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핸드폰을 닫아버린 후에도 계속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그 말이 결혼으로 내딛는 내 첫발을 즐겁지 못하게 잡아 버린 것이다.
‘이제 와서, 웃기고 있네.’
현상 오빠와 만나는 6개월 동안 난 결혼 적격자로 보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왔었다. 순종적인 여자인 척, 가정적인 여자인척, 세상 남자들은 안 보이고 오직 현상 오빠만 보이는 척. 현상 오빠는 잘도 속아주었다. 때론 잘해주는 날 무시한 적도 있었지만 나의 ‘척’에 잘 속아주고 있는 증거처럼 보여 흡족해 했었다.
남자들은 이상하게 자신에게 헌신적인 여자들을 무시하고 튕기는 여자들에게는 온갖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튕기는 여자들에게는 호의만 갖고 헌신적인 여자를 데리고 살기 편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막상 헤어지고 보니 나만한 여자가 없었겠지.’
내 머리 속에는 이미 사랑해라는 말이 널 놓치기 싫어라는 말로 변질되고 있었다.
문자를 받은 후 현상 오빠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서루 오빠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급했어도 청혼을 전화로 하다니 말이야. 하루가 늦어져도 꽃 한발 들고 와서 직접 말해주는 성의는 있어야지 너무 하네, 진짜.’
하지만 곧 그런 자신이 너무 웃겼다.
‘후훗, 다른 남자에게 사랑고백을 받고 보니 전화로 받은 청혼이 우습게 보이는 거야, 지금? 나 왜 이리 간사한 거니?’
***
‘아야, 머리 아파.’
하루 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려다 늦게 잠 든 탓인지 눈을 떴을 때는 출근 시간 30분전이었다.
찜질방을 물려주겠다는 아빠의 말, 서루 오빠의 청혼, 현상 오빠의 사랑 고백.
어제 일어난 세 사건이 맥주에 양주, 거기에 소주를 섞은 폭탄주가 되어 아침까지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12시까지? 늦었네. 빨랑 준비 해야겠다.’
시간을 보려고 들여다 본 핸드폰 속에는 서루 오빠가 아침 일찍 보낸 일방적으로 정해버린 약속시간과 재촉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언니들은 일어났나? 늦게 잔 것 같았는데.’
일어나 보니 언니들은 음흉한 의도로 나를 깨우지 않고 자기들만 분주히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일찍 일어나서 벌써 준비를 다 마친 모양이었다.
‘치사하게 깨우지도 않는다 이거야? 그리고 뭐야, 저건? 어쭈. 밤새 생쇼들을 했구만.’
하루 만에 언니들은 어릴 적 봤던 당당한 그녀들로 돌아가 있었다. 속에 뭘 껴입었는지 큰 언니의 허벅지는 20대로 돌아가 있었고, 작은 언니도 눈가의 주름을 교묘히 감춰버렸고, 셋째 언니도 지수원 비스므리한 머리 스타일이 되어 있었다.
신데렐라를 재 투성이 아가씨에서 파티의 주인공으로 만든 마법사가 다녀간 듯 그녀들의 변신은 실로 놀라웠다. 예전에,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언니들 셋은 집밖을 나서면 모두가 눈길을 줄 정도로 봐줄 만은 했었다. 하지만 변신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쁘다는 생각보다는 하루 만에 시간을 되돌린 그녀들의 집념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언니! 나 왜 안 깨웠어?”
“키위, 이제 일어났니? 피곤해 보여서 안 깨웠어. 아침부터 짜증내면 얼굴 망가져. 빵 남은 거 있으니까 천천히 먹구 나와.”
데렐라 자매들은 목소리까지 바뀐 모양이었다. 정말 무서웠다.
“머리는 괜찮니?”
데렐라2가 염려스런 눈빛을 담아 보낼 때는 몸서리가 처칠 정도였다.
“키위야, 엄마한테는 피곤해서 늦잠 잤다고 말해 놓을테니 천천히 와.”
데릴라3은 이 와중에도 고자질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냥한 데렐라 자매들이 집 밖으로 나갈 때까지 저 웃음들 속에 무슨 계략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쿵. 철커덕.
‘설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밖에서 문을 잠궈 버린 것 아니야?’
다행히 문은 잘 열렸다.
‘어휴, 깜짝 놀랐네. 이러다 시집가기 전에 정신병 걸릴 지도 모르겠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사실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엄마에게 정장을 살 돈을 받은 후에 가까운 백화점에 들러 옷부터 사는 일이 급했다. 서루 오빠의 이른 재촉 전화에 발걸음은 더 빨라져 일어난 지 한 시간 만에 백화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30분밖에 없잖아.’
할 일 없이 택시에 앉아 있을 동안에도 시간이 왜 이리 잘 가는지 길바닥에서만 30분을 허비해버려 옷을 살 시간은 많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잠시 만요.”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들을 밀쳐내며 급히 여성복 매장으로 올라가서는 숨이 찰 정도로 매장을 뛰다시피 둘러보고 있었다.
‘웬 옷이 왜 이리 많아?’
막상 많은 옷들을 보니 막막해졌다. 어른들은 만날 거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문제가 있을 것 같고, 저것도 걸리고, 쉽게 눈에 띄는 옷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성적으로 보이는 것이 좋을 듯해서 프릴이 양팔 끝에 달린 귀여운 분홍 정장을 꺼내 들었다.
‘날 위해 만들었구만. 딱 내 스타일인걸.’
하지만 공주풍 정장과 거울 속의 나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화장기는 없는 것은 물론 로션도 바르지 못한 피부는 찬 바람을 맞아 하얗게 일어나 있었고, 뛰어 다니다가 산발이 된 머리는 초라함의 극치였다.
“잘 어울리는 데요. 면접 보러 가시나 봐요?”
판매원 여자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내게 다가왔다.
“아니요. 시부모님 될 분 만나러 가야 하거든요.”
나의 말에 그 여자는 내 배부터 내려다보았다.
‘뭐야 저 표정은?’
어린 애가 사고 쳤구나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소설을 써라.’
“아, 그러세요. 나이가 어리신 분이니까 너무 심플한 디자인보다는 지금 고른 옷이 더 좋겠어요. 요즘 어른들은 너무 얌전한 스타일만 고집하지 않으시거든요.”
“제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 화장을 안 하셨으니까 그렇죠. 화장하면 지금이랑 틀리죠.”
맞다. 공주가 되려면 화장은 필수인 거다.
점원의 말에도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 슬쩍 분홍 정장을 내려놓았다.
“왜요? 어른들이 좋아하실 스타일인데요.”
‘자기가 서루 오빠 부모님 취향을 알아? 나도 모르는데.’
정작 부모님의 취향을 알고 있는 오빠는 내 곁에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결혼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부모님 인사갈 옷을 살 때는 다정하게 옆에서 골라주고, 옷은 산후에는 다른 매정을 돌면서 신혼집에 채울 살림들을 고르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빠에게 조언을 얻는 게 낫겠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옷 사러 왔는데요. 뭘 살지 모르겠어요. 좀 밝은 색이 나을지 아님 좀 어두운 색상이 나을까요?”
“내가 여자 옷은 잘 몰라서. 그냥 아무 거나 사. 병원 어딘지 알지?”
“안 가봤는데 택시타고 가려구요. 아마 운전기사분이 아시겠죠.”
“그래. 시간 늦지 않게 와라. 이따 보자.”
‘정말 너무하네. 색시 될 사람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그냥 문병 오는 사람에게도 이러지는 못하겠다.’
서루 오빠의 반응에 마음이 왠지 허전해졌다.
***
‘어, 나와 있겠다고 했는데.’
아까 초라한 내 모습에 주눅이 들어서일까 평소보다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감추고 집을 나섰다. 오빠가 나와 있겠다고 한 병동에 도착했을 때 오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혜림아!”
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 서루 오빠가 있었다. 하루 만에 바뀐 것은 언니들만이 아니었다. 염색한 듯한 인위적인 검은 색 머리의 서루 오빠는 꼭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흰 피부와 어울리는 하늘 색 셔츠와 감색 양복, 곱게 빗어 넘긴 검은 머리. 안경을 쓰지 않은 얼굴은 온화한 느낌을 주었고, 퍽 멋져 보였다.
완벽하고 깔끔한 신랑감의 모습에 만족스러워서 서운했던 감정은 씻은 듯이 잊고, 나의 얼굴은 금세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인사해. 우리 어머니셔.”
“안녕하세요? 강혜림입니다.”
어머니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꿈에 그리던 센스있고, 기품있는 시어머니 상이었다. 서루오빠, 어머니. ‘결혼을 위한’ 프로젝트 팀이 이제 막 만난 것이다.
‘완벽해. 좋아. 좋아.’
“대학을 안 갔다고?”
나의 간략한 소개에 온화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래서 지금은 뭐하니?”
“찜질방에서 일하고 있어요. 부모님께서 집안일을 돕기를 원하셔서요.”
사람들에게 직업을 설명할 때마다 찜질방이라는 단어에 항상 부모님이란 말을 달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모님이라는 말에 그제야 서로 오빠의 어머님의 표정도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kiwi (키위) - 10. 결혼을 위한 프로젝트팀
10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말이 핸드폰을 닫아버린 후에도 계속 머리에 맴돌고 있었다.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그 말이 결혼으로 내딛는 내 첫발을 즐겁지 못하게 잡아 버린 것이다.
‘이제 와서, 웃기고 있네.’
현상 오빠와 만나는 6개월 동안 난 결혼 적격자로 보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 왔었다. 순종적인 여자인 척, 가정적인 여자인척, 세상 남자들은 안 보이고 오직 현상 오빠만 보이는 척. 현상 오빠는 잘도 속아주었다. 때론 잘해주는 날 무시한 적도 있었지만 나의 ‘척’에 잘 속아주고 있는 증거처럼 보여 흡족해 했었다.
남자들은 이상하게 자신에게 헌신적인 여자들을 무시하고 튕기는 여자들에게는 온갖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튕기는 여자들에게는 호의만 갖고 헌신적인 여자를 데리고 살기 편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막상 헤어지고 보니 나만한 여자가 없었겠지.’
내 머리 속에는 이미 사랑해라는 말이 널 놓치기 싫어라는 말로 변질되고 있었다.
문자를 받은 후 현상 오빠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서루 오빠에게 섭섭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급했어도 청혼을 전화로 하다니 말이야. 하루가 늦어져도 꽃 한발 들고 와서 직접 말해주는 성의는 있어야지 너무 하네, 진짜.’
하지만 곧 그런 자신이 너무 웃겼다.
‘후훗, 다른 남자에게 사랑고백을 받고 보니 전화로 받은 청혼이 우습게 보이는 거야, 지금? 나 왜 이리 간사한 거니?’
***
‘아야, 머리 아파.’
하루 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려다 늦게 잠 든 탓인지 눈을 떴을 때는 출근 시간 30분전이었다.
찜질방을 물려주겠다는 아빠의 말, 서루 오빠의 청혼, 현상 오빠의 사랑 고백.
어제 일어난 세 사건이 맥주에 양주, 거기에 소주를 섞은 폭탄주가 되어 아침까지 머리를 아프게 하고 있었다.
‘12시까지? 늦었네. 빨랑 준비 해야겠다.’
시간을 보려고 들여다 본 핸드폰 속에는 서루 오빠가 아침 일찍 보낸 일방적으로 정해버린 약속시간과 재촉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언니들은 일어났나? 늦게 잔 것 같았는데.’
일어나 보니 언니들은 음흉한 의도로 나를 깨우지 않고 자기들만 분주히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일찍 일어나서 벌써 준비를 다 마친 모양이었다.
‘치사하게 깨우지도 않는다 이거야? 그리고 뭐야, 저건? 어쭈. 밤새 생쇼들을 했구만.’
하루 만에 언니들은 어릴 적 봤던 당당한 그녀들로 돌아가 있었다. 속에 뭘 껴입었는지 큰 언니의 허벅지는 20대로 돌아가 있었고, 작은 언니도 눈가의 주름을 교묘히 감춰버렸고, 셋째 언니도 지수원 비스므리한 머리 스타일이 되어 있었다.
신데렐라를 재 투성이 아가씨에서 파티의 주인공으로 만든 마법사가 다녀간 듯 그녀들의 변신은 실로 놀라웠다. 예전에, 벌써 10년 전 일이지만 언니들 셋은 집밖을 나서면 모두가 눈길을 줄 정도로 봐줄 만은 했었다. 하지만 변신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쁘다는 생각보다는 하루 만에 시간을 되돌린 그녀들의 집념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언니! 나 왜 안 깨웠어?”
“키위, 이제 일어났니? 피곤해 보여서 안 깨웠어. 아침부터 짜증내면 얼굴 망가져. 빵 남은 거 있으니까 천천히 먹구 나와.”
데렐라 자매들은 목소리까지 바뀐 모양이었다. 정말 무서웠다.
“머리는 괜찮니?”
데렐라2가 염려스런 눈빛을 담아 보낼 때는 몸서리가 처칠 정도였다.
“키위야, 엄마한테는 피곤해서 늦잠 잤다고 말해 놓을테니 천천히 와.”
데릴라3은 이 와중에도 고자질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상냥한 데렐라 자매들이 집 밖으로 나갈 때까지 저 웃음들 속에 무슨 계략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쿵. 철커덕.
‘설마...’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밖에서 문을 잠궈 버린 것 아니야?’
다행히 문은 잘 열렸다.
‘어휴, 깜짝 놀랐네. 이러다 시집가기 전에 정신병 걸릴 지도 모르겠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사실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엄마에게 정장을 살 돈을 받은 후에 가까운 백화점에 들러 옷부터 사는 일이 급했다. 서루 오빠의 이른 재촉 전화에 발걸음은 더 빨라져 일어난 지 한 시간 만에 백화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런, 30분밖에 없잖아.’
할 일 없이 택시에 앉아 있을 동안에도 시간이 왜 이리 잘 가는지 길바닥에서만 30분을 허비해버려 옷을 살 시간은 많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잠시 만요.”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들을 밀쳐내며 급히 여성복 매장으로 올라가서는 숨이 찰 정도로 매장을 뛰다시피 둘러보고 있었다.
‘웬 옷이 왜 이리 많아?’
막상 많은 옷들을 보니 막막해졌다. 어른들은 만날 거라고 생각하니 이것도 문제가 있을 것 같고, 저것도 걸리고, 쉽게 눈에 띄는 옷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성적으로 보이는 것이 좋을 듯해서 프릴이 양팔 끝에 달린 귀여운 분홍 정장을 꺼내 들었다.
‘날 위해 만들었구만. 딱 내 스타일인걸.’
하지만 공주풍 정장과 거울 속의 나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화장기는 없는 것은 물론 로션도 바르지 못한 피부는 찬 바람을 맞아 하얗게 일어나 있었고, 뛰어 다니다가 산발이 된 머리는 초라함의 극치였다.
“잘 어울리는 데요. 면접 보러 가시나 봐요?”
판매원 여자가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내게 다가왔다.
“아니요. 시부모님 될 분 만나러 가야 하거든요.”
나의 말에 그 여자는 내 배부터 내려다보았다.
‘뭐야 저 표정은?’
어린 애가 사고 쳤구나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소설을 써라.’
“아, 그러세요. 나이가 어리신 분이니까 너무 심플한 디자인보다는 지금 고른 옷이 더 좋겠어요. 요즘 어른들은 너무 얌전한 스타일만 고집하지 않으시거든요.”
“제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 화장을 안 하셨으니까 그렇죠. 화장하면 지금이랑 틀리죠.”
맞다. 공주가 되려면 화장은 필수인 거다.
점원의 말에도 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 슬쩍 분홍 정장을 내려놓았다.
“왜요? 어른들이 좋아하실 스타일인데요.”
‘자기가 서루 오빠 부모님 취향을 알아? 나도 모르는데.’
정작 부모님의 취향을 알고 있는 오빠는 내 곁에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결혼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부모님 인사갈 옷을 살 때는 다정하게 옆에서 골라주고, 옷은 산후에는 다른 매정을 돌면서 신혼집에 채울 살림들을 고르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빠에게 조언을 얻는 게 낫겠다 싶어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옷 사러 왔는데요. 뭘 살지 모르겠어요. 좀 밝은 색이 나을지 아님 좀 어두운 색상이 나을까요?”
“내가 여자 옷은 잘 몰라서. 그냥 아무 거나 사. 병원 어딘지 알지?”
“안 가봤는데 택시타고 가려구요. 아마 운전기사분이 아시겠죠.”
“그래. 시간 늦지 않게 와라. 이따 보자.”
‘정말 너무하네. 색시 될 사람한테 이래도 되는 거야? 그냥 문병 오는 사람에게도 이러지는 못하겠다.’
서루 오빠의 반응에 마음이 왠지 허전해졌다.
***
‘어, 나와 있겠다고 했는데.’
아까 초라한 내 모습에 주눅이 들어서일까 평소보다 진한 화장으로 얼굴을 감추고 집을 나섰다. 오빠가 나와 있겠다고 한 병동에 도착했을 때 오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혜림아!”
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 서루 오빠가 있었다. 하루 만에 바뀐 것은 언니들만이 아니었다. 염색한 듯한 인위적인 검은 색 머리의 서루 오빠는 꼭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흰 피부와 어울리는 하늘 색 셔츠와 감색 양복, 곱게 빗어 넘긴 검은 머리. 안경을 쓰지 않은 얼굴은 온화한 느낌을 주었고, 퍽 멋져 보였다.
완벽하고 깔끔한 신랑감의 모습에 만족스러워서 서운했던 감정은 씻은 듯이 잊고, 나의 얼굴은 금세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인사해. 우리 어머니셔.”
“안녕하세요? 강혜림입니다.”
어머니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꿈에 그리던 센스있고, 기품있는 시어머니 상이었다. 서루오빠, 어머니. ‘결혼을 위한’ 프로젝트 팀이 이제 막 만난 것이다.
‘완벽해. 좋아. 좋아.’
“대학을 안 갔다고?”
나의 간략한 소개에 온화하던 어머니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래서 지금은 뭐하니?”
“찜질방에서 일하고 있어요. 부모님께서 집안일을 돕기를 원하셔서요.”
사람들에게 직업을 설명할 때마다 찜질방이라는 단어에 항상 부모님이란 말을 달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모님이라는 말에 그제야 서로 오빠의 어머님의 표정도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발맛사지?”
다시 표정이 좋아지지 않았다.
“언니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거든요. 독일이랑 일본이요. 발 관리사가 요즘 전망이 좋다고 하잖아요.”
외국이라는 말에야 또 표정이 펴진다.
“그래. 일단 들어가자.”
어머니가 들어가자고 한 병실은 1인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침대에 서루 오빠를 닮은 나이든 남자가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강혜림이라고 합니다.”
조금은 경직되어 있는 목소리로 인사를 드렸다.
“응. 어서와. 이리 앉아. 여보, 음료수 좀 내와.”
아버님의 말에 어머니가 냉장고 문을 여셨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구만. 그래, 지금 뭘 하나?”
“대학생이래요.”
방금 전 내 얘기를 모두 들은 어머니가 나대신 대답을 하셨다.
“그렇겠군, 나이가 어리니.”
졸지에 팔자에 없는 대학생이 되어버린 나는 처음으로 결혼에 대한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