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64.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무늬만여우공주2004.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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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뜨거운 태양열에 녹을 것 같은데...등에선 땀이 비오듯 하는데 크리스마스라고 다들 들떠있다.

아르헨티나는 크리스마스가 굉장히 큰 명절중의 명절이다.

도시에 산다면 크리스마스와 12월 마지막 날에는 차를 몰고 밖에 안 나다니는게 신상에 이롭다. 창문으로 장난성으로 던지는 작은 돌멩이 폭탄 세례를 받기 때문이다. 그게 서 있는 자리에서 길거리로 던지면 그냥 "빵!" 소리가 나며 터지며 즐거움을 주는데 아파트 7-8층에서 던지면 그 위력이 대단하다. .

"펑" 온 거리가 울리는 굉음이 들린다. 차들은 그 돌멩이 폭탄을 피하느라 곡예 운전을 하게 된다.

하긴 그 돌멩이 폭탄을 던졌는데 재수없이 울려퍼지는 지형에 있으면 차 유리가 나간 적도 있다

남미는 해마다 그 크리스마스 불꽃 축제때문에 나라마다 몇 십명씩 죽는 사고가 일어난다. 그 해에도 옆 동네 소녀가 폭죽이 눈에 맞아 실명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코카 병에 끼워놓고 불을 붙이면 하늘로 십여미터 날아가며 불꽃을 터뜨리는데 장관이다. 그걸 갖고 놀다가 병이 불안하게 놓여져 넘어지면 사람에게 달려드는거다.

한 소녀는 눈을 잃고 어떤 사람은 넓적다리 관통해서 꿰메러 가거나 한다. 크리스마스와 연초에 신문을 보면 그런 사건 투성이다. 그래도 해마다 사람들은 그 폭죽의 마력에 빠져든다.

랑도 크리스마스라고 푹죽을 하나가득 든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그 봉투를 들고 직원 집에 초대 되어서 갔다.

아사도 파티가 열렸다. 애들은 작은 불꽃들을 들고 우리 어릴 적 쥐불놀이 놀듯 까만 밤중에 돌리며 다닌다. 후훗. 나도 저런건 하고싶네. 하나도 안위험하니깐. 아들넘과 같이 돌려본다. 재밌다.

위험한 장난 좋아하는 랑은 직원들하고 폭죽놀이를 했다. 펑펑 터지는 소리가 심히 불안해서 남산만한 배가 더 딱딱해졌지만 그 불꽃은 정말 화려하고 이뻤다.

동네 입구에는 대형 트리가 세워져서 정말 아릅답게 장식이 되어있다. 동네마다 가보면 돈이 도는 동네인지 아닌지 그 트리로 구분이 될 정도다. 우리가 살던 동네는 그래도 좀 사는 동네라 작은 규모에 비해 트리는 큰 도시처럼 멋드러지게 해놨다.

십미터도 더 되는 높이의 트리에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와 썰매를 끄는 사슴들이 전구로 만들어져 밤하늘에서 반짝인다. 멀리서 차를 타고 가다 동네 위에 떠있는 그 트리를 보면 환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멋있었다.

랑은 이 더운 날 사람들과 맥주를 돌려가며 마셨다.
술 못마시는 내게 랑은 자꾸 맥주를 권했다. 너무 시원하니 한 모금만 마셔보랜다. 시원하다는 유혹에 빠져 한 모금 마셔봤다. 그 순간엔 정말 시원했다. 그러나 십분 정도 지나니깐 온 몸이 화끈거리며 가뜩이나 더운데 더 더웠다. 미치고 팔딱 뛸 정도였다. 등에선 땀이 줄줄 흘러내려 짜증이 났다.

라디오에서는 계속 케롤송이 울려퍼지고 코와 등에선 쉴 새 없이 땀이 흘러내리는 이상한 크리스마스였다. 아, 눈이 쌓인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너무나 그리웠다.

내가 다녔던 작은 개척교회 크리스마스 행사들이 떠올라 슬퍼지기까지 했다. 새벽송을 돌며 성탄송을 불러주었는데...그렇게 집집마다 다니면 팥죽을 내오던 할머니, 박하사탕이며 꽈배기를 내오던 아줌마, 또 아예 잠들어 문조차 열어보지 못하는 집들

연말이 다 되어가니 그런 자잘한 일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팥죽이 너무 먹고싶었다. 시골에 올 때 팥을 가져온 게 있어서 팥죽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원래 동지섣달 그믐에 먹어야 좋다고 했지 않은가.

팥을 삶고 아끼던 찹쌀가루로 풀도 쑤고, 팥 삶은걸 체에 내려서 살살 저으며 팥죽을 끓였다. 그 더운날 먹겠다는 일념으로 코에 잔뜩 땀을 맺혀가며 팥죽을 완성 시켰다. 밥도 좀 집어넣고, 새알도 좀 만들어넣고, 꿀집이니 꿀도 좀 넣고....먹어보니 싱거둔듯하다. 소금을 집어넣었다.

와~ 정말 맛있었다.

팥죽을 퍼서 근처 한국 사람집에 돌렸다. 양씨 아저씨네 그리고 그 사돈댁, 다들 맛있다고 칭찬해줬다. 배불뚝이가 해와서 더 맛있댄다. 저 멀리 있는 팔라시오스 동네는 저녁 나절 같이 염소를 구워먹기로 했기에 한 솥 싸가지고 갔다.

연말이니깐 모여서 파티하자고 동네에다 맞췄댄다. 동네 청년들이 염소를 잡아다 손질해서 갖다줬다. 염소는 만세 자세로 불 옆에 걸렸다.
이궁. 불쌍해라. 선입견인지 모르지만 난 맛이 별루였다. 쇠고기가 난듯했다. 그래도 몸에 좋다니깐 열심히 먹었다.

한 밤중에 팥죽도 나눠먹고, 뒷 뜰 포도나무에 가서 포도가 열렸나도 확인했다. 아직 먹을 포도가 없다고 우겼지만 가봤더니 웬걸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아직 파랗게 익어서 시어 보였지만 그 중 달만한 걸루 따달라고 쫄라서 한 송이 얻어냈다.

아직 익지 않아서 온 입에 침이 가득 고였지만, 워낙 나야 포도는 씨도 안발르고 꿀꺽 꿀꺽 잘 먹기에 눈물나게 맛있게 먹었다. 임신부 너무 먹어대서 배가 위험하다고 놀렸지만, 개의치않고 맛나게 먹었다.

참외 고랑에 가서도 먹을만한 작은 참외도 몇 개 따와서 한 조각씩 나눠먹었다. 나두 내년엔 참외를 심어볼까나~ 되게 맛있네.

저녁 잠이 많으신 아버님 때문에 일찍 자리를 떴다. 그 정도도 많이 참아주셨으니 일어나야지. 한 시간은 더 가야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가 나오니깐 부지런히 서둘러야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엔 항상 식구들끼리 노는 문화가 있어서 거리엔 차하나 안다녔다. 트럭도 쌩쌩 달리는 남미를 관통하는 빤 아메리카나 그 길엔 개미새끼 하나 안보였다. 너무 조용했다. 오는 차도 가는 차도 없었다. 오로지 우리차만 외롭게 달렸다.

멀리 감색 달은 나뭇가지에 걸려있었다.
작년의 반딧불 향연이 생각나서 미소가 지어졌다. 반딧불은 없지만 지금 상태로도 고요한 풍경이 내 맘을 안정 시켰다.

우리 창고를 지나 동네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엔 크리스마스가 지났지만 여전히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 사슴은 부지런히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