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혼돈될 수 없는 가까운 거리에서 난 서루 오빠의 얼굴을 보았다. 옆에 손을 잡고 있는 여자를 보니 잘 생긴 게 그 때 말한 뮤직 비디오 출현하는 여자인 듯 했다.
당장 오빠를 깨워 일으켜 이 여자가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잠든 오빠의 얼굴이 행복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행복해하는 서루 오빠를 계속 보는 것은 너무 비참한 일이어서 청소를 마치고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서 서루 오빠에 대한 섭섭한 마음보다 처음으로 나도 시집을 못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려야했다.
‘오! 노! 이러다가 10년 후에 엄마 빤스를 입고 집에서 뒹굴고, 명절을 고스톱으로 보내고... 아악!’
절대 싫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 놈이나 잡아 결혼했다가 위자료나 듬뿍 받아 이혼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요즘은 서른여섯 노처녀보다 서른여섯 이혼녀가 이해받기 쉬운 세상이니까.
“혜림씨, 이 손님 기본 반사구 해드려요.”
“...”
“혜림씨, 내 말 안 들려요?”
“아, 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따뜻한 수건 부탁한 거는 어디 있어요?”
“잠시만요.”
또 다시 하루가 시작 되고 셋째 언니가 유일한 부하직원인 나를 볶아대고 있었다. 손님들 앞에서 직원에게 딱딱하게 굴어야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나. 우리가 자매라는 사실을 손님들이 안다면 좋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언니 말이 맞는 것도 같아 내버려두고 있지만 조금 많이 재수는 없었다.
“혜림씨, 지압봉 큰 것 좀 갖다 줘요.”
“저 지금 맛사지 중인데요.”
째려보고 있다.
어쩌라구.
난 지금 만사 다 귀찮다고.
안 그래도 서루 오빠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날 째려보는 눈이 빠질 것 같아 불쌍해서 지압봉을 가져다주었다.
“여기 있어요. 묘향언니.”
평소 자신의 이름을 불리 우는 것을 싫어하는 강모양이 아까보다 더 심하게 째려보았다.
‘오늘따라 왜 저리 날카롭데. 아빠가 다 모이라고 한 것 때문인가?’
오전에 아빠가 가족 모임을 소집한 것이 나도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어떤 것도 상의해서 결정하는 법이 없으셔서 뭔가를 다같이 의논하는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중요한 말씀을 하실 것 같기는 한데 혹시 양자를 입양한다는 것은 아니겠지?’
아들이 소원이었던 아버지는 끝내 아들을 얻지 못해 평생 그 아쉬움 속에서 사셔야 했다. 그래도 이 나이에 딸들도 네 명이나 되는 아버지가 양자를 입양한다 그건 좀 억지 추측 같다.
‘혹시 큰 언니의 정략결혼?’
그건 꿈이다.
‘숨겨둔 아들이 있는 건 아닐까?’
방정맞다.
꿈과 방정맞음을 오가며 손님의 발을 열심히 주물렀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 애비가 올해 환갑이다.”
환갑 문제로 부른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생신을 좀 챙기시긴 했다. 별 일 아니라는 안도감에 쓸데없는 생각을 한 내가 한심스러워졌다.
“그 즐거운 날에 노처녀 딸들을 쭉 세워 놓을 것을 생각하면 창피해서 잔치고 뭐고 안하고 싶다.”
그리고 깊은 한 숨. 아버지의 얼굴이 정말 창피를 당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노처녀를 둔 아버지도 측은해 보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가 생각해도 많이 창피할 것 같긴 하다.
친척들이 모여 단체로 수군거리는 모습.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을 것이다. 수백 명의 쑥덕새들. 하하하.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있다. 환갑 전까지 시집가는 딸에게 이 찜질방을 넘기겠다. 나는 이제 엄마랑 여행이나 다니며 편하게 살고 싶구나.”
이게 대체 무슨... 말?
순간 놀란 여자들은 모두 뻣뻣해졌다. 언니들을 보니 조각상 흉내 놀이라도 하는 듯 아빠의 발언에 감히 아무도 움직일 생각조차 못하는 듯 했다. 세 노처녀 상(像). 아름답지도 못하고 쓸데도 없어 보였다.
나도 순간 얼어버린 게 사실이다. 찜질방은 우리 집 전 재산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일 먼저 결혼한 딸에게 전 재산을 물러주겠다는 말은 말 그대로 폭탄선언이었다.
‘이를 어쩌지? 아빠 환갑이면 다섯 달 남았는데 결혼이라는 게 내일 당장 할 수도 없는 거구. 준비하는데 만 세달 치면 두 달 안에 남자를 데려와야 한다는 거잖아. 서루 오빠는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고. 현상 오빠에게 다시 말을 해봐야 하는 건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내가 갖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언니들에게 돌아갈 것이었지만 찜질방을 갖게 된다는 것은 큰 유혹이었다. 이제 내 경쟁 상대가 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흡.’
그녀들의 여섯 눈동자가 타고 있었다. 어떤 여인은 손을 불끈 쥐기도 했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로 우리들의 결혼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빠! 키위 아니 혜림이는 여기서 빼주세요. 막내고 나이도 너무 어리잖아요.”
‘셋째 언니, 너무하잖아?’
“시끄러. 다들 똑같애. 얘가 늦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아빠에겐 다 똑같은 자식이야. 알아들었으면 그만 집에 가서 쉬어라.”
집으로 오는 동안 평소 수다스러웠던 그녀들은 일체 말이 없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오늘 온 카페 사장 봤느냐, 가구점 아저씨가 자길 자꾸 쳐다보는 것 같지 않느냐 죄 없는 남자들을 씹어대야 정상인데 남자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집에 오자마자 언니들은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찜질방에서도 잘 안 씻는 그녀들이 먼저 씻겠다고 난리들이었다. 순위에 밀린 셋째 언니는 냉장고를 뒤적거리더니 마른 오이 두개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숨겼고, 둘째 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 엄마의 화장품을 훔쳐 가지고 나왔다.
‘어려보이고 싶은 게로군. 하하. 나이 문제는 나에게 유리한 걸.’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핸드폰에서 아는 남자들의 이름을 훑어보고 있었다.
‘일단은 문자부터 보내자. 답문자 오는 놈부터 공략에 들어가야지.’
문자를 보내고 있던 도중 전화가 걸려온 모양인지 얼떨결에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서루.. 오빠? 어제 일이 걸려 오늘 전화는 하지 않았는데. 궁금해서 전화를 한 건가?
kiwi (키위) - 08. 결혼전쟁의 시작
kiwi - 08
얼굴이 혼돈될 수 없는 가까운 거리에서 난 서루 오빠의 얼굴을 보았다. 옆에 손을 잡고 있는 여자를 보니 잘 생긴 게 그 때 말한 뮤직 비디오 출현하는 여자인 듯 했다.
당장 오빠를 깨워 일으켜 이 여자가 누구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잠든 오빠의 얼굴이 행복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게는 그럴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여자의 손을 잡고 행복해하는 서루 오빠를 계속 보는 것은 너무 비참한 일이어서 청소를 마치고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서 서루 오빠에 대한 섭섭한 마음보다 처음으로 나도 시집을 못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시달려야했다.
‘오! 노! 이러다가 10년 후에 엄마 빤스를 입고 집에서 뒹굴고, 명절을 고스톱으로 보내고... 아악!’
절대 싫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무 놈이나 잡아 결혼했다가 위자료나 듬뿍 받아 이혼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요즘은 서른여섯 노처녀보다 서른여섯 이혼녀가 이해받기 쉬운 세상이니까.
“혜림씨, 이 손님 기본 반사구 해드려요.”
“...”
“혜림씨, 내 말 안 들려요?”
“아, 네.”
“지금 뭐하는 거예요? 따뜻한 수건 부탁한 거는 어디 있어요?”
“잠시만요.”
또 다시 하루가 시작 되고 셋째 언니가 유일한 부하직원인 나를 볶아대고 있었다. 손님들 앞에서 직원에게 딱딱하게 굴어야 무시를 당하지 않는다나. 우리가 자매라는 사실을 손님들이 안다면 좋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언니 말이 맞는 것도 같아 내버려두고 있지만 조금 많이 재수는 없었다.
“혜림씨, 지압봉 큰 것 좀 갖다 줘요.”
“저 지금 맛사지 중인데요.”
째려보고 있다.
어쩌라구.
난 지금 만사 다 귀찮다고.
안 그래도 서루 오빠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날 째려보는 눈이 빠질 것 같아 불쌍해서 지압봉을 가져다주었다.
“여기 있어요. 묘향언니.”
평소 자신의 이름을 불리 우는 것을 싫어하는 강모양이 아까보다 더 심하게 째려보았다.
‘오늘따라 왜 저리 날카롭데. 아빠가 다 모이라고 한 것 때문인가?’
오전에 아빠가 가족 모임을 소집한 것이 나도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어떤 것도 상의해서 결정하는 법이 없으셔서 뭔가를 다같이 의논하는 일은 아닐 것 같았다.
‘중요한 말씀을 하실 것 같기는 한데 혹시 양자를 입양한다는 것은 아니겠지?’
아들이 소원이었던 아버지는 끝내 아들을 얻지 못해 평생 그 아쉬움 속에서 사셔야 했다. 그래도 이 나이에 딸들도 네 명이나 되는 아버지가 양자를 입양한다 그건 좀 억지 추측 같다.
‘혹시 큰 언니의 정략결혼?’
그건 꿈이다.
‘숨겨둔 아들이 있는 건 아닐까?’
방정맞다.
꿈과 방정맞음을 오가며 손님의 발을 열심히 주물렀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 애비가 올해 환갑이다.”
환갑 문제로 부른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생신을 좀 챙기시긴 했다. 별 일 아니라는 안도감에 쓸데없는 생각을 한 내가 한심스러워졌다.
“그 즐거운 날에 노처녀 딸들을 쭉 세워 놓을 것을 생각하면 창피해서 잔치고 뭐고 안하고 싶다.”
그리고 깊은 한 숨. 아버지의 얼굴이 정말 창피를 당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노처녀를 둔 아버지도 측은해 보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가 생각해도 많이 창피할 것 같긴 하다.
친척들이 모여 단체로 수군거리는 모습. 장관도 그런 장관이 없을 것이다. 수백 명의 쑥덕새들. 하하하.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있다. 환갑 전까지 시집가는 딸에게 이 찜질방을 넘기겠다. 나는 이제 엄마랑 여행이나 다니며 편하게 살고 싶구나.”
이게 대체 무슨... 말?
순간 놀란 여자들은 모두 뻣뻣해졌다. 언니들을 보니 조각상 흉내 놀이라도 하는 듯 아빠의 발언에 감히 아무도 움직일 생각조차 못하는 듯 했다. 세 노처녀 상(像). 아름답지도 못하고 쓸데도 없어 보였다.
나도 순간 얼어버린 게 사실이다. 찜질방은 우리 집 전 재산이나 다름이 없었다. 제일 먼저 결혼한 딸에게 전 재산을 물러주겠다는 말은 말 그대로 폭탄선언이었다.
‘이를 어쩌지? 아빠 환갑이면 다섯 달 남았는데 결혼이라는 게 내일 당장 할 수도 없는 거구. 준비하는데 만 세달 치면 두 달 안에 남자를 데려와야 한다는 거잖아. 서루 오빠는 다른 여자가 있는 것 같고. 현상 오빠에게 다시 말을 해봐야 하는 건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내가 갖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언니들에게 돌아갈 것이었지만 찜질방을 갖게 된다는 것은 큰 유혹이었다. 이제 내 경쟁 상대가 될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흡.’
그녀들의 여섯 눈동자가 타고 있었다. 어떤 여인은 손을 불끈 쥐기도 했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로 우리들의 결혼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빠! 키위 아니 혜림이는 여기서 빼주세요. 막내고 나이도 너무 어리잖아요.”
‘셋째 언니, 너무하잖아?’
“시끄러. 다들 똑같애. 얘가 늦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니고 아빠에겐 다 똑같은 자식이야. 알아들었으면 그만 집에 가서 쉬어라.”
집으로 오는 동안 평소 수다스러웠던 그녀들은 일체 말이 없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오늘 온 카페 사장 봤느냐, 가구점 아저씨가 자길 자꾸 쳐다보는 것 같지 않느냐 죄 없는 남자들을 씹어대야 정상인데 남자에 관한 정보를 공유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집에 오자마자 언니들은 욕실로 뛰어 들어갔다. 찜질방에서도 잘 안 씻는 그녀들이 먼저 씻겠다고 난리들이었다. 순위에 밀린 셋째 언니는 냉장고를 뒤적거리더니 마른 오이 두개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숨겼고, 둘째 언니는 안방으로 들어가 엄마의 화장품을 훔쳐 가지고 나왔다.
‘어려보이고 싶은 게로군. 하하. 나이 문제는 나에게 유리한 걸.’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핸드폰에서 아는 남자들의 이름을 훑어보고 있었다.
‘일단은 문자부터 보내자. 답문자 오는 놈부터 공략에 들어가야지.’
문자를 보내고 있던 도중 전화가 걸려온 모양인지 얼떨결에 전화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서루.. 오빠? 어제 일이 걸려 오늘 전화는 하지 않았는데. 궁금해서 전화를 한 건가?
“오빠?”
“... 혜림아!”
...?
전화 속의 서루오빠는 울고 있었다. 평소보다 늦은 전화. 거기다가 울고 있다니.
“오빠 무슨 일 있어요?”
“너... 나랑 결혼... 해줄 수 있다고 했지?”
울면서 결혼 이야기를 꺼내다니 이게 무슨 일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