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 한 마리의 잔정>>

동해바다2004.12.01
조회626

글이 좀 긴듯 싶습니다..

 

현대의 각박한 삶에 쫒기면서도..

그래도 이런게 서민들이 살아가는 힘이고..

진정한 사람살이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올려봅니다..^^

출처는 모르겠구요..^^

 

<<통닭 한 마리의 잔정>>

 

 

"아가씨, 미안합니다. 냄새가 좀 날 겁니다."

 

옆자리에 신사 한 분이 타더니 날 돌아보며 건넨 말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택시 합승이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더구나 탑승한 술주정뱅이가 뒷자리의 여성에게 수작을 건넨다 싶어

아가씨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코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좀 머쓱해졌는지,

나란히 앉은 택시기사와 수작을 건넨다.

 

"한 잔하고 나니, 마누라한테 미안해서 통닭 한 마리를 샀지."
"손님은 착한 남편이군요." 기사의 말이었다.
"두 번만 착했더라면 마누라 쪽박 채웠게요.

나같이 못난 남편 만나 고생만 하는 마누라가 불쌍해지기도 하고,

또 나 혼자 마신 것이 맘에 걸려서 산 거죠.

그렇지만 이걸 가지고 들어가서 자는 애들과 마누라를 깨워 먹이면

어찌나 잘 먹는지, 그게 그리 보기 좋아요.

가끔 도시락이나 통닭을 사다 주지요."

 

참으로 감동적인 얘기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허락 없이 마구 합승시키는 기사가 미웠고,

술 냄새 풍기는 주정뱅이가 아무에게나 건네는 수작이라 여겨

몹시 불쾌했었는데, 뿐만 아니라 닭고기 비린 냄새와 엉킨 술 냄새가

뒷자리에 앉은 내게로 넘어오는 것 같아 차창이라도 밀어젖히고 싶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불쾌감이 싹 가셔버리고,

참으로 아름다운 얘기를 들은 뒷맛처럼 깊은 감동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 신사가 내리고 차가 미끄러운 밤길을 더듬어 집까지 오는 동안,

나는 사람 사는 아름다움, 눈물겨운 아름다움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어질고 순한 사슴 같은 남편. 온종일 싫은 일 궂은 일 열심히 하며

이리저리 뛰고 달리면서,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에 없는

너털웃음으로 술대접하며 아부를 해야 했고,

내키지 않은 술을 더 마셨을지도 모르지.

그리고는 이 늦은 밤 시간, 비로소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눈바람 속 미끄러운 거리를 더듬으면서 지어미를 생각하는 남편,

어린 자식을 잊지 않는 아빠의 본분을 의식하다니.

 

지금쯤, 그의 가족들은 잠결에 일어나 이마를 맞대고 닭고기를 뜯으며,

얼마나 행복에 겨워 웃고 떠들까?

맛있게 먹는 처자식을 바라보는 가장의 눈길 또한

얼마나 그윽하고 흐뭇할 것인가. 소시민의 행복, 소시민의 생활이란

바로 이런 잔정을 필요로 할 것이다.

술 마신 기분으로 보석반지를 사다 주는 남편보다는

따스한 호떡 한 봉지를 사들고 들어오는 마음씀이,

식기 전에 가족에게 먹이고 싶은 선량한 가정의 잔정이야말로

소시민의 가정을 밝히는 아늑한 불빛이 되리라.

 

뜻이 높고 원대한 남성도 거룩하고 위대하지만,

마음이 여리고 꿈이 작아서 욕심 또한 작은 남성,

그래서 한 가정에 가장 노릇을 충실히 하기에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이 가난한 남성도 훌륭하다. 남과 자기를 비교하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지 않으며 분수껏 살고자 애쓰며,

성실을 다하여 가족을 부양하고 허황된 것에 뜻을 두지 않는 남성,

어찌 보면 남자답지 못하고, 드센 여자보다 나약해 뵈는

그런 남성을 지아비로 섬기는 여자 또한 얼마나 행복한가.

 

"나도 먹을 것 좀 사들고 집에 들어가야겠는데."

 

거스름돈을 건네주는 기사의 혼잣말이 듣기 좋았다.

나도 우리 집 대문을 지나서 불빛이 빠끔한 구멍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눈이 펑펑 쏟아지고, 길은 몹시 미끄러웠다.

춥고 미끄러운 세상에 용케도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는 그 힘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