 

"진유채는 신데렐라가 아닙니다."

 

유채의 목소리가 아닌 태준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순간, 유채를 비롯한 기자들의 눈은 온통 태준에게 집중되었다.

 

"진유채가 재투성이고, 전 왕자란 말씀인데... 도대체 우리가 그런 신분차이가 난다는 것은 누가 정했는지 무척 궁금하군요."

 

태준의 언성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 태준을 유채는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라고 말을 하려는 생각인건지 유채는 도저히 태준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임기응변에 능하다고 생각하는 유채 자신도 별다른 반박이 도저히 상황에서 태준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가.

 

"진유채의 매스컴 보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내용은 알고 계시겠지요? 그 내용을 보시고도 유채가 저를 빼놓고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유채는 혼자 과외한번 안하고 매화여대에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학비를 벌고 장학금을 벌어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외국한번 안 나갔다왔으면서 유창하게 외국어 회화가 가능하신분 계십니까? 아니면 주변에서 그런 사람 많이 봤습니까? 유채만큼 많은 아르바이트를 해보신분 있으십니까? 전 지금까지 유채처럼 멋진 여자는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태준의 격양된 발언에 이젠 사진기의 플래시조차 터지지 않고 있었다. 신랄하게 질문을 던졌던 신기자까지도 조용히 태준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가 아는 여자들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편하게 살기를 원하더군요. 노력이라고 해도 우아하게 자신을 가꾸는데 별로 힘 안 드는 일들을 노력이라고 하더군요. 자신은 할만큼 했다고 우기더군요. 유채는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을 총동원해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온... 누구보다 당당한 사람입니다. 그런 유채가 기사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반적인 것들은 기사가치가 없다고 하죠. 과연 진유채가 일반적인 사람일까요?"

 

유채의 눈동자는 태준에게 박혀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쓸데없이 잘난 척만 해대는 마초기질의 남자라고 태준을 단정지어버렸던 유채였다. 하지만 지금의 태준의 발언에서 유채는 지금까지 자신의 생각이 100% 옳은 것은 아니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조금 더 태준과 더 많은 대화를 해봤어야했다. 태준이 왜 결혼을 하자고 하는 것인지 진지하게 물어봤었어야했다. 그랬다면 아마 조금 더 일찍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짝... 짝짝.... 짝짝짝!"

 

갑자기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기자회견장은 이내 박수소리속에 가득 묻혀버렸다.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태준이 '나, 잘했어?'라는 표정으로 유채를 돌아보자 유채는 감상적인 표정을 잊고 그만 깔깔거리고 웃어버렸다. 태준의 표정이 정말이지 너무도 깜찍했다. 아주 끔찍하도록 깜찍했다.

 

"자, 이미 15개의 질문이 넘어간 것 같습니다. 이상, 기자회견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박수소리에 들뜬 장내에 기자회견 종결을 선포했다. 기자회견을 마친다는 사회자의 말에 화들짝 놀란 유채가 내려놓았던 마이크를 재빨리 집어들었다.

 

"잠시만요."

 

유채의 말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은 유채에게로 집중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마이크까지 잡알을까'라는 호기심 어린 시선이 사람들의 얼굴에 동일하게 떠올랐다. 그런 사람들의 표정에는 전혀 관계치 않는 유채가 태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김태준씨."

 

태준의 놀란 눈이 껌뻑거리면서 유채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채는 자신이 이 이야기를 하면 태준이 보일 반응을 생각하면서 혼자 끝도 없이 나오는 흐뭇한 미소를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삼쳐야만 했다.

 

"메이플의 지분 51%를 위임받은 권한으로 김태준씨의 대표이사 복직을 선포합니다."

 

"뭐?"

 

유채의 말에 화들짝 놀란 태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태준씨가 가지고 있던 지분과 태민씨의 지분 그리고 저를 비롯한 태준씨를 믿고 투자하셨던 소액주주 여러분들의 뜻입니다. 메이플 레스토랑의 대표이사직을 다시 맡아주세요."

 
그제서야 유채의 말을 이해한 태준의 표정은 아마 유채가 평생 죽을 때까지도 잊지 못할 그런 것이었다. 힘들게 고된 훈련을 마친 선수가 억울하게 빼앗긴 금메달을 되찾는다면 바로 이런 표정을 짓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도 감격스럽고,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벅찬 그런 행복한 표정...

 

"그러면, 김태준씨는 메이플 레스토랑의 경영권을 다시 가지게 되는 겁니까?"

 

"정식으로 주주총회를 거쳐야 경영권이 확보가 될텐데 주주총회 소집은 언제 하십니까?"

 

"51% 주주들의 위임에 대한 일은 진유채씨가 지위하셨습니까?"

 

"현재 메이플의 주가가 매우 떨어져있는 상황인데 김태준씨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실 생각입니까?"

 

갑작스런 유채의 폭탄 선언으로 장내는 또다시 아수라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 아수라장을 탈출한 신기자가 조용히 호텔의 로비를 나서면서 백사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최선을 다했네. 안됐지만 자네의 계획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 같네. 방금 유채가 메이플 지분 51%를 위임받은 자격으로 김태준의 메이플 복귀를 선언했다네. 자네가 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