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참, 쓰기 싫은 부분에 들어갔습니다. 윤아의 마음도, 선우의 마음도, ... 서로의 등만 보는 관계로... 둘 다 제 맘에 안든다고 스트레스 쫌 받았드니,
위가 팅팅 부어서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먹고 맨날맨날 잠만 잤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많이 졸려요, 하품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곰팅이가 따로 없었지요, 뭐 덕분에 쌀은 많이 안줄었습니다만 -_-;;;;
6회의 리플의 답글을 이제사 답니다...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_ _) (다른 글을 보니 이렇게 다음회에 답글을 쓰시더군요...)
미르 (2004/11/28 04:33) 우리의 마녀님은 어디로 가신걸까요? 항상 달던 리플도 안다시고..... 마녀님의 행방을 찾습니다. ---> 저 기어나왔습니다, 엉금엉금.... ^.^;;;;;
라엘 (2004/11/19 19:09) 잘보고 갑니닷////선우의 마음이 너무 아플것 같아....에효~~~ 바지들!!!!! 정신 똑바로 챙기세욧!!!!! ---> 동감올습니다 ㅎㅎ 어제 보름만에 집 밖에 나가 수퍼에 갔었는데, 옆 비디오 가게에 붙은 포스터에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뭐 그런....^^;;;;;
생딸기케잌 (2004/11/18 22:20) 정말..넘 재밌는거 아니에요?? 추천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네요 ㅋㄷㅋㄷ 계속 수고해 주시구요~ 빨리좀 올려주세요ㅜㅠ ---> 전 비난 받을 줄 알았는데... 재밌나요... 뜻밖의 반응에 당혹스런 마녀...
시인 (2004/11/18 16:32) 언제나 기다리는 이야기 입니다. 한번 읽고나면 그 다음이 궁금해 계속 게시판 문을 열어 보고 있답니다. 빨리 올려 달라구 하면 .....ㅎㅎ ---> 아... 시인님, 안녕하세요. 빨리 올리지 못해 죄송...(_ _)
박기자 (2004/11/18 13:21) 마녀님 글 넘 재밋어요,, 넘 잘 쓰시는거 같아요,, 항상 잘 읽고 갑니다, ---> 과찬이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가페 (2004/11/18 12:54) 점심시간에 잠깐 들어와 봤는데..넘 기뻤습니다..ㅋㅋ 잘읽고 갑니다. 담편도 많이 기대되염.. 추천 꾸욱.. ---> 글쎄... 이번 편은 기대보다는 스토리 진행을 위한 징검다리같다는 생각이....
임경옥 (2004/11/18 12:31) 윤아........많이 강해졌네요...정말 예전의 윤아가 아닌듯....근데 세사람이 오해하고 있는것 같아 맘이 아파요.....유리한테 얘기한것처럼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특히 선우아저씨가 오해하는게.....ㅠ.ㅠ......다음에 풀리긴 하겠지만요...항상 마녀님 글을 길어서 좋아요...ㅋㅋ....다음 얘기도 빨리 올려주실꺼죠? ---> 윤아가 강해진만큼 다르게 변한 것도 있지요...선우가 그걸 가장 먼저 느꼈구요. 그리고... 윤아는 오해를 굳이 풀려 안할거예요.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 사람의 성격상 이 오해는 윤아 앞에 세 남자가 약해지도록 만들 수 있는 거거든요. 글이 긴 건 ㅋㅋ 아마도 제가 띄워쓰기를 많이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데...어쨌든 좋아해주시니 감사할 따름...
숲 (2004/11/18 11:20) 에고~~ 글읽기 힘들네여.. 아침부터 네이트가 말썽을 일으켜서 나갔다 들어오기를 수번~~ 간신히 들어와서 읽었어여^^ 윤아의 당찬모습은 여전하네여..우리나라 남자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하는짖은 짐승만도 못한거 같아 화가나네여.. 그래도 윤아가 잘넘겨서 다행이에여.. 사실 윤아가 선뜻 따라간다고 해서 무슨생각으로 그럴까 했는데.. 선우는 왜 점점 바보가 되가는걸까여? 2년전부터 지금까지 윤아에게 잘못한걸 어떻게 갚으려고.. 왜 계속 윤아주위에 있는 남자들은 윤아에게 칼날만 들이데는건지.. 제마음이 다 아프네여.. ---> 저도 지난 회는 글 올리기 진짜 힘들었습니다. 올려놓고 잘 올려졌는지 점검하려고 하니까, 글쎄 네이트 게시판이 점검중이라더군요 -_-;;; 선우는 윤아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느낀 사람입니다, '네가 안좋게 변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2년의 공백동안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윤아의 다른 모습들에 선우는 많이 당혹스럽고 어떻게 나와야 할지 모르는 것 아닐까요. 선우는 윤아가 없는 시간 동안 자신의 마음을 확인했으면서도, 윤아에게 함부로 손을 내밀 수 없는 입장이잖아요, 2년전처럼요. 2년 전엔 윤아를 거절한 건 선우였는데, 이젠 선우를 윤아가 외면하는... 엇갈림이, 저도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허브향기 (2004/11/18 11:15) 마녀님 짱!!!길어서 넘 잼있게 읽고가요!!!선우나민수나이대표나 감독까지 생각들이 다 짧군요!!!특히 선우는 넘했어요!!격어봐서 그런아이아니라고 믿어주면 될껄....아숩군요 수컷들의 생각은 언제나 똑같아요!!! ---> ㅋㅋ 마지막 말씀이 짱입니다요!!!!
조윤경 (2004/11/18 10:10) 무진장 기다린 소설~~ 넘 쨈나게 읽다가요~~ 처음으로 의견도 달고 추천도 꾹 눌렀어요! 아침마다 마녀님 소설 기다립니다. ---> 첫 의견과 추천이라... 넘 감사드립니다 (_ _)
대님 (2004/11/18 07:39) 앗, 1등이다! 마녀님, 아침부터 사람 마음 뭉클하게 하시고... 정말 미워요~^^ ---> 허걱!! 1등이시다!!! 짝짝짝~~~
이야기 들어갑니다..... ---------------------------------------------------
-최선우(남, 60세) : 아시아 대 배우, 엔터테인먼트, 푸른 극장 대표 -이민수(남, 21세) -한 욱(남, 21세) -지나현(여, 20세) -이태석(남, 62세) : 태석 영화사 대표 -유성린(여, 60세) : 선우 약혼녀, 뮤지컬 배우
-조유리(여, 18세) -우해준(남, 18세) -진한기(남, 25세)
-박필덕 감독(남, 40대 중반)
그 외...
# 간만에 수업을 들었더니, 머릿 속이 마구마구 헝크러지는 것 같다.
[김선생 : 딴생각하고 있네..?]
[윤아 : (꾸벅) 죄송합니다.]
수학시간은 학생들 수학 수준이 각자(?)라서 거의 개별지도식으로 수업이 나간다.
아까 선생님이 풀어보라는 문제의 숫자들이 아직도 답을 풀지 못한 나를 원망스럽게 째려보고 있다.
제발, 난 수학이 제일 싫어 >_< 으... 시러 시러 시러... (-- ) ( --)(-- ) ( --) 그 다음은 화학이구, 아.. 물리도 별로다.
숫자들아, 죄책감 느끼게 날 째려보지 말란 말야. 포기하고 싶으니까.
[김선생 : 요즘 생각할게 많지? ^^]
[윤아 : (긁적) ...좀 그래요.]
[김선생 : 여기 나가서 먹고 살 걱정?]
[윤아 : ㅎㅎ;;;]
[김선생 : 드라만가 그건 어떻게 돼 가?]
[윤아 : 잘되가는 편이예요, 아주 운이 좋은 편인데...]
[김선생 : 근데?]
[윤아 : 제가 잘할지 자신이 없어요.]
[김선생 : ^^ 넌 할 수 있어!]
잘할 수 있다는 빈 말보다 일단 '넌 할 수 있다'는 신뢰있는 격려가 마음에 큰 힘이 된다.
[윤아 :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데요.^^]
[김선생 : 그러라고 한 말이야.^^]
교실의 열린 뒷문에서 홍선생이 슬쩍 고개를 들이밀더니 나오라고 손짓했다.
[윤아 : ? ]
복도로 나가자 홍선생이 복도 끝을 가리켰다.
민수 선배가 서 있다가 날 보더니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 달리는 차 안.
[윤아 : 나 아직 학생이야, 선배. 휴학계는 다음 학기로 낸 거라구... 수업듣는 학생을 이렇게 납치해두 되냐구요...?]
[민수 : 그만 투덜거려라.]
박감독은 뒷좌석에 길게 누워 점퍼로 얼굴을 덮어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까지 완벽하게 차단한 상태에서 곤한 잠에 빠져있다.
[윤아 : 하여튼 이번 기말고사 망치면 두 사람 탓이야.]
[민수 : 니가 성적에 그렇게 신경쓸 줄 몰랐는데.^^]
[윤아 : 한동안 수업에 못들어가서 그래. 아, 참... 오늘 쥐덫 살펴봐야하는데.]
[민수 : 쥐덫?]
[윤아 : 아... 그런게 있어. 유리가 약초 실험할 때, 실험용으로 쓰는 건데 쥐덫을 놔서 잡아 조달하거든.]
[민수 : 유리? 실험?]
[윤아 : 응, 1학년. ^^ 내 룸메이트.]
[민수 : 너한테서 튀어나오는 소리들마다 무슨 소린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윤아 : 그나저나 지금 어디 가는거야?]
# 초등학교 폐교에 도착했다.
[민수 : 어때? 이 정도면?]
[윤아 : 촬영지로?]
[민수 : 응, 니네 학교하고도 가까운 편이고 운동장 조경도 괜찮은 편이지?]
[박감독 : 거의 그대로 가도 되겠지?]
차 안에서 잠들어있던 박감독이 부스스 일어나 차에서 나왔다.
[윤아 : 제가 생각했던 구조보다 훨씬 좋은데요. 사실 폐교로 대안학교를 여는 곳도 꽤 되거든요.]
[박감독 : 민수가 발바닥 땀나도록 뛰어다녀서 찾은 곳이야.]
[민수 : (긁적) 그렇게 말씀하시면... 앞으로 더 잘하라는 뜻이죠?]
[박감독 : 당근이지. ^^ 또 뭐있더라? 말밥이지.]
[민수, 윤아 : ^^;;;;;]
[윤아 : 몇 군데 리모델링 할 순 없을까요? 강당이랑 식당, 기숙사는 중요한 진행에 꼭 필요한 장손데.]
[박감독 : 그러지 뭐. 민수야 뭐하냐, 신작가 말 받아적어둬.]
[윤아 : 아, 아니예요. 제가 제 의견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박감독 : 그러든가.]
두 사람과 함께 혹은 따로 학교 건물 안과 교정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윤아 : 저 건물 구석... 밤장면에서 약한 조명 비추면 끝내주겠다, 밀회 장소로.^0^]
양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구도를 잡아봤다.
[민수 : 상현과 하영?]
[윤아 : 응. ^^ ]
내 앞에서, 건물 구석은 어둠이 깔리고... 상현과 하영('비상'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의 만남에 숨이 막힐 듯한 수줍음이 느껴진다.
아... 내 가슴이 마구 설렌다. 내가 이미 사랑하고 있는 상상 속의 사람들... 이제 곧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연기자로 내 기대 이상의 모습을 나타내겠지.
선생과 제자를 뛰어넘은 이성적 사랑... 그 마음을,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씬의 장소를 이곳으로 해야지... 박감독님이라면 이 씬을 기막힌 영상으로 뽑아낼 것이다. 감춰야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구석진 장소, 그러나 그곳에서 알게되는 사랑을... 늦은 밤이되 밤이 아닌 색채로.
[박감독 : 신작가 넋빠졌군.]
돌아봤더니, 박감독의 손에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그걸로 찍어낸 사진들이 한웅큼이다.
[윤아 : 여기도 한 장 찍어보실래요? 상현과 하영이가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을 여기로 했으면 하는데요.]
[박감독 : 숨겨야 하는 사랑은 구석지고 폐쇄된 장소를 찾아들기 마련이지. (사진 찍는) 그런데 그런 장소일수록 서로의 숨소리가 아주 가깝게 닿지...^^ ]
역시... 금세 내 의도를 파악한다.
[박감독 : (사진이 마르게 흔들어보며) 나쁘진 않아, 그치만 두 사람의 표정을 의미있게 써포트 해주려면 조명 색을 다르게 만들어봐야겠는데.]
[윤아 : 새벽빛의 푸르스름? 남색?]
[박감독 : (손으로 창에서 복도 구석으로 선을 그으며) 복도 창이 저쪽이니까, 달빛이 흘러들어와 이 구석에 닿겠군.]
[윤아 : 달빛이요? 와아- ^^ 진짜 낭만적이겠네.]
감각적인 영상의 대표적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민수 선배는 그 동안 학교 건물이며 운동장 등 대략의 설계도면을 다 그려놨다.
[윤아 : (슬쩍 보며) 나도 그거 한 장 가졌음 좋겠는데...]
[민수 : 가는 길에 문방구 있음 복사해줄게.]
[윤아 : (의아) 또, 어디가?]
# [박감독 : 어차피 스토리 대부분이 폐교에서 진행되는데 그러면 여기서 줄창 상주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민수 : 임시 숙소도 같이 알아보라고 하셨거든.]
[윤아 : 방송국 스튜디오 촬영도 있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것도 제작비 예산에 책정돼있는 거야?]
[박감독 : 별 걱정을 다하네, 예산 걱정은 감독이랑 프로덕션 사장 몫이야.]
[윤아 : 하지만...]
[박감독 : 작가는 무리하게 장소협찬 받기 힘든 곳이나 예산이 오바될 장면을 크게 욕심내지만 않으면 돼.]
민수 선배가 미리 만나봤다는 무척이나 시골스런 부동산 업자의 안내를 받아 양옥집을 보러 갔다.
[박감독 : 도배도 다 되있고, 당장 들어와도 되겠네.^^]
[윤아 : 지은지 얼마 안된거네요?]
[업자 : 아, 그게요. 얼마전까지 이 근처에 대학교 하나 들어온다고 소문이 짜하게 돌았잖아요.]
[윤아 : 아...예.]
[업자 : 그래서 학생들 상대로 하숙 장사하려던 사람이 지은건데...]
[윤아 : 그게 헛소문이었죠. ^^;;]
[박감독 : 어쩐지 전세값이 싸더라. 난 귀신이라도 나오는 집인줄 알았네.]
[민수 : 그래도 좀 더 깍아주실 수 없나요? ;;;; 저희 예산이 좀...^^;;;]
[업자 : 거 감독님두 말씀하셨잖아요, 싸다고. 이것도 집 주인이 손해 감수하고 내놓은 거예요.]
[윤아 : 어차피 그냥 놀려도, 부동산 소유세며 전기세, 수도세, ... 나오는 거 만만치 않을걸요? ^^]
[업자 : -_-;;;;]
[윤아 : 게다가 1층, 2층, 옥탑까지 따로따로 들어올 사람 찾는 거나 방 놀리는 시간이나... 그것도 꽤 신경쓰이시겠네요, 집주인.]
[업자 : ...-.-]
[윤아 : 우리야말로 이 전체를 다 사용하겠다는- 집주인 입장에서 무지 좋은 조건인데... 할수없죠, 뭐. (민수에게) 선배, 예산이 그렇게 안되면 차라리 귀신나오는 집을 알아봐요. 우리 팀 멤버들은 (눈 찡긋해보이며) 귀신나오면 대박날 조짐이라고 오히려 좋아할걸요.]
[박감독 : 그럴까?^^ 처녀귀신 나오면 난 장가 한 번 더 가야쥐~ 이래뵈도 한창 땐 내가 꽤 잘나갔거든. ^^]
[윤아 : ...음, 믿을 수 없지만 믿어드릴게요.^^]
[민수 : 흠, 전 절대 못 믿어요.]
[박감독 : 진짜라니까!!!! ]
우리는 미리 작전 짠 듯이 이 집에 더이상 맘이 없는 것처럼 농담을 주고받으며 슬슬 집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업자 : (다급) 아, 그래도 원하시는 조건에 이만큼 싼데도 없어요!!!]
[박감독 : 신작가, 이 근처에 귀신집으로 소문난 집 없어?]
[윤아 : 왜 없어요 ^^;;; 시골 동네마다 다 있죠.]
[민수 : 거긴 공짜아냐?]
[윤아 : 아마... 돈준대도 안받을걸요?]
[업자 : 집주인한테 한 번 얘기해볼게요!!!]
우린 업자 몰래 미소를 교환했다.
[민수 : (부동산 업자에게) 저흰 별로 시간이 없거든요? (들으라는 듯이) 감독님, 오늘 감독님 스케쥴 빡빡하신 거 아시죠? 에... 오후엔 올라가셔서 곧바로 OST 작곡가 만나셔야 되요. 그리고 저녁 땐 방송국에 들어가셔서...]
[업자 : 아, 지금 연락한다니까요!!! (핸드폰으로 전화거는)]
# 일사천리로 숙소를 가계약하고, 양옥집 안으로 들어갔다.
[윤아 : 좋네요. ^^ 마당도 넓고.]
무엇보다 1층 중앙 대청마루가 넓고 거기에 투명 통창을 덧대서 베란다 창처럼 만든 것이 마음에 든다.
비가 오면 대청마루에 앉아 통창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구경할 수 있고, 화창한 오후엔 창을 전부 열어놓고 따사로운 햇빛을 쬐며,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맞을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어떤 계절, 어떤 날씨에든... 안전하게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으니까.
[박감독 : 신작가 작업방 구한다고 했지?]
[윤아 : 아, 예-]
[박감독 : 방 하나 골라.]
[윤아 : 네?]
[박감독 : 1층은 남자들이 쓸 거고, 2층은 여자들이 쓸거니까. 그니까...]
[민수 : 너도 여기에 묻어가면, 따로 큰 돈 구할 필요없잖아.]
[윤아 : 그렇긴 하지만... ^^]
[박감독 : 앗! 신작가 눈치챘구나? 내가 옆에 끼고 주구장창 불러댈 걸...]
[윤아 : -_-;;;; ]
[민수 : 너 딱 걸린거야 ㅋㅋ 대본 늦으면 니 방 앞에 드러누워 버텨야지...]
[윤아 : -_-;;;]
[박감독 : 얼렁 골라, 안 그럼...]
[윤아 : (에라 모르겠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럼 저기 3층요!]
[박감독 : 3층?]
[민수 : 옥탑방?]
[윤아 : 거긴 1인용으로 써도 되죠? ^^ 방 하나에 거실인데, 그 정돈 양심 안찔려도 되죠? 어차피 대본 작업하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왔다갔다하면 집중 안되요오~]
[박감독 : ...(생각하다가) 그러자! 신작가가 먼저 찜했다는데 누가 뭐랄거야! 그치, 민수야?]
[민수 : 거긴 여름에 꽤 더울텐데.]
[윤아 : 내가 그 정도 통밥도 안굴렸을까봐? ^^ 아까 슬쩍 보니까 벽 에어콘도 설치되어 있드라.]
[민수 : 윽! >_< ]
[윤아 : 걱정마- 전기세로 기절하겐 안할테니까.^^]
다행이다... 안그래도 아는 것도 없이, 돈도 별로 없이 혼자 방 구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는데...
거처하는 곳에 문제가 생겨도 남자들 손이 한둘이 아닐테니... 비가 새거나, 수도가 고장나거나, 보일러가 말썽피우거나, ... 그럴 때 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설마 그 많은 스탭이나 연기자 중에 그것하나 못보는 사람 있겠어? ㅎㅎ 게다가 조감독 정도면 촬영장서 발생하는 온갖 상황에 대처하다보면 만능 맥가이버 뺨치고도 울려 보낼 정도가 되야지, 암. ^^
...연기자들하고 스탭들하고 같이 사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진...잘 모르겠지만.
아...최선우, 그도... 그도... 이 숙소에 자주 있을라나...
주인공이라 스튜디오 촬영을 빼도 일주일에 4~5일은 이곳서 촬영해야 할텐데...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졌다.
[민수 : 참, 현민 삼촌은 빠지게 될 거야.]
[윤아 : 응? 강현민?]
[민수 : 어, 헐리우드 쪽 영화 건 때문에. 현민 삼촌 이 드라마 그렇게 들어오고 싶어했는데... 한 회도 못 들어오게 됐네.]
[윤아 : 어, 어...]
괜히 들락날락거리는 인물이 있으면, 내 머릿속만 복잡하지. 그래도 그 장난꾸러기 아저씨가 막상 빠진다니까 좀 서운하네.
[윤아 : 근데 이렇게 큰 집을 구할 필요가 있나요? 몇 명이나 내려와 상주할지도 모르는데...]
[민수 : 박감독님 쪽 스탭들이야 아예 여기서 사는거고... 신인 연기자들도 달리 다른 곳 일 없으면 대부분 여기 있으라지 뭐. 톱스타들이야 다른 스케쥴때문에 서울하고 여길 오가겠지만, 차로 이동하는 것도 장난 아닌데, 내가 여기 촬영 스케쥴을 며칠동안에 다 몰아넣으면 그동안은 여기 있겠지. 아니어도 넓게 쓰는 것도 좋고. ^^]
[윤아 : ...그런가.]
[민수 : 아, 그러고보니 소속사가 있는 연기자는 코디랑 로드매니저도 같이 따라 붙을텐데... 오히려 좁으면 좁았지, 넓진 않겠다.]
[윤아 : 오디션 볼 때, 그것도 생각해야 하나?]
[박감독 : 잘할 년놈으로만 뽑음 되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나?]
[윤아 : ...그렇긴 하죠... 하지만 소속사 없는 신인하고 사이에 위화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박감독 : 다 자기 밥그릇은 들고 태어나게 돼있어. 알고보면 신작가는 세상 걱정을 저 혼자 다 떠안고 사는 것 같애. 그러고 살면 머리 안아퍼?]
[윤아 : -.-;;; 아퍼요.]
[박감독 :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귀신이지? ^^]
[윤아 : ...네.]
[박감독 : 근데 처녀귀신 못만나는 게 아쉽네. 내가 말야, 한방에 썰을 풀면...(재잘재잘재잘...)]
[윤아 : (민수에게 작게) 저거 다 허풍이지?]
[민수 : (윤아에게 소곤) 근데 감독님 사모님 진짜 예쁘더라. 어떻게 꼬셨는지... 한 수 배워야 될 거 같아.]
[윤아 : -_-;;; 선배, 아직두 애인 없어?]
[민수 : 응, 순전히 너 땜에 내가 2년동안 재수없었거든.]
[윤아 : 뭐어?!]
[민수 : 정말이야, 그 때 철봉에서 너한테 채이구나서 되는 일이 없더라니까!]
[윤아 : 그게 왜 내 탓이야? 순전히 선배 능력 부족이지!]
[민수 : 넌 내가 어딜 봐서 능력 부족으로 보이냐?]
[윤아 : 남 탓하는게, 나 능력부족이라고 자진신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민수 : 천만에!!]
날 학교로 데려다 주는 길 내내 민수 선배와 나는, 소소한 걸로 연신 투닥거렸고... 박감독은 혼자 중얼중얼 입으로만, 처녀 귀신과의 로맨스를 10편도 넘게 썼다.
# 신인 연기자 오디션이 시작됐다.
접수할 때 받은 프로필 자료 외에도 참가하러 온 지원자들에게 그 자리에서 직접 자기 소개서를 써서 제출하게 했다.
[아라 : 안녕하세요 *^^* 아라예요~]
[윤아 : 그냥 이름이 아라예요? '아'씨? 부모님이 주신 성은 없어요?]
[아라 : (삐쭉거리더니) 윤아라입니다. ^^]
속이 깝깝하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아이돌가수인 '아라'가 직접 쓴 자기 소개서는 이모티콘 투성이고, 맞춤법 맞는 서술어를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이래서 대본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연기를 하겠다는 거람.
지원할 때 접수한 프로필은 소속사에서 아주 자알~ 만들어 준 것이 분명하다.
요즘 음반 시장이 불황이라드니... 기왕에 겸업이나 전업하는 거래도 제대로 충분히 연기 준비를 하고 뛰어들던가.
돈되는 식이면 무조건 소속사 애들을 자질도 제대로 안보고 무조건 이미지 메이킹만 해서 팔아먹으려는 데도 문제고... 거기에 묶인 애들도 안타깝고...
그래도 이런 오디션까지 왔을 정도면 성의에는 점수를 줘야하는데... 한 개도 맘에 드는 부분이 없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보고 있으려나...
[박감독 : 민수야 카메라 테스트 시작해도 되냐?]
삼각 지지대 위에 고정된 카메라 포커스를 맞춰보던 민수 선배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박감독 : 일단 준비해 온 거 있으면 해 봐. 자신있다 싶은 연기.]
아니나 다를까, 아라는 자기 노래를 한다.
저게 연기냐...-_-;;;
...아라의 태도와 표정에 조금씩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선우 : 아까 받은 종이 있죠? 거기 있는 대사 한번 해봐요.]
[아라 : (대사 읽는) 왜 제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아니, 제가 절 사랑하는 게 뭐죠? 뭘 어떻해야 되요?]
아예 국어책을 읽어라, 읽어. -_-
[선우 : (헛웃음-) 아니, 그냥 읽으라는게 아니구 말하듯이 해보라구요. 이 자리에서 드라마 찍는다 생각하고.]
아라는 다시 한 번 읽었다. -.-'''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읽.었.다.
아... 속터진다.
적어도 가수 정도면 노래하는 동안만큼은 순간의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걸 응용도 못하나...?
대사를 국어책으로 읽는 건 그렇다쳐도 표정이나 액션이 전혀 없는 건...너무한 거 아닌지.
의구심이 자꾸 확신으로 다가온다. 뭔가 짜고치는 고스톱같은.
[윤아 : 방금 그 대사,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아라 : ^^ 아, 예- 그건...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대안 학교의 학생 배역이면 세상과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 그 상처는 보통 드라마에서처럼 뻔한 반항하는 액션으로만 나오지 않는다. 적어도 다시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로 돌아온 것이었으므로 두 가지 내면이 동시에 드러나야한다. 자신을 포기하거나 반항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표출된다.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찾는 과정에도 내공있는 내면 연기는 필수다.
요즘 시청자들은 한 줄의 대사에서도 캐릭터의 성격도 읽어내는 무서운 시청력을 가지고 있는데 막상 연기하겠다는 연기자가 대사의 느낌조차 못 읽는다면...
[윤아 : 프로필에 보니, 연기학원 다닌다고 했죠?]
[아라 : 네! ^^]
[윤아 : 그렇게 웃는 표정은 스틸 사진에나 먹히거든요? 그만 웃죠.]
[아라 : -.-;;;]
[윤아 : 그럼 연기학원서 어떤 거 배웠어요?]
[아라 : 그, 그게... 한달밖에 안다녔는데...]
[윤아 : -_-''' 그럼 한달동안 배운 거요.]
[아라 : 스케쥴이 바빠서... 자주 못갔거든요. ^^;;;;]
에고... 어느정도만 연기가 되면, 가수를 오디션을 통해 정식 캐스팅하는 것도 드라마 홍보에 큰 도움이 될텐데...
[윤아 : 그럼 내가 지금 던지는 지문에 맞춰서 표정 연기나 액션을 해볼래요?]
[아라 : 네에- ^^]
[윤아 : 의아하다.]
[아라 : ...???]
[윤아 : 생뚱맞다.]
[아라 : ...???]
[윤아 : (답답해서 에효-하다가) 가슴이 아리다.]
[아라 : (눈물 고였다가, 헤헤- 웃고마는)]
[윤아 : -_-;;; 지독히 쓸쓸하게 웃다.]
[아라 : ...^^]
[윤아 : 그렇게 웃으면 쓸쓸한 느낌이 나요? (혼잣말) 죽겠구만... (옆의 연감독에게) 하시죠.]
박감독이 야외 세트장 폐교에서 외주 제작 '수' 프로덕션 스탭을 끌고 촬영할 예정이라면, 연감독은 서울서 스튜디오 씬과 편집을 전담하면서 방송국 자체 스탭 인력을 그대로 이끌고 작업을 할 예정이다.
두명의 감독이 동시에 들어가는 것을 주장한 건 나였다. 처음부터 일단 되겠거니...하고 감독 한 사람이 동분서주하다가 기력 떨어질만하면 다른 감독을 슬쩍 집어넣어서 드라마 중간부터 원 흐름이 조금씩 흐려진 느낌이 드는 것이 싫었다.
박감독도 진즉에 양쪽 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 싶었는지, 방송국 공채 몇 기수 아래로 들어온, 자신과 영상감각이 비슷하고 자신의 몇 작품을 조감독으로 데리고 있으면서 가르쳤고, 얼마 전에 단막극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연감독을 데려왔다.
[윤아 :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고 있는 민수에게 가서 작게) 선배 담배 있어?]
민수 선배가 '?' 하고 보더니, 내 인상 쓴 표정 보더니 윗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타를 꺼내줬다.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어차피 저쪽의 이대표나 박감독도 일찌감치 담배 물고 있으니... 상관은 없는데...
최선우, 그의 시선이 불편했지만 그냥 일부러 보란 듯이 태연하게 피웠다.
못 참을 것도 없지만 그와 있으면, 자꾸 못되게 굴게 된다.
다행히 남녀 차별할 생각은 없었는지 테이블 세팅한 여직원이 내 자리에도 재떨이를 놓아두었다.
하긴... 여성 작가들도 담배 많이 피우니까.
연감독은 아라에게 왜 연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아라 : ^^ 원래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요- 소속사에서 가수부터 하는게 좋겠다고 해서요-]
[연감독 : ...]
[윤아 : 글쎄, 그러니까 왜 연기를 하고 싶었느냐구요. (연감독에게 꾸벅) 죄송합니다. (아라에게) 윤아라씨, 지금 감독님 질문은 제대로 이해하고 대답하는 거예요?]
[아라 : 그게... 연기를 왜 하고 싶냐면...]
[윤아 : ...]
[연감독 : ...편하게 말해, 평소 생각.^^]
[아라 :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에...]
정석대로 말하네... 소속사에서 암기는 잘 시켰나보군.
[윤아 : 아까 그 대사, 다시 해볼래요? 연기로.]
[아라 : (?) 네- ^^]
[윤아 : 참고로 그 상황은, 답답하고 슬퍼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묻는 거예요. 해봐요.]
[아라 : 왜 제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아니, 제가 절 사랑하는 게 뭐죠? 뭘 어떻해야 되요?]
나는 천천히 재떨이에 담배를 껐다.
아까보다 조금은 나아진듯했으나... 어느 하세월에 그걸 기다려 드라마를 찍을꼬. 방송국이 무슨 자기네 놀이턴 줄 아나. 시청자를 자기들 연기 나아지는 거, 커가는 거 마냥 봐주는 호구로 보나. 수신료까지 내면서 왜 그걸 봐줘야하는데?
현 아이돌스타라는 이유로, 행여 캐스팅 할 상황은 미리 방지하고 싶었다.
나는 재떨이를 집어, 아라 옆으로 내던졌다.
[아라 : 까악-!]
플라스틱 재떨이라 깨지지 않고 아라 뒤의 벽에 부딪쳤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뒹굴었다.
[박감독 : -0- 신작가!]
[윤아 : 너, 지금 국어책 읽니? 우리집 닭이 읽어도 그것보다 더 잘 해. 리듬있게 꼬꼬댁거린다구.]
[선우 : 신작가!]
[아라매니저 : (아라에게 뛰어가 감싸며) 지금 이게 무슨짓이야!]
[윤아 : 이대표님! 우리, 쟤 소속사한테서 돈 먹었어요?]
[태석 : ! ]
[윤아 : 애 태도가, 표정이 그렇잖아요! 형식적인 자리이니 형식적으로 응대한다는 식! 이 오디션을 그렇게 우습게 만들고 싶어요? 아니면 이렇게 연기 기본도 안된 애는 이미 한번 걸렀을텐데 어떻게 저런 애가 최종 오디션까지 와요?]
[민수 : 윤아야-]
[윤아 : 차라리 광고 스폰서를 끌어와요, 대본에 얼마든지 넣어줄테니까!]
[아라 : 어린 년이 성질 드럽게 지랄하네!]
...어이없어 헛웃음밖에 안나왔다.
윤아라... 원래 입도 행동도 거칠고 자기 능력이상으로 턱없이 질투많고, 버릇없는데다가 그동안 돈많고 빵빵한 집안 뒷배경 덕에, 온갖 사고치고 다녀도 아직까지 무사히 이 바닥에 있다는 거...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이런 애가 무엇보다 팀웍이 중요한 미니시리즈도 아니고 시츄에이션 '비상'같은 드라마 제작에 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초반에 드라마 홍보성 화재는 몰아주겠지만... 연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분명 중간에 다른 활동을 핑계로 빠질 것이다. 게다가 빠지기 전까지, 신인 연기자들과도 숙소든 촬영장에서든 무난히 지낼 거라는 보장도 없다.
아... 그렇군. 윤아라의 소속사에선 '비상'의 선생님 배역에 화려한 톱스타들의 출연 내정이 되어 있다니까 일부러 이 드라마를 선택한 거다. 당장 주연급으로 빛을 보지 못해도, 네티즌들의 비난을 무마시킬 방패가 많으니까... 학원물과 나이가 맞다는 것도, 시츄에이션물이라는 것이 장기적 본격적 연기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그래서 오디션에 참석했다는 것도, 신인 연기자들과 섞여서 신인처럼 봐달라는 등 스타급 선배 연기자들이 한마디씩 거들면 금상첨화일테고. 그리고 정 답답하면 감독이나 선배 연기자들이 아라를 붙들고 가르치겠지, 하는 약아빠진 속셈도 있겠지.
아아... 윤아라 너머로 몰라도 될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내가 원하는 연기자는 적어도 한번쯤은 자신의 재능에 회의도 느껴보고 자신의 길에 대해 방황도 해봤을 사람이다. 그러고도 연기가 미치게하고 싶은 사람이다. 생계를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하고도, 대본을, 희곡을, 시나리오를 품에 안으면 마냥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이보다 - 나쁘지 않은 품성을, 반듯한 인성을, 많은 경험들을, 긍정적인 세상관을, 노력을 믿는 마음과 행동을 담고 있는 이다. 스포라이트의 화려함보다 기다림의 힘든 시간과 추락의 슬럼프를 더 잘 아는 이다. 그럼에도 연기를 하지 않으면, 시들어 병들어 죽을 것 같은... 광대의 피를, 끼를 가진 이다. 최선우처럼, 한 욱처럼...
소속사가 펼쳐 준, 지폐로 만들어 준, 돗자리에서도 제 역할을 못하는 '윤아라'는, 절대 아니다.
무조건 저 애를 여기서 빨리 치우는게 상책이다.
[윤아 : 이 드라마 망하면, 누가 누굴 탓하겠어. 극본에 이름 올라가고, 연출에 이름 올라간 사람이 시덥잖은 연기자 하나 때문에 개판되서 그렇다구 책임전가할 수 있냐? 대사 한 줄 제대로 못하는 애 데리고, 고생하다가 결국 비중 줄여, 다른 캐릭터 만들어 비중 늘여... 구성 완전히 뒤엎어... 그래놓고도 시청자들이 윤아라때문에 드라마 못보겠다 그래도, 그래서 다른 연기자들한테 피해까지 줘도 최종 책임은 누가 지는지, 제대로 알고도 그 따위 소리가 나오실까요- 윤아라씨? 그리고 나 너보다 안 어려. 너보다 몇 살 많은 덕에, 난 최소한 시청자들한테 양심은 있거든? 그래서 그거 믿고 너한테 이 지랄할 수 있거든?! (아라 매니저에게) 지금 쟤랑 나랑 성질 테스트하세요? 그냥 애 데리고 그만 조용히 나가주시죠...?]
막상 일 저질러놓고나니, 수습하기 난감했다.
아까 민수 선배한테 얻은 담배 하나 더 입에 물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박감독 : 어딜가?]
[윤아 : 성질 드러운 년, 성질 죽이고 들어오겠습니다. 다음 지원자는 좀 편하게 보게요.]
잽싸게 오디션장을 나왔다.
문 앞에서 대기자들이 앉거나 서서 열심히 중얼중얼 대사나 연기 연습을 하는 모습들에 괜히 미안해졌다.
내가 저들의 긴장된 시간을 늘여주는 것 같아서.
내 벌렁거리는 가슴을 후딱 진정시키고, 빨리 들어가야겠다.
[윤아 : 어, 나현아? 넌 여기 웬일이야? 너도 지원했어?]
[나현 : 내가 무슨-^^;;;, 나 욱이 선배 매니저잖어.]
[윤아 : 에구... 욱이 선배는 그냥 캐스팅해두 되는데, 오디션까지 받으러 왔대? 막상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어쩌려구?]
[나현 : 어머~ 얘 좀 봐? 니가 떨어뜨릴거야?]
[윤아 : 연기 못하면 가차없이 - 끽! (목 잘리는 시늉)]
말로만 장난친건데, 대뜸 나현이한테 등짝을 얻어맞았다.
[윤아 : 아야야- ^^]
욱이 선배 연기력이야 이미 영화에서 검증받은 거나 마찬가진데. 게다가 욱이 선배한테 딱 맞는 이미지로 처음부터 만들어 놓은 캐릭터가 있어서 오히려 욱이 선배가 거절하면, 나야말로 다른 연기자에 맞춰 캐릭터를 새로 보강해야 한다.
[나현 : 어제는 어디서 잤어? 큰 오빠 집에도 안들어갔다며.]
[윤아 : PC방서 이것저것 하다가, 좀 졸았어.]
[나현 : 하여튼- 오늘부터 오디션 끝날 때까진 우리집으로 들어와! 알았어?!]
[윤아 : 그래두... 니네 집엔 부모님두 계시구... 좀 불편하지이- ^^]
[나현 : 니가 나한테 뭔 죄라도 졌어? 뭐가 불편해!]
[윤아 : ...]
너에게 말할 순 없지만, 마음으로 죄를 졌지. 네가 그렇게 좋아했던 최선우, 그를 사랑했으니. 우리가 친구라면서 너한테조차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것도, 죄라면 죄지. ...다 지난 일이지만.
# 오디션 일정은 일주일.
그래서 간단히 소지품을 챙겨 서울로 올라왔더니, 가장 큰 문제가 숙박이었다.
지난 설, 큰 오빠집에 전화했을 때, 큰 오빠가 해외 근무 발령이 나서 가족 모두 따라 들어갈 것 같다고 했었다.
그 때가 언젠데... 벌써 떠났겠지 싶어서 굳이 연락하지 않았다.
오디션장 앞에서 나현의 차에 픽업당해서 나현의 집으로 끌려들어 갔다.
[윤아 : 안녕하세요 ^^ 신윤아예요.]
[나현엄마 : 어머, 니가 윤아구나! ^^ 잘 왔어,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곧 밥 된다.]
[나현 : 괜찮긴... 지금두 액션 스쿨서 상대해줄라면 내 온 몸을 샌드백으로 바쳐야 하는구만. 그래도... 욱이 선배가 하는 영화마다 그런대로 잘 되어 가는게 다행이지... 그나마 그 자존심도 안 살았음, 욱이 선배 진짜 불쌍하게 됐을거야.]
[윤아 : ... 그래서 더 말이 없어지구, 개폼만 더 잡는거야?]
[나현 : 개, 개폼 -_-;;; 너 어떻게 감히 욱이 선배의 그 터프한 모습을!!!]
[윤아 : ㅎㅎ 오호... 그렇게 강하게 싸고 도는 걸 보니 수상한 걸? 너 이번엔 욱이 선배 좋아하는 거야?]
[나현 : 아, 아냐!!!! 난 그냥 매니저일뿐이야. 우린 공적인 관계일 뿐이라구!!!!]
[윤아 : 흐음... 수상쩍지만...]
[나현 : 정말이야!]
[윤아 : 알았어, 알았다구. 그 맘도 또 변하겠지, 뭐. 예전에도 누구 좋아하다가 변심했었지, 아마~?]
[나현 : 아니다, 아니다, 뭐! 너야말로 최선생님 귀여움은 다 받았으면서.]
[윤아 : ...]
[나현 : ...윤아야, 윤아야- 왜 그래.]
내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리자 나현이가 내 팔을 흔들었다.
[윤아 : ^^ 아, 아냐. (어렵게 묻는) 근데... 최선생님, 왜 결혼 안하셨대? 결혼설도 여러 번 터졌잖아.]
[나현 : 내가 매니저하면서 그 쪽 바닥의 진실들을 다 꿰차고 있잖냐. 근데 알고 보니까, 최선생님 결혼설 그거, 진짜 별 거 아니었더라구.]
[윤아 : ...?]
그럼, 해외 공연 가기 전... 유성린의 딸까지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만들었던 다정한 분위기는 뭐였는데...
[나현 : 유선생님하고 해외 공연까지 같이 가서 두 분이 돌아오는대로 결혼을 하네 마네 했는데.. 사실은 공연 떠나기 전에, 두 사람 결혼 얘기 있던 거 다 정리됐었대. 편한 친구로, 동료로, ...남자고.]
[윤아 : ... 유선생님이...그러자고 하셨대?]
[나현 : 그럼-, 내가 말을 좀 섞어보니까 유선생님 무지 쿨하고 멋진 여자인 거 있지. 최선생님이 -우리 안되겠다, 좋은 동료로 지내자 - 그러니까 쌈빡하게 감정정리 끝내고, 지금도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주는 거,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더라구.]
[윤아 : ... 그래애...]
[나현 : 내가 그 때부터 그 여자 존경하기로 했잖어.]
지나현... 너 철 많이 들었다. 최선우때문에 울구불구 초난감 버전이었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윤아 : (피싯) ... 최선생님하고 헤어져서 그런 거 아니구?]
[나현 : ...뭐, 그런 점도 좀 있고. ^^]
[윤아 : 이번에 두 분 같이 드라마 들어가면 또 결혼설 나오겠다.]
[나현 : 그렇겠지, 그래도 최선생님 마음이 굳건하면 다른 일이야 있겠어? (갸웃) 있을라나? 없을라나? 에이, 그래두 여지껏 독신으로 있었는데, 그냥 끝까지 그 멋진 독신 남성의 이미지를 지키는게 좋지 않어? 환~상이잖아. ^^]
[윤아 : ...]
그가 유성린과 결혼했다면, 내 마음이 이렇게 꼬여서 있는대로 성질부리진 않을텐데.
내가 좀 더 자제력을 가질 수 있을텐데... 그의 앞에서 일부러 못되게 굴지 않을텐데...
...그가 아직 혼자이기에... 내 마음이 자주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때문에.
# 오디션 마지막 날, 오후. 식후의 느긋함이 느껴질 무렵 유리가 나타났다.
[유리 : (공손히 인사) 지원번호 476번, 조유리입니다.]
[윤아 : ...]
전체적으로 밝고 깔끔한 핑크계열의 꽃무늬 원피스와 어깨까지 늘어뜨린 생머리에 단정하게 민무늬 핀을 꽃은 헤어스타일. 유리의 청순한 외모와 얼굴에, 10대 소녀의 밝고 예쁜 순수함이 돋보이는 코디.
...대체 언제 저런 준비를 한 거지...?
나와는 정반대인 과학계열 천재인 아이라, 이런 모습은 상상도 못했다.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박감독 : (지원서 보더니) 청솔고 1학년?]
[유리 : 네. ^^]
박감독이 잠깐 나를 봤다.
[박감독 : 준비한 개인기 있으면 해 봐.]
...뜻밖에도 유리는 마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막 사랑에 빠진 10대 소녀가 짝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며 창너머 고개를 기웃기웃거리고, 마침내 그가 나타났는지 활짝 미소를 띄우다가 눈이 마주쳤는지 화들짝 숨어선 수줍게 혼자 웃는다.
숨이 턱 막혔다.
비록 좀 서툰 부분은 있지만, 일상의 모습과 더불어 감정의 변화에 따른 외적 액션과 표정 연기가 좋았다.
연극 무대에서와 TV.스크린에서의 연기는 차이점이 있다.
유리는 TV에서 카메라가 얼굴과 상체부분을 많이 크로즈업하는 점을 이용해서 그 부분이 돋보일 마임을 만들어 해냈다.
슬쩍 좌우의 심사위원들을 보니, 감탄의 표정들이다.
카메라로 오디션을 촬영하고 있는 민수 선배의 표정에도 만족스러움이 떠올랐다.
오디션에서 보는 것은 완벽한 연기 실력이 아니다.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본다,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본다.
[선우 : 아까 받은 종이에 있는 대사 해볼래요?]
[유리 : 네.]
유리는 대사가 인쇄된 종이를 옆에 내려놓고, 잠시 감정을 잡는 듯 눈을 내리깔더니, 다시 정면을 보고 심사위원들을 향해 두 손을 모으며 한 걸음 내디디며 대사를 읊었다.
[유리 : (감정이입된) 왜 제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아니, 제가 절 사랑하는 게 뭐죠? 뭘 어떻해야 되요?]
...정신이 아득해진다.
유리는 내가 대사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의도를 정확히 읽었다. 내 대본의 감정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걸 외적.내적 연기로 표현해냈다. 이 대사를 내가 예상한 기대 이상으로 연기할 수 있는 연기자가 있었다니! 그 사람이 유리...라니.
순식간에 멍해졌다. 한 번도 보지못한, 상상도 못한 유리의 다른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질문할 생각을 못하고 연감독에게 '패스' 손짓을 했다.
[연감독 : 유리양, 신작가하고 같은 학교면 (윤아 흘끔 보며) 신작가하고 친해? ^^]
[유리 : (생긋) 네.]
[연감독 : 그럼 신작가한테 지도 좀 받았겠네.]
[유리 : 전혀 아닙니다. 전 이번 드라마가 대안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는 것밖에 모릅니다. 방금 이 대사도 오디션장에 와서 처음 봤습니다.]
[연감독 : 그래? 그래도 이 오디션에 지원한 건 신작가 영향이겠지?]
[유리 : 소문을 듣고, 경험삼아 지원한 것 뿐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무적인 경어를 꼬박꼬박 쓰는 건, 날 보고 배웠겠지. 하여튼 애들 앞에선 냉수도 못마신다니까. -.-'''
[연감독 : 그럼 학교에서 연극부인가?]
[유리 : 아닙니다. 전 과학부입니다.]
[연감독 : (어리둥절) 그럼 아까 그 마임은 어디서...?]
[유리 : 인터넷에서 기초 강의를 보고 응용해서 일주일 정도 연습했습니다.]
...일주일...?
일주일동안 기초를 독학하고, 응용해서, 자신만의 마임을 연출했다고...?
믿기 힘든 그 자연스럽고 사소한 것 하나 빠짐없는 동작연결을...?
[선우 :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으면, 다른 연기자보단 이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 높겠네요.]
[유리 :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선우 : 그럼 아까 그 대사를 연기할 때, 어떤 감정으로 했죠?]
[유리 : 그 대사는 외형적으론 다른 사람에게 묻는 질문이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묻는 거라고 느꼈어요. 자신의 문제 해답은 자기 자신만이 아는 거니까요. 다른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니 자아 정체성에 대한 방황이기도 하구요. 더욱 더 답답해지고, 빨리 정답을 알아내고 싶어 자기 자신을 다그치는 감정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믿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유리는 태어나서부터 천재라는 이유로 엄마의 과잉 욕심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과 같은 정상적인 성장과정이 없었다. 자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방황을 할 여유가 없었다.
유리가 오디션에 참가하고 싶다-했을 때, 썩 내키지도 않았지만, 나도 나름대로 바빠서 드라마에 관한 정보를 알려줄 시간도 없었다.
평소에도 유리에게 내가 습작한 대본을 읽어보라고 건넨 적 한번도 없었다.
대본은 철저히 영상을 작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소설과 달리 지문 문장이 딱딱하고 등장인물에 쉽게 감정이입하기 힘든 대본 형식은 일반인들에게 읽기 좋은 글이 아니다. 그런데다 대중 예술 쪽엔 전혀 관심없는 유리에게 굳이 그런 것을 봐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유리가 어떻게 저런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거지? 청소년 교육 이론학을 수백권 읽어도, 뉘앙스가 조금만 달라도 의도와 감정이 전혀 달라지는 대본 대사에서... 달랑 두 줄만 던져진 대사에서... 내 감정을 저렇게 정확히 짚어낼 순 없을텐데.
그렇다면... 유리는 나와...절대적인 교감을 한다는 건가...?
아니, 벌써 그렇게 단정짓긴 이르다.
[연감독 : 지금 재학중이면, 드라마 촬영 시간에 수업시간을 많이 뺏길텐데 괜찮나?]
[유리 : 네, 저희 학교는 수업일수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융통성있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
사실, 유리는 수업에 들어갈 필요가 없지. 유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들을 가늠할 수 있는 사람도 흔치않을거고. 유리가 당장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가도 대학원까지도 조기졸업이 가능할 걸.
나는 가방에서 1회 대본(수정중인)을 꺼내 한 씬에다 큰 원을 그렸다.
[윤아 : 조유리...씨, (대본 내밀며) 이 부분 해볼래요?]
드라마 촬영의 빡빡한 일정에 연기자의 순발력과 빠른 암기력은 필수다.
유리가 한번도 보지못한 대본이고, 유리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준 설정들과 전혀 다른 장면이다.
유리가 다가와 받아들며, 내게 잠깐 생긋 웃어보였다. 눈으로 대본을 한 번 훑곤, 내게 다시 돌려주고 두어걸음 뒷걸음 쳐서 멈춰섰다.
어떻게 된 아이가 긴장의 기색도 없다.
유리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동자에서 야생 동물같은 생존의 불안으로 인한 거친 빛이 났다.
[윤아 : !! ]
[유리 : (앞에 의자가 있는 듯, 발길질하며) 아, 씨발. (비웃는) 당신이 선생이면, 날 가르쳐봐, 어디 가르쳐봐! 꼴리면 짜르던가. 근데 이 학굔 안짜른다며, 그것도 다 구라지?]
유리의 액션은 눈 앞의 의자가 우당탕- 넘어지는 듯 실감났고, 거칠었다. 대사하면서 불량스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 껌을 질겅질겅 씹는 설정도 제대로 해냈다.
유리는 수업에 들어가서도 저런 애들의 행태는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을텐데, 어떻게 저런 흉내를 잘 내는 거지?
[박감독 : (허- 한숨) 신작가, 신작가 학교에 저런 애 많아?]
[윤아 : 1,2회 대본 보셨으면 아시잖아요. 초반엔 욕 안하는 애 없고, 선생님을 말로든 신체적으로든 폭행하는 사고도 수시로 일어나요. 전 질문 더 없습니다.]
[선우 : (관심있게, 유리에게) 혹시 예전부터 연기 해보고 싶었어요?]
[유리 : 아니요. 하지만 이 오디션 준비하면서, 흥미가 생겼습니다.^^]
[선우 : 그래요? 아까보니 씬을 통채로 한번에 다 외우고 내용을 금방 파악하는 게,
그걸 표현해 내는 게, 자질도 꽤 있는 것 같은데. 전혀?]
[유리 : (머뭇) 전...혀, 그런 생각 못했는데요.]
최선우, 그가 나를 잠깐 봤다가 유리를 봤다.
암기는... 유리의 일부분일뿐이다.
유리는 책이든 영화든 뭐든 한번 본 것은 통채로 암기해버린다. 자기가 그러려고 의도하는 것도 아닌데,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떠오른다고 했다.
연기 자질은... 일단 가능성은 크게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내 경우다.
# 오디션 끝난 다음 날부턴 배역 오디션 결과와 드라마 전체적인 기획을 정리하기 위한 마라톤 회의가 시작됐다.
내가 가능성 쪽에 높은 점수를 줬던 남자 무명 신인 두 명과 이미 데뷔는 했으나 얼굴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고 연기가 좀 되는 여자 신인 한 명이 최종 캐스팅 리스트에 올랐다.
오디션장에선 긴장해서 실수도 좀 있었지만, 연기에 대한 고뇌와 무명 시절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연기관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가졌기에 꽤 마음에 들었는데... 사람을 보는 눈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비상'이 소위 스타 배우 산실이라는 청소년 드라마류인데다가 학생 배역 10명 모두 각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자신의 색깔만 제대로 소화해내면... 스타성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받던지, 연기성으로 제작진의 러브콜을 받던지, 둘 중 하나로라도 자리잡는 건 시간문제다.
톱스타 잔치랄 수 있는 선생님 배역들은 더 말하기 입아프고.
하긴 남다른 캐스팅 안목으로 참신한 신인을 과감히 등용해 잘~ 만든 시트콤 역시 스타의 등용문이 되주기도 하지만, 한국의 시트콤은 배우의 이미지를 유치찬란 이상으로 심하게 망가뜨리는 경향이 있어서...-.-;; 드라마에선 망가뜨린대도 그 정도까진 못하니까... 부디 다들 '비상'에서 연기를 충실히+제대로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디션 녹화한 화면을 함께 보며 각 배역마다 연기자 후보들 이름을 적었다.
[박감독 : 서하영('비상' 여학생 배역)은 조유리, 어때요?]
[윤아 : ...]
[연감독 : 서하영은 딱 그 애더만요. 그 때 신작가가 해보라던 대본 내용, 그것도 서하영 대사였잖아요?]
[박감독 : 신작가, 서하영에 그 앨 모델로 썼어?]
[윤아 : ...아, 아뇨. -_-;;; 유린 그런 애 아니었어요. ^^;;;;]
[민수 : 조유리, 얼굴선하고 색이 카메라에 잘 받아요. 상체도 적당하고, 몸매가 갸름해서 풀샷도 여러 방향으로 잡기 편하구요. 연기도 신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짚고, 발음도 또렷한게 좋은데요.]
[박감독 : 다들 조유리를 서하영으로 보는데? 신작가는 어때? 좀 친했으면 어떤 앤지도 알 거고.]
잠시 망설였다.
나도 객관적으로 봐서 유리가 서하영을 연기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유리에게 장기간 연기하는 거, 촬영하는 거, ... 쉽지 않을텐데...
유리처럼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고 사회성 부족한 아이는...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팀웍에 맞춰 작업하는 것... 만만찮을텐데...
아니, 오히려 유리에게 좋은 기회로 봐야하나...?
갑자기 내 걱정이 유리 엄마가 유리를 과잉보호했던 것과 같은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안되지... 유리도 앞으로 어떤 경우에 쓰러져도 혼자 스스로 일어서는 것을 익혀야 한다.
[윤아 :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기가 좋아하면 열심히 하게 되는 거 아니예요? ^^]
[박감독 : 최선생님은 어때요, 러브 스토리편의 상대 배역으로 조유리.]
[선우 : 좋죠. ^^ ]
[윤아 : ...]
[박감독 : 자, 그럼 캐스팅 배역은 일단 이대로 가고. (민수에게) 내일 연락해서 전부 O.T. 에 참석하게 해. 촬영 장소 설명하면서, 거처 문제나 겹치기 출연 같은 거 문제 있음 다른 후보로 빨리 바꿔야 하니까.]
[민수 : 네.]
[박감독 :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
[윤아 : 저기, 기획 쪽, 좀 더 얘기하면 안될까요? 저 내일은 꼭 학교로 내려갔으면 해서요.^^]
[연감독 : 신작가는 학교에 금두꺼비 묻어뒀나? 왜 그렇게 못내려가서 안달이야? 난 신작가랑 친해질 기회도 별로 없어서 오늘 단합회식이나 하고 싶었는데.]
[박감독 : 회식, 좋지 ^^ (벌떡 일어나며) 가자.]
[윤아 : -_-;;;;]
무시당했다 -.-''''
[윤아 : 박감독님-]
[선우 : (빙긋) 다들 피곤하니까, 내일 마저 얘기하죠, 신작가.]
[윤아 : ...]
# 전통 술집.
동동주에 파전, 적당히 무르익은 술자리...
[윤아 : (정색해서) 그러니까 드라마 초반엔 ost를 경음악으로 가자구요. 지난 번 감독님이 만드신 드라마보니까 1회부터 주인공 상황이나 성격도 다 안 나온 상태에서 가사 들어간 ost 삽입되니까 확-깨드라구요. 내용이랑 노래가 따로 노는 느낌요, 별루였어요.]
[연감독 : 아, 그랬지... 그래도 그 ost 좋았는데?]
[윤아 : ost는 좋았죠~ ^^ 저도 좋아해서 지금도 자주 듣는걸요. 근데 일단 등장인물들끼리 기본적인 상황설정이 된 후부터 가사도 들어간 걸로 넣자구요. 그 전은 가사 빼고 MR식으로 가자구요, 네?]
[박감독 : 신작가, 여기까지 와서두 회의연장이야?]
[윤아 : ...앗, 죄송합니다. (꾸벅) ^^ 그냥 지금 막 생각나길래... 죄송합니다, 딸꾹!]
[민수 : 야, 그것갖구 벌써 취했어?]
[연감독 : 아, 신작가는 민수 후배라고 했나?]
[윤아 : /(^^) 옛썰, 그렇습니다.]
회의하면서 하두 떠들었더니, 배가 고파서 동동주를 홀짝홀짝 마신 것이 금새 취해버렸나보다.
슬그머니 내 앞으로 안주거리 이것저것 담긴 작은 그릇이 놓여진다.
최선우, 그를 흘낏 봤다.
[선우 : 술만 마시지 말고...]
아... 내 눈동자가 풀린 것 같다. 그의 모습이 멀어졌다 가까이왔다 -한다. 고개를 몇 번 흔들어봐도, 그의 모습이 뿌옇다.
[선우 : (?) 신작가!?]
갑자기 이렇게 맛이 가는 수도 있나? 이상하네...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러나...?
내 의지와 다르게, 내 고개가 푹 꺽이고 그에게로 몸이 쓰러지면서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선우 : (부축하며) 윤아야-!]
[윤아 : 으음...]
[민수 : (기분좋게 취한) 얘, 완전히 맛갔네, 삼촌.]
[선우 : (윤아를 살짝 흔들며) 정신차려봐, 윤아야-]
[박감독 : 끄억! 뭡니까, 신작가 이름이 윤아였나? ㅎㅎ]
[연감독 : 그런가본데요, 근데요 감독님- ^.^]
두 감독은 쿵짝이 맞아서, 계속 주거니받거니하고... 난 그와 민수 선배의 처치곤란 대상이 되고 있었다.
[윤아 : (억지로 일어나 앉아보려하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더니 다시 푹- 테이블위에 뻗고, 중얼중얼) ]
[민수 : 윤아 얘 주사도 있었나? 뭔 알지도 못할 헛소리야? (윤아 흔들며) 야, 알아듣게 말 해! (연감독에게) 에이- 감독님 술 더 시킬까요?]
[로맨스 소설]<<흡혈귀 마녀와 동침을II-07>>
개인적으로 참, 쓰기 싫은 부분에 들어갔습니다.
윤아의 마음도, 선우의 마음도, ... 서로의 등만 보는 관계로...
둘 다 제 맘에 안든다고 스트레스 쫌 받았드니,
위가 팅팅 부어서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못먹고 맨날맨날 잠만 잤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많이 졸려요, 하품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곰팅이가 따로 없었지요, 뭐 덕분에 쌀은 많이 안줄었습니다만 -_-;;;;
6회의 리플의 답글을 이제사 답니다... 부디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_ _)
(다른 글을 보니 이렇게 다음회에 답글을 쓰시더군요...)
미르 (2004/11/28 04:33)
우리의 마녀님은 어디로 가신걸까요? 항상 달던 리플도 안다시고..... 마녀님의 행방을 찾습니다.
---> 저 기어나왔습니다, 엉금엉금.... ^.^;;;;;
라엘 (2004/11/19 19:09)
잘보고 갑니닷////선우의 마음이 너무 아플것 같아....에효~~~ 바지들!!!!! 정신 똑바로 챙기세욧!!!!!
---> 동감올습니다 ㅎㅎ
어제 보름만에 집 밖에 나가 수퍼에 갔었는데, 옆 비디오 가게에 붙은 포스터에 이런 문구가 있더군요.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 뭐 그런....^^;;;;;
생딸기케잌 (2004/11/18 22:20)
정말..넘 재밌는거 아니에요?? 추천을 안할래야 안할수가 없네요 ㅋㄷㅋㄷ 계속 수고해 주시구요~ 빨리좀 올려주세요ㅜㅠ
---> 전 비난 받을 줄 알았는데... 재밌나요... 뜻밖의 반응에 당혹스런 마녀...
시인 (2004/11/18 16:32)
언제나 기다리는 이야기 입니다. 한번 읽고나면 그 다음이 궁금해 계속 게시판 문을 열어 보고 있답니다. 빨리 올려 달라구 하면 .....ㅎㅎ
---> 아... 시인님, 안녕하세요. 빨리 올리지 못해 죄송...(_ _)
박기자 (2004/11/18 13:21)
마녀님 글 넘 재밋어요,, 넘 잘 쓰시는거 같아요,, 항상 잘 읽고 갑니다,
---> 과찬이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가페 (2004/11/18 12:54)
점심시간에 잠깐 들어와 봤는데..넘 기뻤습니다..ㅋㅋ 잘읽고 갑니다. 담편도 많이 기대되염.. 추천 꾸욱..
---> 글쎄... 이번 편은 기대보다는 스토리 진행을 위한 징검다리같다는 생각이....
임경옥 (2004/11/18 12:31)
윤아........많이 강해졌네요...정말 예전의 윤아가 아닌듯....근데 세사람이 오해하고 있는것 같아 맘이 아파요.....유리한테 얘기한것처럼 그날 있었던 일을 얘기하지...특히 선우아저씨가 오해하는게.....ㅠ.ㅠ......다음에 풀리긴 하겠지만요...항상 마녀님 글을 길어서 좋아요...ㅋㅋ....다음 얘기도 빨리 올려주실꺼죠?
---> 윤아가 강해진만큼 다르게 변한 것도 있지요...선우가 그걸 가장 먼저 느꼈구요. 그리고... 윤아는 오해를 굳이 풀려 안할거예요.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세 사람의 성격상 이 오해는 윤아 앞에 세 남자가 약해지도록 만들 수 있는 거거든요.
글이 긴 건 ㅋㅋ 아마도 제가 띄워쓰기를 많이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은데...어쨌든 좋아해주시니 감사할 따름...
숲 (2004/11/18 11:20)
에고~~ 글읽기 힘들네여.. 아침부터 네이트가 말썽을 일으켜서 나갔다 들어오기를 수번~~ 간신히 들어와서 읽었어여^^ 윤아의 당찬모습은 여전하네여..우리나라 남자들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하는짖은 짐승만도 못한거 같아 화가나네여.. 그래도 윤아가 잘넘겨서 다행이에여.. 사실 윤아가 선뜻 따라간다고 해서 무슨생각으로 그럴까 했는데.. 선우는 왜 점점 바보가 되가는걸까여? 2년전부터 지금까지 윤아에게 잘못한걸 어떻게 갚으려고.. 왜 계속 윤아주위에 있는 남자들은 윤아에게 칼날만 들이데는건지.. 제마음이 다 아프네여..
---> 저도 지난 회는 글 올리기 진짜 힘들었습니다.
올려놓고 잘 올려졌는지 점검하려고 하니까, 글쎄 네이트 게시판이 점검중이라더군요 -_-;;;
선우는 윤아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느낀 사람입니다, '네가 안좋게 변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2년의 공백동안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윤아의 다른 모습들에 선우는 많이 당혹스럽고 어떻게 나와야 할지 모르는 것 아닐까요.
선우는 윤아가 없는 시간 동안 자신의 마음을 확인했으면서도, 윤아에게 함부로 손을 내밀 수 없는 입장이잖아요, 2년전처럼요.
2년 전엔 윤아를 거절한 건 선우였는데, 이젠 선우를 윤아가 외면하는... 엇갈림이, 저도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허브향기 (2004/11/18 11:15)
마녀님 짱!!!길어서 넘 잼있게 읽고가요!!!선우나민수나이대표나 감독까지 생각들이 다 짧군요!!!특히 선우는 넘했어요!!격어봐서 그런아이아니라고 믿어주면 될껄....아숩군요 수컷들의 생각은 언제나 똑같아요!!!
---> ㅋㅋ 마지막 말씀이 짱입니다요!!!!
조윤경 (2004/11/18 10:10)
무진장 기다린 소설~~ 넘 쨈나게 읽다가요~~ 처음으로 의견도 달고 추천도 꾹 눌렀어요! 아침마다 마녀님 소설 기다립니다.
---> 첫 의견과 추천이라... 넘 감사드립니다 (_ _)
대님 (2004/11/18 07:39)
앗, 1등이다! 마녀님, 아침부터 사람 마음 뭉클하게 하시고... 정말 미워요~^^
---> 허걱!! 1등이시다!!! 짝짝짝~~~
이야기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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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 << 흡혈귀 마녀와 동침을II - 07 >>
쓰는 이 : 연지바른 마녀(mskim0920@nate.com)
*등장인물*
-신윤아(여, 20세, 화자)
-최선우(남, 60세) : 아시아 대 배우, 엔터테인먼트, 푸른 극장 대표
-이민수(남, 21세)
-한 욱(남, 21세)
-지나현(여, 20세)
-이태석(남, 62세) : 태석 영화사 대표
-유성린(여, 60세) : 선우 약혼녀, 뮤지컬 배우
-조유리(여, 18세)
-우해준(남, 18세)
-진한기(남, 25세)
-박필덕 감독(남, 40대 중반)
그 외...
#
간만에 수업을 들었더니,
머릿 속이 마구마구 헝크러지는 것 같다.
[김선생 : 딴생각하고 있네..?]
[윤아 : (꾸벅) 죄송합니다.]
수학시간은 학생들 수학 수준이 각자(?)라서
거의 개별지도식으로 수업이 나간다.
아까 선생님이 풀어보라는 문제의 숫자들이
아직도 답을 풀지 못한 나를
원망스럽게 째려보고 있다.
제발, 난 수학이 제일 싫어 >_<
으... 시러 시러 시러... (-- ) ( --)(-- ) ( --)
그 다음은 화학이구, 아.. 물리도 별로다.
숫자들아, 죄책감 느끼게 날 째려보지 말란 말야.
포기하고 싶으니까.
[김선생 : 요즘 생각할게 많지? ^^]
[윤아 : (긁적) ...좀 그래요.]
[김선생 : 여기 나가서 먹고 살 걱정?]
[윤아 : ㅎㅎ;;;]
[김선생 : 드라만가 그건 어떻게 돼 가?]
[윤아 : 잘되가는 편이예요, 아주 운이 좋은 편인데...]
[김선생 : 근데?]
[윤아 : 제가 잘할지 자신이 없어요.]
[김선생 : ^^ 넌 할 수 있어!]
잘할 수 있다는 빈 말보다
일단 '넌 할 수 있다'는 신뢰있는 격려가
마음에 큰 힘이 된다.
[윤아 : 마음이 더 무거워지는데요.^^]
[김선생 : 그러라고 한 말이야.^^]
교실의 열린 뒷문에서
홍선생이 슬쩍 고개를 들이밀더니
나오라고 손짓했다.
[윤아 : ? ]
복도로 나가자
홍선생이 복도 끝을 가리켰다.
민수 선배가 서 있다가 날 보더니
웃으며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
달리는 차 안.
[윤아 : 나 아직 학생이야, 선배.
휴학계는 다음 학기로 낸 거라구...
수업듣는 학생을 이렇게 납치해두 되냐구요...?]
[민수 : 그만 투덜거려라.]
박감독은 뒷좌석에 길게 누워
점퍼로 얼굴을 덮어
차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까지
완벽하게 차단한 상태에서
곤한 잠에 빠져있다.
[윤아 : 하여튼 이번 기말고사 망치면
두 사람 탓이야.]
[민수 : 니가 성적에 그렇게 신경쓸 줄 몰랐는데.^^]
[윤아 : 한동안 수업에 못들어가서 그래.
아, 참... 오늘 쥐덫 살펴봐야하는데.]
[민수 : 쥐덫?]
[윤아 : 아... 그런게 있어.
유리가 약초 실험할 때,
실험용으로 쓰는 건데
쥐덫을 놔서 잡아 조달하거든.]
[민수 : 유리? 실험?]
[윤아 : 응, 1학년. ^^ 내 룸메이트.]
[민수 : 너한테서 튀어나오는 소리들마다
무슨 소린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윤아 : 그나저나 지금 어디 가는거야?]
#
초등학교 폐교에 도착했다.
[민수 : 어때? 이 정도면?]
[윤아 : 촬영지로?]
[민수 : 응, 니네 학교하고도 가까운 편이고
운동장 조경도 괜찮은 편이지?]
[박감독 : 거의 그대로 가도 되겠지?]
차 안에서 잠들어있던 박감독이
부스스 일어나 차에서 나왔다.
[윤아 : 제가 생각했던 구조보다 훨씬 좋은데요.
사실 폐교로 대안학교를 여는 곳도 꽤 되거든요.]
[박감독 : 민수가 발바닥 땀나도록
뛰어다녀서 찾은 곳이야.]
[민수 : (긁적) 그렇게 말씀하시면...
앞으로 더 잘하라는 뜻이죠?]
[박감독 : 당근이지. ^^
또 뭐있더라? 말밥이지.]
[민수, 윤아 : ^^;;;;;]
[윤아 : 몇 군데 리모델링 할 순 없을까요?
강당이랑 식당, 기숙사는 중요한 진행에 꼭 필요한 장손데.]
[박감독 : 그러지 뭐.
민수야 뭐하냐, 신작가 말 받아적어둬.]
[윤아 : 아, 아니예요.
제가 제 의견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박감독 : 그러든가.]
두 사람과 함께 혹은 따로
학교 건물 안과 교정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윤아 : 저 건물 구석... 밤장면에서
약한 조명 비추면 끝내주겠다, 밀회 장소로.^0^]
양손가락으로 사각형을 만들어 구도를 잡아봤다.
[민수 : 상현과 하영?]
[윤아 : 응. ^^ ]
내 앞에서,
건물 구석은 어둠이 깔리고...
상현과 하영('비상'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의 만남에 숨이 막힐 듯한 수줍음이 느껴진다.
아... 내 가슴이 마구 설렌다.
내가 이미 사랑하고 있는 상상 속의 사람들...
이제 곧 현실 속에서 살아있는 연기자로
내 기대 이상의 모습을 나타내겠지.
선생과 제자를 뛰어넘은 이성적 사랑...
그 마음을, 처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씬의 장소를
이곳으로 해야지...
박감독님이라면 이 씬을 기막힌 영상으로 뽑아낼 것이다.
감춰야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구석진 장소,
그러나 그곳에서 알게되는 사랑을... 늦은 밤이되 밤이 아닌 색채로.
[박감독 : 신작가 넋빠졌군.]
돌아봤더니, 박감독의 손에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그걸로 찍어낸 사진들이 한웅큼이다.
[윤아 : 여기도 한 장 찍어보실래요?
상현과 하영이가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을
여기로 했으면 하는데요.]
[박감독 : 숨겨야 하는 사랑은
구석지고 폐쇄된 장소를 찾아들기 마련이지.
(사진 찍는) 그런데 그런 장소일수록
서로의 숨소리가 아주 가깝게 닿지...^^ ]
역시... 금세 내 의도를 파악한다.
[박감독 : (사진이 마르게 흔들어보며) 나쁘진 않아,
그치만 두 사람의 표정을 의미있게 써포트 해주려면
조명 색을 다르게 만들어봐야겠는데.]
[윤아 : 새벽빛의 푸르스름? 남색?]
[박감독 : (손으로 창에서 복도 구석으로 선을 그으며)
복도 창이 저쪽이니까,
달빛이 흘러들어와 이 구석에 닿겠군.]
[윤아 : 달빛이요? 와아- ^^
진짜 낭만적이겠네.]
감각적인 영상의 대표적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다.
민수 선배는 그 동안 학교 건물이며 운동장 등
대략의 설계도면을 다 그려놨다.
[윤아 : (슬쩍 보며) 나도 그거 한 장 가졌음 좋겠는데...]
[민수 : 가는 길에 문방구 있음 복사해줄게.]
[윤아 : (의아) 또, 어디가?]
#
[박감독 : 어차피 스토리 대부분이 폐교에서 진행되는데
그러면 여기서 줄창 상주하는 게 편할 것 같아서...]
[민수 : 임시 숙소도 같이 알아보라고 하셨거든.]
[윤아 : 방송국 스튜디오 촬영도 있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것도 제작비 예산에 책정돼있는 거야?]
[박감독 : 별 걱정을 다하네,
예산 걱정은 감독이랑 프로덕션 사장 몫이야.]
[윤아 : 하지만...]
[박감독 : 작가는 무리하게 장소협찬 받기 힘든 곳이나
예산이 오바될 장면을 크게 욕심내지만 않으면 돼.]
민수 선배가 미리 만나봤다는
무척이나 시골스런 부동산 업자의 안내를 받아
양옥집을 보러 갔다.
[박감독 : 도배도 다 되있고, 당장 들어와도 되겠네.^^]
[윤아 : 지은지 얼마 안된거네요?]
[업자 : 아, 그게요. 얼마전까지 이 근처에
대학교 하나 들어온다고 소문이 짜하게 돌았잖아요.]
[윤아 : 아...예.]
[업자 : 그래서 학생들 상대로
하숙 장사하려던 사람이 지은건데...]
[윤아 : 그게 헛소문이었죠. ^^;;]
[박감독 : 어쩐지 전세값이 싸더라.
난 귀신이라도 나오는 집인줄 알았네.]
[민수 : 그래도 좀 더 깍아주실 수 없나요? ;;;;
저희 예산이 좀...^^;;;]
[업자 : 거 감독님두 말씀하셨잖아요, 싸다고.
이것도 집 주인이 손해 감수하고 내놓은 거예요.]
[윤아 : 어차피 그냥 놀려도, 부동산 소유세며
전기세, 수도세, ... 나오는 거 만만치 않을걸요? ^^]
[업자 : -_-;;;;]
[윤아 : 게다가 1층, 2층, 옥탑까지
따로따로 들어올 사람 찾는 거나 방 놀리는 시간이나...
그것도 꽤 신경쓰이시겠네요, 집주인.]
[업자 : ...-.-]
[윤아 : 우리야말로 이 전체를 다 사용하겠다는-
집주인 입장에서 무지 좋은 조건인데... 할수없죠, 뭐.
(민수에게) 선배, 예산이 그렇게 안되면
차라리 귀신나오는 집을 알아봐요.
우리 팀 멤버들은 (눈 찡긋해보이며) 귀신나오면
대박날 조짐이라고 오히려 좋아할걸요.]
[박감독 : 그럴까?^^ 처녀귀신 나오면
난 장가 한 번 더 가야쥐~
이래뵈도 한창 땐 내가 꽤 잘나갔거든. ^^]
[윤아 : ...음, 믿을 수 없지만 믿어드릴게요.^^]
[민수 : 흠, 전 절대 못 믿어요.]
[박감독 : 진짜라니까!!!! ]
우리는 미리 작전 짠 듯이
이 집에 더이상 맘이 없는 것처럼
농담을 주고받으며
슬슬 집밖으로 걸음을 돌렸다.
[업자 : (다급) 아, 그래도 원하시는 조건에
이만큼 싼데도 없어요!!!]
[박감독 : 신작가, 이 근처에 귀신집으로 소문난 집 없어?]
[윤아 : 왜 없어요 ^^;;; 시골 동네마다 다 있죠.]
[민수 : 거긴 공짜아냐?]
[윤아 : 아마... 돈준대도 안받을걸요?]
[업자 : 집주인한테 한 번 얘기해볼게요!!!]
우린 업자 몰래 미소를 교환했다.
[민수 : (부동산 업자에게) 저흰 별로 시간이 없거든요?
(들으라는 듯이) 감독님, 오늘 감독님 스케쥴 빡빡하신 거 아시죠?
에... 오후엔 올라가셔서 곧바로 OST 작곡가 만나셔야 되요.
그리고 저녁 땐 방송국에 들어가셔서...]
[업자 : 아, 지금 연락한다니까요!!! (핸드폰으로 전화거는)]
#
일사천리로 숙소를 가계약하고,
양옥집 안으로 들어갔다.
[윤아 : 좋네요. ^^ 마당도 넓고.]
무엇보다 1층 중앙 대청마루가 넓고
거기에 투명 통창을 덧대서 베란다 창처럼 만든 것이
마음에 든다.
비가 오면 대청마루에 앉아
통창에 부딪치는 빗방울을 구경할 수 있고,
화창한 오후엔 창을 전부 열어놓고
따사로운 햇빛을 쬐며, 살랑거리는 봄바람을 맞을 수 있고,...
그 모든 것을 어떤 계절, 어떤 날씨에든... 안전하게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으니까.
[박감독 : 신작가 작업방 구한다고 했지?]
[윤아 : 아, 예-]
[박감독 : 방 하나 골라.]
[윤아 : 네?]
[박감독 : 1층은 남자들이 쓸 거고,
2층은 여자들이 쓸거니까. 그니까...]
[민수 : 너도 여기에 묻어가면,
따로 큰 돈 구할 필요없잖아.]
[윤아 : 그렇긴 하지만... ^^]
[박감독 : 앗! 신작가 눈치챘구나?
내가 옆에 끼고 주구장창 불러댈 걸...]
[윤아 : -_-;;;; ]
[민수 : 너 딱 걸린거야 ㅋㅋ
대본 늦으면 니 방 앞에 드러누워 버텨야지...]
[윤아 : -_-;;;]
[박감독 : 얼렁 골라, 안 그럼...]
[윤아 : (에라 모르겠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럼 저기 3층요!]
[박감독 : 3층?]
[민수 : 옥탑방?]
[윤아 : 거긴 1인용으로 써도 되죠? ^^
방 하나에 거실인데, 그 정돈 양심 안찔려도 되죠?
어차피 대본 작업하는데 이 사람 저 사람
왔다갔다하면 집중 안되요오~]
[박감독 : ...(생각하다가) 그러자!
신작가가 먼저 찜했다는데 누가 뭐랄거야!
그치, 민수야?]
[민수 : 거긴 여름에 꽤 더울텐데.]
[윤아 : 내가 그 정도 통밥도 안굴렸을까봐? ^^
아까 슬쩍 보니까 벽 에어콘도 설치되어 있드라.]
[민수 : 윽! >_< ]
[윤아 : 걱정마- 전기세로 기절하겐 안할테니까.^^]
다행이다...
안그래도 아는 것도 없이, 돈도 별로 없이
혼자 방 구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는데...
거처하는 곳에 문제가 생겨도
남자들 손이 한둘이 아닐테니...
비가 새거나, 수도가 고장나거나,
보일러가 말썽피우거나, ...
그럴 때 큰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설마 그 많은 스탭이나 연기자 중에
그것하나 못보는 사람 있겠어? ㅎㅎ
게다가 조감독 정도면 촬영장서 발생하는
온갖 상황에 대처하다보면
만능 맥가이버 뺨치고도 울려
보낼 정도가 되야지, 암. ^^
...연기자들하고 스탭들하고 같이 사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진...잘 모르겠지만.
아...최선우, 그도...
그도... 이 숙소에 자주 있을라나...
주인공이라 스튜디오 촬영을 빼도
일주일에 4~5일은
이곳서 촬영해야 할텐데...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졌다.
[민수 : 참, 현민 삼촌은 빠지게 될 거야.]
[윤아 : 응? 강현민?]
[민수 : 어, 헐리우드 쪽 영화 건 때문에.
현민 삼촌 이 드라마 그렇게 들어오고 싶어했는데...
한 회도 못 들어오게 됐네.]
[윤아 : 어, 어...]
괜히 들락날락거리는 인물이 있으면,
내 머릿속만 복잡하지.
그래도 그 장난꾸러기 아저씨가
막상 빠진다니까 좀 서운하네.
[윤아 : 근데 이렇게 큰 집을 구할 필요가 있나요?
몇 명이나 내려와 상주할지도 모르는데...]
[민수 : 박감독님 쪽 스탭들이야 아예 여기서 사는거고...
신인 연기자들도 달리 다른 곳 일 없으면 대부분 여기 있으라지 뭐.
톱스타들이야 다른 스케쥴때문에 서울하고 여길 오가겠지만,
차로 이동하는 것도 장난 아닌데,
내가 여기 촬영 스케쥴을 며칠동안에 다 몰아넣으면
그동안은 여기 있겠지.
아니어도 넓게 쓰는 것도 좋고. ^^]
[윤아 : ...그런가.]
[민수 : 아, 그러고보니 소속사가 있는 연기자는
코디랑 로드매니저도 같이 따라 붙을텐데...
오히려 좁으면 좁았지, 넓진 않겠다.]
[윤아 : 오디션 볼 때, 그것도 생각해야 하나?]
[박감독 : 잘할 년놈으로만 뽑음 되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나?]
[윤아 : ...그렇긴 하죠...
하지만 소속사 없는 신인하고 사이에
위화감이 생기지 않을까요.]
[박감독 : 다 자기 밥그릇은 들고 태어나게 돼있어.
알고보면 신작가는 세상 걱정을
저 혼자 다 떠안고 사는 것 같애.
그러고 살면 머리 안아퍼?]
[윤아 : -.-;;; 아퍼요.]
[박감독 : 내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귀신이지? ^^]
[윤아 : ...네.]
[박감독 : 근데 처녀귀신 못만나는 게 아쉽네.
내가 말야, 한방에 썰을 풀면...(재잘재잘재잘...)]
[윤아 : (민수에게 작게) 저거 다 허풍이지?]
[민수 : (윤아에게 소곤) 근데 감독님 사모님 진짜 예쁘더라.
어떻게 꼬셨는지... 한 수 배워야 될 거 같아.]
[윤아 : -_-;;; 선배, 아직두 애인 없어?]
[민수 : 응, 순전히 너 땜에 내가 2년동안 재수없었거든.]
[윤아 : 뭐어?!]
[민수 : 정말이야, 그 때 철봉에서
너한테 채이구나서 되는 일이 없더라니까!]
[윤아 : 그게 왜 내 탓이야? 순전히 선배 능력 부족이지!]
[민수 : 넌 내가 어딜 봐서 능력 부족으로 보이냐?]
[윤아 : 남 탓하는게, 나 능력부족이라고
자진신고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민수 : 천만에!!]
날 학교로 데려다 주는 길 내내
민수 선배와 나는, 소소한 걸로 연신 투닥거렸고...
박감독은 혼자 중얼중얼 입으로만,
처녀 귀신과의 로맨스를 10편도 넘게 썼다.
#
신인 연기자 오디션이 시작됐다.
접수할 때 받은 프로필 자료 외에도
참가하러 온 지원자들에게
그 자리에서 직접 자기 소개서를 써서
제출하게 했다.
[아라 : 안녕하세요 *^^* 아라예요~]
[윤아 : 그냥 이름이 아라예요? '아'씨? 부모님이 주신 성은 없어요?]
[아라 : (삐쭉거리더니) 윤아라입니다. ^^]
속이 깝깝하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아이돌가수인 '아라'가 직접 쓴 자기 소개서는
이모티콘 투성이고, 맞춤법 맞는 서술어를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이래서 대본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연기를 하겠다는 거람.
지원할 때 접수한 프로필은
소속사에서 아주 자알~ 만들어 준 것이
분명하다.
요즘 음반 시장이 불황이라드니...
기왕에 겸업이나 전업하는 거래도
제대로 충분히 연기 준비를 하고 뛰어들던가.
돈되는 식이면 무조건 소속사 애들을 자질도 제대로 안보고
무조건 이미지 메이킹만 해서 팔아먹으려는 데도 문제고...
거기에 묶인 애들도 안타깝고...
그래도 이런 오디션까지 왔을 정도면
성의에는 점수를 줘야하는데...
한 개도 맘에 드는 부분이 없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보고 있으려나...
[박감독 : 민수야 카메라 테스트 시작해도 되냐?]
삼각 지지대 위에 고정된 카메라 포커스를 맞춰보던
민수 선배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박감독 : 일단 준비해 온 거 있으면 해 봐.
자신있다 싶은 연기.]
아니나 다를까,
아라는 자기 노래를 한다.
저게 연기냐...-_-;;;
...아라의 태도와 표정에 조금씩
의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선우 : 아까 받은 종이 있죠?
거기 있는 대사 한번 해봐요.]
[아라 : (대사 읽는) 왜 제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아니, 제가 절 사랑하는 게 뭐죠? 뭘 어떻해야 되요?]
아예 국어책을 읽어라, 읽어. -_-
[선우 : (헛웃음-) 아니, 그냥 읽으라는게 아니구
말하듯이 해보라구요.
이 자리에서 드라마 찍는다 생각하고.]
아라는 다시 한 번 읽었다. -.-'''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읽.었.다.
아... 속터진다.
적어도 가수 정도면 노래하는 동안만큼은
순간의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걸 응용도 못하나...?
대사를 국어책으로 읽는 건 그렇다쳐도
표정이나 액션이 전혀 없는 건...너무한 거 아닌지.
의구심이 자꾸 확신으로 다가온다.
뭔가 짜고치는 고스톱같은.
[윤아 : 방금 그 대사,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아요?]
[아라 : ^^ 아, 예- 그건...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대안 학교의 학생 배역이면
세상과 어른들에게 받은 상처가 크다.
그 상처는 보통 드라마에서처럼
뻔한 반항하는 액션으로만 나오지 않는다.
적어도 다시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생각으로
학교로 돌아온 것이었으므로
두 가지 내면이 동시에 드러나야한다.
자신을 포기하거나 반항하는 방식도
다양하게 표출된다.
자신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을 찾는 과정에도
내공있는 내면 연기는 필수다.
요즘 시청자들은 한 줄의 대사에서도
캐릭터의 성격도 읽어내는
무서운 시청력을 가지고 있는데
막상 연기하겠다는 연기자가
대사의 느낌조차 못 읽는다면...
[윤아 : 프로필에 보니, 연기학원 다닌다고 했죠?]
[아라 : 네! ^^]
[윤아 : 그렇게 웃는 표정은 스틸 사진에나 먹히거든요?
그만 웃죠.]
[아라 : -.-;;;]
[윤아 : 그럼 연기학원서 어떤 거 배웠어요?]
[아라 : 그, 그게... 한달밖에 안다녔는데...]
[윤아 : -_-''' 그럼 한달동안 배운 거요.]
[아라 : 스케쥴이 바빠서... 자주 못갔거든요. ^^;;;;]
에고...
어느정도만 연기가 되면,
가수를 오디션을 통해 정식 캐스팅하는 것도
드라마 홍보에 큰 도움이 될텐데...
[윤아 : 그럼 내가 지금 던지는 지문에 맞춰서
표정 연기나 액션을 해볼래요?]
[아라 : 네에- ^^]
[윤아 : 의아하다.]
[아라 : ...???]
[윤아 : 생뚱맞다.]
[아라 : ...???]
[윤아 : (답답해서 에효-하다가) 가슴이 아리다.]
[아라 : (눈물 고였다가, 헤헤- 웃고마는)]
[윤아 : -_-;;; 지독히 쓸쓸하게 웃다.]
[아라 : ...^^]
[윤아 : 그렇게 웃으면 쓸쓸한 느낌이 나요?
(혼잣말) 죽겠구만... (옆의 연감독에게) 하시죠.]
박감독이 야외 세트장 폐교에서
외주 제작 '수' 프로덕션 스탭을 끌고 촬영할 예정이라면,
연감독은 서울서 스튜디오 씬과 편집을 전담하면서
방송국 자체 스탭 인력을 그대로 이끌고 작업을 할 예정이다.
두명의 감독이 동시에 들어가는 것을
주장한 건 나였다.
처음부터 일단 되겠거니...하고
감독 한 사람이 동분서주하다가 기력 떨어질만하면
다른 감독을 슬쩍 집어넣어서
드라마 중간부터 원 흐름이
조금씩 흐려진 느낌이 드는 것이 싫었다.
박감독도 진즉에 양쪽 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 싶었는지,
방송국 공채 몇 기수 아래로 들어온, 자신과 영상감각이 비슷하고
자신의 몇 작품을 조감독으로 데리고 있으면서 가르쳤고,
얼마 전에 단막극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한 연감독을 데려왔다.
[윤아 : (카메라 렌즈를 들여다보고 있는 민수에게 가서 작게)
선배 담배 있어?]
민수 선배가 '?' 하고 보더니,
내 인상 쓴 표정 보더니
윗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타를 꺼내줬다.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어차피 저쪽의 이대표나 박감독도
일찌감치 담배 물고 있으니...
상관은 없는데...
최선우, 그의 시선이 불편했지만
그냥 일부러 보란 듯이 태연하게
피웠다.
못 참을 것도 없지만
그와 있으면, 자꾸 못되게 굴게 된다.
다행히 남녀 차별할 생각은 없었는지
테이블 세팅한 여직원이 내 자리에도
재떨이를 놓아두었다.
하긴... 여성 작가들도 담배 많이 피우니까.
연감독은 아라에게
왜 연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아라 : ^^ 원래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요-
소속사에서 가수부터 하는게 좋겠다고 해서요-]
[연감독 : ...]
[윤아 : 글쎄, 그러니까 왜 연기를 하고 싶었느냐구요.
(연감독에게 꾸벅) 죄송합니다.
(아라에게) 윤아라씨, 지금 감독님 질문은
제대로 이해하고 대답하는 거예요?]
[아라 : 그게... 연기를 왜 하고 싶냐면...]
[윤아 : ...]
[연감독 : ...편하게 말해, 평소 생각.^^]
[아라 :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기 때문에...]
정석대로 말하네...
소속사에서 암기는 잘 시켰나보군.
[윤아 : 아까 그 대사, 다시 해볼래요? 연기로.]
[아라 : (?) 네- ^^]
[윤아 : 참고로 그 상황은, 답답하고 슬퍼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묻는 거예요. 해봐요.]
[아라 : 왜 제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아니, 제가 절 사랑하는 게 뭐죠? 뭘 어떻해야 되요?]
나는 천천히 재떨이에 담배를 껐다.
아까보다 조금은 나아진듯했으나...
어느 하세월에 그걸 기다려 드라마를 찍을꼬.
방송국이 무슨 자기네 놀이턴 줄 아나.
시청자를 자기들 연기 나아지는 거, 커가는 거
마냥 봐주는 호구로 보나.
수신료까지 내면서 왜 그걸 봐줘야하는데?
현 아이돌스타라는 이유로,
행여 캐스팅 할 상황은 미리 방지하고 싶었다.
나는 재떨이를 집어, 아라 옆으로 내던졌다.
[아라 : 까악-!]
플라스틱 재떨이라 깨지지 않고
아라 뒤의 벽에 부딪쳤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뒹굴었다.
[박감독 : -0- 신작가!]
[윤아 : 너, 지금 국어책 읽니?
우리집 닭이 읽어도 그것보다 더 잘 해.
리듬있게 꼬꼬댁거린다구.]
[선우 : 신작가!]
[아라매니저 : (아라에게 뛰어가 감싸며) 지금 이게 무슨짓이야!]
[윤아 : 이대표님! 우리, 쟤 소속사한테서 돈 먹었어요?]
[태석 : ! ]
[윤아 : 애 태도가, 표정이 그렇잖아요!
형식적인 자리이니 형식적으로 응대한다는 식!
이 오디션을 그렇게 우습게 만들고 싶어요?
아니면 이렇게 연기 기본도 안된 애는 이미 한번 걸렀을텐데
어떻게 저런 애가 최종 오디션까지 와요?]
[민수 : 윤아야-]
[윤아 : 차라리 광고 스폰서를 끌어와요,
대본에 얼마든지 넣어줄테니까!]
[아라 : 어린 년이 성질 드럽게 지랄하네!]
...어이없어 헛웃음밖에 안나왔다.
윤아라...
원래 입도 행동도 거칠고
자기 능력이상으로 턱없이 질투많고, 버릇없는데다가
그동안 돈많고 빵빵한 집안 뒷배경 덕에, 온갖 사고치고 다녀도
아직까지 무사히 이 바닥에 있다는 거...
인터넷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이런 애가 무엇보다 팀웍이 중요한
미니시리즈도 아니고 시츄에이션 '비상'같은 드라마 제작에 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초반에 드라마 홍보성 화재는 몰아주겠지만...
연기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분명 중간에
다른 활동을 핑계로 빠질 것이다.
게다가 빠지기 전까지, 신인 연기자들과도 숙소든 촬영장에서든
무난히 지낼 거라는 보장도 없다.
아... 그렇군.
윤아라의 소속사에선 '비상'의 선생님 배역에
화려한 톱스타들의 출연 내정이 되어 있다니까
일부러 이 드라마를 선택한 거다.
당장 주연급으로 빛을 보지 못해도,
네티즌들의 비난을 무마시킬 방패가 많으니까...
학원물과 나이가 맞다는 것도,
시츄에이션물이라는 것이 장기적 본격적 연기의 길을 가는 것이라는,
그래서 오디션에 참석했다는 것도, 신인 연기자들과 섞여서 신인처럼 봐달라는 등
스타급 선배 연기자들이 한마디씩 거들면 금상첨화일테고.
그리고 정 답답하면 감독이나 선배 연기자들이 아라를 붙들고 가르치겠지, 하는 약아빠진 속셈도 있겠지.
아아... 윤아라 너머로
몰라도 될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인다.
내가 원하는 연기자는
적어도 한번쯤은 자신의 재능에 회의도 느껴보고
자신의 길에 대해 방황도 해봤을 사람이다.
그러고도 연기가 미치게하고 싶은 사람이다.
생계를 위해 이곳저곳을 전전하고도,
대본을, 희곡을, 시나리오를 품에 안으면
마냥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이보다 - 나쁘지 않은 품성을, 반듯한 인성을,
많은 경험들을, 긍정적인 세상관을, 노력을 믿는 마음과 행동을
담고 있는 이다.
스포라이트의 화려함보다
기다림의 힘든 시간과 추락의 슬럼프를 더 잘 아는 이다.
그럼에도 연기를 하지 않으면, 시들어 병들어 죽을 것 같은...
광대의 피를, 끼를 가진 이다.
최선우처럼, 한 욱처럼...
소속사가 펼쳐 준, 지폐로 만들어 준, 돗자리에서도
제 역할을 못하는 '윤아라'는, 절대 아니다.
무조건 저 애를 여기서 빨리 치우는게 상책이다.
[윤아 : 이 드라마 망하면, 누가 누굴 탓하겠어.
극본에 이름 올라가고, 연출에 이름 올라간 사람이
시덥잖은 연기자 하나 때문에 개판되서 그렇다구
책임전가할 수 있냐?
대사 한 줄 제대로 못하는 애 데리고, 고생하다가
결국 비중 줄여, 다른 캐릭터 만들어 비중 늘여...
구성 완전히 뒤엎어... 그래놓고도 시청자들이
윤아라때문에 드라마 못보겠다 그래도,
그래서 다른 연기자들한테 피해까지 줘도
최종 책임은 누가 지는지, 제대로 알고도
그 따위 소리가 나오실까요- 윤아라씨?
그리고 나 너보다 안 어려.
너보다 몇 살 많은 덕에, 난 최소한 시청자들한테 양심은 있거든?
그래서 그거 믿고 너한테 이 지랄할 수 있거든?!
(아라 매니저에게) 지금 쟤랑 나랑 성질 테스트하세요?
그냥 애 데리고 그만 조용히 나가주시죠...?]
막상 일 저질러놓고나니,
수습하기 난감했다.
아까 민수 선배한테 얻은
담배 하나 더 입에 물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박감독 : 어딜가?]
[윤아 : 성질 드러운 년,
성질 죽이고 들어오겠습니다.
다음 지원자는 좀 편하게 보게요.]
잽싸게 오디션장을 나왔다.
문 앞에서 대기자들이 앉거나 서서
열심히 중얼중얼 대사나 연기 연습을 하는
모습들에 괜히 미안해졌다.
내가 저들의 긴장된 시간을 늘여주는 것 같아서.
내 벌렁거리는 가슴을 후딱 진정시키고,
빨리 들어가야겠다.
[윤아 : 어, 나현아?
넌 여기 웬일이야? 너도 지원했어?]
[나현 : 내가 무슨-^^;;;,
나 욱이 선배 매니저잖어.]
[윤아 : 에구... 욱이 선배는 그냥 캐스팅해두 되는데,
오디션까지 받으러 왔대?
막상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어쩌려구?]
[나현 : 어머~ 얘 좀 봐? 니가 떨어뜨릴거야?]
[윤아 : 연기 못하면 가차없이 - 끽! (목 잘리는 시늉)]
말로만 장난친건데, 대뜸 나현이한테 등짝을 얻어맞았다.
[윤아 : 아야야- ^^]
욱이 선배 연기력이야
이미 영화에서 검증받은 거나 마찬가진데.
게다가 욱이 선배한테 딱 맞는 이미지로
처음부터 만들어 놓은 캐릭터가 있어서
오히려 욱이 선배가 거절하면, 나야말로
다른 연기자에 맞춰 캐릭터를 새로 보강해야 한다.
[나현 : 어제는 어디서 잤어?
큰 오빠 집에도 안들어갔다며.]
[윤아 : PC방서 이것저것 하다가, 좀 졸았어.]
[나현 : 하여튼- 오늘부터 오디션 끝날 때까진
우리집으로 들어와! 알았어?!]
[윤아 : 그래두... 니네 집엔 부모님두 계시구...
좀 불편하지이- ^^]
[나현 : 니가 나한테 뭔 죄라도 졌어? 뭐가 불편해!]
[윤아 : ...]
너에게 말할 순 없지만, 마음으로 죄를 졌지.
네가 그렇게 좋아했던 최선우, 그를 사랑했으니.
우리가 친구라면서 너한테조차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던 것도, 죄라면 죄지.
...다 지난 일이지만.
#
오디션 일정은 일주일.
그래서 간단히 소지품을 챙겨
서울로 올라왔더니, 가장 큰 문제가 숙박이었다.
지난 설, 큰 오빠집에 전화했을 때,
큰 오빠가 해외 근무 발령이 나서
가족 모두 따라 들어갈 것 같다고 했었다.
그 때가 언젠데... 벌써 떠났겠지 싶어서
굳이 연락하지 않았다.
오디션장 앞에서 나현의 차에 픽업당해서
나현의 집으로 끌려들어 갔다.
[윤아 : 안녕하세요 ^^ 신윤아예요.]
[나현엄마 : 어머, 니가 윤아구나! ^^
잘 왔어,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려, 곧 밥 된다.]
[윤아 : 네, 네. ^^]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다.
[나현 : 저쪽이 내 방이야. 가자.]
[윤아 : 어, 어.]
....
모처럼 가정집 밥을 맛있게+배부르게 먹고,
나현이 방에서 이불펴고 나란히 누웠다.
[나현 : 잠 안오지?]
[윤아 : ...응, 조금.]
[나현 : 나두. ^^]
[윤아 : 내일도 하루종일 오디션 보려면
잠 좀 자둬야 되는데...]
[나현 : 나도 내일 욱이 선배 스케쥴에
맞춰 다니려면 자둬야하는데...
내일은 부산까지 뛰어야 되거든.]
[윤아 : 매니저 일 할만해?]
[나현 : 그럭저럭.
참, 나 내일 새벽에 나갈거다?
그래두 너 나 없다구, 불편할 거 없이
아침 든든하게 먹구 나가.
우리 엄마, 손님 오는 거 좋아해.
엄마가 해 준 거 잘 먹는 손님 특히 더 좋아해.]
[윤아 : 하하-]
[나현 : 너 오디션장에서 한바탕했다며.]
[윤아 : 윽-]
[나현 : 그 성질 어디가나 했어.]
[윤아 : 너까지...증말 -.-'''']
[나현 : ^^ 우리 영화부에서 단편영화 만들 때,
민수 선배랑 너, 진짜 대단했지...ㅎㅎ
자그마치 삼일을 씬 하나갖구 싸우더만...
그러다 둘이 정드는 거 아닌가 했는데, 아냐?]
...옛날 생각, 밀물처럼 밀려온다.
[윤아 : 그 영화 완성해서 출품했어?]
[나현 : ...응, 근데 너 갑자기 전학가고나선
전체적으로 다들 어영부영한 것 같긴했는데..
특히 민수 선배가 제 정신 아닌 거 같았구..
민수 선배 자기도 그 때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날걸?]
[윤아 : ...미안해.]
[나현 : 뭐가.]
[윤아 : 그냥. 너한테도 말안하고 전학간 거.]
[나현 : 알면, 이제부터 잘해! 기지배야!!!
내 사전에 배신때린 친구를 다시 받아준 건 너밖에 없어!]
[윤아 : 헤헤- 알았다, 앞으로 무조건 잘하겠음!
근데 너 매니저 하면서, 힘만 무식하게 쎄졌니?
그 때 경호 훈련까지 받았다고 했던가?]
[나현 : 그래, 나 무식하게 힘만 쎄졌다! 왜!
그래서 니가 뭔 불만인데?? 엉? ^^]
나현의 베개가 날아와 내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나도 질 수 없어, 나현에게 베개를 날렸다.
한바탕 이불 속에서 베개 싸움을 신나게 하고 나니까
웬지 나현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훌훌 털어지는 것 같았다.
[윤아 : 나현아...]
[나현 : 응?]
[윤아 : 배고파.]
[나현 : 에구...너 아직두 한참 클라구 그러는구나?]
[윤아 : -_-;;; 그러는 넌 다 컸냐?]
[나현 : 고럼~ 내가 원래 너보다 키가 컸다 아이가~ ^0^]
나현인 유명 영화 대사를 멋들어지게 날리곤
방을 나갔다.
...마음이 포근하다, 가정의 따스함에.
나현인 아까 내가 사들고 왔던 케잌과
음료수를 챙겨 들고 살금살금 방에 들어왔다.
야금야금 밤참을 먹으며
수다가 이어졌다.
오늘 잠자긴 글렀다. -_-;;;
[윤아 : 참, 욱이 선배 매니저하면은
성미 선배도 자주 보겠다?
성미 선배두 영화과야?]
성미 선배... 욱이 선배의 여자친구.
영화부 선배.
[나현 : 어머, 몰랐구나.
욱이 선배하구 성미 선배 깨진게 언젠데.]
[윤아 : 뭐? 0_0 왜?]
[나현 : 욱이 선배가 일방적으로 채였다고 봐야지.]
[윤아 : 허걱! 왜? 왜?
성미 선배, 욱이 선배가 배우로 자리잡을 때까지
뒷바라지 해준다고 그랬잖아.
그리구 자기두 나중에 영화사 차릴거라구...]
[나현 : ...그것도 성미 선배네가 좀 잘 살때 얘기지.]
[윤아 : 응?]
[나현 : 성미 선배 대학 입학하고 나서
성미 선배 아버지 사업이 부도났거든.
그런데다 성미 선배도 사실 영화 공부에 욕심많았잖어.
결혼정보회사 통해서, 학비 써포트 해 줄 능력있는 집안의 남자하구
선보고 곧바로 식올리더니 유학가버렸어.]
[윤아 : ..그, 그러니까... 그 똑똑하고 야무지고 성실했던
성미 선배가 자신을 그렇게 팔아서, 이 땅을 날랐단 말야?]
[나현 : 너도 쇼킹하지?
나두 그거 알구 엄청 충격 먹었었다?
그러니 욱이 선밴 오죽했겠어.]
충격보단... 짜증이 몰려온다.
드라마같은 상황이 내 주변에,
그것도 욱이 선배같은 성실한 사람에게 벌어지다니.
[윤아 : 근데...욱이 선배, 지금은 괜찮아 보이든데?]
[나현 : 괜찮긴... 지금두 액션 스쿨서 상대해줄라면
내 온 몸을 샌드백으로 바쳐야 하는구만.
그래도... 욱이 선배가 하는 영화마다
그런대로 잘 되어 가는게 다행이지...
그나마 그 자존심도 안 살았음,
욱이 선배 진짜 불쌍하게 됐을거야.]
[윤아 : ... 그래서 더 말이 없어지구,
개폼만 더 잡는거야?]
[나현 : 개, 개폼 -_-;;;
너 어떻게 감히 욱이 선배의 그 터프한 모습을!!!]
[윤아 : ㅎㅎ 오호...
그렇게 강하게 싸고 도는 걸 보니 수상한 걸?
너 이번엔 욱이 선배 좋아하는 거야?]
[나현 : 아, 아냐!!!! 난 그냥 매니저일뿐이야.
우린 공적인 관계일 뿐이라구!!!!]
[윤아 : 흐음... 수상쩍지만...]
[나현 : 정말이야!]
[윤아 : 알았어, 알았다구.
그 맘도 또 변하겠지, 뭐.
예전에도 누구 좋아하다가 변심했었지, 아마~?]
[나현 : 아니다, 아니다, 뭐!
너야말로 최선생님 귀여움은 다 받았으면서.]
[윤아 : ...]
[나현 : ...윤아야, 윤아야- 왜 그래.]
내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버리자
나현이가 내 팔을 흔들었다.
[윤아 : ^^ 아, 아냐.
(어렵게 묻는) 근데... 최선생님, 왜 결혼 안하셨대?
결혼설도 여러 번 터졌잖아.]
[나현 : 내가 매니저하면서
그 쪽 바닥의 진실들을 다 꿰차고 있잖냐.
근데 알고 보니까, 최선생님 결혼설 그거,
진짜 별 거 아니었더라구.]
[윤아 : ...?]
그럼, 해외 공연 가기 전...
유성린의 딸까지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만들었던 다정한 분위기는 뭐였는데...
[나현 : 유선생님하고 해외 공연까지 같이 가서
두 분이 돌아오는대로 결혼을 하네 마네 했는데..
사실은 공연 떠나기 전에, 두 사람 결혼 얘기 있던 거
다 정리됐었대.
편한 친구로, 동료로, ...남자고.]
[윤아 : ... 유선생님이...그러자고 하셨대?]
[나현 : 그럼-, 내가 말을 좀 섞어보니까
유선생님 무지 쿨하고 멋진 여자인 거 있지.
최선생님이 -우리 안되겠다, 좋은 동료로 지내자 -
그러니까 쌈빡하게 감정정리 끝내고,
지금도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주는 거,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더라구.]
[윤아 : ... 그래애...]
[나현 : 내가 그 때부터
그 여자 존경하기로 했잖어.]
지나현... 너 철 많이 들었다.
최선우때문에 울구불구 초난감 버전이었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윤아 : (피싯) ... 최선생님하고 헤어져서
그런 거 아니구?]
[나현 : ...뭐, 그런 점도 좀 있고. ^^]
[윤아 : 이번에 두 분 같이 드라마 들어가면
또 결혼설 나오겠다.]
[나현 : 그렇겠지, 그래도 최선생님 마음이 굳건하면
다른 일이야 있겠어? (갸웃) 있을라나? 없을라나?
에이, 그래두 여지껏 독신으로 있었는데,
그냥 끝까지 그 멋진 독신 남성의 이미지를
지키는게 좋지 않어? 환~상이잖아. ^^]
[윤아 : ...]
그가 유성린과 결혼했다면,
내 마음이 이렇게 꼬여서
있는대로 성질부리진 않을텐데.
내가 좀 더 자제력을 가질 수 있을텐데...
그의 앞에서 일부러 못되게 굴지 않을텐데...
...그가 아직 혼자이기에...
내 마음이 자주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때문에.
#
오디션 마지막 날, 오후.
식후의 느긋함이 느껴질 무렵
유리가 나타났다.
[유리 : (공손히 인사) 지원번호 476번, 조유리입니다.]
[윤아 : ...]
전체적으로 밝고 깔끔한 핑크계열의 꽃무늬 원피스와
어깨까지 늘어뜨린 생머리에 단정하게 민무늬 핀을 꽃은 헤어스타일.
유리의 청순한 외모와 얼굴에, 10대 소녀의 밝고 예쁜 순수함이 돋보이는 코디.
...대체 언제 저런 준비를 한 거지...?
나와는 정반대인 과학계열 천재인 아이라, 이런 모습은 상상도 못했다.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박감독 : (지원서 보더니) 청솔고 1학년?]
[유리 : 네. ^^]
박감독이 잠깐 나를 봤다.
[박감독 : 준비한 개인기 있으면 해 봐.]
...뜻밖에도 유리는 마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막 사랑에 빠진 10대 소녀가
짝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며
창너머 고개를 기웃기웃거리고,
마침내 그가 나타났는지 활짝 미소를 띄우다가
눈이 마주쳤는지 화들짝 숨어선 수줍게 혼자 웃는다.
숨이 턱 막혔다.
비록 좀 서툰 부분은 있지만,
일상의 모습과 더불어 감정의 변화에 따른
외적 액션과 표정 연기가 좋았다.
연극 무대에서와 TV.스크린에서의 연기는 차이점이 있다.
유리는 TV에서 카메라가 얼굴과 상체부분을
많이 크로즈업하는 점을 이용해서
그 부분이 돋보일 마임을 만들어 해냈다.
슬쩍 좌우의 심사위원들을 보니,
감탄의 표정들이다.
카메라로 오디션을 촬영하고 있는
민수 선배의 표정에도 만족스러움이 떠올랐다.
오디션에서 보는 것은 완벽한 연기 실력이 아니다.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본다,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본다.
[선우 : 아까 받은 종이에 있는 대사 해볼래요?]
[유리 : 네.]
유리는 대사가 인쇄된 종이를 옆에 내려놓고,
잠시 감정을 잡는 듯 눈을 내리깔더니, 다시 정면을 보고
심사위원들을 향해 두 손을 모으며 한 걸음 내디디며
대사를 읊었다.
[유리 : (감정이입된) 왜 제가 절 사랑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아니, 제가 절 사랑하는 게 뭐죠? 뭘 어떻해야 되요?]
...정신이 아득해진다.
유리는 내가 대사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의도를 정확히 읽었다.
내 대본의 감정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걸 외적.내적 연기로 표현해냈다.
이 대사를 내가 예상한 기대 이상으로
연기할 수 있는 연기자가 있었다니!
그 사람이 유리...라니.
순식간에 멍해졌다.
한 번도 보지못한, 상상도 못한 유리의 다른 모습에.
나는 더 이상 질문할 생각을 못하고
연감독에게 '패스' 손짓을 했다.
[연감독 : 유리양, 신작가하고 같은 학교면
(윤아 흘끔 보며) 신작가하고 친해? ^^]
[유리 : (생긋) 네.]
[연감독 : 그럼 신작가한테 지도 좀 받았겠네.]
[유리 : 전혀 아닙니다.
전 이번 드라마가 대안학교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는 것밖에 모릅니다.
방금 이 대사도 오디션장에 와서 처음 봤습니다.]
[연감독 : 그래? 그래도 이 오디션에 지원한 건 신작가 영향이겠지?]
[유리 : 소문을 듣고, 경험삼아 지원한 것 뿐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무적인 경어를
꼬박꼬박 쓰는 건, 날 보고 배웠겠지.
하여튼 애들 앞에선 냉수도 못마신다니까. -.-'''
[연감독 : 그럼 학교에서 연극부인가?]
[유리 : 아닙니다. 전 과학부입니다.]
[연감독 : (어리둥절) 그럼 아까 그 마임은 어디서...?]
[유리 : 인터넷에서 기초 강의를 보고 응용해서
일주일 정도 연습했습니다.]
...일주일...?
일주일동안 기초를 독학하고, 응용해서,
자신만의 마임을 연출했다고...?
믿기 힘든 그 자연스럽고
사소한 것 하나 빠짐없는 동작연결을...?
[선우 :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으면,
다른 연기자보단 이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 높겠네요.]
[유리 :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선우 : 그럼 아까 그 대사를 연기할 때, 어떤 감정으로 했죠?]
[유리 : 그 대사는 외형적으론 다른 사람에게 묻는 질문이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묻는 거라고 느꼈어요.
자신의 문제 해답은 자기 자신만이 아는 거니까요.
다른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니
자아 정체성에 대한 방황이기도 하구요.
더욱 더 답답해지고, 빨리 정답을 알아내고 싶어
자기 자신을 다그치는 감정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믿을 수 없다...
내가 아는 유리는
태어나서부터 천재라는 이유로
엄마의 과잉 욕심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과 같은 정상적인 성장과정이 없었다.
자신의 자아 정체성에 대한 방황을
할 여유가 없었다.
유리가 오디션에 참가하고 싶다-했을 때,
썩 내키지도 않았지만, 나도 나름대로 바빠서
드라마에 관한 정보를 알려줄 시간도 없었다.
평소에도 유리에게 내가 습작한 대본을 읽어보라고
건넨 적 한번도 없었다.
대본은 철저히 영상을 작업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소설과 달리 지문 문장이 딱딱하고
등장인물에 쉽게 감정이입하기 힘든 대본 형식은
일반인들에게 읽기 좋은 글이 아니다.
그런데다 대중 예술 쪽엔 전혀 관심없는 유리에게
굳이 그런 것을 봐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유리가 어떻게 저런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거지?
청소년 교육 이론학을 수백권 읽어도,
뉘앙스가 조금만 달라도 의도와 감정이
전혀 달라지는 대본 대사에서...
달랑 두 줄만 던져진 대사에서...
내 감정을 저렇게 정확히 짚어낼 순 없을텐데.
그렇다면... 유리는 나와...절대적인 교감을 한다는 건가...?
아니, 벌써 그렇게 단정짓긴 이르다.
[연감독 : 지금 재학중이면, 드라마 촬영 시간에
수업시간을 많이 뺏길텐데 괜찮나?]
[유리 : 네, 저희 학교는 수업일수를 대체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융통성있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
사실, 유리는 수업에 들어갈 필요가 없지.
유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들을
가늠할 수 있는 사람도 흔치않을거고.
유리가 당장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가도
대학원까지도 조기졸업이 가능할 걸.
나는 가방에서 1회 대본(수정중인)을 꺼내
한 씬에다 큰 원을 그렸다.
[윤아 : 조유리...씨, (대본 내밀며) 이 부분 해볼래요?]
드라마 촬영의 빡빡한 일정에
연기자의 순발력과 빠른 암기력은 필수다.
유리가 한번도 보지못한 대본이고,
유리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준 설정들과
전혀 다른 장면이다.
유리가 다가와 받아들며, 내게 잠깐 생긋 웃어보였다.
눈으로 대본을 한 번 훑곤, 내게 다시 돌려주고
두어걸음 뒷걸음 쳐서 멈춰섰다.
어떻게 된 아이가 긴장의 기색도 없다.
유리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동자에서 야생 동물같은 생존의 불안으로 인한 거친 빛이 났다.
[윤아 : !! ]
[유리 : (앞에 의자가 있는 듯, 발길질하며) 아, 씨발.
(비웃는) 당신이 선생이면, 날 가르쳐봐, 어디 가르쳐봐!
꼴리면 짜르던가. 근데 이 학굔 안짜른다며, 그것도 다 구라지?]
유리의 액션은 눈 앞의 의자가 우당탕-
넘어지는 듯 실감났고, 거칠었다.
대사하면서 불량스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
껌을 질겅질겅 씹는 설정도 제대로 해냈다.
유리는 수업에 들어가서도
저런 애들의 행태는 쳐다보지도 않고 무시했을텐데,
어떻게 저런 흉내를 잘 내는 거지?
[박감독 : (허- 한숨) 신작가, 신작가 학교에 저런 애 많아?]
[윤아 : 1,2회 대본 보셨으면 아시잖아요.
초반엔 욕 안하는 애 없고, 선생님을 말로든 신체적으로든
폭행하는 사고도 수시로 일어나요.
전 질문 더 없습니다.]
[선우 : (관심있게, 유리에게) 혹시 예전부터 연기 해보고 싶었어요?]
[유리 : 아니요. 하지만 이 오디션 준비하면서, 흥미가 생겼습니다.^^]
[선우 : 그래요? 아까보니 씬을 통채로 한번에 다 외우고 내용을 금방 파악하는 게,
그걸 표현해 내는 게, 자질도 꽤 있는 것 같은데. 전혀?]
[유리 : (머뭇) 전...혀, 그런 생각 못했는데요.]
최선우, 그가 나를 잠깐 봤다가
유리를 봤다.
암기는... 유리의 일부분일뿐이다.
유리는 책이든 영화든 뭐든
한번 본 것은 통채로 암기해버린다.
자기가 그러려고 의도하는 것도 아닌데,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떠오른다고 했다.
연기 자질은... 일단 가능성은 크게 있다고 봐야할 것 같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내 경우다.
#
오디션 끝난 다음 날부턴
배역 오디션 결과와
드라마 전체적인 기획을 정리하기 위한
마라톤 회의가 시작됐다.
내가 가능성 쪽에 높은 점수를 줬던
남자 무명 신인 두 명과
이미 데뷔는 했으나 얼굴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고
연기가 좀 되는 여자 신인 한 명이
최종 캐스팅 리스트에 올랐다.
오디션장에선 긴장해서 실수도 좀 있었지만,
연기에 대한 고뇌와 무명 시절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연기관에 대한 뚜렷한 소신을 가졌기에
꽤 마음에 들었는데... 사람을 보는 눈은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비상'이 소위 스타 배우 산실이라는
청소년 드라마류인데다가
학생 배역 10명 모두
각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기 때문에,
자신의 색깔만 제대로 소화해내면...
스타성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받던지,
연기성으로 제작진의 러브콜을 받던지,
둘 중 하나로라도 자리잡는 건 시간문제다.
톱스타 잔치랄 수 있는 선생님 배역들은
더 말하기 입아프고.
하긴 남다른 캐스팅 안목으로 참신한 신인을 과감히 등용해
잘~ 만든 시트콤 역시 스타의 등용문이 되주기도 하지만,
한국의 시트콤은 배우의 이미지를 유치찬란 이상으로 심하게 망가뜨리는 경향이 있어서...-.-;;
드라마에선 망가뜨린대도 그 정도까진 못하니까...
부디 다들 '비상'에서 연기를 충실히+제대로 해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디션 녹화한 화면을 함께 보며
각 배역마다 연기자 후보들 이름을 적었다.
[박감독 : 서하영('비상' 여학생 배역)은 조유리, 어때요?]
[윤아 : ...]
[연감독 : 서하영은 딱 그 애더만요.
그 때 신작가가 해보라던 대본 내용,
그것도 서하영 대사였잖아요?]
[박감독 : 신작가, 서하영에 그 앨 모델로 썼어?]
[윤아 : ...아, 아뇨. -_-;;; 유린 그런 애 아니었어요. ^^;;;;]
[민수 : 조유리, 얼굴선하고 색이 카메라에 잘 받아요.
상체도 적당하고, 몸매가 갸름해서 풀샷도 여러 방향으로 잡기 편하구요.
연기도 신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짚고, 발음도 또렷한게 좋은데요.]
[박감독 : 다들 조유리를 서하영으로 보는데?
신작가는 어때? 좀 친했으면 어떤 앤지도 알 거고.]
잠시 망설였다.
나도 객관적으로 봐서
유리가 서하영을 연기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유리에게
장기간 연기하는 거, 촬영하는 거, ...
쉽지 않을텐데...
유리처럼
대인관계에 소극적이고
사회성 부족한 아이는...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팀웍에 맞춰 작업하는 것...
만만찮을텐데...
아니, 오히려 유리에게 좋은 기회로 봐야하나...?
갑자기 내 걱정이
유리 엄마가 유리를 과잉보호했던 것과 같은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안되지...
유리도 앞으로 어떤 경우에 쓰러져도
혼자 스스로 일어서는 것을 익혀야 한다.
[윤아 :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기가 좋아하면 열심히 하게 되는 거 아니예요? ^^]
[박감독 : 최선생님은 어때요, 러브 스토리편의 상대 배역으로 조유리.]
[선우 : 좋죠. ^^ ]
[윤아 : ...]
[박감독 : 자, 그럼 캐스팅 배역은 일단 이대로 가고.
(민수에게) 내일 연락해서 전부 O.T. 에 참석하게 해.
촬영 장소 설명하면서, 거처 문제나 겹치기 출연 같은 거 문제 있음
다른 후보로 빨리 바꿔야 하니까.]
[민수 : 네.]
[박감독 :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요? ^^]
[윤아 : 저기, 기획 쪽, 좀 더 얘기하면 안될까요?
저 내일은 꼭 학교로 내려갔으면 해서요.^^]
[연감독 : 신작가는 학교에 금두꺼비 묻어뒀나?
왜 그렇게 못내려가서 안달이야?
난 신작가랑 친해질 기회도 별로 없어서
오늘 단합회식이나 하고 싶었는데.]
[박감독 : 회식, 좋지 ^^ (벌떡 일어나며) 가자.]
[윤아 : -_-;;;;]
무시당했다 -.-''''
[윤아 : 박감독님-]
[선우 : (빙긋) 다들 피곤하니까, 내일 마저 얘기하죠, 신작가.]
[윤아 : ...]
#
전통 술집.
동동주에 파전, 적당히 무르익은 술자리...
[윤아 : (정색해서) 그러니까 드라마 초반엔 ost를 경음악으로 가자구요.
지난 번 감독님이 만드신 드라마보니까
1회부터 주인공 상황이나 성격도 다 안 나온 상태에서
가사 들어간 ost 삽입되니까 확-깨드라구요.
내용이랑 노래가 따로 노는 느낌요, 별루였어요.]
[연감독 : 아, 그랬지... 그래도 그 ost 좋았는데?]
[윤아 : ost는 좋았죠~ ^^ 저도 좋아해서 지금도 자주 듣는걸요.
근데 일단 등장인물들끼리 기본적인 상황설정이 된 후부터
가사도 들어간 걸로 넣자구요.
그 전은 가사 빼고 MR식으로 가자구요, 네?]
[박감독 : 신작가, 여기까지 와서두 회의연장이야?]
[윤아 : ...앗, 죄송합니다. (꾸벅) ^^
그냥 지금 막 생각나길래... 죄송합니다, 딸꾹!]
[민수 : 야, 그것갖구 벌써 취했어?]
[연감독 : 아, 신작가는 민수 후배라고 했나?]
[윤아 : /(^^) 옛썰, 그렇습니다.]
회의하면서 하두 떠들었더니,
배가 고파서 동동주를 홀짝홀짝 마신 것이
금새 취해버렸나보다.
슬그머니 내 앞으로 안주거리 이것저것
담긴 작은 그릇이 놓여진다.
최선우, 그를 흘낏 봤다.
[선우 : 술만 마시지 말고...]
아... 내 눈동자가 풀린 것 같다.
그의 모습이 멀어졌다 가까이왔다 -한다.
고개를 몇 번 흔들어봐도, 그의 모습이 뿌옇다.
[선우 : (?) 신작가!?]
갑자기 이렇게 맛이 가는 수도 있나?
이상하네... 컨디션이 안좋아서 그러나...?
내 의지와 다르게,
내 고개가 푹 꺽이고
그에게로 몸이 쓰러지면서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선우 : (부축하며) 윤아야-!]
[윤아 : 으음...]
[민수 : (기분좋게 취한) 얘, 완전히 맛갔네, 삼촌.]
[선우 : (윤아를 살짝 흔들며) 정신차려봐, 윤아야-]
[박감독 : 끄억! 뭡니까, 신작가 이름이 윤아였나? ㅎㅎ]
[연감독 : 그런가본데요, 근데요 감독님- ^.^]
두 감독은 쿵짝이 맞아서, 계속 주거니받거니하고...
난 그와 민수 선배의 처치곤란 대상이 되고 있었다.
[윤아 : (억지로 일어나 앉아보려하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더니
다시 푹- 테이블위에 뻗고, 중얼중얼) ]
[민수 : 윤아 얘 주사도 있었나?
뭔 알지도 못할 헛소리야?
(윤아 흔들며) 야, 알아듣게 말 해!
(연감독에게) 에이- 감독님 술 더 시킬까요?]
[연감독 : 어- 나 오늘은 외박하면 안되는데.]
[박감독 : 12시 넘은게 언젠데, 우린 한참 외박하는 중이라지, 끄억!
음... 2차는 연감독 집으로 갈까???]
[선우 : ... (조심스럽게 윤아에게) ...??작가님?]
[윤아 : (엎어진채로 고개만 돌려 선우보더니, 순한 얼굴로 피싯-) ...왜요?
(스르르 눈 감으며 잠드는)]
[선우 : ....]
그는 나에게 자꾸 말을 걸었고, 대답하다가
어느 순간 필름이 끊겨버렸고,
그 뒤는...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왜 이렇게 긴장이 쉽게 풀려버렸을까.
여지껏 술자리에서 믿거니 할 사람이 없으면
얼마나 마시든간에, 쓰러질 정도로 잘 취하지 않았는데.
#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오히려 잠들기 힘들다.
눈을 떴을 때, 낯선 방이었다.
아니... 낯설지 않다.
언젠가 와봤다.
안에서 잠긴 방문을 열고 나가자,
거실의 광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긴... 최선우의 집.
전통 술집에서
정신잃은 날 데리고
모두 그의 집으로 와서
나를 손님방에 넣고 안으로 문을 잠그곤
나머진 거실서 술을 더 마시다
그대로 뻗어 잠든 것 같았다.
남자 넷이 서로 겹쳐져서 잠든 모습이
아주~ 볼만하다. ^^;;;
디카가 있으면 이런 거 찍어뒀다가
두고두고 울궈먹어야 하는데. ㅎㅎ
새벽의 찬기운에
그가 잠결에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누워있던 손님방의 이불을 끌고 와
네 남자 위에 대충 걸쳐줬다.
그의... 잠든 얼굴이
웬지 안쓰럽다.
내가 그를 편하게 볼 수 있을 때는..
이럴 때 뿐이구나.
그가 잠들어있을 때,
그래서 나를 보지 않을 때...
그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쌕을 메고 웃웃을 걸치며
그의 집을 나섰다.
이 상태론 모두들 오후 늦게나 일어날테니,
오늘 기획 회의는 글렀고...
난, 학교에 가서 유리에게
서하영 배역으로 캐스팅 된 소식을
직접 전하고 싶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