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강-11 눈이 내렸다. 회색빛 콘크리트 담으로 사방이 매워진 이곳에도 눈은 내렸다. 방안의 군상들 모두 굵은 철근 사이사이로 긴 팔을 내밀었다. 눈송이 하나가 손에 닿았다. 이내 녹아 없어져버렸다. 또다시 다른 눈 꽃 하나가 살며시 손에 앉았지만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저 회색 담 밖 어딘가에 혜영이 있을것이다. 그 곳 어딘가에서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꺼라고 지영은 생각했다. 이 담만 넘어가면...그녀를 와락 끌어안아주리라고 다짐해보지만, 이 철창과 저 철문 그리고 회색담이 단단하고 너무 높게 둘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이런날 그녀가 옆에있다면 따듯한 커피한잔 타달라고 졸라볼텐데..... 오전에 편지가 배달되었다. 이곳의 편지는 모두 보안과의 검열을 통과한 후라서인지 언제가 개봉된 상태였다. 편지지에 적힌 그 많은 사연들 한가운데 검열 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낙인된 후에야 비로서 당사자들 앞으로 배달될수 있던거였다. 그 편지들의 주인을 불러주는 담당 직원의 목소리가 수인번호와 함께 하나씩 호명되었다. [3133. 김지영] 이곳에선 이름보다 4자리 숫자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방안의 군상들이나 이곳의 직원들 대부분은 이름보다 숫자에 더 익숙해져있기 때문이었다. [네] 편지를 받은 저마다의 사람들이 벽에 기대어 스르르 미끄러 내려앉기 시작했다. 지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명하게 찍힌 검열 두글자 사이로 보낸이 이혜영 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지영은 꼴깍 침이 넘어갔다. 정성스럽게 접혀진 편지였을 터인데 누구의 손인가가 풀어해쳐버린듯 펼쳐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지영씨. 몸 건강히 잘있는거지? 어제 변호사 선임했어. 아마 지영씨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변호사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 니까 다 잘 될꺼 같아. 어제 남아있던 짐들 몇가지를 지영씨가 과외하던 집으로 옮겨놓았어. 참 마니 슬프더라..눈물도 많이 나고.. 그런데 나 울지 않으려고 해..지금도 마찬가지고. 오직 나에겐 지영씨가 무사히 돌아오는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자기야. 자기가 옆에 없으니까. 잠이 잘 오질 않는다. 지영씨가 옆에있어야..나 팔베게 해 줄수 있는데.. 그래야 난 편안하게 잠 들수 있는데,,, 난 자기 팔베게 없으면 잠을 잘 못자자나.. 너무너무 보고싶어. 울지않으려고 애쓰는데 자꾸만 눈물이 흐르네... 지영씨를 처음 만났을때, 당당하던 그 모습 너무 좋았어. 자기에게서 나던 그 향기로움이 나 너무 좋았어.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고 당당하게 지내야해. 바깥의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까. 지영씬 지영씨만 생각하면 되는거야. 내 걱정도 하지말고, 어느 누구도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만 생각해... 이따금 내 생각 조금만 해주고.... 나 직장 구하려구. 돈있어야 자기 먹고싶은거 넣어주지. 힘들지? 내가 해줄게 아무것도 없다는게 가장 마음이 아파. 지영씨가 원하면 뭐든지 해 줄수 있을거 같앗는데.. 막상 이런 일이 닥치니 내가 할 수 있는것이 아무 것도 없네. 나 바보 같지? 할말이 무지하게 많았는데...울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자꾸 눈물만 흐르네.. 지영씨...자기야....사랑해.....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혜영이가.] 눈물이 핑 돌았다. 정작 지영은 혜영에게 아무것도 해준것이 없는데...그녀는 항상 지영에게 더 주지 못한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편지지 곳곳에 까만펜의 얼룩 자욱이 보였다. 혜영이 흘린 눈물을 훔쳐넨듯한 자욱도 곳곳에 보였다. 지영은 담배 한가치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소리내어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방안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 때문에 그러하지도 못하고. 가슴에 피멍이 들어가고 있었던 거였다. [지영아. 편지좀 줘바라] 방장이 한 손을 길게 내밀었다. 아무말 없이 편지가 건네진다. 방장도 소리없이 읽어내려갔다. 펼쳐진 편지를 곱게 접어 지영에게 건네주었다. [그 여자 버리지 마라. 그런 여자 버리면 천벌받는다.] 짧은 말이었다. 언제나 방장은 짧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가 길게 말하는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곤 다시 바닥에 들어누었다. 그제서야 지영은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이사람 저사람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슬며시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단 한사람 방장만이 팔벼게를 한채 천장만 응시하고 있을뿐이었다. 지영은 창가로 다가섰다. 여전히 눈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까보다는 제법 많은 눈송이 였다. 지영도 그들처럼 손을 길게 내밀어보았다. 예외없이 눈송이들은 지영의 손에 앉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저 눈 송이가 떨어지는 어느 곳엔가에 그녀도 이렇게 손을 내밀고 있는걸까?] 깊은 한숨과 함께 하얀 입김이 창 밖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혜영아..................] 목 밖으로 나오지 못한 소리없는 외침이 가슴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1
애증의강-11
애증의강-11
눈이 내렸다.
회색빛 콘크리트 담으로 사방이 매워진 이곳에도 눈은 내렸다.
방안의 군상들 모두 굵은 철근 사이사이로 긴 팔을 내밀었다.
눈송이 하나가 손에 닿았다. 이내 녹아 없어져버렸다. 또다시 다른 눈 꽃 하나가 살며시 손에 앉았지만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저 회색 담 밖 어딘가에 혜영이 있을것이다.
그 곳 어딘가에서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꺼라고 지영은 생각했다.
이 담만 넘어가면...그녀를 와락 끌어안아주리라고 다짐해보지만, 이 철창과 저 철문 그리고 회색담이 단단하고 너무 높게 둘 사이를 가르고 있었다.
이런날 그녀가 옆에있다면 따듯한 커피한잔 타달라고 졸라볼텐데.....
오전에 편지가 배달되었다.
이곳의 편지는 모두 보안과의 검열을 통과한 후라서인지 언제가 개봉된 상태였다.
편지지에 적힌 그 많은 사연들 한가운데 검열 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낙인된 후에야 비로서 당사자들 앞으로 배달될수 있던거였다.
그 편지들의 주인을 불러주는 담당 직원의 목소리가 수인번호와 함께 하나씩 호명되었다.
[3133. 김지영]
이곳에선 이름보다 4자리 숫자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
방안의 군상들이나 이곳의 직원들 대부분은 이름보다 숫자에 더 익숙해져있기 때문이었다.
[네]
편지를 받은 저마다의 사람들이 벽에 기대어 스르르 미끄러 내려앉기 시작했다.
지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명하게 찍힌 검열 두글자 사이로 보낸이 이혜영 이라는 글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지영은 꼴깍 침이 넘어갔다.
정성스럽게 접혀진 편지였을 터인데 누구의 손인가가 풀어해쳐버린듯 펼쳐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지영씨.
몸 건강히 잘있는거지?
어제 변호사 선임했어. 아마 지영씨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변호사님께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
니까 다 잘 될꺼 같아.
어제 남아있던 짐들 몇가지를 지영씨가 과외하던 집으로 옮겨놓았어. 참 마니 슬프더라..눈물도 많이
나고.. 그런데 나 울지 않으려고 해..지금도 마찬가지고.
오직 나에겐 지영씨가 무사히 돌아오는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자기야.
자기가 옆에 없으니까. 잠이 잘 오질 않는다.
지영씨가 옆에있어야..나 팔베게 해 줄수 있는데..
그래야 난 편안하게 잠 들수 있는데,,,
난 자기 팔베게 없으면 잠을 잘 못자자나..
너무너무 보고싶어.
울지않으려고 애쓰는데 자꾸만 눈물이 흐르네...
지영씨를 처음 만났을때, 당당하던 그 모습 너무 좋았어.
자기에게서 나던 그 향기로움이 나 너무 좋았어.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고 당당하게 지내야해.
바깥의 일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테니까. 지영씬 지영씨만 생각하면 되는거야.
내 걱정도 하지말고, 어느 누구도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자기만 생각해...
이따금 내 생각 조금만 해주고....
나 직장 구하려구.
돈있어야 자기 먹고싶은거 넣어주지.
힘들지?
내가 해줄게 아무것도 없다는게 가장 마음이 아파.
지영씨가 원하면 뭐든지 해 줄수 있을거 같앗는데.. 막상 이런 일이 닥치니 내가 할 수 있는것이 아무
것도 없네.
나 바보 같지?
할말이 무지하게 많았는데...울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자꾸 눈물만 흐르네..
지영씨...자기야....사랑해.....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혜영이가.]
눈물이 핑 돌았다.
정작 지영은 혜영에게 아무것도 해준것이 없는데...그녀는 항상 지영에게 더 주지 못한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편지지 곳곳에 까만펜의 얼룩 자욱이 보였다.
혜영이 흘린 눈물을 훔쳐넨듯한 자욱도 곳곳에 보였다.
지영은 담배 한가치가 몹시도 그리워졌다.
소리내어 울어버리고 싶었지만, 방안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 때문에 그러하지도 못하고. 가슴에 피멍이 들어가고 있었던 거였다.
[지영아. 편지좀 줘바라]
방장이 한 손을 길게 내밀었다.
아무말 없이 편지가 건네진다.
방장도 소리없이 읽어내려갔다.
펼쳐진 편지를 곱게 접어 지영에게 건네주었다.
[그 여자 버리지 마라. 그런 여자 버리면 천벌받는다.]
짧은 말이었다. 언제나 방장은 짧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가 길게 말하는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곤 다시 바닥에 들어누었다. 그제서야 지영은 방안을 휘 둘러보았다.
이사람 저사람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슬며시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단 한사람 방장만이 팔벼게를 한채 천장만 응시하고 있을뿐이었다.
지영은 창가로 다가섰다.
여전히 눈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아까보다는 제법 많은 눈송이 였다.
지영도 그들처럼 손을 길게 내밀어보았다.
예외없이 눈송이들은 지영의 손에 앉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저 눈 송이가 떨어지는 어느 곳엔가에 그녀도 이렇게 손을 내밀고 있는걸까?] 깊은 한숨과 함께 하얀 입김이 창 밖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혜영아..................] 목 밖으로 나오지 못한 소리없는 외침이 가슴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