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됴방 러브스토리 3

kojms2004.12.02
조회311

3. 처키, 그녀를 만나다


예상했던 것보다 비디오방 아르바이트는 힘들지는 않았다. 다만, 정신이 없을 뿐이었다.

출근하자마자, 나는 요다 사장으로부터 카운터에서 손님을 받는 법부터 신분증 검사하는 법, 빈방에 손님 넣어주고 손님이 고른 비디오테잎 틀어주는 법, 카운터에 장치된 타이머에 상영시간 입력하는 법, 방으로 손님 안내하고 프로젝션 작동시키는 법, 그때그때 장부에 상영된 비디오 목록 적는 법, 손님 빠지고 난 방 정리하는 법, 12시가 되기 30분전부터 마감 청소하는 법 등등에 대해 상세히 배웠다. 어렵지는 않았다. 군대에서 이보다 더 복잡하고 치사한 내무계율도 착착 배웠던 내가 아니었던가. 자대배치 받고 대기기간 동안 직속고참으로부터 내무계율을 배우는 일주일 내내 설사는 하긴 했지만 여하튼…….

비디오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비디오는 원 없이 볼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기대는 첫날부터 산산이 부서졌다. 오로지 첫장면과 끝장면만 확인차 볼 수 있을 뿐, 온전한 비디오는 단 한 편도 오롯이 감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디오방에서 일하면 거기에 진열된 비디오들을 한 편도 남김없이 해치울 것이라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시기’ 재미있어요?”

라고 물었을 때, 글쎄요, 거시기는 봤는데 뭐시기는 못 봤는데요, 라고 하면, ‘비디오방 아르바이트생은 비디오방에 있는 비디오 다 봐야 한다. 그런데 뭐시기를 안 봤단다. 고로 저 자식은 비디오방 아르바이트를 할 자격이 없다.’, 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삼단논법을 구사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아주 얄미운 말투로 반문하곤 했다.

“그럼, 짱개집에서 일하는 철가방은 짱개 음식 다 먹어봤게요?”

여하튼 비디오방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뭐가 재미있어요?"

그럴 때, 내가 영화 좀 봤지, 하는 자신감으로 이거요, 저거요, 골라주면 나중에 뒤통수 맞기 십상이었다.

“에이 아저씨, 이게 뭐가 재미있어요? 하나도 재미없잖아요.”

보신탕은 게눈 감추듯 해치워도, 떡볶이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먹는 사람이 있듯이, 식성처럼 사람마다 영화 보는 취향이 다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일반적’이라는 보편적 잣대가 있지만, 열에 아홉이 재미있고 말하는 <올드 보이>를 보고도, 겁나게 재미없다는 한 명이 있고, 열에 아홉은 영화도 아니라는 <조폭 마누라2>도 너무 감명 깊게 보았다는 한 명도 있기에 섣불리 자기 잣대로 비디오를 마구 골라주면 곤란하다는 것을 나는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침착하게 실시해야하는 유도심문도 곧 터득하게 되었다.

1단계.

“어떤 장르 좋아하시는데요?”

그럼 대부분 액션이요, 드라마요, 공포 빼고 다요,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하는데, 가장 곤란하고 위험한 건 의외로 다음과 같은 대답이었다.

“아무거나 다요.”

아무거나……. 매우 무난하고 무던한 듯 하면서도 실상은 비디오를 고르는 데 있어 무척이나 까다롭기 그지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까다로움을 상쇄시키기 위해 내뱉는 공포의 한마디. 술집에서도 안주는 ‘아무거나’ 시킨다는 사람이 메뉴판은 가장 오래 들여다보고 있게 마련임을 이미 치킨호프 아르바이트를 통해 터득하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절대 ‘아무거나’ 찍어줘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 2단계에 돌입.

“진짜 재미있게 보셨던 영화 있으세요? 그거랑 비슷한 비디오를 추천해드릴게요.”

그렇게 말하면 아무거나족들도 대부분 몇몇 영화들을 읊어주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몇 개를 골라줘도 영 반응이 시원찮은 경우가 있었다.

“그건 보기 싫은데…….”

“그건 벌써 봤죠.”

“그건 별로라던데…….”

골라주는 비디오마다 마다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이었다. 그럴 때에는 또다른 비장의 히든카드가 있었다.

3단계.

“그럼 한번 알아서 잘 골라보세요.”

일찍이 장 뤽 고다르가 <네 멋대로 해라>로 뉴벨바그를 일으켰고, 비틀즈가 ‘Let It Be'로 빌보드챠트를 석권했듯 내버려두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자기들이 알아서 고르게 마련이었다.

첫날 비디오방 일의 요령을 익히고, 몇몇 손님을 받고 난 후였다. 어딘가 2% 부족해 보이는 남학생이 비디오방에 들어섰다. 그는 대뜸 나에게 물었다.

“웃기는 거 뭐 있어요?”

그 물음과 말투부터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필시 속인(俗人)이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맞아 떨어졌다.

“음…… 뭐 재미있게 보신, 웃긴 영화 있으세요?”

그러자, 그 남학생은 왜 말귀를 못 알아듣느냐는 투로 다시금 말했다.

“아니, 재미있는 거 말고요, 웃기는 거요!”

“이런 미친 놈을 봤나……! 웃기는 게 재미있는 거고, 웃기는 영화 보는 게 웃기는 재미로 보는 거지, 밥에 국을 마나, 국에 밥을 마나, 오십보백보인 것을 왜 따로국밥이라 하는 건데?”

라고 귀퉁배기를 돌리며 대꾸하고 싶은 것을 꾹꾹 참으며 요즘 출시된 신작들을 중심으로 몇 개를 골라 주니, 다 마다하며 묻는 말이 참으로 어이없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웃겨요?”

장난…… 하냐? 차라리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장동건이 기관총 세례를 받으며 온몸을 요동치는 게 웃기냐고 묻지? 차라리 <올드 보이>에서 최민식이 유지태에게 통사정을 하다 혀를 자르는 장면이 웃기냐고 묻지?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하며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그건 실감나는 전쟁 영환데요.”

그러자, 남학생은 다시금 예의 그 범상치 않은 눈으로 비디오 진열대를 훑어보며 비디오를 고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비디오 골라주는 것을 포기하고 카운터에 앉아 있던 나에게 자신이 고른 테잎을 내밀었다.

그것은 <클레멘타인>이었다!

이동준이 총제작비의 3/4을 댔다가 몽땅 말아먹었다는 전설의 영화……. 물론 달랑 5분 얼굴 비추고 12억의 개런티를 받아 챙기고는 주연인 양 포스터에 얼굴 딱 박아 넣은 스티븐 시걸이 웃기고, 진지하고 슬퍼야 하는 장면이 도리어 웃음을 유발하는, 웃기는 영화이긴 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웃기는 영화라고 고른 것이 <클레멘타인>이라니!

정말 사람 취향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비디오를 추천해주는 일은 단박에 등 가려운 데 골라 긁어주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재미없는 영화를 골라들고, 재미있냐고 물어오는 경우는 더 곤란했다. 영화는 분명 재미없는데, 본다고 하니, 양심상 말리고 싶지만, 양심을 따르자니, 매상이 울고, 매상을 따르자니 양심이 울었다.

그 남학생이 룸에 들어가고 난 후 들어온 한 쌍의 남녀가 <툼 레이더2> <딥 블루 씨2> <여우계단> 같은 비디오만 골라 내밀며 재미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그거 재미없어요.”

“그건 영화도 아니에요.”

“그거 보시면 돈이 좀 아까우실 텐데…….”

그렇게 대답하는 걸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던 요다 사장이 비디오방 구석으로 가서는 은밀히 나를 불렀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나 싶어 갔더니 그는 주머니에서 펜과 메모지를 꺼내어 또박또박 몇 글자를 적었다. 친절하게도 그가 메모지에 적어준 충고는 아래와 같았다.

“안, 봐, 서, 잘, 모, 르, 겠, 는, 데, 요.”

나는 오호라, 득도한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그 후로 사장이 있을 땐 그가 가르쳐 준대로 했고, 그가 자리에 없을 때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거 재미없어요.”

“그건 영화도 아니에요.”

“그거 보시면 돈이 좀 아까우실 텐데…….”

그렇게 비디오방에서의 첫날이 저물어가고 있을 즈음, 그녀가 비디오방에 들어왔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한데 비디오방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데이트중인 연인이거나,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동성 친구들인 데에 반해 특이하게도 그녀는 단 한 명의 동성 친구와 동행이었다.

“어서 오세…….”

여기까지 말하고 나는 흠칫 말을 멈추었다. 그녀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한 기운은 내 몸에서 북받쳐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녀의 외모는 그다지 특색이 있다고 볼 수 없었다. 긴 머리를 한 가닥으로 묶은 평범한 헤어스타일에 갸름한 얼굴, 무테 안경, 화장기 없는 얼굴, 평범한 셔츠와 청바지, 운동화에 이르기까지 튀는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보는 순간, 뭔가 심장이 간질거리고 가슴이 울렁대고 호흡이 가빠지는 이상징후가 내 신체에 나타났다. 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며 하던 인사를 마저 했다.

“……요.”

진열장에 꽂힌 비디오테잎들을 바라보던 그녀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의 ‘어서 오세’는 못 듣고, 뒤의 ‘요’만 들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무척이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매우 어색한 분위기가 일순에 형성되어 우리 둘 사이를 맴돌았다.

“요~ 컴온! 디스 이스 처키 러브스토리! 예! 쉐이커 뿌레~”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위와 같이 랩이라도 할까, 생각도 했지만 미친 짓이었다.

“요……즘 날씨가 참 좋죠?”

라고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툭하면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쏟아지고, 3월에도 폭설이 쏟아지고, 9월에도 태풍이 올라오는 세상에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 멘트였다.

결국 나는 ‘요~’를 길게 늘여 발음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 옆에 진열되어 있던 테잎 중 아무거나 뽑아서 소리쳤다.

“요……게 왜 여기 꽂혀 있지?”

막상 빼들고 보니, 내 손에 들린 비디오테잎은 하필이면 케이스부터 요란하기 그지없는 <올드부인>이라는 국산에로영화였다.

‘열 놈이건 백 놈이건 상관없다. 15년 동안 먹은 맛을 잊을 수는 없다’

라는 요상망측한 헤드카피가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고, 그 아래에는

‘오대물 씨, 나요…… 인제 무슨 낙으로 살죠?’

라는 문구와 함께 전라의 여자가 메뚜기 체위로 남자 위에 올라타고 있는 요상망측한 장면이 찍혀 있었다.

요……런 썩을…….

그녀는 더 어색해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점점 피부 표면의 체온이 상승하며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나는 얼른 들고 있는 <올드부인>을 들고 성인물 코너로 가서 그 놈을 꽂았다.

“니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임마.”

공연히 애매한 <올드부인>에게 성을 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카운터로 돌아가며 흘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성추행범이나 성도착증 환자 보듯 바라보며 친구와 함께 비디오방을 다시 나서고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그렇게 그녀는 내가 붙잡을 새도 없이 비디오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보나마나 이상하기 그지없는 내 행동을 보고 겁에 질리거나, 불쾌해진 게 분명했다.

다음에 다시 올게요.

그녀가 남긴 말을 곱씹어보았지만, 다음에 다시 온다는 손님 치고 다시 오는 사람 드문 법이었다. 가슴 속에 부풀어올랐던 뭔가가 푹 빠져나가는, 허탈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녀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한 내 자신의 뇌를 한번 전기톱으로 갈라 끄집어내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나는 비실비실 일어나 마감청소를 하기 위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보관해둔 창고로 갔다. 그렇게 비디오방에서의 첫날이 저물었다.

그러나 다음날 그녀는 정말 다시 비디오방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