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65 추수를 마치며

무늬만여우공주2004.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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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생활이 길어지며 내 지병인 우울증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새벽에 들판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에 시작된 잔기침은 임신부라 약을 못쓰는 내게 괴로움을 주었다.

새벽의 서늘한 기운에 비해 낮의 오븐 속같은 뜨거움은 사람을 너무 지치게 했다.

비오는 날은 양봉일은 멈춰져야 했다. 찰흙같은 땅인 산타페에서 비를 만나면 길이 미끄러워서 아주 곤란하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은 항상 일하시기를 즐기시는 아버님은 일거리를 찾아서 헤매셨다. 정 일거리가 없으면 애꿎은 나무라도 잘라다 윤희 장난감 칼이나 권총이라도 만드셔야 속이 편한 분이시다.

처음에 결혼해서 살며 참 그게 이해가 안됐었다. 하루종일 집안엔 나무 톱밥이 날라다니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하루종일 나무를 톱으로 자르시거나 차고로 가셔서 쇠톱으로 철근을 잘라대시거나 했기 때문이다.
아들들은 그런 아버님을 도와줄 생각을 별로 안하고 그냥 아버님 취미 생활이시니 가만 냅두라곤 했다. 하긴 허구헌날 그렇게 부지런하니 일하시니 거기 보조를 맞춰서 도와드릴 요새 사람이 없지싶다.

아버님은 드디어 아주 좋은 일거리를 발견을 하셨다. 소초판대는 작업이다.
소초는 벌집의 기초가 되는 밀납으로 된 볼록 육각형 벌집이 그려진 그림판이다. 그걸 직사각형으로 짠 나무 틀에 철사로 가운데 두개 이어진 데다 대고 살짝 뜨거운 열을 가해주며 붙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 소초는 나무의 중간쯤에 붙어져서 벌통에 넣어지는데 벌은 그 위에다 집을 규격에 맞게 지어서 꿀을 꽉 꽉 채워넣는 것이다. 그리고 밀납으로 그 구명들을 다 막는다.

아버님은 그 일거리를 챙겨와서 우리와 같이 했다. 그 일은 단순작업이라 난 되게 재미있어 했는데 랑은 지루해했다. 근데 내가하면 꼭 손을 데이거나하며 일을 저질러서 아버님과 랑은 애나 잘보라고 근처도 못오게 했다.

아버님과 랑은 일꾼들을 데리고 가서 벌통마다 그 채워진 꿀을 가지고 오고 그 빈 소초를 넣어주고 오는거다.

어느 정도 꿀이 모아지면 예전엔 수동으로 판을 두세개 세워놓고 원심력을 이용해 꿀을 채취했는데 욕심많은 랑은 그걸 다 자동으로 해놨다.
열개의 판을 껴놓고 기계를 작동 시키면 저절로 윙~ 돌아가며 꿀이 나온다. 그 판을 끼우기전에 밀납으로 매워놓은 구멍들을 뜨겁게 달구어진 칼로 쓰윽 위를 잘라내주고 넣었다. 거기에 잘려진 단면에 묻어있는 꿀에서 아름답고 맛있는 꽃향이 났다.

꿀은 통 밑으로 물처럼 쏟아지며 커다란 저장탱크로 간다. 랑은 거기에서 수도처럼 연결해 놓은 꼭지로 드럼통에 꿀을 받아서 팔거나 창고에 저장했다.

아버님은 한국에 가져갈 꿀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소규모로 팔 꿀을 하나씩 담으셨다.

커다란 드럼통은 보통 310키로정도 한다. 그 꿀을 닫기전엔 옆에 가면 꽃향이 진동을 한다.

가끔 아들을 데리고 창고에 쫓아가서 그 일하는 광경을 보곤했는데 기껏 잘 구경해봤자 한시간 정도이고 이내 우린 지루해한다. 게다가 꿀이 많으니 사방 팔방에서 도둑벌들이 시시때때로 들어올 준비가 되어있기에 알레르기성 체질인 아들넘과 난 벌도 조심을 해야했다.

그 드럼에 담겨진 꿀을 트럭에 싣는게 이만저만 큰 일이 아니었다. 무게가 310 킬로그램이니 말이다.

랑은 두개의 널빤지를 트럭 짐칸에 대고 도르레를 이용해 드럼을 눕혀서 굴려서 올리거나 했다. 한번은 올리고 있는데 아버님이 나도 도와서 밀라고 하셨다. 그래서 거기에 나도 합세를 하곤했는데 랑은 그럴 때마다 비키라고 신경질을 내곤했다. 생각해보니 참 우습고 아찔한 광경이긴하다. 배가 남산만한 여자가 그걸 떨어질까봐 같이 밀었으니 혹시라도 실수해서 나한테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 사고가 나는게 아닌가.

아버님도 이내 그걸 생각하시고 나와 아들넘은 멀리 비켜 있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채취된 꿀은 일년 동안 우리가 생활할 생활비에다 또 양봉에 재투자할 돈이 되어야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참 괜찮은 직업이긴하다. 일년 중 서너달 고생하고 7-8개월을 비교적 편하게 지내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성격이 불같은 랑과 아버님은 이틀에 한 번씩 다투셨다.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속상해하셔서 난 죄송스러웠고, 랑은 랑대로 화나서 씩씩댔다. 이제 다 추수가 끝나가니깐 자긴 먼저 차끌고 올라간댄다. 나보고 아들데리고 아버님 모시고 버스타고 오랜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아버님은 저 나쁜 넘이 뎀비고 아버님이 아끼시는 한국에서 가져온 커다란 고무다라를 부셨단다. 이궁.

랑은 랑대로 너무 고집불통에 말이 안통하는 아버님과 더이상 일을 못하겠다고하니 나보고 어쩌란건지. 원.

내가 보기엔 랑은 숲을 보고 우기고 아버님은 나무를 보고 우기는 격이었다. 둘이 어우러져서 의견을 합치면 되는데 둘 다 너무 고집불통에 성격이 불처럼 화르르 타오르니 문제였다.

랑은 화난다고 여행을 간다나. 파라과이를 가든지 브라질을 가든지 다녀온단다.

기가 막혔다. 이젠 내가 화가 났다.
도대체 한 가정의 가장이 맞는거냐고 따졌다.

"내가 임신해서 배불뚝이로 있는데 나랑 아이를 놔두고 여행을 가신다? 헐~!"

아이가 나올 때 쯤이면 돌아온댄다.
가라고 했다.
가서 아예 돌아오지 말라고, 나 볼 생각 하지 말라고 엄포를 놨더니 여행간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랑의 나이 철부지 때인 20대 중반 바로 넘어설 때 였다.

그렇게 창고를 정리하고 겨울 채비를 해놓은 다음 우린 다시 투닥거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향한 여행을 했다.

난 중간에서 가만히 바닥만 보고 있었고, 눈치 없는 아들 녀석은 차에서 까불다 할아버지에게 된통 야단을 맞곤했다.

아들넘 맑고 커다란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은 웃음을 자아내게 했지만 난 감히 웃을 엄두도 못내고 분위기에 눌려 기가죽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