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5) 조선 중기의 학자 이휘일은 추수의 즐거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가을에 곡식 보니 좋음도 좋을시고. 내 힘에 이룬 것이 먹어도 맛이로다. 이 밖에 천사만종(千駟萬鍾)을 부러 무슴 하리오. 구경 중에 나락구경만한 것이 없다고 옛사람들은 즐거이 말했다. 요즈음이야 콤바인이 지나가면 탈곡까지 되어 바로 가마니에 담겨 묶인다. 사람대신 기계가 수월히 하는 진화된 농촌 풍경이다. 그런데 콤바인을 모는 농부의 모습이 별로 즐겁지는 않다. 추수를 하면서도 즐겁지 않는 모습, 그것은 정부의 쌀 수매 정책과 쌀 시장 개방으로 앞으로 농사나 지을수 있을지 우울하기 때문이다. 내 어릴 적 추수하는 날은 어른 아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도 작은 힘을 보태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있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힘들지만 힘든 줄 모르고 추수가 끝나면 천석지기 만석지기가 부러울 바 없는 듯 뿌 린 대로 거두어들여 마당마다 나락 섬이 쌓인다. 땀 흘려 성취한 보람은 쌀이 되어 가용에 쓰일 돈이 된다. 장가 못간 삼촌이나 형님, 누이들의 혼사문제가 오가다보면 마을에는 잔치판이 벌어진다. 날씨가 매섭지만 마당에 차일을 치고 멍석을 깔고 떡하고 돼지 잡아, 푸짐한 잔치음식은 손 님을 기다린다. 이쁜이네가 단술 한동이를 부조하고 천식이네는 엿 한판을 부조한다. 그리고 가서 먹는 일만 남았다. 한잔 한잔 하다보면 매서운 바람도 봄바람처럼 훈훈해지기 마련이다. 좋은 인심 속에 어른들은 술에 불콰하니 취하여 흥이 절로 난다. 아이들은 잔치국수 한 그릇과 떡 몇 조각에 포만감을 느낀다. 추수가 끝나면 마을 남정네들은 겨울제일의 양식인 땔감을 하러 산으로 나무를 하러간다. 부지런한 만큼 솔가리며 장작이 쌓이면 겨울나기는 끝이 나고, 다음 맞을 봄을 위해 씨앗을 고르고 잔잔한 일거리로 쉴 틈도 없이 일들을 해야만 한다. 겨울이 끝나갈 즈음 무서운 춘궁기가 기다리고 있음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수탈당하고 축적되지 못한 살림살이의 곤궁함이 그 시절 나라를 뒤덮고 있 었다. 보릿고개라 하던 춘궁기를 넘기지 못하는 집들이 흔히 있었다. 그러나 구황작물로 그 고비를 넘길라치면 부황 뜬 얼굴은 될지언정 굶어 죽는 이는 없었다. 마을의 따뜻한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를 가엾이 여김 (一) 봄에 한 낟알 곡식을 뿌려 가을에는 수많은 낟알 거둔다. 나라 안에 놀리는 밭이 없건만 그래도 농부는 굶어 죽는다. (二) 김을 매다가 한낮이 되면 땀방울이 벼 밑의 땅에 떨어진다. 그 누가 알리, 밥상의 밥을 그 알알이 다 농부의 고생임을. 이신(李紳, 786~846 당나라 시인) 김 명 수 Porque Te Vas - Jeanette
겨울 이야기 / 5
겨울 이야기
(5)
조선 중기의 학자 이휘일은 추수의 즐거움을 이렇게 노래했다.
가을에 곡식 보니
좋음도 좋을시고.
내 힘에 이룬 것이
먹어도 맛이로다.
이 밖에 천사만종(千駟萬鍾)을
부러 무슴 하리오.
구경 중에 나락구경만한 것이 없다고 옛사람들은 즐거이 말했다.
요즈음이야 콤바인이 지나가면 탈곡까지 되어 바로 가마니에 담겨 묶인다.
사람대신 기계가 수월히 하는 진화된 농촌 풍경이다.
그런데 콤바인을 모는 농부의 모습이 별로 즐겁지는 않다.
추수를 하면서도 즐겁지 않는 모습,
그것은 정부의 쌀 수매 정책과 쌀 시장 개방으로 앞으로 농사나 지을수 있을지 우울하기 때문이다.
내 어릴 적 추수하는 날은 어른 아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도 작은 힘을 보태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있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힘들지만 힘든 줄 모르고 추수가 끝나면 천석지기 만석지기가 부러울 바 없는 듯 뿌
린 대로 거두어들여 마당마다 나락 섬이 쌓인다.
땀 흘려 성취한 보람은 쌀이 되어 가용에 쓰일 돈이 된다.
장가 못간 삼촌이나 형님, 누이들의 혼사문제가 오가다보면 마을에는 잔치판이 벌어진다.
날씨가 매섭지만 마당에 차일을 치고 멍석을 깔고 떡하고 돼지 잡아, 푸짐한 잔치음식은 손
님을 기다린다.
이쁜이네가 단술 한동이를 부조하고 천식이네는 엿 한판을 부조한다.
그리고 가서 먹는 일만 남았다.
한잔 한잔 하다보면 매서운 바람도 봄바람처럼 훈훈해지기 마련이다.
좋은 인심 속에 어른들은 술에 불콰하니 취하여 흥이 절로 난다.
아이들은 잔치국수 한 그릇과 떡 몇 조각에 포만감을 느낀다.
추수가 끝나면 마을 남정네들은 겨울제일의 양식인 땔감을 하러 산으로 나무를 하러간다.
부지런한 만큼 솔가리며 장작이 쌓이면 겨울나기는 끝이 나고, 다음 맞을 봄을 위해 씨앗을
고르고 잔잔한 일거리로 쉴 틈도 없이 일들을 해야만 한다.
겨울이 끝나갈 즈음 무서운 춘궁기가 기다리고 있음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수탈당하고 축적되지 못한 살림살이의 곤궁함이 그 시절 나라를 뒤덮고 있
었다.
보릿고개라 하던 춘궁기를 넘기지 못하는 집들이 흔히 있었다.
그러나 구황작물로 그 고비를 넘길라치면 부황 뜬 얼굴은 될지언정 굶어 죽는 이는 없었다.
마을의 따뜻한 인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부를 가엾이 여김
(一)
봄에 한 낟알 곡식을 뿌려
가을에는 수많은 낟알 거둔다.
나라 안에 놀리는 밭이 없건만
그래도 농부는 굶어 죽는다.
(二)
김을 매다가 한낮이 되면
땀방울이 벼 밑의 땅에 떨어진다.
그 누가 알리, 밥상의 밥을
그 알알이 다 농부의 고생임을.
이신(李紳, 786~846 당나라 시인)
김 명 수
Porque Te Vas - Jean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