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는 차에서 내리면서 또 투덜거렸다. 헨리는 재빨리 카메라의 렌즈를 열고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붉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긴 창을 든 남자들이 띄엄띄엄 서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다들 간격을 맞추었다. 그리고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 음악은 위엄에 차 있었고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다.
-음, 영국보다 훨씬 진지한걸요?
요한센이 친근하게 효은에게 말을 걸었다.
-음악 탓이겠죠.
효은이 말했다. 요한센은 두리번거리다 표 파는 곳을 발견하고 뛰어갔다. 헨리는 열심히 셧터를 눌러댔다. 레오 역시 진지하게 사람들을 바라봤다. 시끄러운 자동차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없었다면 레오는 분명 시간을 뛰어넘어 마치 자신이 조선시대에 와 있는 것 같은 차각을 했을 터였다.
-멋지군.
레오가 중얼거렸다.
-그렇죠.
자기도 모르게 효은이 맞장구를 쳤다. 그 때였다.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바람이 불었나? 레오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저 뒤에서 요한센이 표를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헨리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바로 옆에 서있는 효은을 보고 레오는 다시 한번 마음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뭐지?
-왜요?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어디 아파요?
효은이 물었다. 갑자기 친절해진 것 같은 효은이 부담스러워진 레오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상관하지 마시지.
-흥. 누가 당신 때문에 그러나? 또 내가 병원까지 모셔다드려야 하잖아요?
-요한센이 있다구.
-요한센은 한국말 못하잖아요!
둘 사이에 다시 요한센이 끼어들었다.
-정말 두 분 왜 이러십니까?
레오가 뒤를 돌아서 담배를 꺼냈다.
-정말 못해먹겠네! 이런 개자식이!
효은이 한국말로 뭐라 소리치며 발을 구르자 레오는 화가나 거의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영어로 말해, 영어로!
레오가 담배를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소리쳤다. 사람들이 흘끔흘끔 둘을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 요한센이 말했다.
-여기선 금연이랍니다.
-이런 무식한 양반 같으니라구! 어디 윈저성에서도 담배를 펴 보시지.
효은이 담배를 주워 레오 얼굴 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못 필것도 없지!
-이런 나치스 같으니라구!
효은이 소리치며 담배갑을 우겨버렸다. 레오는 화가나 펄쩍펄쩍 뛰며 요한센에게 소리쳤다.
-당장 호텔로 돌아가!
-사장님! 여기까지 오셨으니 한번 보고 가시지요. 저 지붕 선을 보십시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 동물 인형들은 또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갔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요한센이 티켓을 레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래, 그럼. 나 혼자 다닐테니 두시간 뒤에 여기서 보자구.
말을 마친 레오는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싸가지 없는 자식.
효은이 다시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요한센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웃어보일 뿐이었다. 사진을 다 찍은 헨리가 저쪽에서 달려오며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고 소리쳤다.
-여긴 왕이 잠을 자던 곳이에요. 방안에 작은 방이 네개가 더 있어요. 궁녀들이 밤 새 내내 왕을 지켰죠. 음... 왕이 자다가 갑자기 뇌졸증이나 다른 병 때문에 졸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대요. 좀 재밌는 이야기지만, 늙은 왕들이 무리하게 젊은 궁녀와 잠자리를 하다 그런 일이 많았었죠. 그럴 때를 대비해 궁녀 하나는 늘 닭을 준비했대요. 왕이 기절하면 닭의 목을 쳐서 피를 마시게 했다네요.
-아, 그래요? 효은씨는 정말 아는 것도 많고....
요한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럴듯 한 이야기였다.
-여긴 어디로 통하는 문이죠?
헨리가 성급하게 문을 나서자 아름다운 호수가 보였다.
-이곳은 경회루에요. 왕이 파티를 하던 곳이죠. 멋있죠?
헨리는 사진기를 들었다. 요한센은 기회를 엿보다 효은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사장님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은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십니다.
-별로 신경안써요.
효은은 정말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지만 사실은 왜 그렇게 레오가 자신만 싫어하는 지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너무 촌 스러워서? 아님 한국인이어서? 아님 가난해서? 혹시 셋 다여서? 이런 생각에 한숨을 쉰 효은은 근처 벤치에 앉았다. 요한센이 음료수를 산다며 조그만 가게로 뛰어갔다. 헨리는 경회루의 모습을 찍다 렌즈에 비친 효은의 모습을 눈여겨 보았다. 꾸미면 정말 예쁜 얼굴인데 너무 안꾸몄단 말이야. 헨리는 중얼거렸다. 백인과는 다르게 혈색이 도는 화사한 얼굴, 동양적인 아몬드형의 눈에는 쌍꺼풀은 없었지만 오히려 쌍커풀 있는 눈보다 더 컸다. 다듬지 않아도 진하고 가지런한 눈썹, 적당한 코와 잘 어울리는 입술, 무엇보다 검고 윤기나는 긴 생머리. 확실이 영국 여자와는 다르게 신비해.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효은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내일은 신데렐라*****9*****
아무리 생각해봐도 레오는 효은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저 둘이 연인이 된다면? 요한센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재밌겠군. 그는 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고풍스런 건물이 보였다. 효은이 말했던 조선시대 왕궁이었다.
-지금가면, 수문장 교대식이 있어요.
-수문장이 머야?
-궁궐을 지키던 수비대죠. 영국에서도 하잖아요? 궁을 지키던 수비대 대장들끼리 암호를 교환하는 의식이죠.
-마치 한국에서 오래 산 사람처럼 말하는구만.
레오는 차에서 내리면서 또 투덜거렸다. 헨리는 재빨리 카메라의 렌즈를 열고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붉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쓰고 긴 창을 든 남자들이 띄엄띄엄 서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다들 간격을 맞추었다. 그리고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 음악은 위엄에 차 있었고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흘렀다.
-음, 영국보다 훨씬 진지한걸요?
요한센이 친근하게 효은에게 말을 걸었다.
-음악 탓이겠죠.
효은이 말했다. 요한센은 두리번거리다 표 파는 곳을 발견하고 뛰어갔다. 헨리는 열심히 셧터를 눌러댔다. 레오 역시 진지하게 사람들을 바라봤다. 시끄러운 자동차소리와 아이들 웃음소리가 없었다면 레오는 분명 시간을 뛰어넘어 마치 자신이 조선시대에 와 있는 것 같은 차각을 했을 터였다.
-멋지군.
레오가 중얼거렸다.
-그렇죠.
자기도 모르게 효은이 맞장구를 쳤다. 그 때였다.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바람이 불었나? 레오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저 뒤에서 요한센이 표를 들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헨리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바로 옆에 서있는 효은을 보고 레오는 다시 한번 마음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뭐지?
-왜요?
레오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어디 아파요?
효은이 물었다. 갑자기 친절해진 것 같은 효은이 부담스러워진 레오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상관하지 마시지.
-흥. 누가 당신 때문에 그러나? 또 내가 병원까지 모셔다드려야 하잖아요?
-요한센이 있다구.
-요한센은 한국말 못하잖아요!
둘 사이에 다시 요한센이 끼어들었다.
-정말 두 분 왜 이러십니까?
레오가 뒤를 돌아서 담배를 꺼냈다.
-정말 못해먹겠네! 이런 개자식이!
효은이 한국말로 뭐라 소리치며 발을 구르자 레오는 화가나 거의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영어로 말해, 영어로!
레오가 담배를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며 소리쳤다. 사람들이 흘끔흘끔 둘을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 요한센이 말했다.
-여기선 금연이랍니다.
-이런 무식한 양반 같으니라구! 어디 윈저성에서도 담배를 펴 보시지.
효은이 담배를 주워 레오 얼굴 앞에서 흔들며 말했다.
-못 필것도 없지!
-이런 나치스 같으니라구!
효은이 소리치며 담배갑을 우겨버렸다. 레오는 화가나 펄쩍펄쩍 뛰며 요한센에게 소리쳤다.
-당장 호텔로 돌아가!
-사장님! 여기까지 오셨으니 한번 보고 가시지요. 저 지붕 선을 보십시오. 정말 아름답지 않습니까? 저 동물 인형들은 또 어떻게 저기까지 올라갔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요한센이 티켓을 레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래, 그럼. 나 혼자 다닐테니 두시간 뒤에 여기서 보자구.
말을 마친 레오는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저 싸가지 없는 자식.
효은이 다시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요한센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웃어보일 뿐이었다. 사진을 다 찍은 헨리가 저쪽에서 달려오며 빨리 안으로 들어가자고 소리쳤다.
-여긴 왕이 잠을 자던 곳이에요. 방안에 작은 방이 네개가 더 있어요. 궁녀들이 밤 새 내내 왕을 지켰죠. 음... 왕이 자다가 갑자기 뇌졸증이나 다른 병 때문에 졸도를 하는 경우가 많았대요. 좀 재밌는 이야기지만, 늙은 왕들이 무리하게 젊은 궁녀와 잠자리를 하다 그런 일이 많았었죠. 그럴 때를 대비해 궁녀 하나는 늘 닭을 준비했대요. 왕이 기절하면 닭의 목을 쳐서 피를 마시게 했다네요.
-아, 그래요? 효은씨는 정말 아는 것도 많고....
요한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럴듯 한 이야기였다.
-여긴 어디로 통하는 문이죠?
헨리가 성급하게 문을 나서자 아름다운 호수가 보였다.
-이곳은 경회루에요. 왕이 파티를 하던 곳이죠. 멋있죠?
헨리는 사진기를 들었다. 요한센은 기회를 엿보다 효은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사장님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은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십니다.
-별로 신경안써요.
효은은 정말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지만 사실은 왜 그렇게 레오가 자신만 싫어하는 지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너무 촌 스러워서? 아님 한국인이어서? 아님 가난해서? 혹시 셋 다여서? 이런 생각에 한숨을 쉰 효은은 근처 벤치에 앉았다. 요한센이 음료수를 산다며 조그만 가게로 뛰어갔다. 헨리는 경회루의 모습을 찍다 렌즈에 비친 효은의 모습을 눈여겨 보았다. 꾸미면 정말 예쁜 얼굴인데 너무 안꾸몄단 말이야. 헨리는 중얼거렸다. 백인과는 다르게 혈색이 도는 화사한 얼굴, 동양적인 아몬드형의 눈에는 쌍꺼풀은 없었지만 오히려 쌍커풀 있는 눈보다 더 컸다. 다듬지 않아도 진하고 가지런한 눈썹, 적당한 코와 잘 어울리는 입술, 무엇보다 검고 윤기나는 긴 생머리. 확실이 영국 여자와는 다르게 신비해. 헨리는 자기도 모르게 효은의 사진을 몇 장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