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칙사랑 - 07. 찰랑찰랑 마음이 넘칠 때

나비200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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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칙사랑 - 07. 찰랑찰랑 넘치는 마음


“하여튼 남자들이란.”


준지보다 한 시간 가량 뒤늦게 도착한 연미가 피자를 질겅대며 말했다. 묘한 맛을 주는 피자라 잠들 때도 생각났었다며 만류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피자를 시킨 것이었다.


“그 피자가 맛있니?”

“특이하잖아. 꼭꼭 씹으면 단맛도 나고. 무엇보다 이 피자집 조만간 없어질 것 같아서 그 전에 먹어두고 싶어.”

“취향도 독특해요.”

“나 먹는 거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말이나 계속 해. 그래서 만난다는 거야, 아닌 거야?”

“안 만나는 게 맞겠지. ······.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 사람이 밉지는 않다.”

“남자들은 왜 이곳저곳 쑤시고 다닌데니?” 피자 냄새는 맡기도 싫다며 코를 쥐고 있는 준지가 끼어들었다.

“여자 친구가 있어도 예쁜 여자를 보면 히죽거리면서 참 예쁘시네요, 칭찬을 해대잖아. 동창한테 들으니까 안 그런 남자가 없다더라. 어떻게 할 것도 아니면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 들고. 예쁜 여자랑 마시는 커피는 몸에 좋대니? 그 사람도 애인 있으면서 너랑 재미 보려던 거였잖아. 만약에 나였다면 찬영씨가 만난다는 그 여자한테 다 일러 버렸을 거야. 나라도 연결이 안 되면 확 찢어놔야지. 그 꼴을 어떻게 봐.”

“그 여자 알지도 못하지만 뭐 별로 할 말도 없지.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별 일도 없었잖아.”

“하긴 그렇다. 술 몇 번 마신 게 다니까.”

“그것도 바람이지! 바람 피는 것들은 다 죽어야 돼!”


연미는 옛 상처가 생각나는지 불타는 눈동자로 말했다. 어쩌면 그녀가 먹고 있는 건 피자가 아니라 옛 남자인지도 모르겠다. 질겅거리는 피자에 아마도 그가 녹아있을 것이다. 그녀들은 남자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저을 만한 추억들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추억이지만 당시의 그녀들은 남자와 헤어진 후 더 예뻐지기도 했고 새로운 취미를 갖기도 했다. 연미는 당분간은 남자는 없을 거라며 머리를 짧게 잘랐었다. 그리고 세상에 무딘 척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아픔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심하게 말할 것까지 있니? 기껏 술 마신 거라는데.”

“기껏 술이라니. 준지! 너도 바람 핀 적 있어?”


준지는 졸지에 괜한 눈초리를 받게 되었다. 피자에서 그녀에게 옮겨간 건가?


“남자친구 있는 사람은 남자랑 술도 마시면 안 되니? 그건 좀 그렇다, 야.”

“홍주! 그 남자 절대 만나지 마. 만나면 나랑 의절이야. 나보다 그 놈이 더 좋으면 만나고.”

“그래, 그래. 애인 있다고 지 입으로 말하는 남자를 왜 만나니? 만나지 마.”


둘은 갑작스레 한 편이 되었다.


“글쎄. 잘 모르겠어. 그 사람은 그냥 편하게 지내자고 하는데.”

“웃겨. 네 마음도 아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만나지 마. 밖에서 만나자고 하면 만나지 말라고. 대신”

“······?”

“아무렇지도 않은 대해. 그렇게 보이는 게 제일 상처 될 지도 몰라. 네 마음 갖고 장난치는 사람이니까. 네 감정이 움직이는 걸 보고 즐기고 있을 지도 모르잖아. 너 같은 거 옆에 있든 없든 달라지는 거 아무것도 없다는 걸 보여줘 버려. 피할 것도 없어. 그냥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해 버려. 아무 감정도 없는 친절 말이야.”


준지는 직접 일어서서 인사하는 시범을 보였다.


“야! 그건 백화점 도우미 같다.”

“주차장에서 인사하는 여자 같아.”


수다로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다시 그와 대면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준지 말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하는 거야.’


정확히 9시 5분전 심호흡을 하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출근한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두어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 후에 그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의 밝은 모습에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그. 내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짐을 느꼈다. 그에게 웃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에.

사람들에게 밝은 인사를 건네고 책상에 앉았다. 역시 무슨 일이야, 라는 표정의 사람들을 보며 어제까지의 아침이 떠올랐다. 참 무뚝뚝하게 굴었었구나, 나. 어제와는 다른 아침에 어색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컴퓨터를 켰더니 검은 옷을 입은 무표정한 내 얼굴이 날 반겼다. ‘너도 안녕! 이젠 웃자.’ 배경 화면을 녹색 가득한 산 배경으로 바꾸고 시원한 커피를 마셨다. 입 안 가득 개운함이 돌았다.


“좋은 일 있니? 아침부터 생글생글이야.”


돌아보니 명주 언니였다.


“좋을 것도 없는데 그냥 좋네.”

“훨씬 예뻐 보인다. 생기가 돌아.”

“생기?”

“같은 조화라도 생기 있는 꽃이 더 예뻐 보이는 거잖아. 네 나이 땐 그저 웃어야 돼.”


난생 처음 들어보는 생기란 말에 되물으니 언니는 제법 의심장한 말을 분홍색 껌과 함께 책상에 두고 갔다.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꽤나 얄팍한 것이어서 단 며칠간도 효력이 없었다. 자리에 앉아있어도 어느새 등 뒤에 달린 눈이 그를 쫓고 있었다. 하루 종일 사무실의 모든 사물이 사라지고 그만 보이는 이상한 일을 겪고 나서 퇴근을 얼마 앞둔 시간.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나오던 나는 찬영과 마주쳤다. 아니, 그가 나를 기다린 듯 보였다. 갑작스런 대면은 마치 팔꿈치를 돌로 만든 모서리에 찧은 듯과 같았다. 예기치 못함에 놀라고, 준비되어 있지 못함에 당황스럽고, 그리고 고통스러웠다.


“과장님이 백화점 담당 같이 만나고 오라고 하네요.”

“예.”

“불편하시면 저 혼자 다녀오겠습니다. 실수 없이 처리할 수 있어요.”

“아니요. 불편할 게 있을 리 없잖아요. 운전은 그 쪽이 하시죠.”


잘했어. 긴장한 티가 별로 나지 않았다고. 허리를 꼿꼿이 펴고 그를 앞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벌써부터 떨려오는 가슴은 나를 바보스럽게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백화점을 나와 돌아오는 길에 그가 시장하지 않냐고 물었다.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어있었다. 그의 왼쪽 얼굴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우리는 잠시 후 검은 색으로 인테리어 되어있는 샤브샤브 식당에 마주앉아 있었다.


“여긴 특히 재료들이 신선해요.”

“소스도 마음에 드네요. 맛있어요.”

“이것도 드세요.”


그가 직접 내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었다. 그의 친절에 익숙해지기 싫어 주먹을 꽉 쥐어 봤지만 그릇에 담긴 음식들은 특별하게만 보였다. 그가 날 위해 무엇을 해주었다는 것이 감사하게 생각됐다.


“언제나 여자들에게 친절하시네요. 몸에 밴 것 같아요.”


감정을 들킬만한 소리가 식탁에 던져졌다.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그렇죠.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나요?”


마음에 드는 사람이란 말이 목에 걸려 음식물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와 점심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바보 같이 감동해버리는 여자는 많이 먹지 못하고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이럴 땐 어떤 기분을 느껴야 하지? 그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난 그저 회사 동료일 뿐인 여자로 행동하느라 최선을 다했지만 고개를 조그만 돌려도 보이는 그의 모습에 경직이 되어 창 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애인이 있는 회사 사람과 함께 있는 거잖아. 태연해봐, 제발. 하지만 난 짝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있는 한 여자 역할에 더 충실했다. 마음이 찰랑찰랑 넘쳐서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홍주씨, 언제 저희 집에 안 놀러 오실래요?”

“당신 집이라구요?”


운전을 하고 있던 그의 말에 놀라 물었다.


“그게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집에 제가 직접 담근 술이 있거든요. 조언을 꼭 듣고 싶어요.”

“그러니까 술 마시러 당신 집으로 오란 말이잖아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닙니다. 꼭 집이 아니어도 상관없어요. 술 맛만 봐주면 되는 거니까. 워낙 친구 녀석들이 편하게 들락거려서 제가 부담이 없었나 봐요. 절대 이상한 의도는 아니었으니까 오해는 말아주세요.”

“꽤 당황스러운 부탁이네요.”

“회사 선배로도 안 되겠습니까? 여자든 남자든 관계없이 부탁했을 겁니다.”


여자든 남자든, 이라는 말이 거슬렸다. 어차피 네겐 내가 남자여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겠지, 그런 생각에 괜히 서운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단둘의 만남은 뿌리치기엔 너무나 강한 유혹이었다.


“언제가면 되는 거죠?”


찬영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목요일 퇴근 후로 정해졌다. 나중에 생각해봐도 무슨 정신으로 쉽게 승낙을 해버린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N극이 S극에 끌리 듯 그는 나를 강하게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혹시 그가 애인과 정리를 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자신의 공간을 나에게 보여주려 하고 있으니까. 약간의 기대는 가져도 될 것 같았다.


“정말 아담한 집이에요! 한 번 잠들면 18시간은 잘 수 있을 것 같이 안락한 분위기를 갖고 있네요. 깨끗하고 조용해요. 정돈도 잘 되 있고, 가구 배치도 훌륭한데요. 여기가 부엌인가요? 바나나 소설의 키친이 떠오르는 부엌이에요. 바나나 알아요? 과일이 아니라 일본 소설가. 이름이 요시모토 바나나에요. 이름이 특이하죠? 음식을 해도 냄새가 잘 빠져나갈 것 같지는 않지만 뭐 어때요? 그 보다 중요한 건 분위기니까. 안 그래요?”


가끔은 조잘대는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집에 들어서자마자 떠들고 있는 나를 찬영씨는 탐탁치 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 집은 햇볕도 잘 들지 않는 방 두개의 평범한 1층 연립이었다. 그리고 남자 혼자 사는 집의 전형을 보여주듯 아무런 가구도 없었고, 부엌에서는 요리를 한 적이 언제인지 기억을 한참을 더듬어야할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갑작스러운 재잘거림은 너무도 휑한 집을 보고 놀란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동안 나는 빨간 머리 앤을 생각하고 있었다. 빨간 머리 앤이라면 지독히도 칭찬할만한 것이 없는 그의 집을 보고도 한 시간을 칭찬을 할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머리에 갑자기 붉은 빛을 띠고 있는 양 갈래의 머리가 솟는다 해도 그 이상의 칭찬은 무리였다. 그래도 열심히 집을 돌아다니며 칭찬할 만한 것을 찾고 있었다.


“어머, 이건 냉장고군요. 음. 예뻐요.”

“그만 이리 앉아요.”

“아, 예.”


나는 찬영이 앉으라고 말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졌다. 정말 지독히도 칭찬을 할만한 것이 없는 집이었다. 그의 어색한 헛기침을 듣고 나서야 난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처음 왔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생각보다도 훨씬 어색한 일이었다.


“술을 가져 와야 하나? 음, 술은 저쪽 방에 있는데 한 번 보실래요?”

“예. 좋아요.”


문이 닫혀있던 다른 방에는 술병로 가득했다. 손수 담은 듯한 술로 가득한 그 곳은 마치 생물실 같기도 했다.  


“정말 대단해요! 인삼주, 더덕주, 뻐찌술, 앵두에 포도주, 자두주, 이건 뭐야? 살구술. 없는 게 없군요.”

“뱀술도 있습니다. 홍주씨 보기 징그러워 할까봐 미리 덮어놓았죠.”

“뱀술이요?”

“이건 비밀인데 백사로 담근 술도 있어요. 그건 나중에 결혼을 하고 나서 먹을 생각이랍니다.”

“대단해요, 정말!”

“복분자주, 두견주, 이강주 없는 게 없죠. 오늘 맛을 봐달라고 한 건 이 홍주에요.”

“색이 정말 잘 나왔네요.”


홍주의 투명한 붉은 빛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지저분해진 내 마음도 그 속에 담가두면 깨끗이 소독이 될 것만 같아 항상 나쁜 마음이 들 때면 물끄러미 홍주를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다.


“다시 저 방으로 가죠. 홍주에 딱 어울리는 안주도 있답니다.”

“홍주에 딱 어울리는 안주요? 혹시.”

“간재미회요. 홍주씨를 위해 어렵게 공수해 온 거랍니다.”

“간재미회! 정말 멋져요, 멋져.”


간재미회와 홍주만 간소하게 차려진 술상이었지만 진수성찬 부럽지 않았다. 간재미회는 홍주의 본고장인 진도의 특산물로 쉽게 말하면 홍어회였다.


“와! 정말 맛있어요. 너무 행복해.”

“안주에 흥분하지 말고 술맛을 봐주셔야지요.”

“술도 정말 맛있어요. 정말 직접 담근 술이 맞나요? 아버지가 진도에서 담근 홍주 맛과 똑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더 진한 것 같기도 하지만 훌륭한 홍주에요.”

“진짜입니까?”

“예. 예. 좋은 술과 안주 정말 감사해요.”


어색함을 날려버릴 수 있는 술상이었다. 신이 난 우리는 술을 연거푸 비워댔고 10시가 되기 전에 얼큰히 취한 상태가 되었다. 술의 힘을 받은 나는 계속 조잘거렸고 그는 나의 말에 간간히 큰 웃음을 터뜨렸다.


“친구들과 별장에 놀라갔을 때였어요. 그날도 술을 엄청 먹고 취했었죠. 사람들한테 술 취한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는데 아무래도 속이 좋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비바람이 몹시 치던 날이었어요. 너무 추워서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들어가려니까 문이 도대체 열리지 않는 거예요. 친구들이 내가 나간 지 모르고 문을 잠이 든 것 같더라구요. 아무리 문을 두들기고 소리를 쳐도 문은 열리지 않았어요. 친구들도 꽤 취한 상태였거든요. 포기하고 문 옆에 쪼그려 앉았는데 글쎄 잠이 들었었나봐요. 눈을 뜨니까 아침이더라고요. 근데 황당한 게 뭔지 알아요? 문이 여닫이문이 아니라 미닫이문이었어요. 미는 게 아니라 옆으로 여는 문이요. 아침이 되니까 스르르 마법처럼 열리더라고요. 하하하. 너무 웃기지 않아요?”


웃을 거라고 생각했던 찬영씨는 웃지 않고 얼굴이 붉어진 홍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몇 초 동안 둘의 눈이 강렬하게 부딪쳤다. 위험한 눈빛이었다. 마치 그 날처럼 마음과 오감을 모두 집어삼킬 눈이었다. 나는 그에게 빠져들고 있음에 무서워졌다.


“얘기가 재미없었나봐요.”

“미안해요. 사실은 듣질 못했어요. 그런데 홍주씨 늦지 않았어요?”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갑자기 정색을 하며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해할 수가 없네요.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갑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하시네요.”

“아니에요. 홍주씨 늦은 것 같아서요. 일어나죠, 집까지 데려다 줄게요.”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건 그의 집에서 내몰겠다는 뜻이었다. 오라고 할 때는 이제는 멋대로 가라고 하다니.


“애인이 오기로 했나요?”

“그런 것 아닙니다.”

“그 날과 같군요. 창고에서 있던 날 아침 당신은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더라구요. 마치 내게 도망을 치는 사람처럼. 지금이 그래요. 나한테 도망을 치는 것처럼 보인다고요.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예요? 사람을 혼란스럽게, 다가서도 되겠지 싶으면 멀리 도망가는 이유가 대체 뭐냐구요!”

“그 날 먼저 안긴 건 당신이었어요!”

“당신도 뿌리치지 않았잖아요! 싫었다면 뿌리쳐야 옳은 거예요! 당신 그쯤도 몰라요?”

“······.”

“그날 일은 그렇다고 쳐요. 오늘 이곳으로 날 부른 건 당신이었다고요. 그런데 지금 날 내모는 이유가 뭐예요! 오늘은 그 이유를 꼭 알아야겠어요!”

“난 애인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이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함께 밤이라도 세울 작정이었나요?”

“우리 둘 함께 있으면 위험하다는 거 당신도 아는 거죠?”


나의 이야기가 맞기를 바랐다. 서로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 더 이상 함께 있다가는 위험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길 바랐다.


“이만 가요. 싸우고 싶지 않아요.”

“내 말이 맞는 거죠?”

“맞아요! 당신 말 맞다고 그러니 가라고 하잖아요. 난 애인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럼 나는 뭐죠?”

“······.”

“당신 행동 헷갈려! 잘해주다가 갑자기 등 돌리는 당신 행동 이해할 수 없다고. 애인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내게 이러지 말았어야 했어! 나 갈래요. 처음부터 여기 오는 게 아니었는데. 미쳤지, 내가.”

“화내지 마요.”

“왜 화나는지 몰라요? 화내는 내가 이해가 안돼요? 내가 말했잖아! 나 당신 좋아한다고! 다 알고 있었으면서 이런 일을 벌이다니. 당신이 얼마나 잘났길래 사람을 헷갈리게 해요!”

“홍주씨! 홍주씨 난,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다고요.”

“갖긴 싫고 버리긴 아깝다 그런 건가요? 나 참! 두고 봐. 당신도 괴롭게 지내야해. 당신 애인이 이 꼴을 봐야 한다고!”

“홍주씨!”


난처해하는 그를 버려둔 채 밖으로 나갔다. 11시도 안된 거리는 아주 정상이었는데 나 혼자 흔들리고 있었다.


“홍주씨!”


흔들거리는 두 귀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에 정지 신호를 본 것처럼 제 자리에 서버렸다. 그를 버리고 갈 용기가 내겐 없었다. 그는 홍주에게 다가와서 뒤에서 안았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 소리를 전해져 왔다. 그의 입이 머리에 입맞춤을 해주고 있었다. 4월을 모두 익혀버릴 만큼 뜨거움이 전해졌다.


“홍주씨, 나 애인 있어요. 그래도 괜찮다면 키스하고 싶어요.”


먼저 입을 훔친 건 나였다. 나는 숨도 멈춘 채 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순간 하고 싶었던 6개월 치의 키스가 쏟아져 나온 듯 했다. 모든 사고가 정지되었고 입술과 혀 감각만 민감하게 살아서 그를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