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67. 두 번째의 출산

무늬만여우공주200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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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첫아이 때의 경험으로 내가 십만명중에 하나 있는 특이 체질인걸 알았다. 그래서 그 고생을 하며 아이를 낳았고, 말도 안통하는 땅에서 죽을 뻔한 위기를 가졌던 것이다.

난 가진통이 없다.
아이가 나오려면 먼저 나올 꺼라는 신호를 보내는게 가진통이다. 그래서 산모도 준비하고 의사도 준비하고 식구들도 준비를 하게 만드는 거다. 하지만 난 그 진통이 아예 없다. 그래서 언제 아이가 나올지 예측불허다.

나같은 사람이 길가다 애 낳고 택시에서 애 낳고 그러는 걸꺼다. ㅎㅎㅎ

첫 애를 받은 의사는 너무 힘들게 아이를 낳은 날 기억하며 세심하게 신경을 써줬다.

시골에서부터 있던 잦은 기침은 많이 가라앉아 있어서 편했지만, 빈혈이 심해서 철분약을 많이 필요로 했다. 하지만 철분약은 위가 약한 내겐 너무도 강해서 제대로 먹질 못했다. 몸이 많이 쇠약해진 상태였다. 과연 아이를 자연 분만할 힘이 있을지도 몰랐다.

주위 친한 분들은 아이를 잘 낳게 해야한다고 날 데리고 가셔서 돼지고기도 멕이려하고 호두도 좋다고 호두도 사주시곤 했다. 그렇지만 도무지 입맛이 없어서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하루종일 앵무새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씨만 까서 먹었다.

출산일을 일주일 앞두고 의사가 하루에 두 번씩 진찰을 하러 오랜다. 진통이 없으니 서로가 불안했다.

그래도 아이를 낳으면 놀러가질 못하니 놀러갈 요량을 김밥을 싸서 작은 공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병원에 들려서 진찰을 받았다. 의사들이 비상이 걸렸다. 이미 아이가 나오려고 한다나.
자궁문이 다 열렸댄다. 에구.....근데 왜 난 아무 느낌도 없는 것이여.
의사들은 날 눕혀놓고 내진한답시고 이 의사 저 의사 세네명이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그랬다.
아 싫다. 기분 나빴다.
위험하다고 판단한 의사들은 유도분만을 시도한다며 날 분만실로 올려보냈다.

침대에 눕자마자 따스한 양수가 터지며 격렬한 진통이 왔다. 그 진통이 쉬임이 없어서 눈물이 났다. 너무 아파서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입을 벌려 아픔을 호소하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간호원만 울면서 쳐다봤다.

임신복이 젖은 걸 보고 양수가 터진걸 눈치 챈 간호사가 의사들을 호출했다. 랑도 이번엔 자기가 옆에 있어준다며 올라왔다. 그들은 초록색 가운을 입고 날 분만실로 데리고 갔다.

랑은 의사들에게 진통을 약화시킬 방도가 없냐고 물었다.
그들은 약간의 마약을 놓아서 무통분만을 시도하는게 있다고 했다. 랑은 그걸 처방해달라고 해서 내 링겔에는 소량의 마약이 투입되었다.

난 마취약에 참 약한 사람이다. 술도 못마시고, 약도 쎈 약은 못먹는 사람인데, 그들은 소량이라고 넣은 것이 내겐 굉장히 쎈 것 같았다. 바로 내 주위가 혼돈상태가 되면서 분만실이 물감섞이듯 섞여 보였다, 바로 보였다 했다.

옆에서 날 지켜주는 자칭 내 엄마인 '오펠리아' 선생님도 와서 내 손을 잡아 주었는데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르니 그 말이 수십개의 메아리가 되어서 내 주위를 맴돌았다.

"헤~ 헤~ 헤~~~~~~ 후에르떼(힘내)~ 떼~ 떼~ 떼~"

랑도 와서 말을 시켰다.

"괜찮니? 니~ 니~ 니~ 니~"

난 너무 아파서 말을 못했다. 랑은 대답을 안한다고 다그쳐 물었지만 난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아픈건 덜했지만 그 이상한 증상에 적응하느라 힘이 들었다.

랑은 둘째가 나오는 장면을 고스란히 다 봤다. 아 창피하고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난 랑이 들어오는게 싫어서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랑은 우기고 들어왔다.

랑 앞에서 옷도 안갈아입고 그런 모습 보이기 싫어했는데 이런 장면을 보여준다는게 더 싫었지만 할 수 없었다.

아가는 딸이라 그런지 부드럽게 빠져나왔다. 아픈 것도 덜해서 참을만했다. 마약의 힘이 대단한가부다. 랑은 좋아서 딸 낳았다고 꽃다발도 병실에 사다놓고 난리를 부렸다.

난 좀 섭했다. 아들이면 더 좋았을껄 하는 욕심이 생겼다.

아들은 낳을 때부터 어깨가 떡 벌어지며 머리도 크고 그랬는데 딸은 너무도 부드럽고 동그랬다. 머리도 작았다. 여리디 여린 아가가 길다란 손가락을 꼼지락 거렸다. 아들 녀석은 나 닮아서 손가락이 짧았는데 얘는 외할머니를 닮았나 아주 길었다.

첫 애를 낳았을 때는 이런 느낌이 없었는데....이뻐서 너무 이뻐서 감동이 왔다.

이래서 내리사랑이라고 했나. 아가는 너무 애틋하니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여자 아가답게 더 가녀리게 보였다.

아이를 낳았지만 난 상태가 낳기 전보다 몇 배 더 좋았다. 웬일인지 몰랐다. 사람들이 와서 말시켜도 명랑하게 대답했고, 즐겁게 대화도 나눴다. 다들 무슨 산모가 그리 이쁘고 말도 잘하고 씩씩하냐고 재밌어 했다.

아가는 젖도 잘 빨고 잘 자 주었다. 나도 잘 잤다.
다음 날 아침에 난 무거워진 몸과 온 몸의 아픔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이미 마취와 마약의 기운이 사라져 산모 본래의 힘든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아기를 낳고도 그렇게 생생했던게 마취와 마약의 기운이 남아서 그랬던 것이다.

병원엔 삼일을 잤는데 삼일 째 되는 날 랑은 내 침대를 약간 위로 제껴주어 거의 앉은 자세로 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난 검은 형제가 내 위로 날라가며 내 턱을 세게 강타하며 지나가서 놀래서 깼다. 병실엔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였다. 섬뜩 무서운 생각에 랑을 불렀다. 랑은 밖에서 들어오며 건너편 병실에서 방금 한 할아버지가 운명했다고 했다.
으앙~ 뭐야.

난 자다가 누군가 내 턱을 강타하고 간 이야기를 해줬다. 바로 그 시간에 할아버지는 운명하셨단다. 난 무선 맘에 랑을 졸라서 병원에서 퇴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