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어서 오세요’도 아닌, ‘어서 오세용’이었다. 게다가 ‘어서 오세용’의 주인공은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를 강렬하게 연상시키는 오십대 배불뚝이 아저씨였다. 그는 외모와 매우 상반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속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간 생글생글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그와 맞닥뜨린 순간, 나는 일순 다시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일단 칼을 뽑은 이상, 연필이라도 깎아야 했다.
“저…… 아르바이트 구하신다고 해서 왔는데요.”
그렇게 말하자, 대번 그의 눈초리가 달라졌다. 그는 가식적인 표정을 삭 거두고, 고용을 하고 임금을 주는 고용주 특유의 까다로운 표정으로 낯빛을 바꾸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예리하게 검색하기 시작했다.
“전에 이런 알바 해본 적 있나?”
그는 쪽 째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반말 조로 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동안 했었던 무수한 아르바이트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공사현장 막일부터 세차장 손세차, 노래방, 전단지 돌리기, 호프집 홀서빙, 알루미늄 샷시 보조, 주방 설거지 등등에 이르는 역경의 일은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반지 원정대가 겪었던 대장정에 버금가는 그것이었다. 나는 구슬픈 목소리로 그간의 대장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가 내 말을 끊은 것은 내 아르바이트 대장정이 알루미늄 샷시 보조에 이를 즈음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비디오방 알바를 해본 적 있냐, 이거야.”
나는 대답했다.
“없는데요.”
그러나 여기에서 그만두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하는 거 보시면 후회는 안 하실 거에요.”
나는 짐짓 무심한 듯, 그러나 뒷부분에 강세를 주어 말했다. 솔직히 박카스CF에서처럼 ‘꼬옥 하고 싶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비디오방 아르바이트가 국방의 의무도 아닌 터, 그건 좀 ‘오바’다 싶었다.
“그거야 봐야 아는 거고…….”
요다는 내 말을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않는 눈치였다.
“시간은 밖에 써붙인 거 봐서 알지?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 그리고…… 월급은 얼마 생각하고 있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월급은 얼마 생각하고 있어?’라고 묻는 사장 치고, 생각하는 만큼 월급 주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그 진리를 나는 이미 무수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 게 현명한 대처인지도…….
“최대한으로 주실 수 있는 월급이 얼만데요?”
내 되물음에 그는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만만한 적수가 아니란 걸 간파한 모양이었다.
“우리 비디오방은 시급이 아니고, 월급제거든? 지금 알바하는 애는 내가…… 40 주고 있어.”
그의말에 내 머리는 먼지를 걷고 벅벅 녹슨 뉴런들을 ‘조이고 닦고 기름치’며 계산 작업을 시작했다. 40은 설마 한 달에 40원을 준다는 건 아닐 것이었다. 군대도 한 달에 3만원은 준다. 요즘 애들은 100원은 돈으로도 안 본다. 그렇다면 한 달 월급이 40만원이란 얘긴데, 40만을 한 달 30일로 나누면 하루 일당이 1333.33333....원, 이걸 시급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2222.2222...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을 약 5분간 머리채를 움켜쥐고 숫자와 오랜만에 씨름하고 있으니, 요다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무 적나?”
“당연히 적지, 이 놈으 자식아!”
나는 요다의 귀퉁배기를 날리며 소리쳤다, 라고 하고 싶지만, 비굴하게 대답했다.
“아, 아뇨. 그 정도면 뭐…….”
솔직히 대학가 주변 상점들의 아르바이트는 말이 좋아 아르바이트지, ‘착취’였다. 착취도 그런 착취가 없었다. 그런 악덕 상점에 비하면 뭐, 하루 6시간 일하고 40만원이면 피눈물을 흘리며 억울해할 보수는 아니었다.
“뭐, 일해보믄 알겠지만, 힘든 건 없어. 손님 받고, 빈 룸에 넣어주고, 비디오 켜주기만 하믄 돼.”
뭐 그렇겠지, 세상에 힘든 일이 어디 있겠어. 돈주고 부려먹는 인간 말만 들으면 항상 힘들 건 없었다. 막상 일해보면 죽도록 힘들어도 여전히 부려먹는 인간들은 ‘힘든 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어때? 한번 일해볼래?”
전혀 은밀하게 할 얘기도 아닌데, 요다가 은밀하게 물었다.
“해보죠, 뭐.”
세상일이 이렇게 쉽게만 착착 이루어진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그럼 내일부터 출근해. 되도록 6시 10분전에 오도록 하고…….”
그렇게 쉽게 비디오방 아르바이트에 채용되었다. 비디오라면 둘째가라면 살인충동을 느끼는 매니아였기에 비디오방 아르바이트에는 자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는 꼭 봤다. 당시 우리 집에는 TV가 안방에만 있어서 TV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고단한 삶을 살고 계시는 목수셨고, 사람은 밤 9시면 자서 새벽 5시에 기상하는 게 ‘사람’이다, 라는 생활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그런 분이셨기에 밤늦게 하는 TV영화를 부득부득 보려는 어린 자식놈에게
‘어이구, 우리 새끼, 나중에 커서 영화감독 되려고 밤늦게 영화를 보나? 열심히 보고 나중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크르쥬스토프 키에슬롭스키 같은 위대한 영화감독이 되어다오.’
라고 격려를 해주실 리 없었다. 밤늦게 소리를 죽여 TV를 켜고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늘 발작적으로 같은 말씀을 하셨다.
“가 자!”
그것도 경기를 일으킬만큼 어마어마한 고함이었다.
물론 ‘가 자!’라는 말씀이, 특정 장소를 향해 출발하자고 권유하는 ‘Let's Go!'의 의미는 아니었다. 아버지 말씀은 ‘네 방에 가서 잠이나 자!’라는, ‘Go And Sleep'의 의미였다.
화들짝 놀라서 내 방으로 돌아와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면서도 그 영화의 뒷부분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첩보원은 과연 무사히 적의 소굴에서 탈출했을까, 그 남자는 결국 그렇게 엇갈리던 그 여자를 만났을까 궁금해하고 또 궁금해하다 잠이 들던 주말을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우리 집에도 마침내 VTR이 생겼다.
항상 비디오테잎을 빌려 VTR이 있는 친구 집을 전전했던 나로서는 하늘이 열리고, 빛이 내리는 축복과도 같았다. 이제 밤늦게 TV영화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아무 때나 테잎만 재생하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예기지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 어머니이셨다.
어떤 영화든, 미취학아동용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이상 최소한 키스씬이라도 나오게 마련이었다. <꼬마유령 캐스퍼>도 키스씬은 나온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그런 장면을 보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셨다.
“저 놈 자식이 꼭 저런 못된 걸 볼라고 비디오를 빌려와!”
그렇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18금(禁)스러운 장면들을 ‘못, 된, 거’라고 표현하셨다.
당시 나는 남성호르몬이 분출하는 사춘기였고 서서히 성(性)과 손장난에 눈 떠가는 시기였으므로 솔직히 약간 그런 ‘못된 거’에 대한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로지 그 ‘못된 거’만을 위해 비디오를 보려는 건 아니었다. 나는 빠른 재생으로 돌려서 중요장면들만 보고 또 봐서 영화 한 편을 단 20분에 독파하는 색광(色狂)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와 ‘못된 거’와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코를 골며 주무시다가도 뭔가 야릇한 장면이 나올 즈음이면 귀신같이 깨셔서 소리치곤 하셨다.
“저 놈 자식이 꼭 저런 못된 걸 볼라고 비디오를 빌려와!”
도대체 내 어머니의 신경계통에는 비디오의 야한 장면을 감지하는 특수신경계라도 발달되어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예리하게 그 장면만을 포착하실 수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초긴장 상태로 비디오 리모콘을 쥐고 화면을 응시하다가 뭔가 나른한 색소폰 소리라도 날라치면 냅다 FF버튼을 눌러야 했다.
비디오방에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지난날들이 떠올라 헤헤 실없는 미소를 짓게 했다. 그 날 세례 받은 ‘처키’라는 별명도 그 즈음에는 잊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마주치는 같은 과의 모든 동기 및 선후배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처키, 안녕?”
“어머, 처키 선배, 안녕하세요?”
전날 술을 마셨던 동기 녀석들이 퍼뜨린 게 분명했다. 듣기 싫고, 화가 났지만 참았다. 여하튼 새로운 아르바이트로 첫출발 하는 날이 아니더냐.
수업을 마치고 학교 식당에서 1100원짜리 백반으로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새로운 아르바이트의 장, 비디오방을 향해 출발했다. 저녁 무렵의 바람은 상쾌했고, 바람에 몸을 떠는 가로수들의 모습들도 정겹게 느껴졌다.
비됴방 러브스토리
2. 처키, 비디오방 알바생되다
“어서 오세용~”
그랬다. ‘어서 오세요’도 아닌, ‘어서 오세용’이었다. 게다가 ‘어서 오세용’의 주인공은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를 강렬하게 연상시키는 오십대 배불뚝이 아저씨였다. 그는 외모와 매우 상반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속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간 생글생글한 표정으로 나를 맞았다.
그와 맞닥뜨린 순간, 나는 일순 다시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일단 칼을 뽑은 이상, 연필이라도 깎아야 했다.
“저…… 아르바이트 구하신다고 해서 왔는데요.”
그렇게 말하자, 대번 그의 눈초리가 달라졌다. 그는 가식적인 표정을 삭 거두고, 고용을 하고 임금을 주는 고용주 특유의 까다로운 표정으로 낯빛을 바꾸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예리하게 검색하기 시작했다.
“전에 이런 알바 해본 적 있나?”
그는 쪽 째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반말 조로 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동안 했었던 무수한 아르바이트들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공사현장 막일부터 세차장 손세차, 노래방, 전단지 돌리기, 호프집 홀서빙, 알루미늄 샷시 보조, 주방 설거지 등등에 이르는 역경의 일은 영화 <반지의 제왕>의 반지 원정대가 겪었던 대장정에 버금가는 그것이었다. 나는 구슬픈 목소리로 그간의 대장정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가 내 말을 끊은 것은 내 아르바이트 대장정이 알루미늄 샷시 보조에 이를 즈음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비디오방 알바를 해본 적 있냐, 이거야.”
나는 대답했다.
“없는데요.”
그러나 여기에서 그만두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하는 거 보시면 후회는 안 하실 거에요.”
나는 짐짓 무심한 듯, 그러나 뒷부분에 강세를 주어 말했다. 솔직히 박카스CF에서처럼 ‘꼬옥 하고 싶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비디오방 아르바이트가 국방의 의무도 아닌 터, 그건 좀 ‘오바’다 싶었다.
“그거야 봐야 아는 거고…….”
요다는 내 말을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않는 눈치였다.
“시간은 밖에 써붙인 거 봐서 알지? 저녁 6시부터 12시까지! 그리고…… 월급은 얼마 생각하고 있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월급은 얼마 생각하고 있어?’라고 묻는 사장 치고, 생각하는 만큼 월급 주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그 진리를 나는 이미 무수한 아르바이트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 게 현명한 대처인지도…….
“최대한으로 주실 수 있는 월급이 얼만데요?”
내 되물음에 그는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만만한 적수가 아니란 걸 간파한 모양이었다.
“우리 비디오방은 시급이 아니고, 월급제거든? 지금 알바하는 애는 내가…… 40 주고 있어.”
그의말에 내 머리는 먼지를 걷고 벅벅 녹슨 뉴런들을 ‘조이고 닦고 기름치’며 계산 작업을 시작했다. 40은 설마 한 달에 40원을 준다는 건 아닐 것이었다. 군대도 한 달에 3만원은 준다. 요즘 애들은 100원은 돈으로도 안 본다. 그렇다면 한 달 월급이 40만원이란 얘긴데, 40만을 한 달 30일로 나누면 하루 일당이 1333.33333....원, 이걸 시급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2222.2222...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는 것을 약 5분간 머리채를 움켜쥐고 숫자와 오랜만에 씨름하고 있으니, 요다가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너무 적나?”
“당연히 적지, 이 놈으 자식아!”
나는 요다의 귀퉁배기를 날리며 소리쳤다, 라고 하고 싶지만, 비굴하게 대답했다.
“아, 아뇨. 그 정도면 뭐…….”
솔직히 대학가 주변 상점들의 아르바이트는 말이 좋아 아르바이트지, ‘착취’였다. 착취도 그런 착취가 없었다. 그런 악덕 상점에 비하면 뭐, 하루 6시간 일하고 40만원이면 피눈물을 흘리며 억울해할 보수는 아니었다.
“뭐, 일해보믄 알겠지만, 힘든 건 없어. 손님 받고, 빈 룸에 넣어주고, 비디오 켜주기만 하믄 돼.”
뭐 그렇겠지, 세상에 힘든 일이 어디 있겠어. 돈주고 부려먹는 인간 말만 들으면 항상 힘들 건 없었다. 막상 일해보면 죽도록 힘들어도 여전히 부려먹는 인간들은 ‘힘든 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어때? 한번 일해볼래?”
전혀 은밀하게 할 얘기도 아닌데, 요다가 은밀하게 물었다.
“해보죠, 뭐.”
세상일이 이렇게 쉽게만 착착 이루어진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그럼 내일부터 출근해. 되도록 6시 10분전에 오도록 하고…….”
그렇게 쉽게 비디오방 아르바이트에 채용되었다. 비디오라면 둘째가라면 살인충동을 느끼는 매니아였기에 비디오방 아르바이트에는 자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는 꼭 봤다. 당시 우리 집에는 TV가 안방에만 있어서 TV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고단한 삶을 살고 계시는 목수셨고, 사람은 밤 9시면 자서 새벽 5시에 기상하는 게 ‘사람’이다, 라는 생활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그런 분이셨기에 밤늦게 하는 TV영화를 부득부득 보려는 어린 자식놈에게
‘어이구, 우리 새끼, 나중에 커서 영화감독 되려고 밤늦게 영화를 보나? 열심히 보고 나중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크르쥬스토프 키에슬롭스키 같은 위대한 영화감독이 되어다오.’
라고 격려를 해주실 리 없었다. 밤늦게 소리를 죽여 TV를 켜고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늘 발작적으로 같은 말씀을 하셨다.
“가 자!”
그것도 경기를 일으킬만큼 어마어마한 고함이었다.
물론 ‘가 자!’라는 말씀이, 특정 장소를 향해 출발하자고 권유하는 ‘Let's Go!'의 의미는 아니었다. 아버지 말씀은 ‘네 방에 가서 잠이나 자!’라는, ‘Go And Sleep'의 의미였다.
화들짝 놀라서 내 방으로 돌아와 눈물로 베갯잇을 적시면서도 그 영화의 뒷부분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첩보원은 과연 무사히 적의 소굴에서 탈출했을까, 그 남자는 결국 그렇게 엇갈리던 그 여자를 만났을까 궁금해하고 또 궁금해하다 잠이 들던 주말을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우리 집에도 마침내 VTR이 생겼다.
항상 비디오테잎을 빌려 VTR이 있는 친구 집을 전전했던 나로서는 하늘이 열리고, 빛이 내리는 축복과도 같았다. 이제 밤늦게 TV영화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아무 때나 테잎만 재생하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골라서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예기지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 어머니이셨다.
어떤 영화든, 미취학아동용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닌 이상 최소한 키스씬이라도 나오게 마련이었다. <꼬마유령 캐스퍼>도 키스씬은 나온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그런 장면을 보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셨다.
“저 놈 자식이 꼭 저런 못된 걸 볼라고 비디오를 빌려와!”
그렇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18금(禁)스러운 장면들을 ‘못, 된, 거’라고 표현하셨다.
당시 나는 남성호르몬이 분출하는 사춘기였고 서서히 성(性)과 손장난에 눈 떠가는 시기였으므로 솔직히 약간 그런 ‘못된 거’에 대한 기대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로지 그 ‘못된 거’만을 위해 비디오를 보려는 건 아니었다. 나는 빠른 재생으로 돌려서 중요장면들만 보고 또 봐서 영화 한 편을 단 20분에 독파하는 색광(色狂)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와 ‘못된 거’와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코를 골며 주무시다가도 뭔가 야릇한 장면이 나올 즈음이면 귀신같이 깨셔서 소리치곤 하셨다.
“저 놈 자식이 꼭 저런 못된 걸 볼라고 비디오를 빌려와!”
도대체 내 어머니의 신경계통에는 비디오의 야한 장면을 감지하는 특수신경계라도 발달되어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예리하게 그 장면만을 포착하실 수는 없었다. 때문에 나는 초긴장 상태로 비디오 리모콘을 쥐고 화면을 응시하다가 뭔가 나른한 색소폰 소리라도 날라치면 냅다 FF버튼을 눌러야 했다.
비디오방에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지난날들이 떠올라 헤헤 실없는 미소를 짓게 했다. 그 날 세례 받은 ‘처키’라는 별명도 그 즈음에는 잊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마주치는 같은 과의 모든 동기 및 선후배들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처키, 안녕?”
“어머, 처키 선배, 안녕하세요?”
전날 술을 마셨던 동기 녀석들이 퍼뜨린 게 분명했다. 듣기 싫고, 화가 났지만 참았다. 여하튼 새로운 아르바이트로 첫출발 하는 날이 아니더냐.
수업을 마치고 학교 식당에서 1100원짜리 백반으로 저녁을 간단히 때우고 새로운 아르바이트의 장, 비디오방을 향해 출발했다. 저녁 무렵의 바람은 상쾌했고, 바람에 몸을 떠는 가로수들의 모습들도 정겹게 느껴졌다.
그렇게 비디오방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도 바로 그 비디오방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